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강해/여호수아

섬기는 것의 목표

Hernhut 2012. 1. 9. 14:25

섬기는 것의 목표

                                  by Br. 성 임 현(Hernhut)

 

신약성경 에베소서가 여호수아서를 보충하는 책입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 그분 자신과 그분의 백성들이 상속받기 위한 하나님의 갈망을 강조합니다.이 영께서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구속을 받기까지 우리의 상속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엡 1:14, 18 흠정역). 여호수아에서 이것과 유사한 것은 그들의 상속이 되는 것이었던 좋은 땅을 위한 이스라엘의 악전고투입니다. 에베소사람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맞붙어 몸싸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政事)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엡 6:12 흠정역). 여호수아에서 땅을 얻기 위해 싸우는 싸움은 이 정사들과 권능들을 대신해서 이방족속에게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르되,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실수 없이 쫓아내실 줄을 너희가 이 일로 알리라.”(수 3:10 흠정역).

 

하나님의 상속과 좋은 기쁨

 

에베소서는 하나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 안에서 영광스러운 상속을 얻게 하시려고 집중하신 영원한 목적을 가지셨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크신 기쁨을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이것은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함이라.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이 영께서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구속을 받기까지 우리의 상속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엡 1:9~14, 18 흠정역). 이 상속은 그분의 마음의 갈망입니다. 그것(상속)은 그분과 견줄만한 것이요, 그분의 표현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속이 되시기 원하시고 그분의 상속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조화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그분과 조화되고 닮을 우리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영광스런 분이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영광을 표현하실 대상이 필요하십니다. 에베소서 1장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상속자들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 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받아 주셨으니”(엡 1:3~6 흠정역). 아들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그 상속 안으로 우리를 데려오셨습니다.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분별을 넘치게 하사 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크신 기쁨을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이것은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함이라.”(엡 1:7~12 흠정역).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상속을 보증하시려고 우리의 봉인이 되셨습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이 영께서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구속을 받기까지 우리의 상속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엡 1:13~14 흠정역). 더욱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리시기를 갈망하십니다. “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크신 기쁨을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엡 1:9 흠정역). 하나님은 목적이 있으십니다. 이 목적은 그분의 선하신 기쁨이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의 목적 안으로 들어갈 때 언제든지 그분이 정말 행복해 하시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음악, 공부, 무가치하게 되는 것 안에서 기쁨을 취할지 모르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임시적인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기쁨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우리를 포함합니다. 영원 안에 계신 그분은 우리 안에서 기쁨을 취하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 대해 절대로 싫증내시지 않고, 역시 그분 안에 있는 우리도 싫증내시지 않습니다. 우린 함께 그분께서 자신 안에서 목적을 삼으신 그분의 기쁨이 됩니다. 나의 아들, 딸들은 나의 마음의 선한 기쁨입니다. 내가 그들은 볼 때 나는 아주 만족함이 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그분의 많은 아들들 안에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상속을 보는 것보다 우리 아버지의 마음에 더 크게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 위에 머리로 주심

 

하나님의 갈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들 위에 있도록 하거나 아니면 하나 안에서 함께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시며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사 교회를 위해 주셨느니라.”(엡 1:10, 22 흠정역) 이것은 그분의 기쁨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 위에 있게 하지 않을 때 그분을 슬프게 합니다. 주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만드시고 우리를 정복할 수 없는 그분의 방법 안에서 어떤 장애를 정복하실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만족입니다. 드물게 우리가 모든 것 안에서 우리를 위에 있게 하려고 그분을 허락하기 때문에 또한 우리는 그분의 불만입니다. 가끔은 우리가 주님께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께 속해있다고 말을 합니다만 그것이 위에서 머리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머리에 두기 시작하실 수 있을 때 우리의 위치가 바뀔 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뜻을 따라서 모든 것들을 행하시는 한사람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엡 1:11 흠정역). 그분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상속하실 수 있음으로써 우리가 머리가 되길 원하십니다. 내가 주님께 와서 그분께 말함으로서 주님으로 상속되게 하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내가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드립니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주님께서 그분의 상속으로서 취할 수 없는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실상 주님께서 나를 끝내 취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돌보시며, 나와 함께 일하시지만 그분은 내가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분 안으로 모든 것 안에서 자라기”를 갈망하십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엡 4:15 흠정역). 그 후 나는 완전하게 그리스도와 일치되고 하나님의 상속이 될 것입니다.

 

성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상속의 영광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기도합니다.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엡 1:18 흠정역). 얼마나 영광스러운 주님의 상속인지요! 주님 자신보다 다른 것들이 영광을 위해 일치할 수 없습니다. 왕, 여왕, 대통령, 다른 어떤 이들의 영광조차도 주님께서 그분의 믿는 자들을 얻고 계신 영광의 부요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스데반이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아버지들아, 귀를 기울이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하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행 7:2 흠정역). 그분께서 갈망하시는 것은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영광스런 상속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솜씨, 하나님의 걸작을 봅니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흠정역).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冑)

 

이것은 하나님의 갈망이시지만 그것은 싸움 없이 이루어지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이유입니다. 너희가 마귀의 간계들을 능히 대적하며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입으라.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政事)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악한 날에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여매고 의의 흉갑(胸鉀)을 입으며 화평의 복음을 예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며 그것으로 능히 저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엡 6:11~17 흠정역).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冑)는 마귀의 간계들을 대항하여 우리를 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갑주를 입는 것은 특별히 교회생활을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만이 우리의 갑주이시라고 말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의 몸을 나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갖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무를 갖지는 아니하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각 사람이 서로 지체이니라.”(롬 12:4~5 흠정역).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십니다. “몸은 하나이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고전 12:12 흠정역). 이 하나의 독립체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옷 입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옷 입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옷 입을 때 우리는 새 사람의 모든 지체들을 옷 입습니다. “또 너희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을 것을 가르침을 받았으니”(엡 4:24 흠정역), “새 사람을 입었나니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골 3:10 흠정역), 참고 고전 12:15~26. 모든 지체는 다른 지체들로 옷 입혀질 필요가 있으며, 모든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혀 질 필요가 있습니다. “밤이 많이 지나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 하듯이 우리가 정직하게 걸으며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고 침실을 더럽히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자. 오직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롬 13:12~14 흠정역).

 

공중의 권능에 대항하는 씨름

 

에베소서 6장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政事)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엡 6:12 흠정역). 우리는 육체와 피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싸움은 사실상 훨씬 더 쉬울 것입니다. 우리는 정사들과 권능들 그리고 이 세대의 어두움을 지배하고 있는 자들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어두운지를 보십시요.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음을 우리가 아노라.”(요일 1:19 흠정역). 우리가 균형을 이루기를 소망하는 뉴스매체까지도 편향적입니다. 거기에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공중의 권능 아래에 있습니다. 아직 어두움 아래에 있는 오늘날까지도 하나님은 그분의 증거와 그분의 상속이 일어나기를 갈망하십니다. 그분께서 그분의 상속을 얻으실 때 그분은 기뻐하시고 만족해하십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하늘에 속한 곳에서 사악의 영적 주인에 대항하여 싸울 때가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싸우고 있는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각처에 있는 교회생활을 입으십시요. 그리스도의 몸을 입으십시요. 예수를 사랑하고 여러분의 믿는 동료들을 사랑하십시요. 여러분 자신을 예수께 드리십시요. 그리고 형제들과 자매들에게 여러분에게 주십시요. 여러분이 이 같은 삶을 살고 있을 때 여러분은 그 덮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입니다.

 

마귀의 책략, 술수

 

우리 주변에 있는 땅에 속한 조직들이 사용하는 공중에 권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까? 우리가 쇼핑하는 곳까지도 그들의 영향아래에 있습니다. 우리가 백화점으로 걸어 갈 때 우리는 사탄의 덫 중 한 곳 안으로 곧장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땅 위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점으로 걸어갈 때 우리는 사탄의 먹잇감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흠정역)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냉철한 생각을 지켜야 하고 주님의 임재에 분명해져야만 합니다. 우리가 백화점에 가 있는 동안 우리가 사탄적인 지배자들과 정사들의 영역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들로 사로잡히려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과 씨름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 대적의 덫들 중에 하나가 여러분을 유도하지 않는다면 공중에 있는 권세자들은 다른 거리를 찾을 것입니다. 한 친구가 말하기를 ‘난 쇼핑하러 가야겠어. 너도 나와 함께 갈 수 있어?’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납니까? 지배자들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동의한다면 여러분의 친구가 ‘저것 좀 봐. 70%나 내렸어. 절호의 찬스가 없을 거야.’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되고 물건을 삽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다시는 여러분을 방문할 누군가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물건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고 여러분 자신에게로 갑니다. 자신도 모르게 여러분은 “쇼핑중독자”가 됩니다. 어느 날 쇼핑을 할 때 나는 아주 마른 아이를 안은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몇 살이나 되었는지 그에게 물었습니다. 24시간도 안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진짜 쇼핑중독자였고 아기를 낳자마자 그녀가 처음 생각한 것은 쇼핑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시대의 어둠을 지배하는 자에 포로가 되었었습니다. 공중의 권능과 땅에 속한 조직들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함께 일합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 따라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우리를 모이게 하려고 다른 것을 시도할 것입니다. 권능은 그들이 제공하는 것을 그들에게 더 매력적이게 하려고 강화(심화)할 것입니다. 그들은 환경이나 휴식으로 우리를 유인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외의 것들을 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하도록 우리를 유인하는 것은 우리를 덫에 걸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이 마귀의 올무에서 자신을 되찾게 하려 함이라”(딤후 2:26 흠정역).

 

일어나라. 이 요르단 건너가라.

 

모세가 죽기 전에 여호수아는 그가 있는 장소에서 섬기도록 하나님께 지명되었습니다. “또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그에게 이르되 마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용기를 내라. 네가 반드시 이 백성과 함께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 그들로 하여금 그 땅을 상속하게 하리라.”(신 31:7 흠정역), 참고 민수기 27:12~23절까지 읽으세요. 하지만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을 때까지 모세의 수행자로서 계속했습니다. 그가 떠난 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이 온 백성과 함께 일어나 이 요르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 1:2 흠정역). 나는 모세가 죽기 전에 요르단 건너를 보고 생각하고 있는 여호수아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좋은 땅이기 때문에 우리는 요르단을 건너 이 땅을 취해야만 한다.’ 그는 모세에게 갔고 모세는 ‘기도하자.’고 말했을 것입니다. 훗날 그는 이것에 관해 모세에게 다시 말했을지 모릅니다. 다시 모세는 ‘기도하자’고 말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영적인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는 수군거리거나 투덜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모세와 항상 하나였던 이후부터 모세 주위에서 방법을 찾으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오래 참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사실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정탐꾼 생활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안으로 들어가 그 땅을 취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과 모세, 하나님까지도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세대가 모두 죽기까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사람들이 준비되었습니다. 자,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일어나라. 이 요르단을 건너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거의 40년을 기다린 후에 일어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우리는 ‘허? 무엇 때문에 일어나라는 거야?’라고 대답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여호수아는 아주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 여호수아는 모세를 바라보고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영적 지도자를 따를 때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가중시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모두 단순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우리의 섬김이 주님께서 부요하신 자가 되시게 하는 방법입니다. 모세는 특별한 그릇이었고 그래서 여호수아는 모세를 지나서 갈 수 없었지만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애썼습니다. “그 뒤로는 이스라엘에서 모세와 같은 대언자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나니 그는 주께서 얼굴을 대하여 아시던 자더라”(신 34:10 흠정역).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이 온 백성과 함께 일어나 이 요르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것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을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나니”(수 1:2~3 흠정역)고 말씀하셨습니다.

 

적극적인 태도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위한 육체적인 사실이었던 것이 오늘날 우리를 위한 영적인 사실이라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거인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좋은 땅을 취하는 것을 겁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만큼 쓰실 수 있으실 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우리 또한 움츠리게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 땅을 취하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로 개척자들처럼 걷는다면 그때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들이 우리의 실제가 될 것이고 우리는 영광과 함께하는 그분의 상속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우리가 멀리 가고자하는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협상교섭자들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호하게 말하고 얼버무립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 내가 월요일과 화요일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의 축복은 그 주(week)가 아니라 월요일과 화요일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 타협 때문에 우리가 온 땅에 다니는 것은 거절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발로 밟는 모든 곳은 우리에게 속해있습니다. 우리의 태도는 ‘나는 그리스도를 탐구하기 원한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원한다. 신성한 말씀 안에 있기를 원한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갖기 원한다. 또 매일매일 나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를 원한다.’이어야만 합니다. 즉각적이고 모든 상황에서 그분은 우리 주님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내게 주신 것은 나의 눈이 보거나 혹은 생각하는 모든 곳’이라고 읽을지 모르지만 아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들의 발로 밟은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준 곳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것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을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나니”(수 1:3 흠정역). 왜 우리의 발이 그 일을 해야만 합니까? 왜 우리의 눈이나 생각으로 그 일을 할 수 없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걸을 때만 우리가 그분께서 정말 놀라우시고 부요하시고 신실하시고 높여지셨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걷되”(골 2:6 흠정역).

 

그리스도 안에서 걷기

 

그러므로 세상 지배자들에게 대항하여 기본적인 씨름의 생각은 우리가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이 온 백성과 함께 일어나 이 요르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것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을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나니”(수 1:2~3 흠정역). 하나님만이 약속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은 백성들을 그 최고, 최상의 것으로 사려고 합니다. 하지만 제공하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여러분을 성공시키고 증진시키기 위해 약속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주십니다.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어리석음에 감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주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과 연관 있는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잊습니다. 그들은 직업을 찾거나 학위를 따려고 일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아주 많은 이력서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들을 고용하지 않을 때까지 걱정합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나는 직업을 찾는 그 중심에서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구별하는 것 이외에 다른 아무 것도 찾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걷는 것으로 주님의 왕국을 위해 마귀의 권능과 씨름하도록 기도합니다. 이런 삶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요! 직업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신음하거나 혹은 직업을 가지게 되어 행복하게 되는 것보다 더 측량할 수 없이 좋은 것입니다. 매일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직업을 잃거나 얻습니다. 나는 약 30여 년 동안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나를 실패하게 하셨을 때 직업이 없었습니다. 이 지구의 모든 것들은 실망시킵니다만 믿는 자들을 위해 예수님은 항상 귀하시고 또 달콤하십니다. 이것이 내가 정말로 많은 혼란 가운데서도 행복하게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내가 눈물을 흘릴지 모르지만은 내 안에는 나의 신뢰의 가치가 있는 분이 계심을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걷고 일어섬으로서 모든 도전에서 얻게 되는 것은 오히려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격려와 공급

 

주님께서 상속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그 땅의 범위를 여호수아에게 상기시키심으로써 그를 격려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을 향한 대해까지 너희의 지경이 되리라.”(수 1:4 흠정역). 만일 우리가 약함과 용기가 부족함을 느끼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상속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이신지를 싸우기 위해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는 “네 평생 동안 능히 아무도 네 앞에 서지 못하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하던 것 같이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용기를 내라. 내가 이 백성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네가 그들에게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주리라.”(수 1:5~6 흠정역)고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하심으로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 땅은 우리의 상속을 대신하는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이 상속을 볼 때 우리는 ‘나는 너무 행복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거나 떠나시지 않을 것이다. 난 강하게 될 수 있고 용감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다시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 흔들리지 않고 모세를 통해 그가 받았던 율법을 주시하도록 하기 위해 강하고 담대하게 되어야만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심히 용감한 자가 되어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모든 율법대로 지켜 행하고 그것을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수 1:7 흠정역).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이 말씀은 성경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그 말씀 안에 우리가 거할 때 우리는 일어나서 그 땅을 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용기를 내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흠정역). 여호수아가 ‘만일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면 어떻게 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걱정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나의 종 모세를 사랑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너는 그의 그림자 밑에서 나와야만 한다. 강하고 담대하게 너의 길을 가라.”고 강하게 말씀하시고 계신 듯했습니다. 주님의 많은 종들은 우리 이전에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은 그분을 섬길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져야만 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 미래의 상세한 것에 관해서 걱정할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이 네가 가는 곳 어디든지 너와 함께하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라는 단어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용기를 내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흠정역). 나의 아내, 아이들과 나는 장수동으로 이사했을 때 주님을 섬기라고 부르셨다고 느꼈습니다. 이유는 내가 내 기도에서 우리 집에 관련하여 아주 특별했습니다. 나는 주님을 섬기는 데 방해되는 것이 적은 곳을 허락해 주시길 원했습니다. 나는 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한적하고 자연 경관과 접해 있고 모임장소가 집에서 가까운 곳, 방이 3개, 거실에서 형제자매들이 교제할 수 있는 곳을 주님께 구했습니다. 내가 기도를 한 후에 편안해졌습니다. 그 후 집으로 이사해 왔고 모든 것들이 내가 기도했던 대로 되었습니다. 나는 살아계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는 또 한 번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려고 합니다. 시골 한적한 곳에 집과 집회할 수 있는 곳을 주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돈은 적습니다. 많은 장애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기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정말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위해 하나 되어 싸우기

 

여호수아는 그들이 그들의 상속으로 요르단 동쪽 땅에 대해 모세에게 물었을 때 그들의 상속을 모두 얻을 때까지 지파의 안식을 위해 싸울 것을 그들에게 약속했던 루우벤, 갓, 므낫세의 반지파를 기억했습니다.또 여호수아가 르우벤 족속과 갓 족속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주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고 또 이 땅을 너희에게 주셨느니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너희 아내와 어린것들과 가축은 모세가 요르단 이편에서 너희에게 준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강한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 형제들보다 앞서 건너가 그들을 돕되 주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신 것 같이 너희 형제들에게 안식을 주사 그들 또한 주 너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소유하게 될 때까지 그들을 도울지니라. 그 뒤에 너희는 너희 소유의 땅 즉 주의 종 모세가 요르단 이편 곧 해 뜨는 편에서 너희에게 준 땅으로 돌아가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하니라.”(수 1:12~15 흠정역). 여호수아는 단순했습니다. 그의 태도는 12지파가 한 군대로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상속을 주장하지 않는 한 그들은 그것들을 위해 모두 싸웠을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그들은 주님의 증거를 위해 모두 함께 싸웠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따르는 좋은 원칙입니다. 만일 한 교회가 필요가 있다면 또 다른 교회에 있는 형제들이 ‘우리의 인수가 너무 적어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보내는 수고를 할 수 없다.’고 너무 쉽게 말합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싸움을 돕지 않고 머물러 있다면 그들 자신의 교회는 손실을 입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간다면 주님께서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만일 모든 교회가 하나이기를 바란다면 이길 수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가 지체들에게 경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교회만을 돌볼 때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속을 취하기 위해 한 증거로 싸워야만 합니다. 다른 교회들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하십시요. 우리는 우리 교회만을 위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여호수아가 세워진 원칙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 땅을 찾았지만 여러분의 “지파”만을 위한 것이 되지 마십시요. 그 땅을 취하기 위해 “지파들”모두와 함께 교제로 일어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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