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아담 vs 그리스도

이기는 이들의 훈련(III)

Hernhut 2013. 4. 19. 01:24

 

믿는 이들의 양심

여기서 믿는 이들이 그들의 영적 삶에 아주 중요한 내면적 기능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양심에 관해 더 말할 필요가 있다.

 

양심과 지식

우리의 양심은 옳고 그름을 우리 개념에 의해서 당연하게 영향을 받는다. 성경은 이것을 아주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고전 8, 10장 그리고 롬14). 이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어떤 것의 다른 이해를 가진 믿는 이들의 말을 기록한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양심은 같은 문제에 의해 다르게 영향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성경의 예는 우상들에게 제사를 지낸 고기(음식)를 먹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주제는 그 우상들에게 바쳐진 고기(음식)와 우상들을 숭배하였던 문화에서 나온 초기 믿는 이들에게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다. 이 음식(고기)은 나중에 우상의 신전이나 고기 시장에서 먹기 위해 아무에게나 팔 수 있었다(고전 8:10, 10:25). 그리스도 앞에서 사는 어떤 믿는 이들은 우상들과 접촉하는 것을 안에서 품었으며, 우상과 함께 행하는 어떤 것을 향해 아주 민감해 했다. 우상들의 혐오감 때문에 어떤 믿는 이들은 우상에게 제사한 고기를 먹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죄가 될 것이라고 느꼈다. 만일 그들이 이와 같은 음식을 먹었다면 그들의 양심은 맹렬하게 그들을 비난할 것이다. 한편, 주님 안에서 더 성숙한 사도바울의 가르침은 그들 스스로 안에 있는 우상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일어나 그들 앞에 놓인 음식(고기)이 신이 아니라 단지 나무 조각에 불과한 것이요, 더럽혀진 것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말한다(고전 8:4). 또한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서 먹는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깨달은 믿음이 강한 이들은 하나님의 허락과의 교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고전 8:8, 14:14, 17). 이와 같이 믿는 이들은 그들의 양심에서 다른 사람을 비난 하는 것 즉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서 해방받았다(고전 8:9, 14:22~23). 이런 구절들에서 우리는 믿는 이들의 양심이 그들의 지식에 의해 구체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성경은 또한 믿는 이들이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죄가 아닌지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여러분이 이 구절들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여러분은 바울이 스스로의 양심의 수단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믿는 이들 각자의 생활이 보호되기를 격려함을 볼 것이다. 각자는 개인의 양심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침으로서 생각의 그들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14:2~8, 22~23). 더욱이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의 영적인 지식을 아직도 가지고 있지 않고서 행하는 문제들 안에서 우리의 예를 따르게 하기 위해 그들을 용기를 돋우어 줌으로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을 해롭게 하는 것에 관해서 정말 주의를 해야 한다(14:14~15, 21~23, 고전 8:9~13). 만일 우리가 이것을 행한다면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데 손상을 끼치고(14:19~20), 이 많은 문제 안에서 죄를 범한 것이다(고전 8:11~12). 비록 지식과 양심이 밀접한 관계가 되어있을지라도 그 둘을 혼동하지 말라. 지식은 우리의 생각(혼의 일부분) 안에서 유지되는 어떤 것인데 반해 양심은 우리 영의 기능이다. 우리는 몸과 혼과 영 세부분으로 되어 있다(살전 5:23). 생각과 함께 혼은 영에 가까이 있다. 성경은 예리한 양 칼날이 그 두 부분 사이를 구별함으로 나눌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4:12). 우리는 항상 우리 영 안에서 그분을 접촉함으로 인해 하나님에 의해 살아야 한다(4:24, 딤후 4:22).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의로운 것이 무엇이 죄인지 우리의 지시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살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이것을 행하는 것은 스스로의 독립적인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고,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로부터 사는 것이다.(2:17). 오히려 우리는 모든 문제에서 우리 양심의 감각을 수반하고 우리 영에 주의 하며,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기를 노력해야 한다. 사실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함으로서 우리의 양심은 잘잘못이 무엇인지 평가하는 데 우리에게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단순하게 사람이 무엇인지 또 하나님이 무엇인지 증거한다(고전 1:12). 사람의 많은 행동은 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인의 일들을 포함하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님의 허락하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것들을 창조하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고전 3:12~13, 2:10).

 

양심과 하나님과의 우리 교제

우리가 위에서 기록한 원칙들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 양심이 절대적인 감각 안에 있게 될 하나님의 가장 높은 무엇으로 완벽한 지침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관련한 현재의 우리 지식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고 또 우리 모두는 우리 주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 안에서 자라야만 하기 때문이다(벧후 3:18).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람으로서 우리는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될 것들을 우리 생활 안에서 비난 받게 될 것이고 더 일찌감치 비난을 받았던 것들을 행하는 것에서 해방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양심은 거듭난 우리 영의 능력으로서 우리 현재의 위치에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완벽한 지침이다. 그것은 그분과 더불어 우리 현재의 교제를 결심시키는 우리 양심의 지침에 대한 순종이다.

다음에 언급한 니토생 형제의 메시지는 많은 도움을 준다. 이것은 양심이 그것의 가장 새로운 빛의 범위까지만 비난할 수 있고 의식적인 것이 아닌 것을 죄로 판단할 수 없다. 믿는 이들의 지식이 자람으로서 그의 양심은 그 의식 안에서 역시 증가한다. 만일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를 완전히 따르고 있다면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하지만 많은 것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우다.)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일 1:7)

 

하나님께서는 한계가 없으신 빛을 가지고 계신다. 비록 우리의 빛은 한계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빛을 통해서 우리가 걷는다면 우리를 깨끗케 하실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의 피로 사귐을 갖게 될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생활에서 오늘날 제거되지 않은 죄들이 아직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그것들을 의식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양심은 중요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식과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거룩함의 우리 표준이 아니라는 생각을 계속해 보자.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문제에서 그분의 상태가 어느 쪽이든 우리는 죄가 없는 양심을 계속 유지해야한다. 양심의 지시에 완벽하게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완벽하다고 우리 스스로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선한 양심은 우리가 완전하다고 우리 지식에 이르기 까지 단지 우리를 확신하게 한다. 또 그것은 우리가 직접적인 목표에 미쳐있으나 궁극적(최종적인)목표는 아니다. 이와 같은 경우 우리 행실의 표준은 영적 체험의 증가와 성경의 우리 지식이 고도로 상승한다.

 

양심의 신성을 더럽히는 위험들

만일 심각한 영적 위험에 직면하여 죄가 없는 양심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돌보지 않는 성도들이 있다면 성경은 그것을 아주 깨끗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보기로 하자.

이제 이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어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다툼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이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 1:5~7)

선한 양심을 유지하는 것으로부터 타락하는 것은 가른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또 헛되이 하나님을 봉사하는 과정에 있는 체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인도자가 되려는 육체적인 야망(교사 혹은 오늘날의 목사들이 되는 것을 원함)을 점검하지 않은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그 영께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들의 양심에 쇠도장(몸에 구멍을 뚫는다든지, 피어싱을 한다든지, 귀를 뚫는다든지 하는 것을 포함함)을 찍어 무감각하게 해서 거짓의 위선을 의미함으로 인해 나중에 어떤 이는 믿음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마귀들의 교리들과 기만적인 영들의 주의를 끌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혼인을 금하고 또 음식들을 절제하도록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알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기꺼이 받도록 창조하셨다(딤전 4:1~3).

위에서 언급한 구절에서 우리는 마귀들의 교리들을 거짓말로 전파한다는 것이 틀림없음을 본다. 이 같은 거짓된 사람들은 마비된 양심을 가지고 있다. 마비된 양심은 느낌 이상보다도 더 손상되는 것 까지도 입게 된다. 이것은 믿는 이들이 반복적으로 그의 양심을 더럽히고 또 그 양심의 음성을 듣는 것을 거절할 때 일어난다. 양심의 음성은 조금도 그것을 듣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때까지 고칠 수 없는 방해로 더 소리 없이 성장한다. 여기 문맥에 따르면 이것들은 교회 안에 있는 교사들(오늘날 목사, 신부, 혹은 장로, 집사 등을 뜻함)이다. 엄한 이 경고는 마귀로부터 돌이키는 것과 고백을 통한 선하고 감각 있는 양심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악한 일을 하거나 아니면 거짓 교리를 유포하여 아마들과 함께 동역 하도록 할 수 있다.

아들 디모데야, 전에 너에 관하여 주어진 대언들에 따라 내가 네게 이것을 명하노니 곧 그것들을 힘입어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 어떤 자들이 이 선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8~19)

얼마나 강력한 경고인가! 이 구절에서 우리의 믿음과 선한 양심은 함께 감을 보여준다. 만일 우리가 선한 양심을 거절하면 우리의 믿음은 마침내 그 믿음의 기본적인 교리들이 우리에게 의심을 받는 원인이 되어 뒤집어 놓을 것이다. 이것은 후메내우스와 알렉산더에게 일어났다. 후메내우스는 손상된 이단적교회 교사(목사 등)가 되었으며(딤후 2:17~18), 알렉산더는 바울의 사도적 사역에 반대했다(딤후 4:14~15).

 

선한 양심의 열매

성경은 믿는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큰 가치를 둠으로서 선한 양심이나 깨끗함을 격려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 아주긍정적인 성경을 보기로 하자.

이제 이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 1:5)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갈망하시는 최고의 미덕이요, 무엇보다도 소중한 미덕이다(13:34~35, 오전 13:13, 5:14). 디모데전서의 구절에서 우리는 우리로부터 흐르는 사랑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선한 양심임을 본다.

순수한 양심 속에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자라야 할지니라. 이 사람들도 먼저 시험해 보고 그 뒤에 책망 받을 것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집사의 직분을 수행하게 할지니라.”(딤전 3:9~10)

여기서 우리는 시험을 받은 성품을 가진 사람,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을 책임 있는 봉사를 할 사람으로 임명되는 것이 가치가 있음을 본다.

 

내가 밤낮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너를 기억하므로 내 선조 때부터 순수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딤후 1:3)

이 구절은 바울의 마지막 편지인데 그가 순교하기 전에 짧게 쓴 것이다. 이것은 그가 큰 사도적인 사역을 하는 동안 하나님을 봉사하는 방법으로 증언한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배워야할 첫 번째 요건은 우리 깨끗한 양심으로 아무리 작더라도 모든 우리의 봉사를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아닌 어떤 봉사는 나무, 건초, 짚으로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불살라질 것이다(고전 3:12~13).

 

추가 메시지

주님께서는 양심의 문제들을 처리하실 필요가 있으셔서 새롭게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실 수 있으시다. 또한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완전한 뜻을 이해하는 곳에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의 진리를 추구하고 그분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의 지식 수준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올해는 더 감각적이기 위해서 우리 양심을 증가시켜야함을 본다. 우리 생활의 측면을 더 만져야 하고 또 그리스도 자신과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모델로 준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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