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관련된 그리스도의 세 번의 나타나심
바울은 그의 열세 서신을 모두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로 시작하며, 디모데전서, 디도서에서 『자비』라는 단어를 추가했습니다(베드로전서 1:2; 베드로후서 1:2; 요한이서 1:3; 유다서 1:2; 요한계시록 1:4).
『은혜』는 항상 먼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람이 구원받는 수단으로서의 『믿음』은 『평화』가 홀로 설 수 없는 것처럼 홀로 설 수 없습니다.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느니라[「너희는 구원을 받았느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에베소서 2:8a).
평화와 관련된 그리스도의 세 번의 나타나심은 구원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세 번의 나타나심과 평행을 이룹니다.
현재 평화에는 그리스도의 과거와 현재 나타나심과 관련된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미래적 나타남과 관련하여 미래의 평화가 있습니다.
1) 하나님과의 평화(로마서 5:1)
하나님은 『그[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평화를 확립하셨습니다(골로새서 1:20). 타락한 인간이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통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로마서 5:1). 의롭게 됨을 떠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이사야 48:22; 57:21).
구원받은 인간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전적으로 기초한 하나님 앞에서의 위치적 지위를 소유하고 있으며, 구속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귀속된 의를 소유하는 이 위치적 지위 안에는 완벽한 평화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의 평화(빌립보서 4:7; 골로새서 3:15)
하나님의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가 확립된 후에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십자가의 피를 통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 사이의 교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지성소에서 자비소에 흘리신 피를 근거로 사역하고 계셔서 구속받은 사람이 이 평화의 틀 안에서 순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요한일서 1:3-2:2).
구속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평화를 소유하느냐의 여부는 하나님과의 평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화가 없다면, 자신의 예속 상태가 영향을 받아 끔찍한 현재 결과와 미래의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3) 보편적 평화(이사야 9:6, 7)
그리스도의 첫 번째 현현은 구속을 통해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지 보편적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마태복음 10:34; 누가복음 12:51). 보편적 평화는 이 땅 위에 그분이 다시 현현하실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평화는 『그가 기뻐하시는』 사람들(누가복음 2:14, ASV) 사이에서만 존재하며, 이는 먼저 구속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하나님과 구속받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동은 오늘날 불안의 중심지이며, 특히 예루살렘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동이 평화의 중심지가 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를 의미하며, 『평화의 왕자』가 돌아오실 때(이사야 9:6), 그는 이 도시에서 『이방인[나라들]에게 평화를 전할 것』입니다. 그는 홀을 잡고 다윗의 왕좌에서 통치하실 것입니다(스가랴 9:10; 이사야 9:7).
그때서야 현재 나라들을 피하고 있는 평화가 이 땅 위의 나라들 사이에 존재할 것입니다(시편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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