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봄으로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또 다른 도전들을 계속 볼 것이다.
죄와 영적 죽음을 이김
이기는 이들은 영적 죽음과 내재하는 죄를 이겨야한다(고전 15:56~57, 롬 6:12). 비록 성경이 죄와 관련하여 특별하게 “이기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이 승리는 기록된 구절에 의해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 모두가 죄의 문제인 것을 알고 그것과 싸우고 있다.
성경은 또한 죄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우리를 가르친다(롬 5:12).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죄는 육체적인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으나 우리 체험 안에서 육체적인 죽음이나 영적 메마름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육의 것들을 갖고 육의 생각을 가질 때 이치게 된다(롬 8:6). 우리는 의로움과 생명을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 영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접촉해야만 한다(롬 8:4~6). 영적인 메마름은 내면 깊은 곳에서 공허함과 답답함으로 느끼게 된다. 우리가 내면에서 이 메마름을 느낄 때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생명을 접촉하기 위해 살아있는 우리 영으로 돌려야 한다. 어느 죄는 고백하고 회개해야만 한다.
선으로 악을 이김
이기는 이들은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롬 12:21). 가끔 악한 사람들은 우리를 반대하며 올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일은 우리 자신의 가족조차도 반대할 것이다. 우리는 선으로 이런 악을 이겨야 한다. 우리는 결코 악을 위해 악으로 되돌리지 말아야 한다(롬 12:17). 악에 의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악한 사람들에게 잘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줄지니 이는 그리함으로 네가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을 것임이라. *악에게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0~21)
“오직 내가 너희 듣는 자들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앙심을 품고 너희를 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또 네 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도 내어 주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덧옷도 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모든 자에게 주고 네 물건을 빼앗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와 같이 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너희에게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려 주면 무슨 감사의 말을 듣겠느냐? 죄인들도 준 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들에게 빌려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 주라. 그리하면 너희 보상이 클 것이요, 또 너희가 가장 높으신 이의 자녀가 되리니 이는 그분께서 감사하지 아니하는 자와 악한 자에게 인자하시기 때문이니라.”(눅 6:27~35)
마귀를 이김
이기는 이들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이겨야 한다. 사도 요한은 기록했다.
“젊은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저 사악한 자를 이겼음이요”(요일 2:13b) 요한은 다음 구절에서 이 상황의 확대해서 쓰고 있다.
“젊은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며 너희가 저 사악한 자를 이겼음이라.”(요일 2:14b)
여기서 말하는 “젊은이”는 어떤 성숙한 단계에 이른 믿는 이들을 묘사한 단어이다. 이 믿는 이들의 강한 힘은 그들 내면에서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된 것이다. 이것은 악을 지배하여 승리 안으로 우리에게 통찰력을 준다. 영적인 힘과 공급의 요소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악의 교활한 공격을 대항하여 믿음 안에서 설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악의 책략과 거짓에 대항한다. 마귀는 거짓의 아버지다(요 8:44). 마귀는 우리가 이길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듣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고 우리에게 말하려고 한다. 마귀는 세상에서 우리를 공격하거나 죄로 유혹하거나 의심의 원인이 되게 하려고 마음(생각) 안으로 생각을 보낼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거짓과 유혹과 책략은 하나님을 기꺼이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진리에 의해서 맞설 수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받았던 방법이다(마 4:1~10).
계시록에서 사도요한은 성도들이 원수를 어떻게 이기는 가를 기록했다.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거의 말로 그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계 12:11)
첫째로, 피는 우리를 반대하는 마귀의 고발(비난)을 무력화 시키고 패배시키는데 필요했다. 마귀를 의미하는 헬라어는 “디아볼로스”이다. 이 단어는 “고발자, 중상 모략자”를 뜻한다. 마귀는 우리의 죄 짓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일깨워 고발하는 자이다(계 12:10).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입어 우리의 의롭다고 확신하여 마귀의 비난의 모든 것을 반론할 수 있다(롬 3:25, 요일 1:9).
둘째로, 마귀를 패배시키기 위해 계시록 12:11에서 언급된 항목은 “자기들의 증거의 말”이다. 이것은 마귀의 거짓과 기만에 대항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가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약하고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생각(마음)에 들어갈 때 우리는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말해야 한다. 마귀가 우리 옛 죄지은 본성을 우리가 기억하게 함으로 인해 비난 하려고 할 때 우리는 말씀을 말해야 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주여, 감사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고 또 나의 옛 생명의 옛 것들은 지나갔습니다. 나의 옛 생명은 십자가에서 주님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심지어 마귀에게도 말할 수 있다. “마귀야, 나의 옛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누가 새롭게 된 나를 비난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하신다”(롬 8:33~34). 마귀는 우리의 생각하는 생활 안에서 우리를 공격한다. 우리는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을 거슬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 (고후 10:5)는 말씀에 의해 마귀를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증거의 말씀을 보존하여 우리 믿음 안에서 굳게 서서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에 대항하는 거짓을 짓밟아야 한다.
마귀는 특히 우리 상황과 관련되어 있는 불안으로 공격하길 좋아한다. 우리는 그분의 돌보심을 신뢰하여 우리를 돌보시는 아버지께 우리의 불안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고 또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 안에서 우리 믿음에 의해 마귀를 굳세게 저항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정하신 때가 되면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이는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니라.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對敵)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니라.”(벧전 5:6~9)
셋째로 적을 이기기 위해 계시록 12:11에 있는 비밀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층 더 우리의 삶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 심지어 우리의 삶까지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어떠한 비용을 치르더라도 그리스도를 기꺼이 따르는 이런 부분은 우리를 패배시키고 또 성공적으로 유혹한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사탄을 떠나는 것이다. 오히려 사탄이 패배했고, 또 우리는 그를 넘어 승리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특별히 마귀의 영에 의해 억압받거나 강한 공격을 받는다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만일 우리가 어떤 불순종을 통해서 마귀에게 자리를 내어주거나 마술(속임수, 점술 등)로 적셔지거나 다른 어떤 이유들로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엡 4:27). 이런 경우에 적의 근거지에 대항하여 더 협력된 전쟁이 필요하다.
거짓 교사들과 선지자들을 이김
이기는 이들은 거짓 교사들과 선지자(예언자)들을 이겨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그것이 오리라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이미 세상에 있느니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그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요일 4:1~4)
이 구절에서 “그들”은 1절에서 언급된 거짓선지자에게로 다시 돌아가 알아보도록 한다. 이 구절은 믿음의 기본적인 교리를 부인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에 관해 특별히 허위를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특별한 이김의 전쟁터가 거짓 선지자들과 교사들 모두에게까지 확장한다는 원칙으로 믿는다.
베드로는 믿는 이들 가운데 들어오고 또 그들을 타락시키는 거짓 교사(목사나, 신부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 들을 경계했다(벧후 1:1). 만약 믿는 이들이 거짓된 가르침과 이 교사들의 기만을 승리로 이끌지 않는다면 거짓교사들은 믿는 이들의 믿음의 생활을 속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베드로후서 2장에 있는 거짓교사들은 그들의 육체적인 욕망들로 매혹시켜 미성숙한 믿는 이들을 유혹한다(벧후 2:18). 만약 믿는 이들이 이처럼 악마 같은 가르침의 올무를 탈출할 수 없다면 그들은 그들의 육체적인 욕망들을 만족하여서 그들의 믿음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을 그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이 일이 발생하는 것을 본다.
많은 믿는 이들은 수년에 걸쳐 하나님에 의해 결코 명령되지 않은 거짓 교사들을 포함한 집회들이나 운동(활동)들에서 속고 있었다. 이런 속았던 무리들은 주님 안에서 성숙되지 못했고 또 때로는 그들의 체험에 의해 심한 상처를 받았다. 거짓 교사들을 이기고 또 그들의 영향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정적인 환경을 이김
이기는 이들은 부정적인 환경을 이겨야한다. 로마서에서 기록된 다음 구절 모면 이기는 이 방면을 언급하고 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것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토록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아니라,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 정복자들보다 더 나은 자들이니라.”(롬 8:35~37)
이 구절에서 “정복자들”은 헬라어 동사 “후페르니케오hupernikao”에서 번역되었다. 이 동사는 “더”를 의미하는 “후페르”와 “정복하다”를 의미하는 “니카오” 두 단어로 구성되어 합성된 단어이다. 이 구절은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심각한 여러 환경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우리가 무엇을 이겨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소멸시키려고 하는 그 환경들의 천연적인 영향을 이긴다.
이런 “불같은 시련”의 시험(벧전 4:13)은 인간적인 생각에 너무 겁먹게 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서 사람이 이런 심각한 시련의 부정적인 충격을 이길 수 있다는 것과 그것들을 참고 있는 동안 화평과 소망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그 생각은 천연적인 생각으로는 너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역사는 입술로 구세주의 찬양으로 그들의 죽음에까지 평온하게 간 많은 그리스도인 순교자들을 증명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것들은 주님 안에서 확고부동한 신앙을 유지하고 또 그 모든 것을 통해서 그들의 화평과 기쁨을 계속유지 하였으며, 큰 곤란과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의 어려움을 참은 것이다.
이처럼 확고부동함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에 불안하고 당황하거나 낙담함의 느낌 없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느낌이 우리에게서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요, 또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그분을 따르는 것을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고후 4:7~9).
이기는 이들은 모든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추구하기를 계속할 것이요, 그 시련의 압박으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기는 이들은 인내하기 위해서 그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찾을 것이다. 이기는 이들은 고통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기쁨과 화평의 요소로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것이다. 이기는 것의 이 유형은 승리의 힘이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이기는 이들에 관하여 읽을 구절은 히브리서 11:35~39이다.
“여인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받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고문을 당하되 풀려나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또 다른 이들은 심한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참으로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겪었으며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고 시험을 받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박해와 고난을 당하였으니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느니라.) 그들이 사막과 산과 땅굴과 동굴에서 떠돌아다녔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되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교회 안에서 하락함을 이김
이기는 이들은 그들의 참여하고 있는 교회에서 타락한 상황의 모든 것을 이겨야 한다. 이기는 이 방면은 우리가 지난 강의에서 교제했던 혼합된 종교적인 상황으로부터 누룩을 제거하는 것과 조화를 이룬다. 어쩌면 여러분은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이 방면을 결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하나님 말씀 안에는 아주 현저하다. 아시아(지금의 터키)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보낸 그분의 편지(계 2, 3)에서 주 예수께서는 그 교회들 가운데 있는 많은 결함을 말씀하셨다. 그 단점들을 이기도록 하려고 말씀을 들을 어떤 사람을 부르셨다. 그 일곱 교회들은 사실상 회중들이었으나 성경 교사들은 교회 시대 안에서 어느 회중에게 적용되어 그 회중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라고 동의 한다. 사실 주님께서 개인적인 교회에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교회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는 것이었다(계 2:7). 그분의 날카로운 심판의 눈(계 1:14)으로 주 예수께서 이길 필요가 있는 것을 책망하시며, 교회들 가운데 허다함을 보셨다.
이러한 것들은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림과 잘못된 훈련들, 잘못된 가르침들, 우상 숭배(영적인 것, 문자 그대로), 영적 죽음, 무관심, 영적 자만 등을 포함한다. 또한 이기는 문제는 주님께서 인정하신 훈련에 충실하고(계 3:10) 또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인내하는 성도의 자원하는 마음, 심지어 죽음까지도 인내하는 마음(계 2:10)과 연결되었다.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주님을 비난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안에서 발효되어 혼합된 술과 함께 흘러가고 있다. 아무도 군중들과 함께 활동하지 않아서 오해를 받거나 심지어 거절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대한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오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따라 개인적으로 평가받아 모두 부르심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던 삶 위에 오고 있는 심판대를 고려하여(고후 5:10) 우리는 기꺼이 자신을 거부하고 또하나님의 것이 아닌 교회에서의 일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판의 날에 책망을 받을 것이고 또 우리의 보상을 잃을 것이다.
아시아에 있는 주님께서 일곱 교회에게 주신 메시지를 다시 읽어라. 거기에는 이기는 이들에게 놀라운 약속이 있고 또 들으려 하지 않는 이들에게 징계의 경고도 있다. 많은 이 훈계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의 때에 성취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기독교에서 타락되어 혼합된 것을 이겨야하는 그들을 부르시고 계신다. 주님께서 만일 우리가 이기기 위해 그분을 추구한다면 많은 은혜를 부여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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