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마당은 알곡이 모아지고 겉껍질을 분리해 내는 곳이었다. 이곳은 쓸모없었던 것에서 분리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침례자 요한은 타작마당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과 연결시켰다(마 3:12). 타작마당은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했던 겉껍질이 “끌 수 없는 불”로 태워질 곳이다(고전 3:12-15).
룻은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방식으로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나타났다. 그녀는 준비를 하고서 한밤중에 나타났다. 성경에서 한밤중은 항상 심판과 관련해 사용했다. 한반중은 출애굽기 11:4절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다. 그것은 절대 변할 수 없다. 이 방식으로 쓰인 용어는 계속해서 사용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한밤중은 성경에서 심판을 의미한다(욥 34:20, 시 119:62, 마 25:6). 한밤중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에서 두 단어로 번역된다. 또한 가끔 헬라어에서는 합성어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보아스가 있는 곳에 룻의 나타남에 대한 시간과 장소는 심판을 말한다. 하지만 심판을 통과하는 룻 그녀 자신은 축복을 받았다(룻 3:10). 그 이유는 분명하다. 룻은 그곳에 나타나기 위해 합당하게 준비되었다. 룻은 보아스 앞에 가기 위해 합당하게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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