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모세는 이집트로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좋은 땅으로 이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성경은 놀랄만한 어떤 것을 말한다.
“{주}께서 길 옆의 여관에서 그를 만나 그를 죽이려 하시니”(출 4:24)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모세가 주님을 섬기려고 80년을 준비하였는데 주님께서 그를 죽이려고 하셨다. 다행스럽게도 모세는 유능한 아내가 있었다. 성경은 말한다.
“그때에 십보라가 예리한 돌을 취해 자기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 앞에 던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흘리는 남편이로다”(출 4:25)
우리가 모세의 역사를 생각할 때 우리는 환경 때문에 그가 이집트에서 태어났고, 즉시 죽었어야 했으며, 파라오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고 알고 있다. 그의 부모는 그를 구하려고 필사적이었다. 그것은 모세가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가능하다. 이것이 아마 모세가 파라오의 집안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고, 이집트 사람들 가운데 살 수 있었던 이유다. 할례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는 표시였기 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은 할례를 받은 그를 죽였을 것이다. 실제로 모세가 무할례자였다면 그가 그의 아들을 할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분노의 이유였다. 십보라는 빨리 할례를 하지 않은 것이 잘못된 것인지 옳은 것인지를 알았다. 그녀의 빠른 행동 때문에 하나님은 풀어주셨다.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할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분 안에서 그리스도의 할례로 말미암아 육신의 죄들에 속한 몸을 벗어 버림으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로 할례를 받았느니라.”(골 2:11)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율법 자구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 안에 있는 마음의 할례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들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롬 2:29)
우리의 영적 할례는 사실이다. 우리는 육체를 베어냈다. 하지만 거기엔 실제적인 위험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할례의 실제 안에서 살지 못할 것이지만 대신 우리의 육체 안에서 섬기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용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육신적인 죽음을 체험하지 못하겠지만 십보라처럼 우리가 영적인 할례를 인식하고, 우리의 마음을 다룰 때 영적인 죽음을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절대 여러분의 육체로 그분을 섬기지 말라. 여러분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절대 그분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을 따라서만 하나님을 섬기라. 십보라의 빠른 행동 없이는 주님께서 모세를 죽이셨을 것이다. 하나님과 절대 놀아나지 마라. 80년 후 하나님은 다른 어떤 사람을 기꺼이 고르셨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육체적인 방식으로 그분을 섬기는 우리 중 어떤 이를 취하시지 않을 것이다. 모든 섬김은 영과 진리 안에서 해야 한다. 주여 우리가 이 모든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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