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페이지/Q&A

구원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 각 개인이 개별적으로 구원받기를 선택해야 하는가?

Hernhut 2016. 2. 19. 10:35


구원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던 각 개인이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어떠함이 있어야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아가들이나 영유아들이 그들 부모의 믿음을 기초로 하여 침례를 받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경건한 가족이고, 신실한 지역교회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마치 의로운 자들처럼 대우받아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죄 있는 가족출신이라면 하나님과의 그들의 관계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한다. 각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 인간으로서 해방된 사람인가?

 

죄를 짓는 혼, 그 혼은 죽을지니라. 아들이 아버지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며 아버지가 아들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로운 자의 의가 그 위에 임하고 사악한 자의 악이 그 위에 임하리로다.”(18:20)

 

이 구절은 구원에 대한 개인적 책임의 원칙을 가르친다. 각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분 자신의 생명을 위한 책임이 있다.

 

다른 누구도 우리를 위해 구원 받을 수 없고, 구원 받을 것인지 받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다. 각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그들 각자의 선택과 행위로 결정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완전하게 이것을 믿지 않는다. 아이가 부모의 신앙을 기초로 하여 침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함으로 영유아 침례를 방어한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의 아버지가 가족 모두를 위해 침례 받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을 부모가 대표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부모의 신앙으로 가족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

 

I. 구원에 있어 개인적인 책임이라고 가르치는 구절들

 

A. 개인적인 책임에 관한 일반적인 구절들

 

그리스도인 각 사람의 행동은 그 자신의 책임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아들의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의로운 자의 의로움은 자신 위에 임하고, 사악한 자의 사악함은 자신에게 나타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각자에게 자신의 사악함이나 의로움의 책임이 있다(18:20). 누구든지 죄를 범하는 자는 율법도 범하나니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니라.”(요일 3:4)

 

예수님을 고백하는 모든 이들이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성도들이 왕국에 들어갈 것이다. 사람의 영적인 집을 세우는 것이든, 무너지는 집을 세우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을 듣고 행하는 자의 방향에 의해 결정되었다. (7:21-28).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짓는 누구든지 지혜로운 성도요(24),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행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다(26).

 

예수님을 따르기를 갈망하는 어떤 이들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잃으려하는 누구든지 생명을 찾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 사람이 그분의 제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를 말씀하신다(16:2425). 그 선택은 개인적인 선택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에 적용하여 주의해 보라.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은 의를 행하는 누구든지 받아주신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받아 주신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이다(10:35). 이 사람들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사는 모든 사람이요, 누구든지 적용된다(10:34). 특정한 사람이 아니다. 모두 같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고서 자신이 본 것을 금방 잃어버리는 자와 같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완벽한 법을 살피고 그 일을 계속해서 행하는 자들은 그가 행한 대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축복을 받은 자들이 말씀을 들은 것을 계속해서 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1:23-25).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그 행위가 뒤 따른다. 행위는 개인적인 책임이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요, 행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사랑을 표현하실 것이고, 예수님 또한 표현하실 것이다(14:21-24).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해야 한다. 이렇게 상호적으로 거할 때 그 상호적 거함에 의해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불쏘시개가 된다. 상호적 거함이 아니면 우리 혼자서 열매를 맺을 수 없다(15:4-6).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성도들이다. 예수님과 함께해야 성도요,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이다. 예수님과 함께 교회생활, 신앙생활, 봉사, 섬기는 일, 격려하는 일, 분발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선하고, 열심히 행하는 것이라도 그것은 예수님을 손상시키고, 모임을 헤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부모요, 형제요, 자매인 것이다(12:30, 50).

 

오늘날 수많은 어려움과 죄악과 사악함으로 지배받고 있다. 사회만이 아니라 교회생활과 심지어 성경 안에도 사람의 생각과 사탄의 의도가 들어가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이단들이 성행하고 음란과 더러움으로 물들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참된 성도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조롱을 받고, 적대와 핍박이 몰려오더라고 견디는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이른다(24: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 구원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각 개인의 책임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누구든지 구원에 이른다. 반면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들은 구원이 없다(2:21)

 

또 구원에 대한 각인의 책임에는 단정한 옷으로 자기를 꾸미되 얌전하게 맑은 정신으로 하고 장식한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하지 말며 *오직 (하나님의 성품을 고백하는 여자들에게 합당한) 선한 행위로.....”(딤전 2:9) 행하는 삶을 포함한다. 구원 받지 않는 사람들은 품위를 지키기 않는 옷과 값비싼 것으로 장식하기를 좋아한다. 하나님의 성품에 맞지 않게 사는 것은 선한 행위가 아니다. 각 성도들은 동일한 소망을 사는 삶이 필요하다(6:11). 교회 안에 있는 성도 각자가 동일한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성경은 성도들 누구든지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 안에서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거짓이요, 진리를 갖지 않은 자들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하지 않는 자요, 하나님과 자신 안에 상호적으로 거하지 않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요일 2:4-6). 그리스도인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상호적 거함이 중요하다. 각인이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들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마귀의 자식이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이 된 것이다(요일 3:7-10, 요이 1:9).

 

각인의 영원한 운명은 각인의 책임의 기초가 된다.

심판 때에 각인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을 것이다. 심판을 받는 사람들은 어떤 다른 사람이 행한 것이 아니고 그가 행한 것에 따라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에게 적용된다(고후 5:10).

 

우리 각인은 하나님께 그날 자신에 대해 회계를 할 것이다. 다른 어떤 누구도 대신 심판을 받아 줄 수 없고, 오직 각인이 행한 것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14:12). 하나님은 각인의 행위대로 즉 사악함을 행하는 자들의 혼에는 환란과 곤고함으로,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화평으로 각인에게 베푸실 것이다(2:6-10).

 

사람이 뿌리는 것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다. 육체의 것을 뿌리는 자는 부패와 타락의 것을 거둘 것이고, 영의 것을 뿌리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거둘 것이다.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거두는 것은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6:7-8).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받지 않으신다(6:7).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상벌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살았던 것에 따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들은 속는 것이요, 하나님을 조롱하려고 하는 것이다.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20:13-15)

 

 

B. 구원의 단계에서 개인적인 책임에 관한 구절들

구원에 있어서 이 각 개인적인 책임을 말하고 있다. 복음이 말하는 각 단계에서 요구하는 구원에 대해 각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라.

 

복음을 듣는 단계

 

아버지에 의한 이끄심이 없는 한 아무도 예수님께 올 수 없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아버지로부터 듣고, 배우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께로 온다. 예수님께 오는 사람들은 먼저 듣고, 배워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듣고 배우지 않는 한 아무도 예수님께 올 수 없다(6:44-45).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라고 우리들 중 모든 사람에게 명령하셨다. 각인은 듣고, 이해해야 한다(7:14).

복음은 온 세상의 모든 창조물(유대인, 이방인)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16:1516) 믿고 침례를 받은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고 구원 받은 사람들은 먼저 듣고, 이해하고, 믿고 침례 받아야 하는 사람과 같다. 복음을 듣는 것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여러분을 위해 복음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여러분도 어떤 다른 사람을 위해 복음을 배울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고, 그들이 배우는 것을 도울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다(10:16, 3:23).

 

믿음의 단계

 

다시 한 번 말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먼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고, 침례를 받아야 한다(16:15-16). 하지만 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정죄)비난을 받을 것을 주의하라. 구원을 받든지 비난을 받든지 개인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믿는 자 누구든지 영존하는 생명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생명이 아닌 진노를 받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자는 믿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가 믿지 않는다면 그에게 진노가 있을 것이다(3:16, 36).

 

예수님을 믿는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을 것이다. 죄 사함을 원하는 사람은 믿어야 된다(10:43).

 

의로운 마음과 고백하는 입술을 가진 믿는 자는 구원에 이르렀다. 예수님을 믿는 누구든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각인은 믿어야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또 각인은 그리스도께 고백해야 하는 입술이 있다(10:9-11).

 

하나님께로 오는 자는 그분께서 존재하시고, 그분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보상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분께 오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분을 믿어야 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나?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11:6).

믿음 역시 개인적인 책임이다. 여러분을 위해 아무도 대신 믿을 수 없고, 여러분도 다른 이들을 위해 대신 믿을 수 없다(5:24, 11:25-26, 1:16, 3;26).

 

회개의 단계

 

각인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위해 침례를 받아야 한다. 죄 사함을 추구하는 자들 역시 회개해야 한다. 회개와 침례 역시 개인적인 책임이다(2:38).

 

하나님은 어떤 누구도 멸하시지도 않으시고, 다만 모든 이들이 회개하러 오기를 원하신다(벧후 3:9). 멸망되는 것을 피하는 각인은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죄의식을 인정하는 것이요, 사람의 생명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이 자신의 생명을 변화시키려고 할 수 없고,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로 작정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생명의 변화, 회개는 개인의 책임이다.

 

고백의 단계

 

또 한 번 반복한다.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해야 한다(10:910). 각인이 믿어야 하는 마음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고백해야하는 입술이 있다.

 

예수님을 고백하는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아버지 앞에서 그를 고백하실 것이다(10:32). 아버지 앞에서 고백을 받을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고백해야 한다(요일 4:15).

 

아무도 여러분을 위해 그리스도를 고백할 수 없고, 여러분이 다른 어떤 이들을 위해 대신 고백할 수 없다.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강한 신념은 고백하도록 여러분을 이끌어야 한다. 고백 역시 개인적인 책임이다.

 

침례 받는 단계

 

믿고 침례를 받은 이는 복음을 들은 후에 구원을 받을 것이다(16:15-16). 침례는 복음을 듣고, 이해하고, 또 믿는 자에 의해 된 개인적인 선택이다. 침례를 받은 사람은 먼저 믿어야 하는 사람이다. 침례는 배우는 것과 믿는 것과 같이 개인적인 책임이다.

 

모든 이들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위한 침례를 받아야 한다. 회개하는 각인은 침례를 받아야 한다. 죄 사함을 추구하는 각인은 침례를 받아야 한다(2:38). 침례는 회개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책임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는 한 그는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3:3, 5). 왕국에 들어가기를 추구하는 이들은 침례를 받아야 한다. 그가 개인적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개종의 각 단계는 개인적인 책임이다. 아무도 여러분을 위해 대신 배우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침례를 받을 수 없다. 여러분이 다른 어떤 이들을 위해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 우리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할 수는 있지만 각 사람은 그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자신의 생각을 추슬러야 한다.

 

 

II. 구원에 있어 개인적인 책임에 대한 적용

교회라는 모임을 갖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행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지, 혹은 구원을 받지 못할지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믿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A. 영아(유아) 침례 / 집안 침례

성경은 믿음이 침례를 앞서야 한다고 말하지만 많은 교파들은 아가들에게 침례를 준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가 부모의 믿음을 기초로 침례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 이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온 가족을 위해 부모가 가족 모두(아내나 남편까지도) 침례 받을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은 침례 받기 전 각자의 이해와 믿음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결정이 개인적인 결정이라는 여러 구절을 인용하게 된다(18:20).

 

복음을 듣고, 믿으며,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각인은 그들 자신이 침례를 받아야 한다(16:15-16). 어른이 아이들과 가족 구성원을 위해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없다. 침례를 받은 성도가 믿지 않는다면 침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침례를 받은 각인은 먼저 회개를 해야 한다(2:38). 회개와 침례 역시도 각인의 책임이다. 어른이 아이들이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위해 결정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 것이다. 침례는 먼저 회개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침례가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도 모두 개인적인 책임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결정할 수 없고, 남편이 아내를 위해 결정할 수 없으며, 천주교회처럼 대부(代父)나 대모(代母)가 대신 결정할 수 없다. 아무도 어떤 다른 사람을 위해 선택할 수 없다.

 

왜 부모는 아가의 위치에서 침례 받지 않는가?

여러분이 부모가 아가의 위치에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왜 부모는 아가의 위치에서 침례를 받지 않는가? 왜 아가가 개인적으로 침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가? 왜 부모가 아가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하지 못하는가? 성경은 침례를 받은 성도가 믿고, 회개하고, 고백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도 다른 어떤 사람의 위치에서 이러한 실행을 할 수 없다.

 

믿지 않는 부모는 어떤가?

부모나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아이들과 가족 구성원들이 믿든 믿지 않던 상관없이 부모나 어른이 그들을 위해 믿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믿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아이들이나 배우자가 그들이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던 상관없이 침례받기를 결정할 수 있는가?

 

믿고 침례를 받은 성도들은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16:15-16). 아버지가 믿음이 부족한 아이들이나 자신의 아내를 위해 침례 받기를 결정할 수 있다면 왜 그는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조차도 침례 받지 않기를 결정할 수 없을까? 여러분이 이런 경우에 아내와 아이들 자신의 선택이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각인의 책임에 대한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믿지 않을지라도 믿는 성도는 침례를 받도록 가르치는 구절들이 있고, 부모가 믿을지라도 믿지 않는 자들은 침례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각인은 하나님을 섬기든지 섬기지 않든지 그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있다.

 

부모의 권위는 제한되어 있다.

에베소서 5:22-25절은 아버지의 가정에서의 지도력을 설명한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신 것과 같이 아내의 머리다. 예수님은 교회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지도하시고, 가르치신다. 하지만 각인은 따르기로 할 것인지, 아니면 따르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께서는 믿을 것인지,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인지, 또 침례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침례를 받지 않을 것인지를 각인을 위해 결정하셨는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각인이 그것을 선택하도록 하신다.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가정의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치고, 지도를 한다. 하지만 각인은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이 믿거나 침례를 받을 것인지 받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다. 아버지는 단지 가르치고, 이끌고, 안내만 할 수 있다.

 

영유아는 죄가 없다.

침례 받는 것에 대한 성경적인 목적은 죄 사함과 구원을 받기 위한 것뿐이다(2:38, 16:16). 아가들은 무죄하고, 용서받을 죄가 없다(106:37-38, 19:14, 18:3). 그러므로 부모가 결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례는 아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책임에 대한 원칙은 영유아침례의 오류를 나타낸다.

 

B. 죽음을 위한 몰몬교의 침례

몰몬는 사람들이 몰몬교에 의해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침례를 받지 않고 죽는다면 관계가 있는 다른 몰몬이 침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죽은 후 믿고 회개하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살아서 관계를 맺은 사람이 침례를 받기 때문에 침례를 받지 않고 죽은 이가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몰몬이 족보에 너무 관심을 두는 이유이다. 각 몰몬은 죽은 이들과 관계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침례를 받았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영유아침례주의는 아가들 각인이 침례 받아야 말하지만, 아가일 때 다른 이들이 대신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몰몬주의는 아가의 침례를 반대하고 사람이 각인이 믿고 회개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이 대신 침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두 경우 다 오류다. 사람들이 자신을 대신해서 믿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는다면 왜 다 그것을 할 수 없을까? 어떤 누구도 다른 사람을 위해 믿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을 수 없다. 구원의 모든 단계는 각인의 책임인 것이다.

 

C. 다른 가족 구성원

어떤 사람들은 가족의 지위를 기반으로 하여 사람들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거절해야 한다고 잠재의식적으로 믿는다.

 

훌륭한 가족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혜가 주어졌는가?

가끔 올곧은 가족 구성원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삶과 상관없이 올곧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설교자, 장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아이들과 아내들은 그들이 그들의 가족 구성원이기 때문에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유하거나 영향력 있는 가족의 구성원들은 교회, 직장, 사회나 정부에서 호의적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잘못 행한다면 그들은 법정, 교회, 일하는 감독관이 그들의 가정의 위치 때문에 눈감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특별한 대우를 한다. 법정이나 일터에서 이 사람들의 곤경에서 구제되기도 한다. 또 교회에서도 그들의 죄가 못 본체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훌륭하지 않은 가족을 가진 사람들을 홀대하는가?

어떤 가족은 나쁜 명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가정은 부모나 배우자가 범죄 기록이 있고, 부도덕의 평판이 있으며, 무교나 이교도이기도하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이 부도덕한 가정의 지체와 같이 살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들이 그와 같은 배경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가끔은 가족 구성원들이 죄를 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과는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 역시 죄를 저지르거나 소망이 없다고 대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은 개인적인 책임에 위반된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이 죄가 있는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벌 받을 것이요, 죄 있는 사람이 경건한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은 자신의 경건함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8:4, 9-18). 각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책임이 있다.

 

빈번하게 가족들이 예수님에 관한 그들의 결정을 일치시키지 못한다. 한 사람은 예수민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반면 다른 구성원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10:34-37, 10:29-30). 각인이 자신을 위해 선택할 능력이 있다(14:26-27).

 

여러분이 의로운 가족의 출신이라면 그것은 큰 축복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의를 행하도록 도와야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옳기 때문에 여러분은 옳은 것은 아니다. 각인은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요,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행위에 따라 사람들에 의해 판단 받아야한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사악한 배경을 가진 가족출신이라면 그들의 영향력과 가르침이 의롭게 되기가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 때문에 여러분도 잘못하는 것이 아니다. 각인은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요,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행위에 따라 사람들에 의해 판단 받아야한다.

 

여러분이 옳은 삶을 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선한 가족과 상관없이 구원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옳은 삶을 산다면 가족의 사악함과 상관없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의 행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여러분 개인적인 책임이다.

 

D. 다른 교회 지체들

 

교회원 자격에 관한 오해들

이 주제를 보면 가족의 배경과 유사하다. 우리는 가족이 태어는 것을 선택할 수 없지만 교회원은 우리가 선택해서 될 수 있다. 이점만 빼면 교회원 자격에 관한 문제는 가정의 배경과 유사성이 많다. 하나님은 죄를 짓는 곳이 아닌 모임을 선택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하지만 각인은 여전히 자신의 개인적인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건전하고 활동적인 모임의 지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성경을 활동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선한 가정을 가지고 있고, 도덕적으로 단장한 삶을 산다. 그들은 경건하고, 자격을 갖춘 장로들이고, 건전하고 믿음이 있는 복음전파자요, 설교자요, 교회의 예배 인도자요, 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서 이런 삶을 살지 않을지라도 그들을 받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오류를 실행하지 않는 지체들이지만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기도, 가르치지 않는 무리들도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갈등이 있다. 그들은 공동체에 이르고, 성장하는 것을 돕는데 비교적 적은 수고를 발휘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실망을 하고, “다른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데 왜 내가 일을 해야 하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함께 그만두거나 교파에 가입하기를 고려하기도 한다.

 

주님은 여전히 개인적인 책임을 가르치신다.

여러분은 죄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성경적인 실행을 하는 무리의 지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것과 상관없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행위 때문에 심판받을 것이다.

 

사르디스(사데)교회는 호평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영적으로 죽어있었음을 아셨다. 다른 교회와 다르게 그분은 신자로서 어떤 교리적인 오류와 실행적인 죄에 대한 것으로 그들을 책망하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체들은 활동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만은 그들의 의복을 더럽히지 않았고, 그들이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흰 옷을 입고서 주님과 함께 했다(3:1-4).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등한시하고 무관심할 때조차도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빌립보교회는 선하고, 좋은 교회였다. 다른 교회들과 다르게 바울은 무엇이든지 교회에 맞서서 불평이나 시비(오류에 대한 비난)가 없음을 안다고 말했다. 그들은 활발하게 바울을 후원했다. 그들은 분명하게 신실하고 활동적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들 자신의 구원을 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2:12-14).

 

여러분이 구원받는 것은 교리적으로 신실한 모임의 지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의 개인적인 행위 때문에 심판 받게 될 것이다. 다른 모든 지체들이 활동적이고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부지런하지 않고, 개인적인 죄에 참여하는 것으로 구원을 잃을 것이다. 다른 지체들이 무관심하고, 등한시할 때 여러분이 신실하게 일을 한다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개인적인 책임이다.

      

구원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에 대한 결론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3:20) 예수님은 여러분과 교제하고,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죽으셨고, 여러분에게 모든 공급이 되셨다. 그분은 여러분의 생명의 일부분이 되시기 원하신다.

 

하지만 그분은 여러분에게 강요하지 않으실 것이다. 대신 그분은 여러분이 문을 열도록 그분의 말씀을 통해 부르신다. 그분께서 여러분의 생명 안으로 들어오시든, 들어오시지 않던 여러분이 문을 여느냐, 열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선택이다.

      

성령과 신부는 사람들이 생명의 물을 마시러 오도록 그들을 초대한다(22:17). 하지만 목마르고 갈급한 각인은 개인적으로 와서 마실 수 있다. 아무도 대신해서 와서 마시기로 결정할 수 없다. 선택은 여러분의 것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