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

교회 조직과 사역 그리고 치리

Hernhut 2013. 4. 17. 20:43

 

교회의 조직, 치리,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연구할 것입니다.

1. 교회는 중앙집권화 본부와 치리 받는 몸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지방적 교회들이 독립되어 있어야 하는지를 연구할 것입니다.

2. 교회들이 자선단체, 병원, 대학, 그리고 학교들을 후원해야하는 지를 연구할 것입니다.

3. 교회들이 환경, 오락, 스포츠, 운동, 파티, 게임, 축제, 연회, 캠프, 식사 등을 지지하는지 아니면 영적사역, 영적예배, 그리고 복음전파를 강조하는지를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각각의 교회들은 교회 조직과 사역에 관해서 다른 관점들을 붙잡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여러 종류의 중앙본부와 치리하는 몸이나 중앙집권화 된 땅에 속한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 자선단체들을 후원합니다. 대부분 환경, 오락, 스포츠, 운동, 파티등 사회적 복음사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교회의 조직, 치리, 그리고 사역을 검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원하시는 사역을 실행하는 자신의 교회를 원하시고 주님께서 조직되고 치리된 교회를 원하신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중앙조직들, 땅에 속한 총회, 자선단체에 후원하는 권한을 주셨습니까? 예수께서는 환경, 오락, 흥미를 공급하는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적사역에 초점을 맞추는 교회를 원하셨는지, 잃어버린 혼들을 구원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교회를 원하셨습니까?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십시오.

 

I: 우리는 우리가 교회생활에서 실행하는 모든 것들을 위한 성경적인 권위가 필요하다.

 

A.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시기 위해 3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1. 명령과 직접적인 말씀

가끔 하나님은 자신께서 실행하거나 믿는 우리를 원하신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고전 14:37, 14:15, 28:20). 이와 같은 가르침에 대한 특별한 경우들은 침례를 받는 것(10:48), 사랑하는 것(22:37~39), 그리고 주의 만찬을 갖는 것(고전 11:23~26)에 대한 명령입니다.

 

2. 실제적인 예들

하나님은 어떤 것을 행하라고 명확하게 말씀을 하시지 않지만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어떤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행할 예를 주십니다.

 

이는 참으로 너희가 이것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니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남기사 너희로 하여금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벧전 2:21). 예수께서는 한 예를 남기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16:24, 10:25, 요일 2:6).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도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전 11:1).

형제들아, 너희는 다 함께 나를 따르는 자가 되고 또 너희가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같이 그렇게 걷는 자들을 눈여겨보라.”(3:17)

너희는 내 안에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들을 행하라. 그리하면 화평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4:9). 우리는 또한 영감을 받은 사람들의 예를 따라야 합니다(고전 4:16~17, 살전 1:6~7).

 

우리는 이 공과에서 물에 잠기는 침례(8:35~39), 한 주의 첫날에 주의 만찬을 하는 것(20:7), 각지 교회에서의 복수장로(14:23)들을 배웁니다.

 

3. 마땅한 결론들이나 필요한 추론들

가끔 진리는 직접적인 말씀은 아니지만 말씀을 하신 것에 대해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 예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을 시험하여 이르되, 남자가 무슨 이유로든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이 율법에 맞나이까? 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처음에 사람을 만드신 이가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런 까닭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 아내를 버리라 명령하였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이 완악하므로 아내를 버리도록 허락하였으나 처음부터 그렇지는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 외에 다른 이유로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니라.”(19:3~9). 창세기 2장에서 둘이 하나 되는 것이라고 결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다른 방식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간음을 이유로 인한 것은 제외하고 이혼 역시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구약 율법은 유다지파의 제사장직분에 대해 예언되었지만 그 율법 그 자체는 레위지파의 제사장만이 허락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반드시 율법이 변하게 될 것을 의미했습니다(7:11~25, 22:23~32, 17:2~3, 10:1~11:18, 15:6~21, 고전 15:12~19).

 

교회는 모이는 것입니다(10:25). 그러므로 모이는 장소가 있습니다. 사람이 침례를 받기 전에 믿고 회개해야 하기(16:16, 2:38) 때문에 믿고 회개할 수 없다면 우리는 몸들에게 침례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B. 모든 영적인 섬김은 하나님에 의해 권한이 주어졌어야 한다.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15:9). 사람이 만든 법은 예배를 헛되게 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3:17).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예수님의 권위로 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이 다른 복음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요,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는 어떤 자들이 있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 하는 것뿐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아들인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6~9). 하나님의 저주는 복음과 다른 것들을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범죄하며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없는 자며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자니라.”(요이 1:9). 우리가 하나님이 계심을 소망한다면 우리는 예수에 의해 주어진 가르침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의도였지만 인간의 지혜는 계시 없이 그분을 하시게 하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10:23, 55:8~9, 14:12, 3:5~6). 하나님은 자신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것이 복음 안에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딤후 3:16~17, 벧후 1:3, 16:13).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에서 가르치지 않은 어떤 것을 실행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22:18~19, 벧후 4:11)

 

C. 하나님의 가르침은 구체적이고 보편적일 수 있음

우리가 실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의미에 포함되거나 정의에 합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식 안에 있는 것을 실행할 사람을 원하실 때 주님은 의미를 좁히시거나 구체적인 용어를 선택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런 구체적인 용어의 의미에 포함되지 않은 어떤 것을 실행한다면 그분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한편으로 하나님께서는 가끔 어떤 것을 실행하는 것에 대해 선택 가능한 방법들을 마음대로 선택하도록 사람을 떠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미 속에 있는 것이 더 보편적인 것인지, 포함된 것인지를 말씀 안에서 교육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육에 대한 정의에 맞는 어떤 선택 가능한 것을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모든 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날짐승 곧 모든 종류의 새가 그 종류대로 들어가고”(6:14). 하나님은 고퍼나무의 방주를 만들도록 노아에게 권한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고퍼나무를 명시하신 이후로 금속이나 소나무가 고퍼나무와 다른 재료들이기 때문에 잘못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슨 도구를 사용하는지에 관해 구체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있을 때 망치를 사용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육이 합당하시기 때문에 받아들이셨을 것입니다.

 

()의 첫날에 제자들이 빵을 나누려고 함께 나오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며 계속해서 한밤중까지 말을 하니라.”(20:7).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 것은 또한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시던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나누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부서진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시고 *저녁 식사 뒤에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잔을 집으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니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셨느니라. *이는 너희가 이 빵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기 때문이라.”(고전 11:23~26). 하나님은 주의 만찬에 대한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행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다른 요소들이나 다른 날은 권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날의 시간은 구체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한 주간의 첫날 어떤 시간이든 실행할 수 있습니다.

 

시와 찬송가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에게 화답(和答)하며 너희 마음 속에서 주께 아름다운 가락을 만들어 노래하며”(5:19). 하나님께서 노래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후 음악의 어떤 다른 종류는 권한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노래하는 파트들은 노래의 알맞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한 성경적인 권한을 갖는 것이 합당하다고 확신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성경적인 권한을 갖지 않는 모든 실행들을 반대해야 합니다.

 

II. 교회는 잃어버린 자들을 회개시키려 할 때 복음의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각지교회는 다음의 특성들을 모두 가집니다.

(1) 어떤 지역과 그 인근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무리입니다(고전 1:2, 1:2).

(2) 그들은 몸을 이끄는 복음과 규칙들을 정하고 있습니다(1:22~23, 5:23~24).

(3) 그들은 무리들로 이룰 사역을 갖고 있고,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4) 그들은 사역을 감독을 위해 제도를 갖습니다(14:23, 20:17, 28, 벧전 5:1~3).

(5) 그들은 사역을 수행하기 위한 무리에게 속한 기금을 갖습니다(고전 16:1~4, 4:32~5:11, 4:14~18, 고후 11:8~9).

(6) 그들은 지체들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각지교회의 지체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성경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9:26~28, 고전 5:1~13, 18:15~17, 13:17).

(7) 그들은 각지교회가 될 의도라는 것을 서로 동의하고 이해합니다(9:26~28, 고전 1:2).

 

이제 각지교회의 사역에서 영적 강조부분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A. 교회는 근본적으로 영적인 몸이다.

복음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영적인 필요가 육적인 필요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16:26~27, 6:27, 63). 사람의 육적인 필요로 만나는 것은 임시적인 유익일 뿐이요, 영적인 필요로 만나는 것은 영원한 유익을 갖습니다(3:1~2, 12:15~21, 4:4, 10:28).

 

이 영적인 강조는 교회에게 공급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자, 주인, 그리고 머리께서는 사람의 영적 필요를 강조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영적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피를 흘리셨습니다(1:7, 19:10, 5:32, 20:28, 26:28). 하지만 그분은 그 피와 함께하는 교회를 추구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지금 교회의 머리이십니다(16:18, 20:28, 1:22~23, 5:23~25).

 

교회의 지체들은 영적으로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구성됩니다(2:47, 20:28, 5:23, 25, 1:12~14).

 

교회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도록 세워놓으신 것만을 훈련하십니다. 우리가 육적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서 예수께서 결코 죽으심 없이 교회를 세우실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영적필요는 예수의 죽으심과 그분께서 추구하신 교회 없이는 채울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침례 받는 순간 영적탄생으로 들어간 것입니다(3:3~5, 6:3~4, 고전 12:13, 2:38, 47, 고후 5:17).

 

교회에서 인도하는 형제들(사도, 장로)들의 주된 사역은 영적인 것입니다(6:2~4, 20:28, 13:7, 17).

 

교회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영적인 집이요, 왕국입니다(벧전 2:5, 18:36). 우리는 영적인 희생을 드릴 제사장직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육적으로 관련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6:33, 14:17, 고후 10:3~5).

 

교회는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입니다. 교회는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돕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강조가 각지교회의 사역에 반사되었는지를 볼 것입니다.

 

B. 각지교회들은 영적사역을 우선한다.

예수님께서 교회가 실행할 권한을 부여하신 사역.

각지교회는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도록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는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울려 퍼졌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너희 믿음이 곳곳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나니”(살전 1:8). 이 교회는 주의 말씀으로부터 퍼졌습니다. 또 교회들은 잃어버린 자들을 가르치도록 복음전파자들을 보냈습니다(11:22~26, 13:1:52). 교회들은 재정적으로 복음전파자들에게 후원을 했습니다(4:14~18, 고후 11:8~9, 고전 9:1~18).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요, 터입니다(딤전 3:15)

 

각지교회는 교육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만 마디 말을 하느니 차라리 이해하면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내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리라.”(고전 14:19). “그러므로 온 교회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모두 타언어로 말하면 배우지 못한 자나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모두가 대언을 하면 믿지 않는 자나 배우지 못한 자가 들어와서 모든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달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자기 마음의 은밀한 것들이 이렇게 드러나게 되므로 그가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또 전하기를 진실로 하나님께서 너희 안에 계신다 하리라. *형제들아, 그런즉 어찌하리요? 너희가 다 같이 모일 때에 너희 각 사람에게 찬송시도 있으며 교리도 있으며 타언어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통역도 있나니 모든 것을 남을 세우기 위하여 할지니라.”(고전 14:23~26). 교회들은 지체들을 양육하려고 공식적인 예배모임을 합니다(10:24~25). 모든 지체들은 몸을 세우기 위해 사역합니다(4:16).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하고 뛰어난 사람들만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성도들을 세우기 위해 서로에게 사역한다는 것입니다(고전 5:1~13, 18:15~17, 살전 3:6~15).

 

각지교회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기회들을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 기도(고전 14;15, 2:42), 주의 만찬(고전 11:17~34, 20:7), 노래하는 것(고전 14:15, 2:12, 5:19), 모이는 것(고전 16:1~24, 고후 8:1~9:15)을 포함합니다.

 

각지교회는 지체들의 궁핍을 돌봐야 합니다.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고전 16:1~2).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한 마음 한 혼이 되어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그들 중에 자기 소유를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말하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매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임하니라. *그들 가운데 부족한 자가 아무도 없었으니 이는 땅이나 집을 소유한 자들이 다 그것을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음이더라.”(32~35). 모이는 것은 성도들의 필요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2:44~47, 6;1~6, 11:27~30, 고후 8:1~9:15). 각지교회들은 지체들의 육적인 필요를 도와야 하지만 그들의 강조는 사람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C. 혼은 육욕이 상승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로 구원받고 또 양육되었다. 

하나님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시고 우리는 사람들을 이끌고, 모이게 할 때 그 능력을 사용해야 함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1:16).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살전 2:14). 예수님은 그들을 방문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으로 자신에게로 사람들을 이끄셨습니다(12:32, 11:28~30, 6:44~45). 사도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말하는 것으로 잃어버린 자들을 회심시켰습니다(17:2, 17, 18:4, 11, 19, 19:8~9, 24:24~25). 그들은 결코 듣는 사람들을 육욕적인 상승을 도모하는 것을 공급하지 않았습니다(5:42, 8:4~5, 25, 35, 13:5, 16, 14:1, 7, 21, 16:13).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죽으심,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입니다(요일 4:19, 5:3, 20:32, 고전 1:18~24, 4:12~13, 1:21, 10:14~17).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믿는다면 우리는 사람의 육욕적인 것, 육체에 속한 것, 육체적인 갈망을 드러내지 않아야 함 

많은 교회들이 재미, 음식, 유흥, 사람들이 끌리는 신나는 일들을 제공하는 것이 현대교회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10,000원도 주지 않을까요? 그것은

비록 우리가 육신 안에서 행하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이는 우리의 전쟁 무기가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통하여 요새들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라.)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을 거슬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고후 10:3~5). 우리의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지만 예수께 사람들을 인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적들과 싸우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갑주를 가지고 있습니다(6:10~18). 그 전신갑주는 딱 맞고, 강합니다. 육욕적인 무기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14:17). 우리가 예수의 죽으심을 전파함으로 사람들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고전 1:18~25, 2:1~5). 사람들이 그 메시지에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공급할만한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13:46). 사람들이 음식을 위해 예수께 왔을 때 그분은 그들에게 먹이기를 거절했지만 영원한 생명을 찾도록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듣는 것과 배우는 것을 위해 그분께 올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영과 생명이지만 육에 속한 것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6:26~27, 44~45, 63, 68).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신적인 매력을 사용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성경은 완전히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무엇으로 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된다.”라는 내용들은 거절했습니다(삼하 6:3~7, 삼상 8:1~22, 15:1~35, 10:1~3, 7:21~23).

 

하나님은 영이십니다(4:24).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가장 큰 필요는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적 역시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보상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적인 끌어들이는 능력 곧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교회는 육욕적인 매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부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요,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III.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은 자신들의 책임들을 각각 수행해야 함

 

A. 각지교회의 사역은 개인적인 그리스도인의 것과 같을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인 그리스도인들이 행할 수 있는 것이든 행하라고 명령한 것이든 교회는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개인 사역에서 교회사역을 구분하는 구절들을 주목하십시오.

 

또한 만일 네 형제가 네게 범법(犯法)하거든 가서 너와 그가 따로 있을 때에 그의 허물을 일러 주라. 만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그가 듣지 아니하거든 너와 함께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무시하여 듣지 않거든 교회에게 말하되 교회의 말도 무시하여 듣지 않거든 이교도나 세리같이 여기라.”(18:15~17). 한 형제가 우리에 대항하여 죄를 범했을 때 우리는 개인적으로 먼저 충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 후 몇몇 형제들과 함께 개인적으로 다시 충고를 해야 합니다. 교회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부분을 했을 때까지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도둑질을 한 자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오히려 노동을 하여 궁핍한 자에게 줄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선한 일을 할지니라.”(4:28).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고전 16:1~2). 각 개인들은 일을 함으로 자신들의 소득을 얻으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살후 3:10). 하지만 교회는 기부금을 받습니다.

 

오직 내가 말하려는 바는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후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후하게 거두리라 하는 것이라. *저마다 자기 마음 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6~7).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도 네 땅이 아니며 판 뒤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아니하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 속에 두었느냐? 네가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한 것이로다, 하니”(5:4). 각 개인의 돈은 자신의 운용 안에 있는 것이요, 교회의 운용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는 얼마나 기부할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교회는 얼마를 내라고 각자에게 말할 수 없고, 교회가 그 기금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네게 빌리고자 하는 자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5:42). 각자는 필요한 것을 돕기 위해 돈을 빌려줄 것을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주기는 하되 빌려주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4:35, 딤전 5:16).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하여금 먼저 집에서 효성을 보여 자기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하며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부양하지 아니하면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못한 자니라..... 만일 믿는 남자나 여자에게 과부가 있거든 그들로 하여금 구제하게 하고 교회에 짐을 지우지 말라.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참 과부인 자들을 구제하게 하려 함이라.”(딤전 5:4, 8, 16). 그리스도인들은 궁핍과 관련이 있는 것을 돌보라고 명령받았습니다. 궁핍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그들을 돌볼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은 돌볼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를 때 개인적인 사역은 교회 사역에서 분리될 것입니다.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13:4).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 속에 계시고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4:6).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1:28). 그리스도인 각자는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훈육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각지교회에 권한을 부여한 것과 같이 이러한 것들을 실행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혼인이라는 신성한 것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안으로 들여온 것입니다. 음행, 간음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각자는 바울, 야고보, 다윗, 베드로, 알렉산더 캠벨(미국에서 the DISCIPLES OF CHRIST를 설립함) 등과 같이 이름을 입을 수 있습니다. 각지교회일까요(고전 1:10~13)? 각자는 악기를 연주하고 세속적인 노래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15:25, 고전 14:7, 11:17). 각자는 죄용서보다 다른 목적을 위해 물로 씻을 수 있습니다(9:37, 7:38). 이러한 것들을 행하는 것으로 각지교회가 될까요?

 

교회는 한 지체만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기능을 발휘하는 많은 지체들의 조직입니다(고전 12:14). 회사의 일은 그 회사의 개별적인 고용인으로 모든 것을 혼자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각 지체들로부터 연합된 유기체로 교회를 구분합니다.

 

가끔 교회의 사역은 지체들의 것과 유사합니다. 그것은 한 성경 구절이 어떤 것을 하도록 개인에게 요구하거나 권한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같은 것을 하도록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B. 개인적인 책임들은 교회에 전가시키지 말아야 한다.

어떤 교회는 하나님께서 교회가 아닌 개인에게 주신 물질적인 추구를 교회를 포함시켜 사회적인 복음을 실행합니다.

 

사업, 병원, 세속적인 교육, 세속적인 정치는 교회활동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들입니다.

각자는 자신들의 선함과 가족들에 대한 것들을 위해 이러한 것에 종종 참여해야 하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4:28, 살후 3:7~18, 18:2~28, 딤전 5:8, 22:21). 하지만 어떤 성경 구절이 사업, 병원, 대학, 학교, 탁아소, 정치적 캠페인 등의 스폰서를 하여 움직이도록 교회에게 권한을 주었습니까?

 

오락, 여흥, 사회적 활동 또한 개인적인 활동입니다.

각자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이러한 것에도 종종 참여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딤전 4:8, 5:8, 6:31, 고전 11;22, 34). 하지만 어떤 구절이 스포츠, 체육시설, 스카웃트, 캠프, 파티, 카니발, 연극, 콘서트 등을 조직하도록 각지교회에 권한을 주었습니까?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는 영적인 몸이요, 궁핍한 지체들을 돌보는 몸입니다. 영적인 몸인 교회는 흥미를 끄는 사회적 복음을 추구하기 위해 전환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에 관심을 갖는 교회는 흐르는 방향을 바꾸어 놓은 강과 같습니다. 각자는 하나님께서 각지교회에게 절대로 주시지 않은 것을 추가적인 임무가 있습니다. 교회가 그 영적인 강조를 드러내야 하는 것과 권한이 부여된 것만을 실행해야 한다고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는 각자가 자신들의 책임을 교회로 옮길 때 반대해야 합니다.

 

IV. 궁핍한 지체들을 돌보기 위한 교회의 임무는 제한받았다.

각지교회들이 하는 것은 박애적인 확고한 책임을 갖지만 성경은 그 책임에 한계를 둡니다.

 

A.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 공급하는 사역을 해야 한다.

도둑질을 한 자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오히려 노동을 하여 궁핍한 자에게 줄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선한 일을 할지니라.”(4:28). 사람들은 일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령하기를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 하였으니”(살후 3:10). 일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굶어야 합니다. 각지교회들은 스스로 건사할 수 있는 몸이 건강한 사람들을 돌보지 말아야 합니다(살전 4:11~12).

 

B. 각 사람은 궁핍함과 연결된 것을 건사해야 한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하여금 먼저 집에서 효성을 보여 자기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하며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딤전 5:4).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부양하지 아니하면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못한 자니라.”(딤전 5:8). “만일 믿는 남자나 여자에게 과부가 있거든 그들로 하여금 구제하게 하고 교회에 짐을 지우지 말라.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참 과부인 자들을 구제하게 하려 함이라.”(딤전 5:16). 각 사람은 궁핍함과 연결되는 것을 자신이 건사해야 하나 교회는 그렇지 못한 자들을 돌봐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모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자신들이 돌봐야 하는 것과 관련된 사람들을 돌보는 것으로 이러한 규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3:17~19, 15:4~6, 2:7).

 

C. 각 사람들은 어떤 궁핍한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갖는다.

그런데, 보라,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이까?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느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시거늘 *그가 자기를 의롭게 보이고자 하여 그분께 이르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이오니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매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입혀 반쯤 죽이고 떠나갔느니라.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오다가 그를 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바라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을 하다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는 불쌍히 여겨 *그에게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의 상처에 붓고 상처를 싸매며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고 *그 이튿날 떠날 때에 이 데나리온을 꺼내 주인에게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당신이 얼마를 더 쓰든지 내가 다시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느니라. *이제 너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었다고 생각하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긍휼을 베푼 자니이다, 하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10:25~37). 이웃을 위한 사랑은 우리가 기회를 가질 때마다 어떤 궁핍한 사람들을 돕도록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 중에 모든 거룩한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으리니 *그가 모든 민족들을 자기 앞에 모으고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자기 양들을 갈라내듯 그들을 일일이 분리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편에 두되 염소들은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이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迎顚)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찾아와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내게 왔음이니라. *이에 그 의로운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어느 때에 주께서 나그네가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을 입혔나이까? *혹은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이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오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니 *이에 그들도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를 섬기지 아니하더이까? 하매 *이에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리니 *이들은 영존하는 형벌에 들어가되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25:31~46). 우리는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우리의 수고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4:28, 9:36~39, 20:34~35).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순수하고 더럽지 않은 신앙심은 이것이니 곧 고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1:27). 각자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신앙을 갖는 것이요, 다른 어떤 것으로 오염시키지 않은 신앙입니다. 문맥이 보여주는 것은 이것이 가 사람들의 일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있는 사람은 천연적인 얼굴”, “”, “마음”, 그리고 자기 자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각 사람을 말합니다. 이것을 교회에게 넘기는 것은 이 구절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헌금사역을 내려놓았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헌금사역이 교회의 건물을 짓고, 목사들에 대한 서포터로만 쓰인다면 이 또한 교회가 말씀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지니라.”(6:10).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우리가 행할 선에 대해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갈라디아서 6:1~9절을 볼 때 문맥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돕는 것을 설명합니다. 다른 일이 선하다고 아는 것은 우리가 다른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딤후 3:16~17).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을 행하는 자가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각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1~9절에는 예배하기 위해 함께 모인 전체적인 성도들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람에게 확고히 한 우리의 영원한 섭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개인적인 사역을 설명합니다. 각지교회가 행하는 것이라고 배우는 것은 우리가 교회사역을 설명하는 구절을 검토해야 합니다.

 

D. 각지 교회들은 궁핍한 지체들을 돌봅니다.

헌금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원칙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물질 공급과 교회의 물질공급이 구분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일반적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회가 믿는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명시한 구절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지내며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자기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2:44~45). “그 믿는 모든 자”(딤전 5:3~16).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한 마음 한 혼이 되어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그들 중에 자기 소유를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말하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4:32). “믿는 그들”(4:32~5:11).

그 무렵에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그리스 말 하는 사람들이 자기 과부들이 날마다 주는 배급에서 빠지므로 히브리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매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무리를 자기들에게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 두고 상 시중 드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직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 *이에 온 무리가 이 말을 기쁘게 여기고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유대교 개종자 니골라를 선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6:1~6). “제자들의 수

그 무렵에 대언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사람이 일어나 성령을 통해 표적으로 보여 주기를 온 세상에 두루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카이사르 클라우디우스 시대에 그렇게 되니라. *이에 제자들이 저마다 자기 능력대로 유대에 거하는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또 그것을 실행하여 구호금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맡겨 장로들에게 보내니라.”(11:27~30). “형제들에게

그러나 지금은 내가 성도들을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기부하였음이라. *참으로 그 일로 인하여 그들이 기뻐하였거니와 또한 그들은 저들에게 빚진 자들이니 이는 만일 이방인들이 저들의 영적인 것에 참여하였거든 육신의 것으로 저들을 섬기는 것도 그들의 마땅한 본분이기 때문이라.”(15:25~27). 성도들에게.... 성도들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 *내가 가게 되면 너희가 편지로 인정하는 자들이 누구든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너희의 너그러운 선물을 가지고 가게 하리라. *또한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거든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고전 16:1~4) “성도들을 위해

예배에서 음악에 관한 모든 구절이 노래하는 것으로 명시합니다. 우리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연주하는 것은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침례는 믿는 자와 회개하는 자를 위한 것이라고 명시합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에게 침례를 주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침례를 받도록 명시하시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 사랑을 베풀어야 하지만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도와야 하고 교회에 의해서는 도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후서 9:13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라는 단어는 비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고 말한다.

모든이라는 말은 문맥적으로 보면 온 무리를 의미합니다. KJV번역자들에 의해 덧붙여진 사람들은 이탤릭체로 써져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라는 말은 어디에서나 모든 인간을 의미하지만 여기에서의 문맥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을 의미합니다(8:11~13, 2;14, 딤전 5:20).

 

그들에게와 모든 이들에게모두그들이 정반대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궁핍한 모든 성도들을 의미합니다(고전 16:3, 15:25, 고후 8:4, 9:1). “모두는 모든 성도들곧 온 무리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연구한 교회가 구제하는 것에 대한 이 문맥과 다른 구절들은 조화롭습니다.

그리스도인 각자는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임무를 교회에 떠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방법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도록 그렇게 정하신 것을 행할 수 있게 교회에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돕도록 강조하는 것은 구원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떤 궁핍한 지체들을 돕는 역할에 있어 교회는 제한을 받습니다.

 

V. 각지교회들은 그들 자신들의 사역과 관계없이 감독받아야 한다.

 

A.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교회의 머리이심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 아래 두시고 그분을 교회에게 주사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셨느니라.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1:22~23). 그리스도는 교회 곧 자신의 몸에게 주신 모든 것 위에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룰을 만드셨고 그 룰들은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5:22~25, 1:18, 딤후 3:16~17).

 

이제 우리가 말한 것들에 관한 요점은 이것이니 곧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계시다는 것이라. 그분은 하늘들에서 존엄하신 분의 왕좌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8:1).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 계십니다(1:9~11, 2:33). 그러므로 교회의 총본산은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교회는 땅에 속한 머리, 총본산, 우주적인 책임을 맡은 자들이 없습니다.

 

B. 각지교회들은 장로들과 독립적으로 감독받아야 함

그들이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자기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맡기고”(14:23). 각지교회는 성숙되면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장로로 봉사하도록 복수로 임명해야 합니다(1:1, 딤전 3:1~7, 1:5-9).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니”(20:17).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나니”(20:28).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 역시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또한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기꺼운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떼에게 본이 되라.”(벧전 5:1~3). 장로들은 각지교회를 감독하고 양떼들을 돌봅니다. 각지교회가 그 교회의 장로들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 교회의 사역을 감독하게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각 장로직분은 그들 가운데서양떼를 감독합니다. 사람들의 무리가 한 각지교회를 넘어서 감독하는 권리를 갖지 않고 결정권을 갖지 못합니다. 각 모임은 독립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고 자신들의 책임 맡은 자들로 인해 인도됩니다.

 

C. 중앙적인 조직은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음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교회에 있는 중앙적인 조직(수사회, 주교회, 총회, 지방회, 노회 등)

교황은 로마카톨릭교회의 땅에 속한 머리입니다. 그 아래에 추기경, 주교, 등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그들의 각지교회의 사역을 감독하고 관장합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은 중앙적인 총본산, 총회, 지방회, 노회, 등이 있어 각지교회들의 사역을 감독하고 관장합니다. 이와 같은 모든 배열로 각지교회의 독립을 침해하고 관리감독을 침해합니다.

 

선교회

백 년 전 예수의 교회는 이사회 아래에서 사람들이 선교단체를 소개했을 때 갈라졌습니다. 이사회들은 교회로부터 기금을 받아들였고, 복음전파자들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많은 후원을 받을 것인지를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교회 사역의 감독이 교회 장로들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이 만든 단체로 옮겨졌기 때문에 성경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재정과 사역은 중앙적인 것이 되었고, 각지교회의 독립을 방해했습니다. 신약교회는 사람이 만든 단체에 재정조차도 기부하지 않았습니다.

 

자선단체

아주 최근에 예수의 교회는 고아원과 홀몸의 집, 등과 같이 이사회를 갖기 위해서 사람이 세운 단체 때문에 갈라졌습니다. 교회들은 언제, 어디에 도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이사회에 재정을 후원합니다.

 

이런 것은 선교단체와 마찬가지로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교회사역을 감독하는 책임이 각지교회에서 분리된 사람이 만든 기관의 책임자에게로 옮겨진 것입니다. 각지교회의 재정과 사역은 중앙적인 것이 되었고, 그로인해 각지교회의 독립을 항해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신약교회는 어떤 사람이 만든 단체에도 재정기부를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이사회들은 교파적인 치리로 향한 첫걸음입니다. 사실 재정을 후원하고 서로 격려를 한다면 많은 도움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고,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의 어떤 사역이 이사회아래에서 중앙적인 치리를 받을 수 있다면 왜 같은 방식으로 모든 교회들의 모든 사역이 중앙적인 치리를 받을 없을까요? 거기에는 멈추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합니다. 이사회가 있다면 이사회는 교회의 모든 사역과 재정을 간섭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감독과 독립으로 확고히 지지하기 때문에 중앙적인 조직을 형성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VI. 교회들은 협력하고 교제를 할 때 독립적인지를 드러내야 한다.

 

A. 각지교회들은 성경적으로 협력하고 교제할 수 있다.

교회를 위한 성경적인 본은 복음전파자들의 지원과 지지다.

그때에 이 일에 관한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귀에 들어가매 그들이 바나바를 보내어 멀리 안디옥까지 가게 하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즐거워하며 모든 사람에게 권면하여 마음에 작정을 하고 주께 붙어 있으라 하니 *이는 바나바가 선한 사람이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라.이에 많은 사람들이 주께 더해지더라.”(11:22~24). 한 모임이 또 다른 모임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복음전파자를 보냈습니다(13:1~3).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서 안디옥에 있는 교회로 바나바가 보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이제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초기에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와 교제한 교회가 너희 외에는 없었느니라. *이는 심지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내게 필요한 것을 보내었음이라. *내가 선물을 바라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회계장부에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랄 뿐이라. *오직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니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보낸 것을 받았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것은 달콤한 향기요,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요, 하나님을 심히 기쁘시게 한 것이라.”(4:14~18) 한 모임에서 복음전파자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했습니다. 메신저를 통해서 재정을 보냈습니다(4:18, 2:25).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교회들로부터 삯을 받았으니 그들을 강탈한 것이로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었으나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지 아니하였음은 내게 부족한 것을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채워 주었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서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아니하려고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고후 11:8~9). 몇몇 교회들은 메신저의 도움으로 복음전파자들에게 후원을 보냈습니다.

각지교회는 언제, 어디에, 얼마나, 누구를 후원할 것인지, 또 누구에게 보낼 것인지를 교회 스스로가 결정했습니다. 교회들은 또 다른 교회에 재정을 기부하지 않았지만 재정은 복음전파자들에게 보내졌습니다.

 

교회가 교회에게 기부하는 성경적인 본

그 무렵에 대언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사람이 일어나 성령을 통해 표적으로 보여 주기를 온 세상에 두루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카이사르 클라우디우스 시대에 그렇게 되니라. *이에 제자들이 저마다 자기 능력대로 유대에 거하는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또 그것을 실행하여 구호금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맡겨 장로들에게 보내니라.”(11:27~30). 안디옥에 있는 제자들은 기근으로 인한 필요함이 있는 형제들에게 재정과 물품들을 보냈습니다. 그 물품들은 가난한 지체들이 있었던 교회의 장로들에게 메신저에 의해 전달되었습니다.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 *내가 가게 되면 너희가 편지로 인정하는 자들이 누구든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너희의 너그러운 선물을 가지고 가게 하리라. *또한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거든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고전 16:1~4). “그러나 지금은 내가 성도들을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기부하였음이라. *참으로 그 일로 인하여 그들이 기뻐하였거니와 또한 그들은 저들에게 빚진 자들이니 이는 만일 이방인들이 저들의 영적인 것에 참여하였거든 육신의 것으로 저들을 섬기는 것도 그들의 마땅한 본분이기 때문이라.”(15:25~27). 많은 모임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로하고 고통을 격려하기 위해서 보냈습니다(고후 8~9). 보내는 각지교회들은 가난한 교회에게 직접적으로 그 기부금을 전달할 메신저들을 선택했습니다(고전 16:3, 고후 8:16~23). 이는 오늘날 교회에서 실행하는 헌금사역과 교파, 교단 사역의 차이점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가 교회에게 기부하는 성경적인 원칙

* 교회들은 기부금을 받게 되는 교회가 가난한 지체들이 많아 재정적 부족함을 돌볼 수 없을 때에만 다른 교회에게 재정을 기부했습니다(11:28~29, 15:26, 고후 8:13~15, 9:12).

 

* 기부금에 대한 목적은 받는 교회에 있는 가난한 지체들을 안정을 취하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풍성한 교회들은 기부를 받는 교회들과 비교하여 필요한 지체들의 안정을 위해 보냈습니다(고후 8:13~15, 9:12, 11:29). 교회가 교회에게 기부하는 목적은 침례를 주고 교제를 하는 만큼이나 분명하고도 구속력이 있습니다.

 

* 기부금은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지체들이 위급한 상황이 안도감이 생길 때까지만 계속하는 것입니다(고후 8:14). 교회의 기부의 원칙은 균등의 원리입니다. 재정적 필요는 기부 받는 교회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을 때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기부를 받는 교회가 그 문제를 극복하고 재정적으로 다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의도입니다. 그들의 풍성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에 대해 공급하게 됩니다.

 

* 이런 방식으로 각지교회의 독립과 균등의 원리를 유지했습니다(고후 8:13~15). 각지교회는 기부로부터 자유로웠고 한 교회장로들은 다른 교회의 사무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각 장로직분은 자신이 속한 각지교회의 사무만을 감독할 그 권한을 유지했습니다(벧전 5:1~14).

 

B. 중앙적인 협력은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성경적인 협력을 지원한다면 우리는 각지교회의 감독, 사역, 재정 등을 중앙집권적이 협력을 반대해야 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선교단체, 자선단체는 이런 협력의 본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교회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후원하는 장로들은 협력을 모색한다.

많은 교회들의 책임은 사역을 감독하기 위한 것입니다. 장로직분은 사역에 대한 감독을 맡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가 재정사역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면 그들은 다른 교회들에게 재정기부를 요청합니다. 이 방법으로 하는 사역은 라디오, T.V.프로그램, 고아원, 그리스도를 대한 전도, 순회복음전파, 확대워크숍, 외국에 있는 복음전파자에 대한 후원, 복음문서전달 등이 여기에 포함합니다.

 

후원하는 장로직분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왜 그런가?

* 후원을 하는 교회는 교회의 지체들에게 재정적 필요를 채울 수 있습니다. 또한 후원을 받는 교회도 다른 교회들에게 기부금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 기부의 목적은 기부 받는 교회에서 가난한 지체들의 만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풍성한 교회들이 어려운 교회를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흔히 후원하는 교회들은 약하고, 기부하는 교회들은 비교적 가난한 교회들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 그 나눔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장로들은 그들이 재정적 여유가 없음을 알고 있고, 그들이 여유가 생길 것이라는 것을 의도하지 않고 그 사역을 맡습니다.

 

* 그 결과는 상호의존적이고, 중앙집중적이며, 불균형적입니다. 후원을 하는 장로들은 각지교회의 사역을 넘어 감독하게 됩니다. 그들은 보내는 교회들이 많은 책임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각지교회의 필요가 아닌 중앙적인 사역(재정사역)을 하도록 많은 교회들의 중앙적인 재정을 감독합니다. 각지교회는 다른 교회로부터 독립함으로 그 자신의 사역이 더 이상 중앙의 감독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사역을 감독하는 책임은 후원하는 장로들에게 옮겨졌던 것입니다.

 

오고가는 교제는 보내는 교회들이 감독하는 것에 대해 후원하는 장로에게 의지하게 하여 세워짐으로 후원하는 교회는 재정을 보내는 교회에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중앙 중심적 치리를 향한 첫 번째 단계입니다. 어떤 한 교회가 많은 교회들을 위한 어떤 사역을 실행할 어떤 재정을 감독할 수 있다면 한 교회가 왜 모든 교회를 위한 모든 사역을 실행할 모든 재정을 감독할 수 없을까요? 여러분은 어디에 성경적인 한계의 선을 긋습니까? 카톨릭계급은 지방적인 권한보다 장로(神父)직을 맡음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교황은 다른 모든 교회들의 사역을 감독하는 한 교회의 감독(神父)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보여줌으로서 교회들이 독립적으로 사역해야한다고 믿기 때문에 후원하는 장로직분의 협력을 반대합니다.

 

결론

성경적인 교회 사역, 조직에 호감이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영역에 있는 권한이 없는 변질된 모든 것을 반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출석하는 교회가 이러한 문제에서 진리로 세워졌습니까? 최근에 예전에 몇몇 형제들에 의해 연구되고 훈련한 기계적이지 않은 어떤 교회들은 그것을 실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교회들은 옛 실행을 따라 탈선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각지교회들은 진리를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세상의 흐름에 의해 진리, 성경적인 가르침보다 비성경적이고 비진리가 많은 교회들을 장악하고 지배하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성경적인 교회를 건축하기 원하는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