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17–24
로마서 15:17-24은 바울이 이전에 아무도 설교하지 않았던 곳에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사도적 사명을 베푼 범위와 결과를 자랑한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로마서 15:18에 따르면, 이 사명은 ‘이방인의 순종’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순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파코에hupakoē는 ‘주의 깊게 듣는 것’을 의미하며 순응 또는 복종을 의미한다. 이것은 복음에 대한 순종을 의미할 수 있다. 그것은 로마서 1:5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헬라어다.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은혜와 사도 직분을 받아 모든 이방인 가운데서 믿음의 순종을 이루게 하였느니라.”
로마서 15:24에서 바울의 소망은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 잠시 그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이다. 여기서 ‘즐기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엠플레토emplēthō는 ‘채우다, 즉 만족시키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배가 고팠다가 배불리 먹음으로써 만족한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보고 싶어 ‘굶주렸고’ 그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를 갈망했을 수도 있다.
계시와 적용
말을 조심함
로마서 15:17-19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해 이루신 일의 그림을 본다. 그그의 말과 행동으로, 위력 있는 표적과 기사로, 그리고 하나님의 그영의 권능으로 이방인들은 순종하게 되었다.
주님의 종들은 그들의 말에 합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아야 한다. 헛된 말은 생명을 새어 나오고 성도들을 파괴한다.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마디로 가득 차면 영적인 생명이 새어 나가 열매를 맺기가 어려워진다.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의 모든 사람은 열매가 부족하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해 그를 통해 이루신 일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로마서 15:18). 말은 중요하지 않다.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이 그리스도의 몸에 얼마나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는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의 말에 대해 주님의 책망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교회에 상처를 줄 수 있다. 교회 생활에 부정적인 말은 많지만, 긍정적인 말은 거의 없다면 그것은 건강하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는 우리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배워야 하는데, 바울의 말은 오직 주님께로부터만 나왔고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말과 행동의 관계
바울은 자신의 말을 언급 한 후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일도 언급했다. 그의 행위는 그의 일이었다. 우리의 일과 말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가진 말의 종류는 종종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지 결정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말이 우리의 인격, 우리의 비전, 우리의 논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것과 추론하는 방법은 우리의 말을 통해 표현된다.
우리의 말은 우리 사람에게서 나온다. 우리의 인격이 높을수록 우리의 말은 더 높아질 것이다. 우리의 말이 낮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인 사람은 영적인 말을 할 것이다. 육신에 속한 사람에게는 육적인 말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종들은 건전한 말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일은 절대 건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의 말과 사역을 사용하셨을 뿐만 아니라 표적과 기사와 그영의 능력도 사용하셔서 이방인들의 순종을 이루셨다(로마서 15:19). ‘힘’에 해당하는 헬라어 두나미스dunamis는 폭발적인 힘을 가리킨다. 바울의 말과 사역에 담긴 그영의 폭발적인 능력으로 인해 그는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었다.
순종하는 삶
로마서 15:19에서 ‘순종’에 사용된 헬라어는 로마서 13:1에서 ‘복종’에 사용된 단어와 같지 않다. 우리는 통치하는 권위에 복종하되 복음에 순종해야 한다. 복종은 태도의 문제이다. 순종은 우리 삶의 문제이다. 우리는 통치 당국에 복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의 목표
로마서 15:19, 20에 따르면, 바울은 다른 사람의 기초 위에 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다녔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한 도시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기초를 놓았다면, 바울은 이미 놓인 기초 위에 기초를 세우지 않기 위해 다른 도시로 갔을 뿐이다.
그리스도 자신은 교회의 유일한 기초이다(고린도전서 3:11). 그러나 교회는 또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에베소서 2:20).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세워질 수 있다. 그분 없이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우는 과정에서 교회의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이다. 유일무이한 기초이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전한다 할지라도, 교회의 기초는 전도하는 사람들의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 세워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곳에서 복음을 전했다면, 바울은 다른 사람의 기초 위에 세우지 않기 위해 그곳에서 일하지 않기를 더 좋아했다.
우리는 바울의 목표, 즉 아무도 전에 전도하러 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가서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사랑하도록 돕고 교회를 세워야 한다. 이것은 사도뿐만 아니라 주님의 모든 종의 봉사이기도 하다. 주님께는 이 봉사가 참으로 좋다. 이 삶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가치 있고, 담대하고, 하늘적이고, 존귀한가! 이런 삶은 하나님의 마음의 뜻에 부합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바울의 부담
로마서 15:19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복음을 온전히 전했다고 말한다. 로마서 15:23에서 그는 더 이상 이 지역에 설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불과 몇 년 만에 바울이 더 이상 이 지역에서 설교할 곳이 없을 정도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바울이 보기에 한 도시나 지역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서 직접 복음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복음의 씨앗이 저절로 자라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많은 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이 지역에서 전파할 곳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얼마나 큰 혼을 가졌는가! 그는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전했고, 이 지역에서는 더 이상 설교할 곳이 없었다!
바울의 소망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외딴 지역으로 여겨졌던 스페인(로마서 15:24)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는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자마자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었다(마태복음 24:14; 사도행전 1:8). 우리가 지역 교회에서 섬길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한 곳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해야 한다! 우리의 부담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여 이 땅이 주님에 대한 간증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울은 분명 모든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집중했지만, 복음 전파에 대한 부담을 절대 잃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의 온 마음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 그곳에 교회를 세우는 데 있었다. 한편,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스페인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기를 소망했다. 이 소망은 이전에 아무도 설교하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그의 목표에서 비롯된 것임이 틀림없다. 스페인에서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신성한 약속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바울이 누리는 즐거움
스페인에 가기 전에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소망했다. 사실, 그는 여러 해 동안 이것을 원했다(로마서 15:23, 24). 그는 로마에 들러 그곳의 성도들과 교제하고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 그들의 여정에서 도움을 받기를 갈망했다. 이 즐거움은 주님의 종들의 비밀이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러 나갈 때, 그들은 목표와 부담뿐만 아니라 그들의 즐거움을 위한 관점도 필요하다. 일단 그들이 형제들을 만나면, 그들의 마음은 이 형제들의 존재를 누린다. 성도들과의 교제는 그들의 큰 즐거움이 된다.
주님의 종들이 설교하고 일하기 위해 그분에 의해 다른 곳으로 보내질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항상 그들의 지역 성도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그들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은 그들의 성도들을 누릴 것이다. 이것은 매우 건강하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생명 작용의 표현이다. 우리가 건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도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달콤함이다. 형제자매들과 함께하자마자 우리 마음속에 달콤한 누림이 있다.
주님께서는 바울이 자신의 소망을 이루도록 허락하셨는가? 사도행전 28:15, 16은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다고 말한다. 사도행전 28:30은 “그가 자기 셋 집에서 이년을 묵고 자기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영접하시니라”라고 말한다. 그는 그 당시 죄수였으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었다. 교회 역사는 그가 그의 마지막 때 스페인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고 알려 준다. 할렐루야! 주님은 마침내 바울의 소망을 이루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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