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엘리야의 도움으로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좋은 증거를 줌으로 인해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스스로 자랑스럽지 않은가요?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자신의 일을 마친 후 자신에 대해 아주 높은 평가치를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했던 모든 것이 주의 은혜 때문이었음을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가 헤쳐 나갔던 것이 그분의 긍휼이요, 은혜였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해 영광을 훔치는 엘리야를 받아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엘리야에게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이뤄놓은 것을 얼마나 감사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이 말을 들을 때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 들을 때 우리는 관심 갖기 시작합니다. 세 사람이 이렇게 말한 후에 우리는 그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하나님께 말하기까지 합니다.
“주님, 당신은 제가 당신을 위해 이루어 낸 놀라운 일을 보셨나요? 당신은 저 없이 그렇게 제한적이실 것입니다. 제가 여기 있는 한 당신은 많은 것을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 같이 일으켜질 때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셔야 합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에게서 도망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그가 누구인지를 그에게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엘리야가 도망한 후에도 패배로 인해 갈멜산에 있었던 것처럼 영적 승리자도 아니요,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영적으로 성숙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추구하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패배의 체험을 통과할 때입니다. 우리가 그분만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진실로 그분을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주님 안에서의 성장이 하찮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항상 시간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편리에 따라 그분께 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주님을 누리는 분위기에 있을 때 그분은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그들이 문젯거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분은 그들을 위해 그 문젯거리를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들은 “산타클로스” 예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그분 자신을 고의로 숨기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잃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 하찮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얻기 원한다면 우리는 값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견고히 서기 원한다면 우리는 값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값싼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필요한 값을 지불하는 것은 종종 폭로되는 것, 좌절감을 주는 것, 귀찮은 것, 심지어 일정기간 동안 분명치 않게 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값을 지불한다면 모든 패배와 어려움은 우리를 생활의 다른 단계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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