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내러티브(이야기)에서 창세기 23장에 나오는 사라의 죽음의 예표로 이스라엘이 따로 떼어놓은 문제는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동안 더 완전하게 진행되지만 그분의 죽음, 장사, 부활 이후에 수행되지 않는다.
마태복음 12:22-45에 나오는 성령 모독에서부터 마태복음 21: 43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선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자료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이스라엘이 따로 떼어놓기까지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대기를 자세히 설명한다.
마태복음 12:22-45에서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능을 사용하여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계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이 세력을 사탄의 세력과 연관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든 죄와 신성을 훼방하는 것은 사람에게 사하여질 것이요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람에게 사함을 받지 못하리라 인자를 거스르는 말을 하는 자는 사함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성령을 거스르는 말을 하는 자는 사함을 받지 못하리니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2:31, 32).
마태복음 12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유대교 지도자들의 이러한 행동과 그에 이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선포하신 일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같은 날에, 그리스도께서 집에서 나가셔서 (일어난 일 때문에), 바닷가에 앉으시고,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집’은 이스라엘의 집과 관련이 있고, ‘바닷가’는 이방인들과 관련이 있으며, 그분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두 가지로 드러났‘다.
“너희에게는 하늘 왕국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해 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다. 가진 사람은 더 받아서 차고 남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내가 그들을 고쳐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으며,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 (마태복음 13:11b-16).
비유는 이전에 계시된 진리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유와 관련된 것을 이해해야 한다. 후자(비유)는 전자(이전에 계시된 진리)에 의존한다.
제자들은 비유와 관련된 이전에 계시된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비유를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이전에 계시된 이 진리를 거부하였고 그 비유들을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따라서 비유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집 밖에서 네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고, 그런 다음 다시 집으로 들어가셔서 세 가지 비유를 더 주셨다.
마지막 세 비유는 여전히 이방인들과 관련이 있지만, 이스라엘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유를 들려주시기 전에 그 집에 다시 들어가셔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집에 다시 들어오신 것은 그분이 집을 떠나시기 전에 존재했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알리는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과 관련된 상황은 그리스도께서 집을 떠나시기 직전에 변함없이 변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한 민족으로 다루고 계셨지만, 상황은 곧 일어날 일, 즉 이스라엘은 따로 떼어 놓으시고 하나님은 이방인에게서 ‘그의 이름을 위한 백성’(사도행전 15:14)을 옮기시는 방향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었다.
이방인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미래는 마태복음 15:21-28에서 수로페니키아 여인의 딸이 고침을 받은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났다. 그리고 마태복음 16:18-20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처음으로 교회(주로 이방인에게서 취한 자들로 구성됨)를 언급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해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이것은 마태복음 12:22-32에서 시작되는 사건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의 사역에서 처음으로 십자가가 온전히 드러났다.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마태복음 16:21; 17:22, 23; 20:17-19; 21:18, 19, 38, 39).
모든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 마태복음 12:22-32에 나오는 사건 당시 이스라엘로부터 왕국을 빼앗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까지 그 발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에게서 빼앗아 그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어지리라"(마태복음 21:43).
그런 다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 이후에 이스라엘을 계속 만지셨다. 창세기 22장과 23장의 예표에 따르면,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거래를 중단하실 수 있었다.
그리고 창세기 24장의 예표에 따르면, 하나님은 성령이 그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얻기 위해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이스라엘과의 거래를 중단하셔야 한다.
이스라엘이 따로 떼어 놓인 것은 복음서 기록에서 한 가지를 하신 후에, 사도행전에서 또 다른 것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가복음 24:13-31에서 온 나라는 엠마오 길에서 두 제자로 상징된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부터 이틀 동안 눈이 멀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력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심으로 사흘째 되어 되찾았다(누가복음 24:20, 21, 25-31).
이 사건은 현 경륜(교회)의 시대 동안에 관한 것이며, 이스라엘의 현재 눈먼 상태가 이틀 동안, 즉 2,000년 동안 지속될 것임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시력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1,000년이 되는 셋째 날에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 민족의 시력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심으로 회복될 것이다(호세아 5:15-6:2; 스가랴 12:10-14; 13:6; 창세기 45:1-28).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일’(사도행전 1:3)을 가르치신 40일의 기간이 끝날 무렵, 그들은 이 때에 이스라엘 왕국이 회복될 것인지 그분께 물었다(사도행전 1:6).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간접적으로 응답하시고, 그들의 생각을 열흘 후에 일어날 일, 즉 성령이 보내실 때로 향하게 하셨다(사도행전 1:8; 2:1-4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피조물이 이 날에 존재하도록 부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 새로운 피조물(현재 왕국을 소유하고 있음)에 의해 이 날에 이스라엘에게 왕국이 다시 제안되기 시작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조건으로 이스라엘에 왕국이 회복될 것이다(사도행전 2:37, 38; 3:19-21).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창세기 23장과 온전히 일치하게 따로 떼어 놓았다.
그리고 창세기 24장과 완전히 일치하게, 성령은 왕국을 위한 열매 맺도록, 다른 사람이 부르심을 받도록 세상에 보내질 것이다(그러나 이스라엘을 제쳐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회개할 수 있는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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