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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예수님의 피에 의한 구원과 죄 용서하심이 필요한가?

Hernhut 2016. 2. 11. 12:20


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하심이 필요한가? 복음은 죄책감, 두려움, 소외감, 그리고 영원한 형벌을 이기고, 구원, 기쁨, 소망,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 여러분은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여러분에게 소망을 주시고, 삶의 의미를 갖도록 그분을 받아들였는가?

 

우리는 가끔 우리에게 유익을 줄 항목에 우리의 필요를 스쳐 지나간다. 또 우리는 그런 일을 체험할 때 우리의 감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 질문으로 시작하는 목적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가끔은 인식하지 못하는 선물을 더 완전하게 인식하도록 돕는데 있다. 이 선물은 죄 용서다. 우리가 죄 용서를 인식하는 것을 돕는 데는 우리가 죄의 결과를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죄책감, 두려움, 소외감, 그리고 영원한 형벌에 직면해 있다. 이 문제들이 복음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고, 기쁨, 소망, 구원, 영원한 생명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연구해 보자.

 

#1: 죄는 하나님과 분리시킨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아담과 이브의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을 분리시켰다. 그들은 그분의 임재 안에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되었고, 그분을 피하려고만 했다(2:17, 3:8). 우리의 죄와 죄악들은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므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귀 기울이시지 않으실 것이다(59:1-2).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2:1-3)은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었고,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산다(2:12).

 

죄 용서는 하나님과의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죄는 형벌 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형벌을 지실 그분의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우리를 정말 사랑하신다(5:6-10).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멀리 떠나 있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아버지께 접근하고,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2:13, 17-19). 우리의 사악한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소외된 적을 만들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는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1:21-23). 죄에 대한 심각한 결과는 우리가 용서함을 받을 필요로 이끌려져야 한다. 용서함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신실하게 살아야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사랑하는 자들 사이에서의 소외감

 

죄는 사랑하는 자들 사이에서 더 큰 장벽이 된다.

남편과 아내는 학대, 간음, 알콜 등으로 소외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슬픔, 우울증, 다툼, 심지어 이혼에까지 이를 수 있다. 부모와 자녀들은 갈등을 겪을 수 있다. 부모는 비정하고, 학대하고, 고집스럽고, 이기적일 수 있다. 탕자와 같은 아이들은 반항하거나 부도덕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15:11-13). 가족들 속에서 아이들은 질투심, 이기심, 속이는 것이나 증오 때문에 소외될지도 모른다.

 

소외감은 또 교회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종교적 실수, 거짓말, 비방, 질투심, 자존심, 지역적이거나 인종적 편견, 고집 등이 될 수도 있다(3:14-18, 2:11-14, 16:17). 죄는 서로 사랑해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비극이 될 수 있다.

 

용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화해시킨다.

이런 경우 우리는 하나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가 불쾌하게 여긴 사람들에게서도 용서 받기를 구해야 한다. 잘못한 일이 있는 사람들은 기꺼이 용서해야 한다. 탕자는 그가 하늘과 자신의 아버지에게 저항하여 죄를 지었음을 고백했다(15:18, 21). 우리는 잘못한 자들과 화해하기를 꾀해야 한다(5:23-24).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은 회개의 표현을 해야 한다(17:3-4). 그들이 회개의 표현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기꺼이 용서해야 한다(6:12, 14-15). 여러분은 잘못한 사람들과 함께 여러분의 관계를 형성했는가? 사람들이 회개했을 때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원하는 것처럼 용서하는가?

 

#3: 자존감을 상실함

 

죄는 우리를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하고, 패배했다고 느끼게 한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따르는 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소외시킨다. 욥은 자신의 죄에 대해 혐오했다(42:6). 우리가 완전히 우리의 악한 행위의 결과에 직면할 때 우리는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지?”라고 생각한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죽을 것이라고 장담을 했다. 하지만 그날 밤이 지나기 전에 그는 악담과 저주하면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다(26:33-35, 69-75). 이런 행위는 완전히 패배감을 준다. 죄는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용서는 우리의 가치를 회복시킨다.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를 반대했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기 때문에 죄인들 중의 괴수라고 말했다(딤전 1:12-16). 하지만 그는 용서 받았고, 예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종들 중 하나가 되었다.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에 대해 회개한 후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를 했다(2:1-47, 10:1-48). 그의 죄로 인한 낙심은 그리스도의 용서하심과 그분께 대한 신실한 섬김으로 이기게 되었다. 우리가 권위, 명성, 권능, 기쁨, 그리고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20:25-28).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동료들을 신실하게 섬기기 때문에 우리가 더 커 보인다. 귀중한 소유를 부숴버리는 아이들처럼 우리는 죄로 우리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6:4) 여러분은 이러한 축복을 원하는가? 여러분이 한번 그렇게 새로운 생명을 얻은 이후 여러분은 신실하게 계속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4: 죄책감의 부담(죄의식)

 

죄는 죄책감의 부담을 준다.

아담은 두려워서 하나님께 피하여 숨었다(3:10). 그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윗이 간음과 살인을 저질렀을 때 그는 죄의 부담이 너무 무거워 감당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탄식을 했다(38:3-8). 가룟유다의 죄책감은 그를 자살로 이끌었다(27:3-5). 어떤 사람들은 죄의 부담을 떨어버리기 위해 술과 마약과 도덕적 방종에 의존한다. 죄는 우리의 양심과 자존감에 상처를 낸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바로 잡아야 할지도 모르고,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살고 있다.

      

용서는 우리의 천진함(결백)을 회복한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끊어지도록 탄원했다. 그래서 그는 깨끗한 마음과 올바른 영으로 눈과 같이 희게 되었다(51:1-3, 7-10).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복음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베드로는 그들이 회개하고 침례를 받는다면 그들의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2:36-38). 죄책감의 부담은 예수님의 피를 통한 무죄의 아름다운 부담으로 대체될 수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11:28) 여러분이 이런 축복을 원하는가?

      

#5: 기쁨과 소망을 상실함

 

죄는 두려움, 슬픔, 그리고 절망의 원인이다.

아담은 두려워서 하나님을 피해 숨었다(3:7-10). 왜 두려웠을까?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벌주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피해 숨는 것은 해결책이 못된다. 죄인들은 우리가 용서받지 못했다면 심판과 영원한 형벌로 찾아오는 죽음을 두려워한다(9:27, 살후 1:8-9, 20:10-15). 죄는 또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내가 고통을 받으며 몸이 심히 구부러지고 종일토록 애곡하며 다니나니”(38:6)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후 비통하게 울었다(26:75).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소망이 없다(살전 4:13).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소망할 수 있지만 용서받지 않은 죄인들에 대한 운명은 영원한 형벌이다(2:12). 누구도 죄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소망이 없다(8:13). 죄에 대한 죄의식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의 영원한 형벌에 관해 걱정하는 불면의 시간을 보낸다. 여러분도 이런 경우가 있는가?

 

용서는 기쁨과 소망을 준다.

그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되도록 하소서(51:8, 12). 죄들이 용서함 받을 때 더 이상 두려움과 슬퍼할 이유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회개로 인해 복음은 이와 같은 기쁨의 이유가 된다(16:31-34, 8:39, 15:7, 10, 22-24, 32). 소망 안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8:24).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5:1-2)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안에서 기뻐한다(4:4, 7). 거듭나게 되는 우리는 하늘에 우리를 위해 비축한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은 상속의 소망이 있다(벧전 1:3-5).

 

#6: 영원한 생명을 상실함

 

죄는 형벌로 이끈다.

사악한 자들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로 갈 것이다(25:41). 이것은 영원한 형벌이다(25:41, 46). 이 운명은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의 해결책이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살후 1:8-9).

 

죄 용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이끈다.

죄의 값은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다(6:23).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되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야 한다(3:7). 죄는 영원한 생명 안에서 큰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그 문제들은 이 생명 이후 훨씬 더 큰 원인이 된다. 분명하게 우리는 이런 결과에서 용서받고, 벗어날 필요가 있다.

 

결론

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축복과 우리 사이에 지나갈 수 없는 장벽을 놓는다. 우리는 그 장벽 상하좌우 그리고 그 아래로도 넘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방법만이 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죄의 장벽을 무너뜨릴 유일한 권능은 예수님의 피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그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하심을 주신다(딤전 2:4, 6, 2:11, 3:16, 16:15-16).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조건에 충족되어야 한다. 선택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다.

 

조건이 무엇인가? 우리는 복음을 듣고, 믿으며, 죄를 회개하고, 또 그리스도께 고백해야 하고, 죄 용서를 받기 위해 침례를 받아야 한다(1:16, 10:9-10, 17, 24:47, 고후 7:10, 17:30-31, 2:38, 22:16, 16:16, 벧전 3:21).

 

우리는 계속해서 믿음생활을 살아야 한다(2:11-14, 1:21-25, 6:1-23).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기도한다면 죄에서 멀어지고, 우리는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8:22, 요일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