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흔히 남녀가 데이트를 하다가 한 집에 들어가 한 이불 덮고 자식을 낳고 사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오늘날 결혼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고, 결혼에 대한 의미도 달라졌다. 이런 의식이 오늘날 교회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부모들도 생각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바뀐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비(非)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 인식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어느 정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젊은이들이 선호해서 하는 결혼식 자체가 성경에서 가져온 것들과 본래 한국의 전통혼례를 혼합해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혼식에는 기독교적인 정신이 없다. 이제는 그 결혼식 자체가 어떤 요식행사나 비(非)그리스도인들의 전유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인들만큼은 이제 성경적인 결혼,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결혼, 진정한 그리스도인들 결혼의 의미를 알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를 “아담”이라고 부르셨다. 하나님은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그의 배우자로)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조력자를 만들리라”(창 2:18)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그의 필요를 채울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셨고, 그의 옆구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셔서 여자를 건축하셨다. 하나님은 그분께서 건축하신 여자를 아담에게로 데려가셨다. 그러자 아담은 몹시 흥분하게 되었다. 그 여자를 보자마자 아담은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창 2:23a)고 말했다. 이 말은 아주 친밀하고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계속해서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고 말하고 있다(창 2:23b-24). 이 구절에서 두 가지의 것을 보여준다. 하나는 하나님의 위치요, 다른 하나는 사람의 위치다.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에 관해서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혼자 있는 것은 내게도 좋지 않다. 이것이 내가 사람을 창조한 이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인간이 왜 여기에 있는가? 오늘날 많은 이론을 가진 과학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이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키려고 하거나 믿게 할 이론이 없다. 사람들이 자포자기의 환경에 있을 때 그들의 자동적인 반응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환경이 열악해 질 때 하나님께 부르짖을까? 그들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외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얼마나 많이 일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 원형(原型)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혼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아셨다. 하나님은 그분께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분은 그분의 필요를 채우도록 돕는 자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아담의 옆구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시고, 여자를 건축하셨다. 4,000년 후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 그분은 잠에 빠지게 되셨다. 그분께서 죽으신 것이다. 그분이 잠들어 계셨을 때 군인들이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사람의 죄를 깨끗케 할 피가 그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왔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이 되신다고 상징하는 물이 흘러 나왔다. 피로 깨끗케 되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배우자의 건축되는 재료가 된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흐른 피와 물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건축하셨다. 이 분배는 몇 가지의 의미를 가져다준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이 없다면 외로우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의 필요를 채우도록 할 돕는 자가 필요하시다. 그 돕는 자를 건축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죽으셨고, 죽음 밖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해방되셨으며, 사람이 주님께 열려 있고, 구세주로서 그분을 영접하는 한 그분의 피는 사람의 죄에서 그들을 깨끗케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생명은 영접하고, 열려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그분의 배우자로 건축하시려고 우리 안으로 오실 것이다. 창세기는 인간 존재의 원칙을 보여준다. 사람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그들 대부분의 일생을 그들의 부모와 함께 보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모를 위해 아이들을 창조하시지 않으셨다. 계속해서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와 함께 살도록 명령하시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들의 배우자와 그들의 삶을 가장 많이 보내도록 준비시키셨다. 남편들은 자신의 아내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아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필요를 위해 건축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남편들은 자신들의 아내를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남편들이 자신의 아내의 본질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아내들은 자신들의 뼈요, 살로 구성되었다. 아내는 하나님에 의해 남편으로부터 왔다. 아내의 존재는 남편의 일생을 위한 것이다. 오늘날에 아내가 남편의 필요를 위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운 말이다. 이 말이 여성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여성의 가장 높은 권리다. 아내의 존재는 남편을 위한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건축되었다. 아내는 자신의 남편의 필요를 채울 전체적인 사람이다. 여자의 존재는 가장 높은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처럼 아내는 자신의 남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집안에 있다.
아직 그리스도인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박사나 의사, 과학자, 상담가가 되도록 여러분을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아주 낮은 것이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 존재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있기를 갈망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죄가 있고, 타락했다는 것을 아신다. 하지만 그분은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 그분은 그분 자신의 옆구리를 열도록 십자가에서 잠드셨다. 그분의 피가 사람들의 죄를 깨끗케 하시기 위해 흘러 내렸고,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고 구세주로 그분을 영접했을 때 그 사람의 모든 죄는 말끔히 씻어졌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은 그분을 믿는 자들을 회복하시려고 그들에게 흘러 내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는 하나님의 돕는 자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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