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율법의 끝

Hernhut 2023. 5. 31. 00:37

 

 

로마서 10:4

 

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텔로스telos는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행위 또는 국가의 결론또는 완성을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 5:17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텔로스telos는 또한 종결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더 이상 율법체계의 입법 권한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텔로스telos는 여행의 끝에서 도달하는 목표또는 목적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이런 의미로 사용된다면, 텔로스telos는 율법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사람들을 그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갈라디아서 3:24그러므로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본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세 가지 정의는 그리스도께서 의를 위한 율법의 완성, 율법의 종결 또는 율법의 목표가 되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세 가지 의미는 모두 옳을 수 있으며, 학자와 주석가는 이 문제에 있어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계시와 적용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의 다섯 가지 측면을 다루고 있다. 로마서 10:4-21은 이러한 측면 중 다섯 번째, 즉 하나님의 주권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을 다루고 있다.

 

율법의 끝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라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체험의 측면에서, 율법에 대한 우리의 체험의 끝은 그리스도이시다. 진리의 측면에서 볼 때, 율법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끝은 그리스도시다. 계시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율법을 보는 것의 끝은 여전히 그리스도시다. 체험에서든, 진리에서든, 계시에서든, 율법은 결국 살아 계신 구세주, 그리스도 안에서 끝난다.

 

곧 텔로스telos라는 단어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작과 과정과 끝이 있다. 출발점, 여정, 목적지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목적지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요, 결과요, 결론이시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모범생이며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그분을 위해 살 수 있게 한다(갈라디아서 3:24).

 

우리의 선생으로서 율법

 

이 구절은 그 단순함에서 심오하다. 율법의 끝은 그리스도시다! 이것은 영적인 진리의 선포일 뿐만 아니라 율법에 의해 그리스도께 인도되는 영적인 체험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울의 체험이었다. 그는 로마서 7:15에서 내가 하는 일을 깨닫지 못하노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율법 아래서의 그의 삶이었고,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체험이었다. 우리가 이것을 체험하는 것은 우리가 들은 진리에 따라, 우리의 타고난 종교적 열심에 따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 안에 있는 선한 부분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기꺼이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율법의 원칙에 따라 살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결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예수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했습니다(로마서 8:1). 바울처럼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고 우리의 가정교사 역할을 하는 율법에 따라 그리스도께 인도되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교사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어떤 사람의 율법주의적 결심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 형제가 나는 결코 거짓말을 하거나 화를 내지 않겠다라고 말하더라도 그런 불가능한 약속을 업신여기지 마라. 그러한 결의는 참으로 율법의 원칙에 있지만, 율법은 결국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것이다.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하는 결심은 작은 것이 아니다. 비록 우리가 그들의 결심이 유치하다고 느낄지라도, 율법은 그들의 가정교사가 됨으로써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게 하는 율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율법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도록 주셨다. 이런 깨달음이 그들이 하나님을 찾게 했을 것이다.

 

비록 이방인들은 기록된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율법의 기능은 그들의 마음속에 기록되어 있다(로마서 2:15). 비록 그들이 외적으로 기록된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에게 말하고, 상기시키고, 죄에 대해 경고하는 율법의 내적 기능이 있다. 이 내적 감각은 우리가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양심은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안에서도 기능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기록하신 율법의 기능은 우리가 우리 구주 그리스도를 찾게 해야 한다.

 

언젠가 복음 설교자가 선한 사람은 지옥에 가고 죄인은 영생을 얻는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왜 이런 거야? 율법은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멸망한다(누가복음 5:31-32; 18:9-14). 반대로, 율법이 작용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범법과 결점을 가진 죄인임을 알게 될 것이며, 이 지식은 그들이 영생에 이르는 구주를 찾도록 강요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되는 율법의 의로움

 

율법의 끝은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시다.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끝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서 실재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진리의 계시가 아니라 주관적인 체험이기도 하다.

 

주님을 따르는 초기 단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율법의 원칙 안에서 살 수 있다. 이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않고 대신 계속해서 내가 해냈나? 내가 이겨냈나?’하고 계속해서 묻는 것이다. 우리는 승리와 실패는 아무 의미가 없고, 강함은 아무 의미도 없고, 연약함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확신을 해야 하는데, 이는 가 죽었고 이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갈라디아서 2:20). 믿음으로 말미암는 이 깨달음은 율법의 끝이시며 우리가 의의 실재를 얻는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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