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곳곳에 셰이커교도들이 있다. 셰이커교도들은 마치 방언으로 함께 말하는 자들이 하는 것처럼 그들의 모임에서 해방을 가져오기 위해서 그들의 의자를 흔들어 댄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지만 우리가 이런 방식을 함께 한다는 것은 몸의 실제와 관계있다고 말할 수 없다. 젊은이들은 분위기를 고취시키려는 노래의 종류를 좋아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이들과 다른 분위기의 노래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모일 때 기적을 보기 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듣기 원한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이 하는 것 무엇이든 그들이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롬 14:6). 주님께서 그들을 영접하시는 한 우리가 누구를 판단하겠는가? 우리의 존재에 관한 큰 문제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노래하는지, 또 우리가 실행하는 것 무엇이든 하나님이 우리의 내용으로 실행하고 있는가이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은 그들의 모임에서 노래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내용인가 아니면 그 음악이 여러분의 내용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될 때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얼마나 포함되셨는지 우리 자신을 체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내용은 실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의 내용은 트라이윤 하나님의 생명이다. 실행과 관계없이 우리가 염려해야 하는 최우선적인 것은 생명이 있는가 아니면 성분이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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