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예수의 계보(Q.T.)

Hernhut 2011. 11. 24. 10:35

예수의 계보

 

비로소 예수님 자신이 서른 살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분은 요셉의 아들이시니 요셉은 헬리의 아들이요, - 누가복음 3:23

 

Luke 3:23, "And Jesus himself began to be about thirty years of age, being (as was supposed) the son of Joseph, which was the son of Heli."

 

※참고 성경구절 마태복음 1:1~17, 누가복음 3:23~38

 

심지어 족보조차도 하나님과 유익에 의한 영감으로 주신 것입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마태복음은 솔로몬에게로 돌아가 요셉을 통하는 예수의 족보를 찾아냅니다. 하지만 여고냐라고 불리는 솔로몬의 자손 중 한 세대가 저주를 받아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비록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내 오른손의 인장(印章) 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빼내어 네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얼굴을 가진 자들의 손 곧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의 손과 갈대아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또 내가 너와 너를 낳은 네 어머니를 너희가 태어나지 아니한 다른 나라로 쫓아내리니 거기서 너희가 죽으려니와 그들이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그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 이 사람 고니야는 멸시받으며 부서진 우상이냐? 그는 아무 기쁨도 없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들 곧 그와 그의 씨가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쫓겨났느냐? 오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주의 말을 들을지어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 생전에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할지니 이는 그의 씨 가운데 형통하여 다윗의 왕좌에 앉아 유다 안에서 다스릴 자가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렘 22:24~30). 거기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남을 피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가복음은 헬리의 아들이었던 요셉의 아들이 예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헬리의 딸이었던 마리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구약성경의 경우에 보면 행해졌던 것입니다. “그때에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의 가족에 속한 자들 곧 므낫세의 현손이요, 마길의 증손이요, 길르앗의 손자요, 헤벨의 아들인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오니라. 그의 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곧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회중의 성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통치자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이르되,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주를 대적하려고 함께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 가운데 죽었으며 아들이 없었나이다. 그러나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가족 중에서 삭제되어야 하리이까? 그러므로 우리 아버지의 형제들 중에서 우리에게 소유를 주소서, 하매 모세가 그들의 사연을 주께 가져가니라.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들 중에서 그들에게 상속의 소유를 주고 그들의 아버지의 상속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거든 너희는 그의 상속을 그의 딸에게 돌릴 것이요, 딸도 없거든 그의 상속을 그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형제도 없거든 그의 상속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그의 아버지의 형제도 없거든 그의 상속을 그의 가족 중에서 그에게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줄지니라, 하고 주가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것이 판결의 법규가 되게 할지니라.”(민 27:1~11),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아들들의 가족들에게로 시집갔으므로 그들의 상속이 여전히 그들의 아버지 가족 지파에 남아 있더라.”(민 36:12), “이에 그 친족이 이르되, 나는 내 상속에 손해가 있을까 염려하여 나를 위해 그것을 무를 수 없나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그것을 무를 수 없노라, 하니라.”(룻 4:6) 마리아의 족보는 다윗에서 비롯되었으나 나단과 솔로몬은 이복형제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혈통은 보전되었으나 저주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족보는 사람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약속을 수행하심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를 보여줍니다. 사실 이러한 족보는 살인자들, 간음자들, 모든 타락한 사람들 어느 정도는 사람이 알지만 이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소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까지 그분을 위해 자격을 갖추고 일하는 사람을 결코 갖지 않으셨으며 우리 또한 그 첫 번째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거래하시는 이야기는 그분께서 항상 완벽한 그릇들이 아닌 사람들을 쓰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룩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때문에 쓰신다는 사실로 위로를 받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