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복음의 기만

1:) 불의한 자는 상속을 받지 못하리라

Hernhut 2024. 8. 12. 21:13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너희 스스로 점검하라. 그렇게 해서 너희 자신을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 자신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다.”(고린도후서 13:5).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간결한 정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사는 사람이다. 다른 성경에서 밝혀 주듯이, 이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내주다.

 

그리스도께서 사람 안에 사신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변화시키신다. 분명히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우리 안에 사시는지 자기성찰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고 권장할 만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공언하는 우리 각자는 고린도인들에게 한 바울의 훈계를 듣고, 우리가 믿음 안에있는지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 좋다.

 

바울은 또한 교회 회원들이 실제로는 믿지 않는데도 믿는다고 생각하여 자기기만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믿었다. 그리고 어떤 오류가 더 클 수 있을까? 어떤 추정이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자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면 적어도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이킬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필요를 알지 못한다. 그는 지옥으로 가는 길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더 나쁜 것은, 그는 자신이 느끼는 평화와 기쁨을 구원의 증거로 여기고, 그것이 자기기만의 열매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불행히도 그의 경우 무지는 행복이지만 일시적일 뿐이다.

 

변화하는 은혜

 

무지는 실제로 고린도 교회의 ​​문제였다. 오늘날 교회의 많은 사람처럼 그들의 복음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구두로 고백한 사람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계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이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좋은 신분을 가진 한 회원이 계모와 성적 부도덕을 저질렀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판단을 내리기 전에 더 이상의 사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에게 그 사람을 즉시 파문하라고 지시하면서 그를 악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밖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그 사악한 자를 너희 가운데로부터 내쫓아라.”(고린도전서 5:13).

 

그런 다음 바울은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용서하는 은혜는 또한 변화시킨다. 따라서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용서받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행동이 불의한 사람들이고, 바울은 심지어 하나님께서 불의하다고 여기시는 사람들의 종류에 대한 몇 가지 예를 나열하기까지 했다. 그가 목록에 음행하는 자들을 포함시킨 것을 유의하라.

 

불의한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사기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린도전서 6:9, 10)

 

바울의 현대 믿는다고 하는 자 중 일부는 이 특정 구절에 대해 의아해했다. 그는 왜 고린도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회 징계의 세 단계를 따르라고 지시하지 않았을까? , 먼저 방탕한 형제를 개인적으로 대면하고, 그다음에는 소수의 사람을 통해, 마지막으로 온 교회를 통해 그를 파문하기 전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인들이 적절한 교회 징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를 완료했고, 바울이 그들에게 마지막 단계를 밟으라고 지시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인들이 악한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설명하는 고린도전서 5:2의 말씀에 의해 잘못된 해석임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너희는 교만해져서 오히려 애통해하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을 행한 자를 너희 가운데서 제거하려 함이니라.” 그들은 동료 교회 회원의 죄를 애통해하고 직면하기보다는, 그들의 관용을 자랑스러워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의 지시는 죄를 지은 참된 그리스도인 성도를 대하는 데만 적용된다. 그러나 고린도의 부도덕한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을 참되게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 없이 증명했다. 그는 가짜였다. 그의 생활 방식은 그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냈다. 그는 음행 속에 살고 있었다. 바울은 우상 숭배자, 여성적, 동성애자, 도둑, 탐욕스러운, 술 취하는, 모욕하는, 사기꾼과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 방식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믿음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사시지 않으므로 그들은 그분께 속하지 않는다(로마서 8:9).

 

고린도인들은 더 잘 알았어야 했다. 바울은 이 주제에 대해 이전에 그들에게 편지를 썼지만, 그들은 분명히 그를 오해했다.

 

내가 너희에게 음행을 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편지에 썼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음행을 행하는 자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나, 강탈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자들과 전혀 사귀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하려면 너희가 반드시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방금 너희에게 편지를 썼다. 곧 만일 형제라 불리는 어떤 사람이 음행을 행하는 자이거나, 탐욕을 부리는 자이거나, 우상 숭배자이거나, 욕설하는 자이거나, 술주정뱅이이거나, 강탈하는 자이면, 그와 사귀지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결코 먹지도 말라고 내가 편지를 썼다.”(고린도전서 5:9-11).

 

만일 우리가 부도덕하고 탐욕스럽고 그런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면, 우리는 그런 문제에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바울은 이것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밖에 있는 자들을 또한 판단하는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안에 있는 자들은 너희가 판단하지 않느냐?”(고린도전서 5:12)

 

바울에 따르면, 음행하는 고린도 교회 회원은 참 형제가 아니라, 그저 소위 형제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속한 교회는 믿음과 행동 사이에 분리할 수 없는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신앙 고백이 가짜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했다. 많은 현대 주석가들은 고린도인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부도덕한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구절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완전히 놓쳤다. 그러나 바울이 부도덕한 고린도인을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여겼다는 증거가 적어도 다섯 가지 있다. (1) 바울은 그를 소위 형제라고 불렀다(고린도전서 5:11). (2) 바울은 그를 악한 사람이라고 불렀다(고린도전서 5:13). (3) 바울은 죄를 지은 형제를 징계하라는 그리스도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그 사람을 형제라고 믿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4) 바울은 부도덕한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 주 예수님의 날에 그의 영이 구원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했다(고린도전서 5:5). 이는 그 사람이 지금의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의 영은 구원받지 못할 것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를 파문함으로써, 그가 교회가 그의 신앙에 대한 간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 것이다. (5) 그리고 바울은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린도전서 6:9-10). 그것은 매우 분명하다.

 

영적인 어린아이들인가, 가짜 성도들인가?

 

바울은 교회의 분별력 부족이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깨닫고, 부도덕한 고린도 교회 회원 한 명의 구원뿐만 아니라 같은 교회 내의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다툼, 파벌, 질투가 있었다(고린도전서 1:10-12; 3:1-4). 방금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유아기라는 징후일 수 있다. 지금까지 고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젖만 먹었다(고린도전서 3:2).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이기심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지 그들에게 알려주었고, 이제 진리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같은 죄를 고집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질투와 다툼을 고린도인의 목록과 매우 유사한 목록에 포함시켰는데, 이러한 죄는 행하면 간음이나 음행을 행하는 자와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육체의 행위는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움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분쟁과 이단과 시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이와 같은 것들이니, 내가 너희에게 미리 경고하노니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한 것과 같이 하라”(갈라디아서 5:19-21).

 

분명히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로 표시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표시할 수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시간과 지식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참된 자녀들이 그분이 기대하시는 것을 알게 되면 그분께 순종할 것을 기대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면서도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불법을 고집하는 자들은 속은 것이다. 참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거룩해지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마태복음 5:6).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 안에서 일하신다(빌립보서 1:6; 2:13).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거룩함(거룩함 증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이 의화(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다고 선언받음)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말자. 거룩함이 따르지 않는 의화란 없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거룩함을 추구하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볼 수 없느니라”(히브리서 12:14). 하늘의 왕국은 거룩하지 않은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행위에 의한 구원이 아닌가?

 

바울이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할 때, 그는 구원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는 자신의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는다? 구원은 어떤 죄를 행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인가?

 

아니요, 바울이 가르친 것을 더 자세히 연구하면 분명히 알게 되겠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선물을 진정으로 받는 자들은 그분의 성령으로 변화된다. 그들의 삶에서 그분이 놀라운 일을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거룩해지고 더욱 거룩해진다. 그들은 거듭나고 죄의 권세가 그들의 삶을 압도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사신다. 그들은 새로운 창조물이 된다. 더 이상 그들의 삶은 죄를 행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지지 않는다. 물론,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처럼 참된 성도들도 때때로 여전히 죄를 짓지만, 더 이상 죄를 행하지 않는다.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느니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의 씨가 그 안에 거함이요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느니라”(요한일서 1:8, 9; 3:9).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구원은 죄의 용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구출해 준다. 거룩함이 커지는 것은 구원의 무상한 선물을 받는 결과다. 바울이 가장 잘 알려진 구원의 무상함에 대한 확언에 이어지는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나니 이는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작품이요 선한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서 2:8-10).

 

구원은 우리의 선행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선행은 우리의 구원의 결과이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단지 우리의 죄 목록을 무효화하는 법적 용서의 도장을 주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그리스도의 형상에 따라 살게 하시는 것이었다. 그분은 귀속된 법적 의로움을 주실 뿐만 아니라,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의로움을 체험하도록 우리를 재창조하신다. 하나는 다른 하나와 배타적으로 받을 수 없다. 사실, 사도 요한은 누가 귀속된 법적 의로움을 진정으로 받았는지 알려준다. , 실제적인 의로움의 생활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어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가 의로우신 것과 같이 의로우나 죄를 행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으니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은 이를 위하여 나타나셨으니 곧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한일서 3:7, 8).

 

죄는 마귀의 일이다. 예수님께서 공급하시는 구원은 우리 삶에서 사탄의 행위를 파괴한다.

 

행위에 대한 야고보

 

물론, 우리가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는 구원을 받기 전에, 우리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비극적으로도, 많은 교회 회원들은 단순히 죄인의 기도를 드렸거나 특정한 신학적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용서를 공급하는 구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삶에 거의 변화를 공급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구원이 은혜로 주어지고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에 행위는 중요하지 않고 선택 사항이다.

 

하지만 성경은 행위를 낳지 않는 구원하는 믿음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사도 야고보는 행위가 없는 믿음은 쓸모없고 죽은 것이며 구원할 수 없다고 썼다.

 

내 형제들아,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그와 마찬가지로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죽은 것이요, 그 자체로는 죽은 것이니라.하지만 어리석은 놈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없다는 것을 인정할 의향이 있느냐?”(야고보서 2:14, 17, 20).

 

따라서 우리 믿음의 참된 시험은 우리의 행동이다. 바울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우리의 믿음과 구원이 가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의 삶을 살펴보라고 권고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행위는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참된 구원의 믿음과 내주하시는 성령을 소유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을 사용하여 자신을 살펴보라는 권고를 경청하자.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우리가 참된 구원을 체험하는 시험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받을 것이라는 소망이 있다.

 

초기 자기 점검

 

이 세 가지 성경을 고려해 보라. (그 중 두 가지는 이미 살펴보았다). 바울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자들을 특징짓는 구체적인 죄악적 관행을 나열한다.

 

불의한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 동성애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둑이나 탐욕스러운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약탈하는 자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고린도전서 6:9, 10).

 

이제 육체의 행위는 분명하니, 음행과 더러움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분쟁과 이단과 당파와 시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이와 같은 것들이니, 내가 너희에게 미리 경고하노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갈라디아서 5:19-21).

 

이를 너희가 확실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욕스러운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유업을 받지 못하느니라.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느니라”(에베소서 5:5, 6).

 

이 세 가지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죄의 목록을 작성할 수 있는데, 이 죄는 행해지면 사람이 거듭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죄는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성적 죄다. 음행, 간통, 부도덕, 불순, 관능, 여성성, 동성애다. 두 번째는 절도죄다. 탐욕/탐심, 도둑질, 사기다. 세 번째는 절제하지 못하는 죄다. 술 취함, 흥청거림, 욕설이다. 네 번째는 증오죄다. 적의, 다툼, 질투, 분노 폭발, 분쟁, 불화, 파벌, 시기다. 다섯 번째는 거짓 종교의 죄다. 우상 숭배와 마법이다.

 

그러나 바울의 목록이 결코 포괄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라. 그는 일반적으로 모든 불의한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고린도전서 6:9). 갈라디아서 5장에서 바울은 죄의 목록을 마치며 이와 같은 것들을 덧붙인다(갈라디아서 5:21). 또한 우리는 바울의 목록에 살인자나 거짓말쟁이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요한은 살인자는 그 안에 영생이 거하지 아니하느니라”(요한일서 3:15)고 썼고, “거짓말쟁이는 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리라”(요한계시록 21:8)고 썼다.

 

거듭난 사람이 마지못해 일시적으로 이런 다양한 죄 중 하나 이상에 빠질 수는 있지만, 참된 성도는 이런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삶은 불의가 아니라 의로움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마음으로부터 주님께 복종했고, 그의 영은 성령에 의해 재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반론에 대한 답변

 

최근의 일부 저자들은 바울이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을 때 영원한 구원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1) 특정한 이 땅 위의 축복을 상실하는 것 또는 (2) 더욱 거룩한 그리스도인들이 자동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정한 하늘에 속한 보너스를 잃는 것으로 해석된다.

 

바울이 육에 속한 축복만을 언급했다고 믿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바울이 하늘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들은 바울이 하늘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지금 지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의 충만한 축복 속에서 걷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용하신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문구를 연구해 보면 하늘의 왕국이라는 문구와 동의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마태만이 예수님께서 하늘의 왕국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신 것을 인용했는데, 아마도 유대인 독자층을 존중한 것 같다. 반면 마가와 누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문구를 평행 구절에서 사용하신 것을 인용한다(마태복음 13:11; 마가복음 4:11, 누가복음 8:10). 하나님의 왕국은 하늘의 왕국과 같다.

 

바울이 하늘의 보너스에 대해서만 언급했다는 이론에 동의하는 일부 사람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에 대해 경고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상속받지 못할 것에 대해 경고했다고 지적하며,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불경건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지만 상속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보상을 일부 놓칠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전달하고자 했던 것의 진정한 의미일까? 아니면 그는 죄를 지은 자들은 하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을까?

 

분명히 여러 가지 좋은 이유에서 바울은 궁극적인 구원과 하늘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첫째, 그것이 그의 말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죄인들이 하늘의 보너스를 일부 놓칠 위험에 처해 있다면 바울이 죄인들에게 한 경고가 왜 그렇게 엄숙할까? 그리고 하늘의 보너스를 잃는 것이 바울이 염두에 둔 위험이었다면, 그는 왜 자신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어떤 성경 구절에서 목사가 바울이 진짜로 의미한 바를 설명한 것을 듣고 난 순진한 어린 소년처럼, 그 목사도 바울이 말한 바를 의미하지 않았다면, 그냥 의미한 바를 말하지 않은 건 왜일까?”라고 묻는다.

 

둘째, 바울은 로마서에서 동성애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정죄를 선포했다(로마서 1:26-2:5). 그렇다면 우리는 동성애자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는 고린도서의 경고가 그들이 하늘의 왕국으로 가는 확실한 여정에서 하늘의 보상을 놓칠 것이라는 경고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셋째, 사도 요한은 부도덕한 사람들과 우상 숭배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오르는 못에 있을 것인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요한계시록 21:8)라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도덕한 사람들과 우상 숭배자들에게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경고한 것이 그들이 하늘의 왕국으로 가는 확실한 여정에서 하늘의 보상을 놓칠 것이라는 경고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넷째,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으라는 문구를 두 번 사용했는데, 한 번은 죄를 짓는 자들에게 경고할 때이고, 한 번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용했다. 두 번째 용례의 맥락에서 바울은 분명히 우리가 하늘에 들어갈 때에 관해 쓰고 있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고린도전서 15:50).

 

바울은 우리의 썩을 육신과 피가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전달하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고려 중인 표현을 예수님 자신에게서 빌려왔을 것이다.

 

그러면 왕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태복음 25:34).

 

은 이 땅 위의 축복이나 하늘 위의 특전을 받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가? 아니면 하늘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가? 답은 매우 분명하다. 왕은 그 앞에 모인 다른 무리에게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마태복음 25:41).

 

이러한 이유와 다른 이유들로, 바울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는 죄인들에게 경고했을 때, 그는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가 들어가다가 아니라 상속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하늘의 왕국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상속받은 것이지, 획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두 번째 반대 의견

 

한 인기 있는 저자는 이 장에서 제가 사용한 초기 본문인 고린도후서 13:5에서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해 보라고 권고한 부분은 고린도인들에게 자신들이 분명히 소유한 구원을 인식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쓰였다고 주장한다. , 그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확인을 위해 스스로를 점검해야 했다. 바울은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 매우 확신했고, 그들이 구원을 소유한 것을 의심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일까? 분명히 답은 아니다이다. 바울의 말씀을 바로 그 맥락에서 고려해 보겠다. 먼저, 앞의 구절들을 고려해 보겠다.

 

내가 갈 때 혹시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것을 보고, 너희가 너희의 원하는 것과 다른 것을 보고, 혹시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분쟁과 중상과 수군거림과 교만함과 소동이 있을까 두렵다. 내가 다시 갈 때 내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렵고, 과거에 죄를 지었지만, 그들이 행한 더러움, 부도덕, 음란함을 회개하지 않은 많은 사람에 대해 애통해할까 두렵다(고린도후서 12:20, 21).

 

분명히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을 다시 방문했을 때 그들의 행동에 실망할까 걱정했다. 그는 이전에 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수많은 죄를 인용하고, 그들이 더러움, 부도덕, 음란함을 행한 것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고 회개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될까 두려웠다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19에서 바로 그 세 가지 죄를 나열하면서, 그런 죄를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 간음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동성애자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고린도전서 6:9, 10).

 

이 외에도 바울은 고린도에 왔을 때 다툼, 질투, 분노, 분쟁이 생길까 봐 두려워했다. 갈라디아서 5:20에 나열한 다른 네 가지 죄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인기 있는 작가가 고린도 사람 중 일부가 행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구원받지 못했다고 분명히 밝혔을 때, 바울이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했다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

 

바울이 계속하는 말을 주의 깊게 읽어보라.

 

내가 너희에게 가는 것은 이제 세 번째다. 모든 사실은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확증될 것이다. 내가 두 번째 왔을 때 이미 말했고, 지금은 없지만, 전에 죄를 지은 자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아무도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린도후서 13:1, 2).

 

바울은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확증될 어떤 종류의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었을까?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사실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맥과 표현이 이를 지적한다(고린도후서 13:1; 신명기 19:15).

 

그런 다음 바울은 과거에 죄를 지은 자들과 그 밖의 모든 자에게그가 돌아온다면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한다. 그는 어떻게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인가? 그는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말할 것인가? 아니다. 그는 이미 그들에게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바울은 교회에서 부도덕하게 사는 거짓 성도에게 고린도 사람들에게 하라고 명령한 것을 행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또한 그들이 계속해서 중대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것으로 입증된 것처럼 거짓 성도로서 그들을 파문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짖는 소리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계속한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너희 안에서 강하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비록 약하심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또한 그분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그분과 함께 살 것이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너희 스스로 점검하라. 그렇게 해서 너희 자신을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 자신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버림받은 자가 아닌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란다.”(고린도후서 13:3-6).

 

바울은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라라고 썼다. “만약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라. 그것은 그들이 믿음 안에있지 않았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바울은 너희가 스스로 시험하면 너희가 믿음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의 구원을 매우 확신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그들이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계심을 인식해야 한다고 썼다. “참으로 너희가 시험에 떨어지지 않는 한이다. 이것은 바울이 그들 중 일부가 시험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는 분명한 징후가 아닌가? 물론이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13:6에서 그가 자신과 디모데(고린도후서 1:1)를 그들과 대조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우리 자신이 시험에 떨어지지 아니함을 깨달으리라고 믿는다.” 고린도인들은 시험에 떨어질 수 있지만, 그와 디모데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바울과 디모데 안에 살았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예수님께서 그분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모든 고린도인 안에 살았다는 것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다.

 

성경적 증거는 압도적이다. 거듭남은 죄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며, 때로는 극심한 죄인의 경우 급진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의 행동이 거듭났다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여론 조사가 조지 바나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가 실시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거듭난 기독교인은 두 그룹을 비교한 66개 변수 중 9개에서만 비기독교인과 상당히 달랐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조사한 65개 비종교적 변수(핵심 가치, 태도 정의, 중심 행동 경향)에서 그리스도인이 비신자와 거의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바나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비그리스도인의 87%가 지난 3개월 동안 PG-13 또는 R등급 영화를 봤다고 답한 반면, 거듭난 기독교인의 76%가 같은 영화를 봤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놀랍게도, 비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보다 작년에 비영리 단체에 기부할 가능성이 더 높았고, 노숙자나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줄 가능성도 더 높았다.

 

결론은 하나뿐이다. 거듭났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왕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당신은 얼마나 되는가? 방금 자기기만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알려진 모든 죄를 회개하고, 성령으로 당신을 변화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와 죄로부터 당신을 구해 주시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오직 그분만을 신뢰하라. 그분을 당신의 주님이자 주인으로 삼으라. 그분은 당신 안에서 변화시키는 일을 시작하시고, 당신을 죄의 권세에서 구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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