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속에서 하시는 것을 우리가 듣지 않는다면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위험을 당하게 된다. 사실상 우리는 에우티쿠스보다 더 큰 문제로 끝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우리가 지금까지 들은 것들에 더 열심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리니 이것은 언제라도 그것들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천사들을 통해 하신 말씀이 확고하였고 모든 범법과 불순종이 정당한 보응의 대가를 받았거늘 *우리가 이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이요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인데”(히 2:1~3)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게 하던 때에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히 3:15)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말할 것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말하기 어려우니라.”(히 5:11)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의 마음은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기에 둔하며 그들은 눈을 감았나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로 보내어진 것과 그들이 그것을 들을 줄을 너희가 알라”(행 28:26~28)
에우티쿠스는 복음전파자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육체적인 위험에 빠졌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음전파자를 통해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더 큰 영적인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졸음에 빠진 이 사람에게서 공과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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