유다가 배교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결론적인 주안점은 베드로가 그의 두 번째 서신에 기록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령께서 두 사람을 통해 문제의 끝을 계시하셔서 같은 것을 쓰도록 이 두 사람을 움직이셨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습니다(신 17:6, 고후 13:1). 인간의 지시가 말씀 기록에 사용되었다면 베드로와 유다의 말에 불과합니다. 모든 성경처럼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제도가 시작될 무렵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제도 끝의 상태를 똑같이 베드로와 유다에게 계시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1~13절과 유다서 1:17~19절 부분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부분입니다. AVS에는 유다서에 있는 “조롱하는 자들mockers”이라는 단어보다 오히려 베드로후서에는 “비웃는 자들scoffer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 둘 다 같은 단어로 “엠파이크테스empaiktes”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단어는 모두 같은 사람, 같은 행동을 말합니다. “엠파이크테스empaiktes”는 “조롱하는 자”, “비웃는 자”를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의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복음서에서 그 동사형 “엠파이조empaizo” 뿐입니다. 엠파이조empaizo는 마태복음 2:16, 누가복음 14:29절에서 쓰였는데 두 구절에서 사용된 이 단어는 비하하는 곳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로마군대에게 시련을 당하시고, 또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마 20:19, 27:29, 31, 41, 막 10:34, 15:20, 31, 눅 18:32, 22:63; 23:11, 36).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조롱하는 자들은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자들”이요, “경멸”하고, “조소”하고, “하찮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쓰여진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살아있는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육신이 되신(요 1:14) 말씀(요 1:1~2)은 또 다른 형태(육체 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말씀>, 곧 아들의 모습으로) 안에서 나타나신 구약성경(불가분하게 하나님과 동일시 된)이셨습니다.
“엠파이크테스empaiktes”과 같은 어원은 고린도전서 10:7절에서 사용된 “파이조paizo”라는 단어입니다. “파이조paizo”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나타납니다. “파이조paizo”라는 단어는 “즐겁게 하다. 기뻐하다. 기뻐하게 만들다.”나 “즐겁게 놀다.”라는 의미를 갖고, “아이”를 의미하는 “파이스pais”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파이조paizo”라는 단어의 뜻은 “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처럼”이라는 의미와 관계가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3, 유다서 1:18절에 있는 조롱하는 자들의 근거로 “아이들처럼 행동하는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행동에 대한 또 다른 방면은 파이조paizo가 고린도전서 10:7절에서 사용되었던 방법에서 유래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7절에 있는 사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교도 우상을 한껏 즐겼던 시내광야의 때와 관계가 있습니다(출 32:1~35). 그들은 이교도 우상 앞에서 즐겼습니다. “다음 날에 그들이 일찍 일어나 번제 헌물을 드리고 화평 헌물을 가져오며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 32:6).
이것은 모세가 장막을 떠나서 산으로 간 많은 날이 지난 후에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기를 지체됨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그들이 떠나왔던 이집트로 데리고 돌아갈 새로운 지도자에게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엘로힘)신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출 32:1, 4, 8, 23, 31). 여기서 엘로힘이라고 붙인 것은 구약성경에서 이교도 우상과 살아계신 하나님을 같은 히브리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그들을 이끌 사람이었다는 것을 날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갈” 자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녹여 부어 만든 송아지”는 그들의 (그들의 엘로힘)신으로 섬기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희생물들은 이 송아지에게 제사되었고, 이 희생물 주변에서 먹고 마시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축제동안 즐기기 위해 일어나는 사람들은 이교도적인 춤과 음악, 술과 마약 등으로 노는 동성애자들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방법, 관습, 그리고 이집트사람들의 우상숭배적 실행들에 따라 수행되었습니다.
일정시간 동안 이스라엘의 장막에서 산으로 떠난 모세는 교회를 떠나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산에서 모세의 길게 머무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해 새로운 지도자에게로 향했고, 우상숭배로 빠졌습니다. 하늘에서 그리스도께서 길게 머무시는 것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분께서 어떻게 되실지 알지 못해 이스라엘 사람들과 똑같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4절에서 “비웃는 자들”이 질문을 합니다. “그가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는가?” 모세가 돌아왔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그분 백성들에게 돌아갔습니다(출 32:15~35). 그렇듯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심판은 다시 한 번 그분의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유 1:14~16).
그러므로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에 있는 “조롱하는 자들”은 “믿음”으로부터 떠난 자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동들이 세상에 속한 자들과 아이와 같은 자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겉치레로 영적 성숙, 우수한 지식을 전람하는 그들은 사실상 세속적으로 미성숙을 전람하는 것이요, 빈약한 지식을 전람하는 것입니다(벧후 2:18, 유 1:16). 모세 시대에 시내광야에서 일어난 일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세상의 일로 즐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거절했고, 아래로부터 오는 미천한 것에 기댔습니다. SJ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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