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휴거 이후

그리고 돌아가기(2)

Hernhut 2025. 3. 6. 01:05

구원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세 번의 나타나심

 

 

달란트의 비유와 므나의 비유에서 계시된 것의 틀 안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구원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세 번의 나타나심을 언급합니다.

한 번의 나타나심은 과거이고, 한 번의 나타나심은 현재이고, 한 번의 나타나심은 미래입니다.

그리스도의 세 번의 나타나심은 히브리서 9장 말미에 같은 맥락에서 함께 기록되어 있으며, 이전에 발표된 아들의 사역인 많은 아들을 영광으로 인도하는 것(히브리서 2:10)과 일치하여, 이 세 번의 나타나심은 선지자(과거), 제사장(현재), (미래)으로서의 주님의 사역 사이에 적절한 상호 관계를 제공합니다.

 

1) 과거의 나타남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시대의 끝에] 한 번 나타나셔서 자기를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셨느니라(히브리서 9:26b).

구속받지 않은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속받은 사람은 살아났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에베소서 2:1-7; 골로새서 2:13-15). 인간의 타락 직후에, 이것은 창세기 3:15에서 약속된 구속주의 완성된 사역을 통해서만 성취되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임했습니다.아담은 인류의 연방적 수장으로 타락했습니다. 따라서 타락에는 죄를 지은 아담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도 포함되었습니다. 그의 후손은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담의 범죄와 같은죄를 짓지 않았을지라도 말입니다(로마서 5:12-14).

따라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에덴에서 확립된 죄에 대한 형벌은 사망이다(창세기 2:17; 로마서 3:23; 5:12; 6:23).

 

(에덴에서 확립된 죽음에 대한 성경적 정의는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아담은 금지된 열매를 먹은 순간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그 시점에서 발생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아담이 열매를 먹었을 때 영적 죽음, 즉 하나님과의 분리를 경험했습니다. 로마서 3:23의 죄[아담의 연방적 우두머리직이 죽음을 가져왔기 때문에(로마서 6:23) 모든 사람에게 전가(로마서 5:12)]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했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아담은 타락 당시 이 영광[몸을 덮은 덮개]을 잃었고, 사람은 오늘날 이 영광에서 멀어졌지만, 이 영광은 언젠가 사람에게 회복될 것입니다[로마서 5:2]. 그리고 그 날에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되지 않을 것입니다.

영광이 처음 소개되는 방식 성경에서 그리고 나중에 이스라엘 진영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영광은 오직 한 가지, 즉 왕권과 인간이 처음에 창조된 목적을 깨닫는 것과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구속주는 죄의 벌을 치르셔야 합니다. 구속주는 인간을 대신하여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어 자신을 제사로 드려 죄를 없애게 하시고』 『많은 사람의 죄를 지고(히브리서 9:26-28) 계셨던 이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느니라(고린도전서 15:3b).

노래의 가사처럼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치르셨으니 내가 그에게 빚진 것은 다...그의 완성된 구속 사역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허물과 죄로 죽은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2:1).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그분은 한 마디를 외치셨습니다. 테텔레스타이tetelestai, 번역하면 다 이루었다[문자적으로는 다 완성했다].그리스도께서는 그때 숨을 내쉬셨습니다[마가복음 15:37, 39; 누가복음 23:46에서 문자적으로 번역됨]. , 그분은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그분께서 고통을 더 오래 겪으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27:50; 요한복음 19:30]. 그분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값을 치르기 위해 오셨던 모든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테텔레스타이tetelestai는 텔레오teleo의 완료 시제로 끝내다, 완성하다, 완료하다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단어를 완료 시제로 사용하신 것은 과거에 완료된 일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이 일의 결과는 현재에 완료된 상태로 존재했습니다[그분이 완료 시제로 텔레오teleo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을 때입니다].

아무것도 이 완성된 일에 더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대로 완성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의 완성된 일에 만족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들의 완성된 일에서 아무것도 빼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대로의 문제에 만족하시고, 사람은 이 영역에서 한 가지 행위로 옮겨가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것 외에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성경에서 망가진 창조물로 제시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망가진 창조물을 회복시키는 방법에 대한 패턴은 창세기의 서두 구절에 영원히 제시되어 왔습니다. 영이 움직이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빛이 생겨났습니다(창세기 1:2b, 3).

회복된 물질적 창조물을 낳은 모든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개입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망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은 이미 사람의 구속주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사람은 창세기 1:2b-5에 나오는 망가진 땅처럼 완전히 수동적이어야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자신을 위해 행하신 것을 받는 것 이상을 할 수 없습니다(사도행전 16:30, 31).

이전에 보여진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죄를 없애기 위해 나타나신 것과 인간이 이 땅을 다스릴 것은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둘 중 하나를 다른 하나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통치권을 갖도록 창조되었지만, 타락하여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타락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위치로 되돌리려는 것입니다. 인간의 창조를 둘러싼 이유와 그의 구원을 둘러싼 이유 사이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창세기의 서두 구절부터 시작하여 성경의 초점입니다.

 

a) 물질적 창조의 회복

 

물질적 창조는 현직 통치자와 그와 함께 지위를 차지한 자들(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게 될 완전히 새로운 창조를 위한 것입니다.

물질적 창조의 파괴는 사탄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 이상의 권세를 행사하려는 열망 때문에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이 되려고했습니다(이사야 14:13, 14). 그는 한 왕국의 통치자로서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왕좌를 높이고 여러 왕국, 아마도 모든 왕국을 통치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왕국은 파괴되었고, 그는 땅의 통치자로서 자격을 잃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이 지위에서 옮겨 다른 사람에게 왕국을 줄 때까지 그는 계속 홀을 잡았습니다.

그런 다음 파괴된 창조의 회복이 일어났고, 그것은 정부를 바꾸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b) 인간의 창조:

 

물질적 창조가 회복된 직후(창세기 1:2b-25),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모양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천사 세계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유형의 창조). 그리고 사람은 파괴된 영역의 바로 직전 회복과 일치하는 명시된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을 창조할 때, 하나님은 ... 그들이 지배권을 가지게 하라...(창세기 1:26-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소유했던 지배권이었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손에 넘어갈 것이었습니다. 물질적 창조는 회복되었고, 인간은 (사탄과 그의 천사들 대신) 홀을 잡고 회복된 영역을 다스리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c) 인간의 타락:

 

사탄은 인간이 창조된 이유를 알고 즉시 인간의 자격을 박탈하기 위한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접근하여 이전에 자신의 타락을 초래했던 것과 같은 수단을 통해 그녀를 속였습니다. ... 너희는 신과 같이 될 것이다[하나님과 같이]...(창세기 3:5).

사탄은 이전에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이 되고자[하나님과 같이]했고, 그 결과 타락과 왕국의 파괴를 초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 창조물은 이후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속았지만(다만 하와만 속았지만[디모데전서 2:14]), 같은 결과를 겪었습니다. 금지된 열매를 먹은 인간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성취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간이 다스릴 회복된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사람이 창조된 직후에 홀을 차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은 결코 홀을 잡은 적이 없습니다. 사탄은 임명된 때부터 [아담이 창조되기 전] 현재까지 중단 없이 홀을 잡았습니다.

이것은 성경적 통치의 원칙에 주목하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이 원칙에 따르면 현직 통치자는 실제로 교체될 때까지 홀을 잡아야 합니다.

사람이 홀을 잡았다면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홀을 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사탄이 죄를 지었을 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도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의 왕국에서 통치자를 세우고 제거하십니다. 오늘날 지상의 사람들 사이에서 통치하는 행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에스겔 28:14; 다니엘 4:17, 25-32; 5:18-21].

사람이 타락할 당시에 홀을 잡았다면, 사탄이 이전에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세 번째 지방 통치자를 낳을 때까지 홀을 계속 잡았을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이 이때 홀을 잡았다면, 사탄[오늘날 홀을 잡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되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탄은 자격이 없는 통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보다 홀에 대한 권리가 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사람이 홀을 쥐고 있었고 사탄이 사람에게서 홀을 빼앗았다면, 누가복음 4:5, 6에 있는 유혹 기록[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유혹하는 사탄]의 메시지는 전혀 사실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탄을 이런 위치에 두실 분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그를 [그리스도] 높은 산[왕국을 의미하는 ]으로 데려가서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왕국[여러 개별 왕국으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 왕국]을 그에게 보여 주었더라[요한계시록 11:15 - 세상의 왕국, ASV, NASB]. 마귀가 그에게 이르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그리고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는 내게 넘겨진 것이요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이와 같은 관점[하나님께서 통치자들을 위치시키고 제거하는 일]에서 사무엘상하권에 나오는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이 이야기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이 땅 정부에 대한 전체적인 전망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현 통치자[사탄]와 다가올 통치자[두 번째 인간, 마지막 아담]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아말렉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멸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를 실격시켰다[사무엘상 15:1-35]. 그러나 사울은 계속 통치했다. 그리고 사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신할 자로 택하신 분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왕좌에 오를 준비가 될 때까지 계속 통치할 것이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예표가 무엇을 예고하는지 주목하라.

사탄은 땅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지위를 넘어 자신의 통치를 확장하려고 함으로써 스스로를 실격시켰다[이사야 14:13, 14; 에스겔 28:14]. 그러나 사탄은 계속 통치했다.

그리고 사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신할 자로 택하신 분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왕좌에 오를 준비가 될 때까지 계속 통치할 것이었다.

예표에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거부하신 직후,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으셨다[사무엘상 16:10-13]. 그때 이스라엘에는 기름부음받은 왕이 두 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즉시 왕위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결국 사울과 그의 왕국에서 분리된 언덕 위의 장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어떤 충실한 사람들이 다윗에게 합류하여 그와 함께 언덕 위에 머물렀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를 준비가 된 날이 왔고, 그와 함께 통치할 준비가 된 충실한 사람들의 부대를 소유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울은 물러나고 그의 왕관은 빼앗겨 다윗에게 주어졌으며, 다윗과 그의 신실한 사람들은 들어와서 정부를 인수했습니다.

예표에서 하나님께서 사탄을 땅의 통치자로 거부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땅의 왕으로 기름부으셨습니다[시편 45:6, 7, 16; 히브리서 1:8, 9]. 그때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땅 위에 기름부음받은 왕이 두 명 있습니다.

하지만 예표에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아들은 즉시 왕위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처럼 그리스도는 왕국에서 분리된 유배지에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경우처럼, 어떤 충실한 개인들은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와 합류하여 그와 함께 유배지에 남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예표에서 본 대로 정확히 계속될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날에 그리스도는 다윗이 그의 시대에 그러했듯이 왕좌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그와 함께 통치할 충실한 추종자들을 소유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사울처럼 사탄은 처형될 것이고, 그의 면류관은 빼앗겨 그리스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신실한 추종자들과 함께 들어와 정부를 인수할 것입니다.)

 

d) 인간의 구원:

 

타락 직후,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속주를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3:15).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은사와 부르심에 관해 마음을 바꾸지 않으시기 때문에(로마서 11:29), 인간의 구원 목적은 그의 창조의 목적과 일치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지구에 대한 지배권을 소유하기 위해 구속을 받아야 했습니다(이것은 미래의 지구에 대한 지배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타락 이후 지구는 부패의 속박아래 있었고[오늘날에도 계속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21}]).

 

e) 이집트에서의 하나님의 맏아들:

 

25백 년 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을 마무리하시고 인간을 창조된 위치에 두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그의 맏아들, 이스라엘 민족(출애굽기 4:22, 23)을 모세의 지도 아래 이집트에서 불러내어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언약한 땅에서 장자 상속권을 행사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권리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의 모든 이방 민족을 다스리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 이스라엘과 민족과 관련된 국가적 권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려오시기 전에, 이집트에서 유월절 어린양이 죽는 일에서 보여지듯이, 구원이 먼저 일어나야 했습니다. 이집트 땅 전체의 모든 맏아들은 죽음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죄의 삯인 죽음 말입니다. 그리고 이 삯이 지불되기 전까지는 가나안 땅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했습니다.

죄의 삯을 충족시키면서도 이집트에서 맏아들을 살아서 데려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대속적 죽음을 위한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 떼에서 어린양이 가족의 맏아들 대신 죽을 수 있도록 정하셨습니다. 어린양은 죽임을 당해야 했고, 그 피를 그릇에 담아야 했고, 히솝(우슬초)을 그 피에 담가야 했고, 그 피를 맏아들이 사는 집의 문설주와 문설주에 바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 자정에 이집트 땅을 지나가시며 맏아들의 정해진 죽음을 집행하실 때, 그분은 반드시 피가 묻은 집을 지나가셔야 했습니다.

적용된 피는 집안의 맏아들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인정된 대리적 수단을 통해 죽었고, 따라서 죽음은 더 이상 그에게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출애굽기 11:4-7; 12:1-51).

이집트에서 유월절 양을 죽인 것으로 나타난 구원에는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옮겨져 가나안 땅에서 맏아들의 권리를 깨닫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f) 세상에 보내진 하나님의 맏아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지 1천 년 반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오실 구속주에 대한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서 나게 하셨으니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여 우리로 아들의 분깃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갈라디아서 4:4, 5).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시며,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으로서 장자상속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분이셨으며, 그분은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분깃을 얻으셨습니다.

분깃은 아들들을 맏아들의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분깃은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직 아들들만이 이 왕국에서 통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현재 시대의 천사들, 모든 천사는 개별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리고 오직 맏아들만이 인간 영역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갈라디아서 4:4, 5에 따르면,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의 중심 목적은 사람을 입양될 수 있는 위치(아들의 위치)에 두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맏아들로서, 맏아들로서). 그 안에서 사람은 태초에 창조된 목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갈라디아서 4:4, 5는 다른 측면에서 구원의 목적이 갈라디아서 3:29에서 상속과 관련된 장자권과 관련이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갈라디아서 4:7).

이 모든 문제는 분리할 수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구원은 아들됨으로 이어지고, 입양은 맏아들로 이어지며, 그들은 맏아들의 권리를 깨닫고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로서 상속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하나님의 맏아들인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로서) 맏아들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위치로 인도하기 위해 사람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 700년 이상 전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속주 아래서 땅의 미래 정부의 지위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정부는 그의 어깨 위에 있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놀라운 모사, 전능한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자라 불릴 것입니다. 그의 정부와 평화의 증가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서서 그것을 공의와 정의로 지금부터 영원토록 그것을 굳게 세우고 공의로 확립할 것입니다. 만군의 주의 열심[그의 아들이 그의 거룩한 산 시온에 놓이는 것을 보기 위해 열심으로 타오르는 주님]이 이것을 이룰 것입니다.(이사야 9:6, 7; 시편 2:6, 7)

이 약속은 구세주가 태어나기 직전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누가복음 1:31-33).

그리스도의 탄생 후 동방에서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분을 찾았습니다.

헤롯 왕은 예루살렘 전체와 함께 괴로움을 겪었고, 헤롯은 나중에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서 수많은 유대인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이는 새로 태어난 왕을 죽이려는 헛된 시도였습니다(마태복음 2:1-18).

그리스도께서 서른 살쯤 되어 공생활을 시작하셨을 때(누가복음 3:23), 이스라엘에게 전해진 메시지는 왕국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메시지와 사자를 거부했습니다.

이 땅 위 사역이 끝나갈 무렵,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이 거부했기 때문에 가짜 왕으로 차려입으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카이사르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을 요구함으로써 거부감을 절정에 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쓰인 비문이 붙었습니다(마태복음 4:17; 21:33-39; 요한복음 19:1-19).

부활하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사십 일을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들을 가르치셨습니다(사도행전 1:3). 그리고 나서 그분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받고 돌아오기 위해하늘로 떠나셨습니다.

 

g) 지금 부름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맏아들: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맏아들이지만 황폐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언젠가 구원을 받아 맏아들이 지닌 왕의 지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집이 황폐한 상태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맏아들의 지위로 입양되도록 정해진 별개의 구별된 집을 다루고 계십니다. 이러한 입장으로의 입양은 그리스도인을 이스라엘이 차지한 것과 같은 입장(맏아들과 관련하여)에 두는 것으로, 앞서 보여진 바와 같이 왕권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오직 아들만이 통치할 수 있으며, 인간의 구원을 위한 목적이 입양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다시 말하지만 오직 맏아들만이 인간 영역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통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은 자녀아들로 언급됩니다(각각 거의 같은 횟수로 언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입양을 기다리는 것은 오직 아들로서입니다. 자녀는 입양되지 않습니다. 오직 아들만이 입양될 수 있으며, 이는 입양이라는 헬라어의 의미에서 분명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입양으로 번역된 단어는 후이오테시아huiothesia, 합성어 [후이오스huios, 아들, 테시스thesis, 위치시키다, 위치시키다]입니다. 따라서 후이오테시아huiothesia [입양]는 단순히 아들 위치시키기 또는 아들 배치하기[이미 아들인 사람을 위치시키거나 배치하는 것, 아이를 위치시키거나 배치하는 것이 아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미 아들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들의 위치 때문에 - 그리스도 안에서새로운 창조물]은 입양 당시에 맏아들로 위치될 것입니다.

[기독교인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 후이오테시아huiothesia아이들이 아들로 위치되는 것을 의미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앞서 언급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입양에 앞서 이미 아들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14; 갈라디아서 3:26; 4:6, 7; 히브리서 12:5-8}].

이것은 오직 이 맏아들의 지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입양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언젠가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왕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십니다[출애굽기 때문에{히브리서 1:6}].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십니다[창조와 입양 때문에{출애굽기 4:22, 23; 이사야서 43:1; 로마서 9:4}].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왕국에서 반드시 같은 지위를 차지해야 합니다[하나님의 맏아들{단체적으로 보이는 한 새 사람}은 입양 후에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가올 날에 단체 집단으로서의 그리스도인들, 맏아들의 교회[문자적으로 불러내어진 맏아들{히브리서 12:23}]는 하나님의 맏아들로 여겨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하나님의 맏아들로 여겨지고 있으며, 맏아들의 권리가 실현될 다가올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입양이 로마서 8장과 갈라디아서 4장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입니다. 거기에는 성도들의 다가올 상속과 새로운 아들들의 질서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위치에서 장자상속권을 실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차지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서와 같이 자연적으로 태어난 맏아들은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실제에서 이는 인류의 모든 사람을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출생을 거부하셨고, 두 번째 출생, 위로부터의 출생, 초자연적인 출생이 필요했습니다[요한복음 3:6, 7]).

그리고 이집트에서와 같이 대속자가 제공되었고, 이집트에서와 같이 구원은 왕권과 관련된 목적을 위해 있습니다.

구원은 장자권과 관련된 목적을 위해 있으며, 구속받은 개인은 맏아들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입양될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제시하는 간단하고 명확한 그림은 인간이 창조된 위치로 되돌아가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먼저 구속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자신을 제사로 드려 죄를 없애려고나타나셨고, 그 후 두 번 나타나실 것을 염두에 두셨습니다.

 

2) 현재 나타나심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성소 곧 참된 것의 형상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 그 자체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느니라(히브리서 9:24).

왕국을 받기 위해 떠나시는 때와 왕국을 소유하여 돌아오시는 때 사이의 기간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실 뿐만 아니라,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사역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그분의 적들이 그분의 발판이 될 그 날을 기다리시며, 아버지로부터 왕국을 받으실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위해 현재의 정결함을 이루기 위해 대제사장의 직분을 행사하고 계시며, 어느 날 티나 주름이나 이런 것들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를낳을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에베소서 5:26, 27; 히브리서 1:13; 요한일서 1:6-2:2).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지성소에서 흘리신 피를 근거로 사역하고 계십니다. 이 피는 타락한 인간을 위한 구속을 제공하기 위해 갈보리에서 흘려졌으며, 이 같은 피는 현재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있는 자비소에 있어서 구속받은 자들을 위한 현재의 정결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인간은 여전히 ​​옛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죽음의 몸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순례의 여정 동안 지상에서 사역하는 동안 항상 더럽혀질 수 있으며, 정결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그분의 백성을 위해 정결함을 위한 수단을 제공하셨고, 그분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놋대야를 제공받았는데, 거기에는 물이 가득 찬 위와 아래 대야가 있어서 놋대야와 성소 사이에서 사람들을 대신하여 섬길 때 손과 발을 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사장들은 매일 피의 희생을 드렸고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피의 희생을 드려 이전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차지했던 사람들을 깨끗이 했습니다(히브리서 7:27; 9:6, 7, 22).

그러나 신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과거의 희생을 제공받았으며, 더 이상 추가적인 희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롭고 살아있는 길이며, 순수한 물로 씻겨이전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소유한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7:27; 10:12-22).

선지자로서의 그리스도의 과거 사역은 제사장으로서의 그의 현재 사역을 가능하게 했으며, 두 사역은 같은 것을 기대합니다. ,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미래 사역입니다.

어느 날 그리스도께서는 현재의 사역을 끝내고 지성소에서 나와서 먼저 자신이 구속하고 현재 섬기는 사람들을 심판하고, 그런 다음 영광으로 인도할 많은 아들들과 함께 땅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3) 미래의 나타남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지고 한 번 드려지셨고, 그를 바라는 자들에게는 죄 없이 구원에 이르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그리스도의 세 번의 나타나심은 구원의 세 가지 측면과 상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과거[에베소서 2:8, 9]).

우리는 구원받고 있습니다(현재[고린도전서 1:18]).

우리는 구원받으려 하고 있습니다(미래[히브리서 1:14]).

한 개인이 구원받았을 때(과거,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을 통해), 그 개인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집니다. 그런 다음 그는 현재의 구원(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과거의 일을 근거로 하지만, 하늘 성소에서 하시는 현재의 일과 관련됨)과 관련하여 다루어지며, 이것은 미래의 구원(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구원을 받았느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는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에베소서 2:8, 9).

십자가의 전파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니라(고린도전서 1:18).

그러나 어느 천사에게든지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였느냐? 그들은 다 섬기는 영들이 아니냐? 구원을 받을 자들을 위하여 섬기도록 보내진 자들이니라(히브리서 1:13, 14).

구원의 과거적 측면(에베소서 2:8, 9)은 인간의 영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은 몸, , 영으로 구성된 삼중적 존재이며,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 세 가지 사람의 각 부분은 다른 시간에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이 에덴에서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죽었습니다(창세기 2:17). 그의 몸은 계속 살았고, 그의 혼(피 속에 있는 생명을 주는 원리, 레위기 17:11)도 계속 살았으므로, 사람이 영적 죽음을 경험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혼을 수용하는 구원받지 못한 몸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따라서 위로부터의 탄생은 영적 탄생이며, 죽음에서 생명으로변화시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내가 네게 거듭나야 [위로부터 나야] 한다고 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한복음 3:6, 7).

 

(요한복음 3장에서 위로부터의 탄생과 관련하여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는 구원받은 자와 관련이 있고 구원받지 못한 자와 관련이 없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마찬가지로 위로부터의 탄생이 언급된 신약의 다른 모든 참조 사항도 구원받은 자와 관련이 있습니다[야고보서 1:18; 베드로전서 1:3, 23; 요한일서 2:29; 3:9; 4:7; 5:1, 4, 18].

처음에 신성한 일이 행해진 사람[그리스도인][그리스도인이 구원받았을 때] 안에서 계속 행해지는 신성한 일에 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의 고려 사항은 구원받은 자와 관련이 있지만,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생각은 구원받지 못한 자와 관련하여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구원을 둘러싼 모든 문제(과거, 현재 또는 미래의 구원 측면을 고려하든)는 이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든 위에서부터 이끌어 내는 것 -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든 구원받은 사람이든 [, 성령의 시작 사역에 이어 계속되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위에서부터 이끌어 내는 것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3:6, 7은 문맥상 구원받은 사람들 가운데서의 사역을 언급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관련하여 2차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그의 삶에서 행해지는 신성한 사역, 즉 위에서 이끌어 내는 것 외에는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혼의 구원은 영의 구원과 달리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자신의 영의 구원을 깨닫고 혼의 구원과 관련된 것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개인은 반드시 먼저 죽음에서 생명으로옮겨가야 합니다(요한복음 5:24; 에베소서 2:1). 그런 다음에야, 오직 그런 다음에야 혼의 구원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구원의 현재적 측면(고린도전서 1:18)은 혼과 관련이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돌아와서 사람의 몸을 구속하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혼의 구원은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옮겨진 후에 사는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9:28(또는 히브리서 1:14)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언급된 구원이며, [집주인의 귀환을 기다리는 집 안의 충실한 종들]를 기다리는자들이 실현할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다른 모든 신약성경 서신과 마찬가지로 혼의 구원을 중심으로 다루는 책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죄를 지고 [영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한 번 드려지신그리스도께서 죄 없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혼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을 두 번째 오심과 따로 다루는 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전도자의 메시지(그리스도의 과거 사역에 관한)와 목사-교사의 후속 메시지(그리스도의 현재와 미래 사역에 관한)를 따로 두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영적 재앙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제물로 드려 죄를 없애기 위해한 번 나타나셨지만, 지금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나타나셨고, 언젠가는 죄 없이 두 번째 나타나 구원을 위하여나타나실 것입니다. 이 세 번의 나타나심은 사람이 궁극적으로 창조된 위치로 되돌아가는 것과 분리할 수 없는 단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휴거 이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고 돌아가기(1)  (0) 2025.03.04
위임된 책임(4)  (0) 2025.03.01
위임된 책임(3)  (0) 2025.02.27
위임된 책임(2)  (0) 2025.02.26
위임된 책임(1)  (0) 202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