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른훗 일기

광야에서 양치기를 한 모세

Hernhut 2015. 11. 23. 10:52


광야는 이집트에서의 모세의 생활과 대조가 되는 생활이다. 이집트에서 그는 로열패밀리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그에게 절을 했다. 그런 그가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양을 치는 자가 되었다. 심지어 양들조차도 그에게 순종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궁중은 달콤한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양치는 곳은 동물 냄새가 났고, 더러웠다. 궁중에서는 종들이 그의 목욕을 준비하기 위해 뛰어 다녔다. 광야에는 목욕탕도 없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가 이집트에 있을 때 통치자가 되셨다면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그의 통치자가 되신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잘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주님께 찬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가고 싶은 학교, 직장 등으로부터 거절되었을 때나 승진이나 어떤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는가? 그런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분의 통치권을 증거할 수 있는가? 바울은 믿는 성도들로서 우리는 모든 일로 인해 우리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복종하라.”(5:20)고 기록했다. 여기서 모든 일들은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 합격하든지 불합격 하든지, 승진하든지 승진을 못하든지 이 모든 일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세는 이런 공과를 배워야 했다. 그가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불평을 했었다고 성경에는 기록하지 않았다. 그것은 광야에서도 모세가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느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님께 갈 때 다른 모든 일들이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모세가 살았던 누옥(陋屋)은 양의 더러운 냄새로 가득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셨기 때문에 누옥(陋屋)이든, 냄새가 나든, 비가 새든, 집이 작든 크든 상관없었다. 모세는 아주 평안해 보였다. 궁중에서 살던 때보다 그 누옥(陋屋)에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누리는 것이 더 나았다. 우리가 이와 같은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서도 평안하게 될 것이다.

 

모세는 질문을 했어야 한다. 자신이 왜 하나님께서 아기 때에 강에서 구하셨는지, 그의 친 어머니에 의해 유대 신앙을 강화하도록 하셨는지, 이집트 교육을 받도록 하셨는지, 또 이집트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이 되도록 하셨는지에 대해 궁금해야 한다. 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행하셨을까? 이게 지금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모든 것이 모세가 광야에서 양치기를 할 수 있도록 했을까? 모세에게 하나님은 재미가 있으신 분이시고, 그의 모든 것의 시작이 무가치한 허영심처럼 느꼈던 것이 틀림이 없다.

 

 


'헤른훗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룩한 헌신   (0) 2015.11.25
모세의 글쓰기  (0) 2015.11.24
모세의 선택   (0) 2015.11.22
하나님의 통치권   (0) 2015.11.21
모세의 헌신  (0) 201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