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교회를 분열하게 하는 것 중 하나 : 선호

Hernhut 2013. 7. 4. 12:46

主護村成壬鉉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안사람들 편으로 너희에 관한 일 곧 너희 가운데 다툼이 있음을 내가 밝히 알게 되었노라.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너희가 각각 이르기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 하는도다. *그리스도께서 나뉘셨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혹은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고전 1:10~13)

잠재력:

고린도교회는 영적으로 영향력을 주는 교회가 되기 위한 잠재력을 가졌다. 그들은 모든 일, 모든 말, 모든 지식에 풍성했었고(고전 1:5), “어떤 은사로 부족함이 없었다(고전 1:7). 그들의 개인적인 선호의 초점은 그들을 분열시켰고, 그리하여 그 선호는 계속해서 그 잠재력에 도달하려고 했다. 바울은 빠르게 이 문제에 맞부딪혔다.

 

그리스도로부터 벗어났다.

성경은 다른 지도자에게 사람들을 이끄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카리스마였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가진 능력이나 영적인 은사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전 연합체이었을 수도 있었다. 이 사항이 빠져있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매력적이고, 동력학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지도자들을 따르는 것은 교회를 분열로 이끌 뿐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어찌 보면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로부터 반발을 살 수 있고,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매력적이고, 동력학적인 지도자들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교회로 가게 하는 경우가 드물다. 또 다른 사람과 심하게 휘감는 것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충성은 인간이 아닌 주 예수께 속해 있다. 주 예수님은 몸의 머리시다. 바울, 아볼로, 게바,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가 아니다. 바울은 성경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전도를 해서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지 전도해서 데려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오늘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의 교회로 데려오라고 말한다. 매력이 있고, 활동적인 사람은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기술이 있다. 예수님만이 영원한 구원을 위해 고통을 받으셨다. 침례를 받음으로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 우리가 출석하는 건물교회가 아니다. 말 잘하고, 호소력이 있고, 경건 혹은 근엄해 보이는 지도자들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나누일 수 없다. 교파로 혹은 사람의 선호로 나뉠 수 없다는 말이다.

 

서로 함께 가지고 있는 문제:

어떤 선호를 따르는 것이 고린도교회 가운데서 언쟁들을 가져왔다고 기록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서로를 불신하도록 하는 비교가 자존감과 경쟁으로 이끈다. 분열이 뒤따라 왔다. 서로 건축할 필요가 있었던 모든 사람이 서로를 패배시켰다. 교파는 각 사람의 선호에서 비롯되었다. 분열의 문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함께 악한 길로 인도하는 사탄의 전략에 휘말리는 것이다. 바울은 분열하지 말 것을 경고 했다. 오늘날 이 분열에 무뎌져 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 교파에서 저 교파로 옮겨 다닌다.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겨 다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런 행동은 교파의 분열과 교회의 분열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점이 필요했다.

바울은 성도들의 몸을 나누는 일을 멈출 것을 호소했다. 바울은 성도들이 행하고 있었던 것에 관해 생각해 볼 것을 부탁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머리를 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서로를 인지하고, 우선적으로 그들이 그리스도께 속하는 방법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이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들이 누구와 있든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은 교회에서 어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은혜로 구원받은 동료들이다. 비록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책임을 맡을 수는 있지만 아무도 주님 안에서 우월한 사람은 없다. 우리가 또 다른 사람을 향해 끌려가는 것을 놔둘 때 보통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로부터 벗어나서는 진리를 보호하고 보존한다고 할 수 없다. 최소한 우리는 산만해지고 분심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항상 계속해서 탁월하셔야 한다.

 

간청:

바울은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잠재력을 이르게 하는 관점을 갖도록 고린도교회에게 호소했다. 바울은 그들의 삶 안으로 말을 할 권리와 책임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의 동료로서 그들 곁으로 왔다. 이것은 파라칼레오parakaleo를 의미한다. 파라칼레오( parakaleo)란 격려, 위로 라는 헬라어이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옆에서 돕는다" "돕기 위해서 더불어 있다"는 뜻이다. 진정한 위로나 격려로 곁에 있어줌이다. 권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온 것이다. 이것은 단지 바울의 의견이나 바울이 그들에 관해 좋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권고는 주 예수 그리스를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그분에 관한 것이었고, 그들의 분열이 그리스도를 위해 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교회를 바라보기를 바란다. 잘못된 충성 때문에 여러분의 몸 된 교회가 분열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필요한 관점을 얻도록 여러분이 사람들을 도울 것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