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14a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도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많은 생각과 의도가 있다. 그들은 이것 하기를 갈망하고, 저것 하기를 좋아한다. 그리스도인들도 같다. 아무리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거룩하게 섬기거나, 단순히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많은 생각과 의도가 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사역을 못 하게 된 주의 종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당신이 그냥 은퇴하면 모두가 평안해질 거예요.”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심지어 두세 사람이 더 말했다! 세 번째 사람이 그렇게 말하자, 그 종은 주께 가서 물어야 했다.
“주님,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것이었다. 그는 묻는 것이 필요했다.
“주님 앞에서는 제가 투명합니까? 제가 싸울 때 주님이 제 안에 계십니까? 제 짐이 주님이 주신 것이 확실합니까? 제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이렇게 기도하지 않고, 그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할 줄도 모른 채, 사람들이 자신을 반대하는 것을 들을 때 자신의 사역을 버리는 것은 쉬워질 것이다.
사도 바울도 그런 분별력이 없었다면 사역을 버렸을 것이다. 바울의 상황을 생각해 보라. 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했을 때, 그는 적어도 벗어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 그는 교리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는 유대교에 머물면서 그리스도인을 유대교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을 수도 있다. 그는 좋은 교사였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유대교를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그는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창세기 속의 그리스도”, “교회와 이스라엘”, “노아에게서 보는 구원”과 같은 제목으로 많은 영적인 책을 썼을 것이다. 그가 쓸 수 있었던 것이 아주 많았다.
셋째, 그는 사역을 내려놓을 수도 있었다. 그를 아무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사역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나이든 바울”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자기 일을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말했다.
“그런데도, 나이가 많고, 또한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된 나 바울은, 사랑으로 인해 오히려 네게 간청한다.”(빌레몬 1:9)
그는 자기 생각과 의도가 주 앞에서 분명했기 때문에 세 가지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뚫으면 마음의 생각과 의도가 분별 된다. 주의 모든 종은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곳을 보여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위하여 주의 생각과 뜻이 주의 말씀으로 분별 될 때까지 주 앞에서 기도하고 생각하여야 한다. 그런 후에야 말할 수 있다.
“주님, 전 당신과 하나라는 것을 압니다. 온 세상이 저를 반대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당신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누림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아직 젊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생각과 의도를 드러내도록 허락할 수도 있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보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들은 복잡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생각과 의도를 드러낼 때, 그들의 사역조차도 그렇게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너무 복잡하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일과 내리는 모든 결정 뒤에는 항상 무언가 있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영을 강하게 하고, 편안하고 평화롭게 한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누구인지 보여준다. 만약 이 훈련에 70명이 참여한다면, 이면에는 아마 70명의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안식하게 한다. 영을 강화하고, 혼을 드러내고, 생각과 의도를 분별한다.
“그러므로 하늘들 안으로 들어가신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가 받아들였으므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고백을 굳게 붙들자.”(히브리서 4:14)
각자가 그리스도 앞에 드러나고, 자신이 누구인지 믿을 수 없을 때, 주께서 말씀하실 것이다.
“나는 너의 약점을 건드리지 못하는 위대한 대제사장이 아니다.”
비록 나는 약하지만, 나를 동정하는 대제사장이 계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갈망하신다. 안식의 실제는 어디에 있는가? 안식의 실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움직이는 곳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한다. 말씀은 그리스도인을 통제하는 그림과 같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그림의 항목을 누림으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 그 말씀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말씀은 영을 강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고, 혼의 생각을 드러내어 말할 수 있게 한다.
“제 약점에 감동하고 만지시는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분께 가서 모든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를 지켜보고 그를 기다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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