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예수께서 하나님이심<QT>

Hernhut 2011. 11. 22. 16:20

예수께서 하나님이심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우리 가운데서 매우 확실히 믿게 된 것들에 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 되고 말씀의 사역자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그대로 차례대로 정리하여 밝히 보이려고 손을 댄 사람이 많으므로 이 모든 것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본인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정리하여 써 보내는 것이 좋을 줄로 생각하였으니 이것은 각하로 하여금 각하가 이미 알고 계신 것들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복음 1:1~4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느니라.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거하러 왔으니 이것은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통해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라. 이것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영접(迎顚)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을 영접한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韜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분에 대하여 증거하며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서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 한 것이 이분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하심에서 받았으매 은혜 위에 은혜니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것이기 때문이라. 어느 때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계신 독생자(韜生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1~18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어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진리 위에 다른 진리들 모두가 매달려 있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사람뿐이셨다면 그분께서 얼마나 선하시든지 개의치 않고 그분의 생명은 단 한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준비되실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생명은 창조이후의 모든 인간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으셨습니다. 사실 그분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모든 것보다 더 가치가 있으셨습니다. 이 점에서 어떤 타협주의자들은 우리의 삶에서의 그리스도의 역사를 부인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크도다 경건의 신비여, 논쟁의 여지가 없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지사 영접을 받으셨느니라.”(딤전 3:16). 그러나 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몸 안에서 사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겸손하셨으며, 종의 형태를 취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이 스스로 되셔서 종으로서 사셨습니다. “스스로 무명(無名)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빌 2:7).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심(성육신)으로 우리들과 같은 그분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유혹들과 압박들로 고통을 받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는 고통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이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라.”(히 4:15). 그것은 그분의 신성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능력이 그분께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 그 까닭은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仲步)하시기 때문이라.”(히 7:25). 우리는 그분의 성육신에 대해서 절대로 우리를 눈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내가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인이 하는 것을 종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3~15). 우리는 또 그분의 신성하심에 대해 우리를 눈멀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우리를 주의하고 느끼는지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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