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II

일곱 번째 날 안식일이냐 아니면 한주의 첫날이냐?

Hernhut 2014. 12. 20. 19:55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까 아니면 주일을 지켜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우리가 신약성경의 명령에만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 구약 율법을 폐지하시거나 제거하셨나요? 도덕적인 법과 의식적인 법, 모세의 율법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는 무엇이 다릅니까? 모세의 율법과 십계명을 폐지되었나요? 오늘날 우리가 순종해야 할 법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기억해야 합니까 아니면 주일에 모여야 합니까? 이 질문은 몇 달 전 한 청년이 내게 한 것입니다.

 

들어가는 말

나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성경은 안식을 지키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칩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주일날을 지키라고 가르칩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옛 법의 부분을 구별합니다. 그들은 의식적인 법”, “모세의 율법만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도덕적인 법”, “하나님의 율법10계명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안식일은 10계명에 있었고, 그것이 여전히 묶여있기에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음 중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것을 지켜야 할까요? 성경은 오늘날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까? 어떤 것이 의식적인 법, 모세의 율법이요, 어떤 것이 도덕적인 법, 하나님의 법인가요?

 

* 레위지파의 제사장직분

* 동물 희생

* 향불 피우기

* 축제일 지키기

* 월삭

* 십일조

* 부정한 고기를 먹지 않는 것

* 예배 안에서 악기연주

* 예배 안에서 춤추기

* 일곱 번째 날 안식일

 

위의 모든 것들은 옛 법이었지만 대부분 10계명에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안식일을 지키는 다양한 사람들은 그것들의 것들을 지킵니다. 왜 그들은 전부를 지키지 않고 일부만 지킬까요? 무슨 증거가 어떤 것을 지켜야하고, 다른 어떤 것은 지키지 말아야한다고 말합니까?

 

구약성경의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날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교사)들은 주어진 모든 하나님의 명령에 우리가 순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구절들을 사용하려고 합니다(111:7~8, 89:34, 13:8, 3:6, 1:17, 대상 16:15). 하지만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명령하시고 선포하신 어떤 것도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설명을 이 서론에서 말하려고 합니다.

* 방주를 세워라(6:18,22, 7:5, 9:11~17). 이 언약(6:18)이 명령에 포함되지만(6:22, 7:5) 사실상 지금은 아닙니다(9:11~17).

* 아들을 희생하라(22:1~19). 이 명령(22:2)은 언약과 관련이 있습니다(22:16~19). 우리가 그것을 순종해야 합니까?

 

* 할례(17:9~14, 12:3, 고전 7:18~20, 5:1~8, 6:12~16, 15:1~29)는 모세 이전(12:3)과 그의 율법의 명령과 언약이지만 오늘날 그것이 우리를 묶지 못합니다(고전 7:18~20, 5:1~8, 6:12~16, 15:1~29).

 

* 레위직분(40:12~16, 29:1~9, 3:10, 18:1~7, 16:40, 7:11~18, 벧전 2:5, 9)은 시내의 언약(29:1~9) 아래에 있던 명령(40:12~16)은 아론과 그의 후손만이 제사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3:10, 18:1~7, 16:40). 아론의 후손이 아니요, 다른 질서의 예수께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법이 바뀌었습니다(7:11~18, 벧전 2:5, 9).

 

* 동물 희생(7:36~38, 4:1~5, 15:1~6, 1:1~7:38, . 10:1~18) 또한 모세 언약(4:1~5, 15:1~6, 1:1~7:38) 이전과 모세 당시의 명령(7:36~38)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중단되었습니다(10:1~18).

 

* 모세의 언약(23:1~44) 이전부터 명령되어진(12:14~18, 24, 28, 13:10) 거룩한 날(12:14~18, 24, 28, 13:10, 23:2, 4, 7, 8, 21, 24, 27~32, 34~39, 2:14~17, 4:10, 11)은 안식의 거룩한 날(12:16, 23:2, 4, 7~8, 21, 24, 27~32, 34~39)로 포함되어 거룩하게 지키도록 되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묶여있지 않습니다(2:14~17, 4:10~11).

 

하나님은 이 명령들을 안식의 거룩한 말을 포함해 바꾸셨습니다. 사람들이 바꾼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나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구절을 인용할 때 우리는 위의 명령들을 다 지켜야 하나요?”라고 묻습니다. 현대의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 명령들 모두를 지키나요? 구약성경의 특징은 침례를 받고, 주의 만찬을 지키도록 계속해서 명령을 하나요?

 

사람은 실례로서 약속을 만들었다.

갈라디아서 3:15절은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만들어진 약속의 원칙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의 약속(계약, 협정)들을 사용했습니다. 히브리서 9:17절은 사람이 만든 뜻이나 증거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실례는 십계명과 안식일을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로 세우신 언약관계를 우리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삶에서 계약과 약속의 개념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어떤 물건(, , 컴퓨터, , 보험, 모바일 등)을 구입하는데 다양한 사람들과 계약을 맺습니다. 계약은 조건, 비용, 자격조건 등을 포함합니다.

 

* 각 계약은 한 사용자나 등록자 이름으로만 묶여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와 유사한 계약을 할 수 있지만 아무도 어떤 사람의 계약을 묶지 못합니다. 아무도 여러분이 그 계약하지 않았다면 계약조건들로 여러분을 묶으려 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 각 계약은 계약조건이 영향을 미치는 한에만 묶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계약은 특정한 조건들이나 어떤 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것을 명기할 수 있습니다. 계약조건이 채워졌을 때 그 계약은 끝나고, 더 이상 누구도 구속하지 못합니다.

 

* 새 계약과 언약은 이전의 언약과 계약들을 잇거나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포함된 계약들과 언약은 옛 것이 아닌 새 계약의 조건으로 묶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새로운 뜻을 세운다면 그것이 전체적으로 예전의 뜻을 대체합니다. 새로운 계약은 예전의 계약조건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어떤 조건들을 가질 수 있고, 다른 어떤 조건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이전의 계약조건이 존재했다하더라도 이와 같은 예전의 계약조건들은 새로운 계약들을 묶지 못합니다.

 

앞에서 나열한 언약이나 법들은 오늘날 우리를 묶지 못합니다. 우리가 논한 원칙들은 묶지 않고 있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만드신 언약은 이미 토론된 모든 법과 언약이 더 이상 묶고 있지 않는 것같이 오늘날에도 아무도 묶여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십계명과 안식일을 포함해 모든 법과 그 언약의 용어에 적용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모세를 통해 만들어져 대체된 완전히 다른 언약 아래에서 삽니다. 모세를 통해 계시된 법 중에서 오늘날 적용되는 법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법들, 용어들, 그리고 계약 조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묘사한 것처럼 복음은 예전에 존재했던 어떤 것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법들을 포함하지만 그 법들이 이전 언약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그 법들 중 아무것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법들과 언약은 신약성경에 포함된 것뿐입니다.

 

 

I. 10계명과 안식일 흔적은 묶여있지 않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만 법을 적용할 권리가 있으시고, 묶고 있는 것을 중지할 법을 사람들에게 주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포함한 10계명에 대한 것이라는 흔적을 생각해 보십시요. 모든 논쟁들은 율법의 다른 부분만이 아니라 안식일과 10계명에도 적용됩니다.

 

#1. 10계명과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졌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가 아닌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 어떤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이삭을 드림,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할례를 함 등이 여기에 속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계명을 적용하는 것은 하나님께 믿음을 보이는 것이 아니요, 그분의 뜻을 왜곡하는 것입니다(3:19).

 

언약부분인 10계명과 안식일은 시내산에서 주어졌다.

안식일, 10계명은 두 개의 돌 판에 쓰여 졌고, 언약의 궤에 있었습니다(34:1,27~28, 31:18, 32:15~16, 4:13, 5:1~33, 9:9~11, 10:1~5, 왕상 8:9). 언약이 10계명, 안식일을 포함하여 시내산에서 주어진 흔적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 언약이 옮겨졌다는 것을 볼 것입니다.

 

10계명은 시내광야에 있는 언약 안에 있었다.

하나님은 시내산 위에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은 10계명, 언약의 말씀을 판에 새기셨습니다.(34:27~28). 하나님은 돌 판에 10계명이라고 그분의 언약을 설명하셨습니다(4:13). 하나님은 호렙에서 우리가 가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더 더하시지 않으셨고, 두 개의 돌 판에 그 계명들을 쓰셨습니다(5:2, 22). 산 위에서 모세는 언약의 돌 판 두 개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그 돌판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9:9, 11). 궤 안에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이 갖도록 만드신 언약입니다(대하 6:11).

 

안식일도 시내광야에 있는 언약 안에 있었다.

안식일은 위처럼 10계명에 포함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계속되는 언약으로 안식일을 지킵니다(31:16). 10계명과 안식일을 포함하여 이 두 돌 판은 궤 안에 두었고, 시내광야의 기본적인 언약부분이었습니다.

 

언약 책에 있는 10계명과 안식일

어떤 사람들은 두 개의 돌 판에 있는 10계명이 궤 안에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없애신 율법의 부분이 아니었고 율법의 나머지 부분이 궤 옆에 두었던 언약 책에 있었다고 주장합니다(31:24~26). 10계명이 이 둘 모두에 포함되었다는 흔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약이 착수되었음(19:3~8)

주님은 나의 언약을 지키라.”라고 말씀하셨고, “너희는 나의 특별한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리이다고 말했습니다(8).

 

언약은 정해졌음(20:1~17, 21:1~23:33)

10계명이 정해졌고(20:1~17), 안식일을 포함한(23:12), 다른 율법도 정해졌습니다(21:1~23:33).

 

언약은 기록되었고, 바쳐졌음 (24:3~8)

모세는 사람들에게 주의 모든 말씀을 말했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의 모든 말씀을 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24:3). 모세는 주의 모든 말씀을 기록했습니다(24:4). 그는 언약 책을 읽었고,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모든 말씀을 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24:7). 모세는 사람들에게 피를 뿌렸고, 그것을 주께서 이 모든 말씀을 따라 너희와 맺은 언약의 피로 불렀습니다.

 

 

다른 구절들

율법의 책모세의 율법 책(8:1), “율법”(8:2), “하나님의 율법(8:8, 18)으로 불렸습니다. 일반적인 안식일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십계명에 포함한다는 것을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율법모세의 율법 책이었던 8절에서 읽었던 그 책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10계명은 법의 책이나 모세의 율법 책에 포함되었습니다. 하여 이 모든 용어는 분리된 율법이 아니라 같은 율법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9:18~19절은 첫 번째 언약이 피로 바쳐졌다고 추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따라 사람들에게 모든 계율을 말한 후에 그는 책 위에 피를 뿌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책은 율법의 모든 명령을 포함했습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이 포함되었고, 거기에 10계명과 안식이 들어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언약 책에 기록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안에 있는 10계명과 안식일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주어진 성경의 모든 것을 요약하는 율법과 선지자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예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멸하러 오시지 않으셨고, 그것들을 이루려 오셨습니다(5:17). 또 누가복음 24:44절과 마태복음 5:17~19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것을 모두 해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율법이고, 선지자들입니다(7:12).이 두 명령에는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걸려있습니다(22:40).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모든 가르침은 합당한 사랑이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하나님의 앞에서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랑에 달려있습니다. 안식일주의자들은 이것이 10계명에 포함되어 있음을 동의합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은 침례자 요한의 때까지였습니다. 그 때 이후로부터는 하나님의 왕국이 선포되었습니다(16:16). 그러므로 침례자 요한 앞에서 영감으로 써진 모든 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이라는 용어로 요약되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이라는 용어에 10계명이 포함됩니다.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들이 이것들이라, 하시고”(24:44) 그리스도께서는 메시야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이 가득하셨습니다. 모세가 쓴 것을 모세의 율법이라고 불었지만 10계명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모세에게 계시되었습니다. 다시 사도 빌립이 말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대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으니 곧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니라, 하매(1:45) 모세가 쓴 것은 율법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나머지 부분은 선지자들의 글입니다.

 

유대인 회당(시나고그)에 있던 이들은 율법과 선지서들을 읽었습니다(13:15). 바울은 유대 사람들이 섹트(이단)이라도 부르는 그 길을 따라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모든 것을 다 믿고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그가 고백했습니다(24:14). 그러므로 여전히 바울은 구약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왔을 때 그는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로 예수와 관련이 있는 말씀을 풀어 주었습니다(28:23).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예언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 외에도 복음 안에 계시되었지만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의해 증거되었습니다(3:21). 복음에 의한 구원은 구약성경에 예언되었고, 그래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들은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구절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이 구약성경의 글의 완전성을 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10계명과 안식일을 포함하는 모세의 글을 포함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10계명과 안식일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의 일부분입니다.

 

 

10계명은 특별하게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졌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들은 모든 백성들(다른 사람들은 언급되지 않음) 위에 계신 하나님께 특별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9:1~6). 하나님은 이집트의 땅에서 이스라엘을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10계명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20:3~17, 20:2, 22).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의 말씀, 십계명을 돌 판에 새기셨습니다(34:27~28).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치는 법령에 귀를 기울이라. 주께서 어희에게 주시는 땅을 소유하라고 모세는 말합니다(4:1). 그리고 어떤 큰 민족이 이와 같은 법령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십계명과 두 돌 판에 새긴 것을 수행할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세운 율법이요,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 그들에게 말한 법령입니다(4:7~13,44~45). 모세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오 이스라엘아, 이 날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법규와 법도를 들으라. 이것은 너희가 그것들을 배우고 지키고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 우리 [하나님]께서 호렙에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나니”(5:1~2)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 땅으로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나오신 분이십니다(5:6).

 

궤 안에는 모세가 호렙에서 받은 두 돌 판이 있었습니다. 궤 안에 있던 모세의 돌 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왔을 때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왕상 8:9, 21). 궤 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세우신 언약이 있었습니다(대하 6:11).

 

 

육체 가운데 있는 이방인들은 약속의 언약으로부터 낯선 자들이었습니다(2:11~12). 10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집트로부터 나오게 하신 특별한 민족,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다른 민족들은 이와 같은 큰 율법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역에서 살았던 낯선다른 민족들은 포함되었습니다(20:10, 5:14). 그 외의 다른 구절도 찾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6:4, 10, 9:1, 10, 9:4~5, 2:14, 고전 9:20~21).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특별히 주어졌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짐

  안식일은 10계명에 포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에서 노예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5:15).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표시로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안식일을 계속 지킬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둔 표시입니다(31:13, 16~17).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광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려오셨고, 하나님의 법령을 그들에게 주시고,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표시로서 하나님의 안식일을 주셨습니다(20:10~12).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집트 밖으로 데리고 나오신 민족,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요, 하나님과 그들과의 사이에 두신 표시였습니다. 그것이 이방인들과 다른 민족의 사람들에게 적용이 됩니까? 호세아 1:10, 2:11절을 참고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표시

*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후손 사이에 두신 표시였습니다(17:10~11, 4:11)

 

* 누룩이 없는 빵의 축제(무교절)는 하나님께서 이집트 밖으로 데려고 나오신 표시였습니다(13:7~10)

 

* 안식일은 또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것에 대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표시였습니다(31:13, 16~17, 20:10~12, 5:15). 어떻게 모든 민족들의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면 안식일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시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셨나요? 우리가 할례와 무교절을 지켜야 하나요?

 

일반적인 사람들은 우리가 노아처럼 방주를 만들 필요가 없고,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희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십계명과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계명을 다루도록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적용시키는 것은 명령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2. 이 율법은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영향을 주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세대들이 이 율법을 따르도록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 할례- 17:9~10

 

* 거룩한 축제의 날들- 12:14, 23:21, 31, 41(유월절, 수장절<오순절>, 초막절 등)

 

* 동물희생- 29:42, 30:10

 

* 분향의식- 30:8

 

* 거룩한 기름을 붓는 - 30:31

 

* 장막 안에서의 레위 제사장- 40:15, 18:23

 

* 의복에 술 달기- 15:38

 

* 안식일을 지킴- 31:13~17

 

* 그 외의 참고 구절들- 30:21, 7:36, 10:8, 35:29

 

이 모든 실행들은 이스라엘의 전 세대에 걸쳐 마찬가지로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모두 그것들을 지킬까요? 그것들 중 어떤 것이 중지 되었다면 그것들은 모두 중지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 중 많은 것들이 더 이상 묶여있지 않다고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안식일을 포함해 모두 중지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전 세대들이란 하나님의 특별한 언약인 한에는 이스라엘이 계속 지킴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역할이 끝났을 때 이 모든 실행들은 중지되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복음이 실행되었을 때 중지되었습니다.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가 아닌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것입니다(3:28 2:11~18, 10:34~35, 15:7~11, 10:12, 3:11).

 

안식일은 옛 법의 다른 부분과 성공적으로 구별할 수 없습니다. 중지된 모든 다른 법들처럼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전 세대에 걸쳐지속되지 않았습니다.

 

 

#3. 히브리서 7~10

그리스도께서 첫 언약을 없애셨다.

율법은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유다지파이시지만 제사장이 되셨다고 예언되었습니다(110:4). 이것은 율법이 변했고(7:12), 무효화 되었다는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율법 그자체가 이것을 요구 했습니다(7:11~14, 18).

예레미야 31:31~34절은 하나님께서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셨을 때 이스라엘에게 세우신 것과 다른 새 언약을 세우실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세우셨을 때(8:6), 그것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고, 사라진 것입니다(8:13). 이것은 구약성경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수행되었습니다(8:6~13).

 

히브리서 10:1~18절에서 첫 번째 언약 아래에서의 동물희생은 완전하게 죄를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10:4). 예수께서 완전하게 죄를 용서하시려고 새 언약의 희생으로서 죽으셨습니다(10:12, 1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언약을 제거하셨고, 두 번째 언약을 세우셨습니다(10:9~10).이것은 하나님의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조화를 이루게 했습니다(10:7, 9).

 

이것은 율법이 약하고, 이로울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들이 죄인들이었다고 말했지만 그들을 영구히 용서 할 수 없었습니다(7:11, 18, 8:6~7). 율법은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목적이 있었지만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새 법이 왔을 때 옛 법은 그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옛 법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기 때문에 제거된 것입니다.

 

제거된 언약은 10계명과 안식일을 포함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으로 이끄셨을 때 그들로 세우신 언약을 제거하셨습니다(8:9, 10:9~10). 이것은 첫 번째 언약, 옛 언약이었습니다(8:7, 13, 9:1, 15, 18; 10:9). 예수께서는 이것을 비난하시거나 사람이 만든 전통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옛 언약을 없애셨습니다. 이 첫 번째 언약에는 무엇을 포함했습니까? 우리는 이미 첫 번째 언약은 10계명과 안식일이 포함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것이 사실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첫 번째 언약은 피에 의해 드려졌고, 모세에 의해 말해진 모든 계율(명령)이 포함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4:3~8절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포함되었음을 보여주고, 또한 출애굽기 20:3~17절에서 하나님에 의해 말씀되어진 10계명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9:18~20).

 

제거된 이 언약은 언약궤에 있었던 언약 돌 판을 포함했습니다. 하지만 언약 판은 안식일이 포함된 10계명을 말합니다(34:27~28, 4:13, 5:2, 22, 9:9, 11, 9:1~4). 예수께서는 10계명과 안식일이 포함된 언약 판, 첫 언약을 없애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4. 고린도후서 3:6~11

옛 언약은 지나갔다.

구약성경은 새 언약과 정반대가 됩니다(고후 3:6). 옛 언약은 사람들을 죽게 하기 때문에 죽은 봉사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영광이 들어있었습니다. 새 언약은 의의 봉사요, 더 영광스런 것입니다(고후 3:9).

 

더 영광스러운 새 언약이 남겨져 있기 때문에 영광스런 옛 언약은 지나갔습니다(고후 3:7). 지나간 것은 영광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는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고후 3:11).

 

 

지나간 것은 무슨 언약인가?

우리는 이미 옛 언약에 10계명과 안식일이 포함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문맥 안에서 이것이 확인됩니다.

 

지나간 것은 돌에 새겨지고 쓰인 것입니다(고후 3:7). 하지만 그것은 10계명이었습니다(8~10).

 

더군다나 그것은 모세가 그것을 받아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은 베일을 가려야 할 정도록 빛이 났습니다(고후 3:7, 13). 하지만 출애굽기 34:27~35절은 그가 10계명을 받았을 때 이 일이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옛 언약은 10계명과 안식일이 포함되었습니다.

 

 

#5. 갈라디아서 3:1~5:26

우리는 율법 아래에 있지 않는다.

바울은 율법 아래에 있으려고 하는 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율법 아래라는 것은 비난 아래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율법에 순종할 의무와 율법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4:4, 고전 9:20~21, 8:9, 3:19). 바울은 복음 아래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을 율법 아래에 있는 존재와 대조시킵니다(1:11~12, 3:26~28, 4:21).

 

율법은 그리스도께 우리를 이끌도록 가르치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오고 우리가 더 이상 가정교사, 율법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5:18). 우리는 비난에서 해방되었고, 가정교사였던 율법 그 자체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3:24~25, 5:18).

 

그러므로 옛 율법 아래에 있기를 추구하는 자들(4:21)은 노예의 멍에에 뒤얽혀 있었고(5:1),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고(5:2),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소외되었습니다(5:4). 율법으로 정당화시키려는 것은 율법 아래에 있으려고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4:21, 5:1~6).

 

 

우리가 무슨 율법 아래에 있지 않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430년이 지난 후 주어진 율법입니다. 출애굽기 12:41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났을 때를 말함을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이것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10계명이 포함된 언약인 것입니다(3:16~17, 4:24).

 

율법은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9:18~20절과 출애굽기 24:3~8절은 10계명을 포함되었음을 보여줍니다(3:10).

 

우리가 율법의 부분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모든 율법을 지키는 채무자들입니다. 율법은 모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눌 수 없고, 택하든지 떠나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모두 택하거나 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기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은혜가 사라질 것입니다(5:2~4).

 

추가적인 의견

율법은 그 씨가 와야 할 때까지 추가되었습니다. 그 씨는 그리스도이셨습니다(3:16). 예수께서 오셨을 때 율법이 완성되었고(3:13~14), 율법이 중지되었습니다(3:19).

 

바울은 왜 주로 할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까? 그것은 언약의 시작의 표시였기 때문입니다(17:1~27). 바울의 요점은 할례가 모든 율법을 지키도록 사람들에게 요구하여 묶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아무도 언약의 기본적인 표시를 지킬 의무가 없다면 우리가 그 언약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5:1~6, 15:1~41).

 

율법은 비난, 저주를 산출했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이 죄인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율법이요, 죄책감을 없앨 수 없기 때문입니다(3:10, 2:16).

 

#6. 로마서 7:1~6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다.

다시 바울은 복음을 구약성경과 대비시킵니다. 율법은 사람들이 죄를 범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3:20, 23).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잃어버리기를 원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복음을 제안하셨습니다(1:16).

 

마치 여자가 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면 간통을 저지르는 것처럼 그 남자가 살아 있는 한 자신의 남편에게 묶여있음을 묘사합니다. 그 여자의 남편이 죽었다면 그 때에만 그녀가 재혼을 할 수 있습니다(7:2~3).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자가 죽은 남편인 율법에서 해방된 것처럼 율법에 대해 죽었고, 그것으로부터 구원되었습니다(7:2). 구원되었다는 말은 석방되었다(ASV), 해방되었다(NASB)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에 관한 명령이나 전통이 아닌 율법 그 자체로부터 놓임을 받았습니다(7:4~6).

 

남편이 죽을 때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었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과 그리스도의 법 둘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자가 또 다른 사라이 있는 것처럼 다른 법이 있습니다. 한 번에 두 법을 따르는 것은 여자가 한 번에 두 남편을 관계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6:14)

 

우리는 무슨 법에서 해방되었는가?

그것은 너는 탐내지 말라는 명령된 율법입니다(7:7). 하지만 이것은 10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사라진 율법은 10계명과 안식일이 포함됩니다(7:7).

 

다른 구절들은 로마서에서 설명된 율법10계명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로 표현됩니다. 안식일주의자들이 10계명이 거룩하고, 정당하다고 논쟁을 하기 위해 로마서 7:7, 12절을 사용할 때 그들은 로마서 7:4~6절에 있는 율법10계명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다른 의견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신 목적으로 볼 때 율법이 죄는 아니었고, 거룩하고, 정당하고, 선한 것이었습니다(7:7, 12).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고, 통제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그들의 필요를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은 신약성경에 비교했을 때 율법이 죄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기에 부족한 것이었습니다(10:1~18).

 

#7. 에베소서 2:11~16

예수께서는 명령의 율법을 폐지하셨다.

앞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누렸던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서 분리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평강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나누는 가운데 벽이요, “증오의 원천인 명령의 법을 폐지하셨습니다. 율법은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사실상 율법이 계속되는 한 율법은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에 있는 기본적인 특징을 입증함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내리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평강을 주는 것만이 그 율법을 제거했었을 것입니다(3:28, 10:34~35, 28:19).

 

우리가 오늘날 구약성경에 묶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께서 멸하려고 죽으신 막힌 담을 다시 세우고, 적을 다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무산시키려는 것입니다.

 

무슨 법이 폐지되었나?

예수께서 폐지하신 율법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있는 증오의 원천이요, 막는 담으로 구성된 것이었습니다. 그 율법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언약의 부분으로 주신 10계명과 안식일이 포함되었습니다. 특별히 안식일은 이스라엘과의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의 표시였습니다(31:13~17).

 

사실상 예수께서 10계명과 안식일을 버리신 것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신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평강하게 하고, 모든 이들에게 대등하게 영원한 생명을 제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안식일과 10계명을 포함하여 모든 율법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10계명과 안식일은 규례이 되었다.

예수께서 제거하신 율법은 규례이 들어있었거나(2:15), “규례를 육필로 쓴”(3:14) 율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10계명과 안식일을 제거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규례가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거하신 율법이 10계명과 안식일을 포함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법령, 규례, 조례라는 단어를 주의하십시요.

 

또 그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법규와 규례와 율법과 명령을 너희가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며”(왕하 17:37)

하나님은 법규와 명령과 마찬가지로 규례를 쓰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안식을 포함하여 10계명을 돌 판에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분별, 재판, 판단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ASV에서는 규례, 조례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신명기 5:1~33절에 있는 10계명이 포함되었습니다. 신명기 5:8절은 법규, 규례, 재판처럼 이 모든 법을 말합니다(4:1, 5, 8, 14, 45, 5:1).

 

모세는 재판을 포함하여 주의 모든 말씀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계속해서 지키는 것을 동의한 언약으로 구성되었습니다(24:7~8). 하지만 우리는 언약에는 10계명과 안식일이 포함되었음을 말했습니다(24:3~4, 20:1~26, 21:1, 23:12).

 

에베소서 2:15절과 골로새서 2:14절에 있는 규례(헬라어 도그마dogma)”라는 단어는 복음 안에 있는 구약성경에서 온 반복하는 사도행전 15:28~29절의 도덕적인 계율(법령)을 말하려고 사도행전 16:4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규례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10계명과 안식일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도덕적인 법령이 포합됩니다(16:4).

 

규례는 제거되었지만 다른 법과 명령들은 제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는 시도는 성경적인 기초 없이 인위적인 대조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거하신 규례 안에 들어있는 명령의 법10계명과 안식일이 포함되었습니다. “규례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미슈파트MISHPAT입니다. 그것은 ASV에서 규례로 번역되었습니다. KJV에서는 규례나 재판, 판다, 심판으로 번역됩니다.

 

 

I. 10계명과 안식일 흔적은 묶여있지 않다.

#8. 골로새서 2:13~17

이 문맥은 많은 방법이 에베소서 2장과 유사합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쓰신 요건(규례)을 없애셨습니다. 바울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옛 법을 지키지 않도록 그것들을 비난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2:16).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쓰신 요건(규례)을 없애셨고,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셨고,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율법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지만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요구가 사라졌는가?

그러므로 아무도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으로 인하여 또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에 관하여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2:16)

특별하게 제거된 율법은 음식, 거룩한 날, 10계명 중의 하나인 안식일에 관한 율법을 포함했습니다. 여기서 안식일이라는 단어는 복수(複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이 일곱 번째 안식일이 아닌 매년 혹은 매달에 있는 축제일과 관계있는 휴일을 말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더 깊이 연구해 봅시다.

* 안식일들은 원래 복수이지만 분명히 일곱 번째 날을 말합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일곱 번째 날)들을 지킬지니라......”(31:13, 15, 17)

안식일이 끝난 후......”(28:1) 골로새서 2:16절과 마찬가지로 관사가 없는 복수입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시나고그(회당)에 가셨습니다(4:16). 여기서 안식일은 안식일마다입니다. 그러므로 복수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들이 안식일에 시나고그(회당)에 들어갔습니다(13:14). 여기서도 그들은 과거에도 안식일이 되면 시나고그(회당)에 들어갔음을 의미합니다.

안식일마다 사람들은 기도할 곳으로 갔습니다(16:13).

구약성경에 있는 다른 거룩한 날, 월삭, 그리고 안식일들을 말하는 구절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1:21, 3:2, 4, 16:1, 4:31, 6:2, 9). 안식일을 비롯한 모든 날들은 복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정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 어떤 구절들은 복수와 단수가 바꿀 수 있는 형태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모두 일곱 번째 날을 말합니다. 관련된 구절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2:1~14절에서 안식일은 다음과 같이 사용했습니다. 1관사가 있는 복수, 2관사가 없는 단수, 5a관사가 있는 복수, 5b관사가 있는 단수, 8관사가 있는 단수, 10~12관사가 있는 복수입니다. 5번은 복수로 3번은 단수로 사용되었지만 모두 일곱 번째 날 안식일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13:10~17절에서 안식일은 10-관사가 있는 복수, 14a~14b, 15~16- 관사가 있는 단수로 사용되었습니다.

 

* 출애굽기 20:8, 신명기 5:12절에 있는 10계명에서 복수는 헬라어성경 70인역에서 골로새서 2:16절과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단수와 복수를 포함해서 안식일이라는 약 60번 사용합니다. 이 경우 주간에 속한 안식일을 배제하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안식일들이 골로새서 2:16절에 있는 일곱 번째 날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사실, 골로새서 2:16절은 축제날에 추가하여 일곱 번째 날을 명시할 목적으로 월삭과 축제일을 분리하여 안식일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성경 구절에서 기록한 것과 똑같습니다. 비교해 보겠습니다.

안식일과 월삭과 정한 명절들에 모든 번제 헌물을 {}께 드리되 자기들이 명령받은 규례에 따라 수효대로 항상 {} 앞에 드렸더라.”(대상 23:31)

보소서, 내가 {}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하여 그분께 봉헌하고 그분 앞에서 향기로운 향을 태우며 항상 빵을 차려 놓고 안식일과 월삭과 {} 우리 [하나님]의 엄숙한 명절들에 아침저녁으로 번제 헌물을 드리려 하나니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규례이니이다”(대하 2:4)

모세의 명령에 따라 날마다 정한 비율로 안식일과 월삭과 한 해에 세 번 지키는 엄숙한 명절들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에 드렸더라.”(대하 8:13)

{}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자기 재산 중에서 번제 헌물 곧 아침과 저녁의 번제 헌물과 안식일과 월삭과 정한 명절들에 드리는 번제 헌물로 쓸 왕의 몫을 지정하고”(대하 31:3)

곧 보여 주는 빵과 항상 드리는 음식 헌물과 항상 드리는 번제 헌물과 안식일과 월삭과 정한 명절들에 드릴 것과 거룩한 것들과 이스라엘을 위해 속죄하는 죄 헌물과 우리 [하나님]의 집의 모든 일을 위해 쓰게 하였고”(10:33)

명절과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의 집의 모든 엄숙한 날에 번제 헌물과 음식 헌물과 음료 헌물을 드리는 것은 통치자의 몫이 되리니 그는 죄 헌물과 음식 헌물과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예비하여 이스라엘의 집을 위해 화해를 이룰지니라.”(45:17)

그러므로 아무도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으로 인하여 또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에 관하여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2:16)

더 비교해 보려면 레위기 23:1~44, 민수기 28:1~29:40, 에스겔 46:4~9, 호세아 2:11절을 연구하십시요.

 

각각의 경우 주간, 매월 그리고 연례적인 거룩한 날을 알리기 위해 비슷한 공식을 따릅니다. 그것들은 모두 또 다른 것으로부터 구별하고 열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구절들마다 연례적으로 거룩한 날을 열거하고 안식일들은 모든 경우에 일곱 번째 날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안식일들은 골로새서 2:16절처럼 구약성경에서 모두 복수입니다. 복수 사용은 안식일들이 연례적인 거룩한 날을 말한다고 입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구약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말한 것처럼 일곱 번째 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입증합니다.

 

골로새서 2:14~16절은 일곱 번째 안식일이 사라졌고,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났고,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명시합니다. 우리는 음식에 대한 금기 법과 거룩한 날보다 더 어떤 것을 지키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의사항: 어떤 사람들이 안식일이 부정관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마태복음 28:1절이 골로새서 2:16절과 마찬가지로 관사가 없는 복수라는 것을 환기시키십시오. 또 부정관사가 없는 것은 일곱 번째 안식일임을 인식시키십시요(12:2, 24:20, 6:2, 6:1, 6, 14:1, 5:9~10, 16, 7:22~23, 9:14). 또 어떤 사람들이 골로새서 2:14절에 있는 규례(요구사항NKJV)”라는 단어가 안식일이나 10계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에베소서 2장을 읽으십시요.]

 

#9. 마태복음 5:17~18

율법은 채워졌을 때 제거되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채워질 때까지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옛 법이 계속해서 묶고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율법을 없애지 않으셨고 하늘과 땅이 사라지기까지 지켜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율법을 강화하셨고, 그 율법을 고귀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추가합니다(42:21).

 

모든 것이 채워졌을 때까지 일점일획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율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동물 희생, 할례 절기 등 모든 율법이 수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율법과 선지자들(5:17) 그리고 심지어 계명(5:19)까지도 포함합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모든 구약성경에 적용하는 기준임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것이 제거되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제거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구약성경의 율법이 제거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10계명과 안식일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일 수 없습니다. 어떤 율법이 유효하지 않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 채워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유효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은 16:17절에서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까지라고 설명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율법이 모든 것이 채워져사라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쉬웠을 것입니다(5:18).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것을 채우시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사실상 모든 율법이 예수께서 그것을 채우셨을 때 사라졌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사라진다는 것은 구속력을 잃는 것이나 효력을 잃는 것을 의미함

마태복음 24:34절과 비교해 보십시요. 이 세대는 예수께서 예언하신 모든 것들이 채워지기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채워졌을 때 세대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17~18절은 예수께서 그것을 채우셨을 때 율법이 사라질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18절에서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율법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채워질 때 율법은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것을 채우심

율법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채우셨을 때까지 사라질 수 없지만 그분은 그것을 채우시러 오셨습니다(5:17). 예수와 관련이 있는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쓰신 모든 것들은 채워져야 했습니다(24:44~47, 1:45, 24:14). 모든 것들은 채우셨던 그분과 관련하여 기록되었습니다(13:29).

 

율법은 모든 것이 채워졌을 때까지 채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채우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포함한 모든 것이 지나간 것입니다.

 

계약은 그것을 해약하여 불법으로 무효화가 될 수 있고, 그것을 채워 합법적일 수 있다.

여러분이 집을 사거나 빌리려고 계약했다면 계약을 해약하는 것이 불법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계약을 성취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묶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를 짓도록 언약을 하셨습니다. 노아는 그 언약을 채웠고, 그래서 그 언약은 유효기간이 지나갔습니다(6:18, 22, 7:5).

 

할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후손 사이에 세워진 언약이었습니다. 그 언약은 더 이상 효력이 없습니다(고전 7:18~20, 5:6, 6:15).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멸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그 언약을 제거되었습니다(17:9~14, 21:1~4, 12:3).

 

하나님께서 10계명과 안식일을 포함해 온 율법을 시나이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율법을 멸하시러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율법 그 자체의 목적과 공급의 조화를 이루도록 그것을 대체하시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그것을 채우셨고, 율법은 사라졌습니다(5:17~18).

 

제거된 것에는 무엇이 포함되었나?

예수께서는 율법이 지나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것을 채우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이 포함되었습니까?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일점일획의 모든 것을 포함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10계명과 안식일을 포함했습니다.

 

10계명과 안식일이 제거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것들을 다 계속해서 지켜야하기 때문에 어떠한 율법도 제거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축제일 율법과 다른 규례를 성취하셨다면 그분은 10계명과 안식일을 제거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것은 그분께서 일점일획의 율법 모두를 행하신 것입니다.

 

 

#10. 신약성경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안식일 오늘날 여전히 묶고 있다면 왜 신약성경 구절에 그것을 지키라는 명령이 없습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구약성경이 안식일을 명령한 것이 신약성경에서도 여전히 효력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구약성경은 반복적으로 안식일 지킴을 명령함

이것은 간접적이지 않고 직접적인 명령이요, 직접적인 말로 가르쳤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날입니다. 그날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것이 하나님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날을 쉬시기 위해 사람들에게도 쉬도록 직접적으로 명령하신 것입니다. 직접 명령하신 그분의 말씀을 읽어 볼까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네가 수고하고 네 모든 일을 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거하는 네 나그네나 아무 일도 하지 말라.”(20:8~10)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오 이스라엘아, 이 날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법규와 법도를 들으라. 이것은 너희가 그것들을 배우고 지키고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5:1)

 

“{} [하나님]이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히 구별하라. *엿새 동안은 네가 수고하고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안에 거하는 네 나그네나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 이것은 너뿐만 아니라 네 남종이나 네 여종도 너와 함께 안식하게 하려 함이니라. *기억하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을 때에 {} [하나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거기서 데리고 나왔나니 그러므로 {} [하나님]이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게 하였느니라.”(5:12~15)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그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니 이것은 내가 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하니라.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다 반드시 죽일지니 누구든지 그 날에 일하면 그 혼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안식하는 안식일이니 {}께 거룩하니라. 누구든지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키되 그들의 대대로 안식일을 준수하여 영속하는 언약으로 삼을 것이니라.”(31:13~16)

 

너는 엿새 동안은 일하되 일곱째 날에는 안식할지니 밭을 갈 때에나 거둘 때에나 안식할지니라.”(34:21)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함께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께서 명령하사 너희가 행하게 하신 말씀들이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하되 일곱째 날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요, {}께 안식하는 안식일이니 누구든지 그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라. *너희는 안식일에 너희 모든 처소에서 불을 피우지 말지니라.”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내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 너희 [하나님]이니라.”(19:3)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존중히 여기라. 나는 {}니라.”(19:30)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로되 오직 일곱째 날은 안식하는 안식일이니 곧 거룩한 집회 날이니라. 너희는 그 날에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 그것은 너희 모든 처소에서 {}의 안식일이니라.”(23:3)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존중히 여기라. 나는 {}니라.”(26:2)

 

“{}께서 내게 이같이 이르시되, 가서 유다의 왕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문 곧 백성의 자녀들의 문과 예루살렘의 모든 문에 서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너희 유다의 왕들과 온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거주민들아, 너희는 {}의 말씀을 들으라. *{}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여 안식일에 짐을 나르거나 예루살렘의 문들로 그것을 들여오지 말고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꺼내어 옮기지도 말며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17:19~22)

 

오늘날 안식일을 지키라고 이와 같은 명령과 직접적인 말로 명령하신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전히 그 날이 묶여 있다면 왜 신약성경에 이런 직접적인 명령이 왜 없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여전히 묶여 있다고 말하거나 또 지켜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주장한다면 아마도 다른 절기를 비롯해 다른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러하니라. , 내일은 안식하는 날로서 {}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오늘 굽고 끓일 것도 끓이고 남은 것은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아침까지 그것을 모아 두었으나 거기서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 벌레도 생기지 아니하였으므로 *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아무것도 없으리라, 하니라. *일곱째 날에 백성 중 몇 사람이 거두러 나갔다가 찾지 못하니라. *{}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내 명령들과 내 법들 지키기를 거부하느냐?”(16:23~28)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라. 그리하면 네 소와 나귀가 안식할 것이며 네 여종의 아들과 나그네가 원기를 회복하리라.”(23:12)

 

구약성경은 안식일을 지키도록 구체적인 결과를 말함

거기에는 순종에 대한 구체적인 축복과 불순종에 대한 구체적인 형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하니라.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다 반드시 죽일지니 누구든지 그 날에 일하면 그 혼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안식하는 안식일이니 {}께 거룩하니라. 누구든지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31:14~15)

 

엿새 동안은 일하되 일곱째 날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요, {}께 안식하는 안식일이니 누구든지 그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라.”(35: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있을 때에 안식일에 나무 거두는 자를 발견하고 *나무 거두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에게 데려왔으나 *그에게 어떻게 하여야 할지 밝히 알지 못하므로 그를 감금하니라. *{}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하시매 *온 회중이 그를 진영 밖으로 데려가 돌로 그를 쳐서 그를 죽이니 {}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15:32~36)

 

이것을 행하는 사람은 복이 있으며 그것을 굳게 붙잡는 사람의 아들은 복이 있나니 곧 안식일을 지켜 그 날을 더럽히지 아니하며 자기 손을 지켜 악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56:2)

 

“{}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가 기뻐하는 것들을 택하며 내 언약을 굳게 붙드는 고자들 .........*또 스스로 {}에게 연합하여 그를 섬기고 {}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고 안식일을 지켜 그 날을 더럽히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굳게 붙드는 타국인의 아들들”(56:4, 6)

 

이 법은 빛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위반, 지키지 않는 것은 중죄였습니다. 그것은 생명과 사망의 문제였습니다. 신약성경 구절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어떤 축복이나 결과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묶여 있다면 왜 신약성경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하지 않고 있을까요? 신약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지킴으로서 축복받는 것이며, 지키지 않으면 형벌을 받는 것에 대해 말을 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그것을 묶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오 내 [하나님]이여, 이 일에 관해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나님]의 집과 그 집의 직무들을 위해 내가 행한 나의 선한 행실을 지워 버리지 마옵소서. *그때에 내가 보니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안식일에 포도즙 틀을 밟고 곡식 단을 가져와 나귀에 실으며 또 그들이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여온 포도즙과 포도와 무화과와 온갖 짐을 실으므로 이에 내가 그들이 양식을 팔던 그 날에 그들에게 증언하였고 *또 두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온갖 제품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 유다 자손에게 팔기에 *그때에 내가 유다의 귀족들을 꾸짖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한 일을 행하여 안식일을 더럽히느냐?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도시에 내리지 아니하셨느냐? 그런데도 너희가 안식일을 더럽혀서 더 많은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임하게 하는도다, 하고”(13:14~18)

 

구약 율법에 대한 복종은 신약성경에서 주된 논쟁이었음

유대인들은 구약율법이 더 이상 묶여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그렇지만 몇 가지 구체적인 논란들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습니다. 이 문제들은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의 주된 주제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5, 에베소서 2, 고린도후서 3, 골로새서 2장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경은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이 더 이상 영향력이 없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가르칩니다.

 

분명하게 율법에 대한 이 모든 토론에서 더 이상 묶여있지 않는다고 정말 많이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이 법이요, 율법 아래에 있었던 것처럼 중요하다면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섬김의 일부로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신약성경에서 반복되었다면 어떤 구절에서 그렇게 명령하고 있습니까? 왜 안식일을 지키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곳이 아무데도 없을까요?

 

 

#11. 오늘날 진실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안식일 법이 여전히 모든 사람들을 묶고 있고, 영향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것처럼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안식일의 요구는 오늘날을 무시한 것이다.

안식일주의자들은 종종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법을 변개시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흔히 카톨릭주의의 변개를 주장합니다. 물론 나는 여기서 카톨릭과 개신교도 율법을 따르기도 하고 변개시킨 것을 인정해야 함을 말하고 싶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적으로 혼합된 종교입니다. 물론 그들은 혼합된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극히 합당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율법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도록 요구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안식일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지킵니까?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안식일을 변개시킨 것입니까?

 

요리, 불 피우기, 나무를 하지 마라.

안식일에 너희 거주하는 곳에서 불을 피우지 말라고 말합니다(35:3). 내일이 안식일이면 오늘 빵을 구어야 하고, 국을 오늘 끊여야 한다고 말합니다(16:23). 하나님은 안식일에 나무를 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15:32~36).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안식일에 연료를 사용해 불을 피워 요리를 하고, 전기를 공급받고, 생활하는데 결국 죽었어야 하는 존재들이었을 것입니다.

집에 머물라.

안식일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16:29). 그렇다면 재난이 닥쳤을 때에도 이틀분의 빵에 의존해서 집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 하고 피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일까요?

 

동물희생을 드리라.

안식일을 위한 번제물은 두 어린양들과 같은 것들이었고(28:9~10), 이것들은 영원히 지킬 규례였습니다(대하 24:2, 10:33, 대하 8:12~13, 31:3, 45:17).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씩 안식일을 위해 번제물을 준비해야하고 드려졌어야 합니다.

 

성경은 도시에 있는 나그네들, 동물들, 종들로 지키게 해야 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물론 그의 아들, , 여종, 남종, , 당나귀, 성 문 안에 있는 이방인들도 모두 일하지 말고,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휴식을 취할 것을 명령했습니다(20:10, 5:14, 23:12). 그것은 안식일 법이 안식일에 일을 하도록 다른 사람들이나 동물들을 빌리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거나 팔지 마라.

사람들이 곡물이나 공산품을 팔려고 하면 안식일에 그것을 사지 말라고 말합니다(10:31).

 

장막에 있는 상 위에 빵을 진열하라.

영원히 지속되는 언약에 따라 매 안식일마다 계속해서 주님 앞에 놓으라고 명령합니다(24:8).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였던 것을 기억하라.

일곱 번째 날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안식일에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에 있을 때 그들의 노예였던 것을 기억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은 강하신 손과 팔을 뻗으셔서 이집트로부터 데리고 나오신 것을 안식일에 기억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계속해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지키도록 명령되어진 것입니다(5:14~15).

 

안식일을 위반하는 자들을 죽이라.

안식일을 더럽히는 모든 자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날에 일을 하는 누구든지 백성들 가운데서 끊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어떠한 일이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31:14~15, 35:2). 하나님은 안식일에 불 피울 나무를 줍는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든 회중은 돌로 쳐 죽여야 했습니다(15:32~36).

 

안식일주의자들의 논쟁은 모순되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위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들이 안식일 법을 지키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13절에서 할례 받은 자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다만 너희의 육신을 자랑하려고 너희가 할례 받기를 원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할례로 묶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모순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2:14). 이와 같은 원칙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적용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관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순종하든지 아니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할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안식일주의자들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방법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지키지 않을 때 율법을 바꾼 것에 대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대놓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안식일 법의 어떤 요구들이 축제의 법의 일부였고, 없어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오늘에도 있다고 하는 논쟁으로 출애굽기 16:1~36, 31:13~16절을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구절들을 사용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적용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두 가지 것으로 안식일에 적용시킬 수 없습니다.

 

안식일 법이 바뀐 것이라면 지켜야 하는지, 지키지 말아야 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알까요? 우리는 일을 하는 것인지 일을 안 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알까요? 우리는 처벌이 있는지를 어떻게 알까요?

 

안식일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의 논쟁은 그들이 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한 모순된 주장에 불과합니다.

 

안식일주의자들의 주장

"안식일은 10계명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

10계명에 있는 안식일은 우리가 이집트에서 노예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내신 것을 기억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신 이유다. 여러분은 이것을 기억하는가? 여러분은 그것을 기억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만일 안식일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한다면 위에서 말한 안식일에 대한 모든 요구들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 중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식일은 영원하고 변치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묶여 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명령은 안식일을 범한 자들이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31:14~16). 옛 유대교에서 제단에 올린 빵은 변치 않는 언약처럼 매 안식일마다 올려졌다(24:8). 희생 제물들은 영원한 규례로서 안식일에 들여졌다(대하 2:4).

 

"안식일은 시나이에서 지켜진 이래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지켜졌다"

시나이에서 주어진 부분은 요리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집에 머무는 것을 요구했다(16:23, 29).

 

"천주교회가 안식일을 변개시켰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 카돌릭주의는 그렇게 말하는 것에 반응할 수 있을까?

 

안식일에 관한 성경적인 흔적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하고는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고, 지시받은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물론 여기엔 유다이즘을 훈련받기를 선택하는 이방 개종자들과 그들의 땅에서 사는 이방인들을 포함되었습니다.

 

2) 모세가 안식일에 관해 이스라엘에게 지시하기 전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받거나 지시받은 사람들은 없었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을 받고, 지시받은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명령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졌고, 모세가 가르친 때부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까지만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II. 분명히 10계명과 안식일이 여전히 묶여있다?

 

앞에서는 온 율법이 10계명을 포함해 모두 폐지되었다고 연구했습니다. 우리는 옛 언약이 지켜지는 것이 중지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계속되도록 율법을 만드셨다는 것을 성경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한 구약성경 모두 실행하는 것을 포함할 것입니다. 어떤 율법이 여전히 영향력이 있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다는 증거 없이 추정하는 것만으로 주장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1. 하나님의 법 vs. 모세의 법: 도덕적 법 vs. 의식적인 법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포함된 10계명을 말씀하셔서 그것이 하나님의 법”, “모세의 법또는 영적인 법이기 때문에 이것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다른 구약성경의 명령을 말을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모세의 법”, “의식의 법으로 불렸고, 이것들은 폐지된 것입니다.

 

이렇게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근거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모세의 율법이나 의식의 법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 끝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법에 하나님의 율법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법들이 유효하거나 의식적인 법이 사라졌다거나 하는 것에 대해 성경은 뭐라 말합니까? 도덕적인 법과 의식적인 법이라는 용어는 성경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은 10계명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도덕적인 법과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주장하고 오늘날에도 계속 지켜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은 10계명 외에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에도 기록되어 있고, 문맥적으로 법들이 폐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31:13~18, 19:3, 30).

 

레위기 23:1~44절에 있는 안식일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다른 축제일들과 더불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식일이 축제일이기 때문에 제거된 것이라고 입증하지 않습니까? 안식일이 안식(휴식)을 포함한 많은 다른 축제들 보다 덜 의식적인날이라고 하는 곳이 어디에 있나요?

 

더욱이 도덕인 법하나님의 율법으로 안식일을 실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십일조, 악기 음악, 심지어 음식에 대한 법을 실행합니다. 이것들은 10계명에도 없고, 의식적인 법, 도덕적인 법에도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겉으로 묶을 법을 까다롭게 고를뿐 그들 자신의 우수성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과 하나님의 율법은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법과 모세의 법이 같은 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법이 분명 사라진 것에 포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율법 책은 모세의 율법 책(8:1)”, “하나님의 율법 책”(8:8,18)으로 불렸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그것을 명령하셨고(8:14), 두 용어 모두 같은 율법을 말합니다.

 

신약에서도 율법을 모세의 법(2:22), 주의 법(2:23~24,39)으로 불렀습니다. 이 법은 동물희생을 포함하여 깨끗하게 일소(一掃)된 결례(潔例)였습니다(. 12:2~8). 그래서 주의 법은 모세의 법과 같고, 폐지된 것이 들어있습니다. 다른 성경구절들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더 연구할 수 있습니다(7:6,12, 대하 34:14~15,21,31, 35:12).

 

예수님은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들이 이것들이라.”(24: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야에 대한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글들은 여기서 모세의 율법이라 불렀지만 10계명을 포함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들을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동물희생, 월삭(月朔), 축제일을 포함합니다(대하 31:2~4). 모세는 10계명을 말했습니다(5:1~33, 7:10). 하나님은 다른 구약성경에서 명령하셨습니다(25:1~40, 30:11,17,22, 40:1, 35:4, 1:1, 4:1~2,13, 6:1,8, 7:22,36, 8:1,5, 9:6, 10:8,15, 11:1, 12:1, 13:1, 16:1, 17:1~2, 22:31).

 

하나님의 율법과 모세의 율법 사이에 구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이었지만 모세를 통해 계시되었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이었습니다(10:29).율법에는 10계명과 안식일이 있습니다(5:1~33, 7:18~19, 24:3~8, 35:1~3, 16:22~30, 31:12~17, 9:14, 7:10, 15:4).

 

마찬가지로 성경은 끝이 난 의식적인 법에서 계속된다는 도덕적인 법을 구별 짓는 구절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모든 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되지 않는 사람이 만든 규칙입니다(15:9, 1:8~9, 요이 1:9~11).

 

언약의 책은 10계명과 구별했습니다. 모세는 레위사람들에게 언약의 책을 언약궤에서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언약궤 곁에 두도록 했습니다(31:24~26). 하지만 10계명은 두 곳 모두에 있었습니다.

 

 

#2. 율법은 모세 앞에 주어졌다. vs.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폐지하신 율법이 본래 모세에 의해 가르쳐졌던 율법이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모세 이전에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2:2~3).

 

성경 어디에 모세 이전에 주어진 율법이 여전히 묶여 있다고 말합니까? 이 논쟁은 단순히 추정인 뿐 입증하지 못합니다. 만일 모세 앞에 먼저 주어졌다면 율법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어떤 성경적인 증거가 입증합니까?

 

우리가 연구한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언약과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을 폐하셨음을 보여줍니다. 10계명과 안식일도 모세를 통해 주어진 언약과 율법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약과 율법을 폐하셨을 때 그것들은 폐지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모세 앞에 주어진 언약과 율법이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하면 사실상 율법은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주어졌던 모든 언약과 율법을 없애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세 앞에 주어진 먼저의 모든 명령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지키지 않다는데 동의합니다. 이것은 동물희생(4:4, 8:20), 할례(17:9~14), 부정한 동물들(7:2) 등을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중 그 어느 누가 동물희생을 주장하나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까? 부정한 동물이라고 먹지 않나요?

 

안식주의자들은 그것들 중 일부 내지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지키지 않지만 모든 것이 모세 앞에 주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역시 모세 앞에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창조에서부터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게 하셨다는 실재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 그리고 족장 중 어떤 이도 안식일을 지켰다고 말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에스겔 20:10~12절은 하나님께서 그분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사람들을 이끌어 내셨을 때 하나님 자신과 이스라엘 사이에 표적으로서 안식일을 그들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5:15절은 그 일의 기념이었다고 말합니다(9:13~14, 31:13~17). 창조 이후 모든 사람이 같은 표적을 가졌다면 어떻게 안식일이 하나님과 한 민족 사이에서 표적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일이 일어난 것 앞에서 일을 기념할 수 있었을까요?

 

창세기 2:3절은 하나님 자신만이 일곱 번째 날을 안식하셨음을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 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이유임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언제 그 날을 지키도록 요구하시지 않으셨고, 누가 그 날을 지키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난 후 오랜 기간 동안 창세기를 썼습니다. 그런 후에 안식일이 주어졌습니다. 모세는 사람들이 안식일에 대한 목적을 볼 것이기 때문에 창조와 관련해 안식일을 언급합니다.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했을 때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언어는 창세기 3:20, 마태복음 10:4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안식일이 모세 시대 전에 존재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을 기억하라”(20:8)고 명령된 이 안식일이 모세시대 이전에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장차 어떤 것을 기억하도록 사람들에게 교육하고 요구할 때 특히나 장차 기념하도록 교육을 할 때 기억하다라는 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나 교육하는 것들을 장차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시작한 어떤 것을 반드시 계속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유월절을 교육하는데 있어 모세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이 날을 기억하라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13:3). 바로 그 때 그 일이 일어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장차 기념함으로 그것을 지켜야 했었습니다(13:9~10). 그것은 그들이 과거의 실행을 계속해서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온 땅에 다시는 홍수가 나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언약의 표적이었습니다(9:9,13~15).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실 때마다 그 언약을 기억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언약은 바로 그 때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 언약이나 실행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둑이 예수께 주께서 주의 왕국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하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23:42). 하지만 그가 기억되기를 원했던 것은 바로 그 때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지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의 만찬을 세우는데 있어서 예수님은 그분의 몸과 피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22:19). 하지만 예수님은 아직 죽으시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출애굽기 20:8절은 과거에 시작되었던 실행을 계속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세의 율법에서 시행되었던 실행을 장차 지키도록 명령된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을 가리키는 것은 출애굽기 16장에 있는 시내산 이전에 계시되었습니다. 이것은 만나를 모으도록 하는 교육과 관계되어 있는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명령되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시작하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무것도 안식일을 입증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었거나 모세 이전의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도 출애굽기 16장 이전에 계시되었습니다. 유월절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기념하도록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안식일과 유월절 둘 다 하나님에 의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거룩한 날들을 기념하도록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날들은 다른 민족들에게 명령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 이전 시대의 어떤 사람들에 의해 실행되었다는 말씀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어느 것도 실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개중에 몇몇 무리들이 이런 것을 실행하고 있지만 그들이 이런 원칙을 알고 실행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이런 논쟁에서는 결론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령되기 전 어떤 사람에게도 안식일을 지키도록 설명하는 구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모세 이전에 주어졌던 율법은 신약성경이 오늘날에 명령으로 그것들을 포함하지 않는 한 십자가에서 모두 끝났습니다.

 

 

#3. 변치 않는 율법 vs. 다른 율법

어떤 이들은 안식일이 여전히 유효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출애굽기 31:16~17절에 영원히”, “변함없이”, “끊임없이 계속해서지켜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 구절은 안식일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만 표적이 된 것입니다. 안식일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지켜야합니까? 변함없는율법은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죽이도록 요구했습니다. 이 율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것을 지키라고 말하는 방법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영원한”, “변함없는이라는 용어는 구약성경에서 반드시 그 단어들이 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많은 실행에서도 영원하다라는 단어를 말씀하셨지만 확실히 중단된 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몇 구절을 찾아봅시다.

 

유월절(12:14)

 

(30:8)

 

축제(성일)(23:14, 21, 31, 41)

 

동물희생(16:29~34, 6:19~23, 대하 2:4)

 

레위 계통을 따른 제사장직분(40:15, 29:9, 26~28, 28:40~43, 25:13, 18:5)

 

회막예배(27:21, 30:8, 17~21, 24:5~9)

 

할례(17:9~14)

 

모든 하나님의 명령과 법령과 규례(111:7, 119:151~152, 160).

 

여기서 우리는 영원한”, “변함없는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실행이 중단되었다는 증거가 더 일찍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무리들은 안식일이 중단된 것과 똑같이 생각할 수 없습니까?

 

이 구절에 있는 영원하다라는 단어는 시대가 지속되는무기한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31:13, 16절의 문맥은 이스라엘 세대들 전체를 의미하는 것에 덧붙여 이 단어를 정의합니다. 이 표현은 또한 실행보다 훨씬 더 많은 것에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포함해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을 더 일찍 배웠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 세대들은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구약성경의 부분을 지키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 모든 노력은 실패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결론은 우리가 진행해 감에 따라서 보다 더 확실해 질 것입니다.

 

#4.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과 바울이 안식일을 지켰다고 주장합니다.

예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포함해 율법을 지키셨고, 확산시키셨으며, 10계명을 지키라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이시오, 예이시기 때문에 우리 역시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4:16, 40:8, 42:21, 19:16~30).

 

예수님은 구약성경 율법 아래에서 사셨습니다(Gal. 4:4).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셨습니다(4:16). 율법은 예수께서 죽으시기까지 없어지지 않았었습니다(2:14, 2:13~16, 9:16~17, 7:4).

 

예수님 또한 구약성경의 율법을 순종하셨고, 다른 사람들에게 순종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분은 할례를 받으셨습니다(2:21).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동물로 제사 지내셨습니다(2:22~24). 다른 사람들이 동물 제물로 제사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8:4, 1:44, 2:22~52, 14:1~32).

 

예수님은 절기를 지키셨습니다(2:41~42, 26:17~75).

 

예수님은 육적인 성전에 대해 대단한 열의를 보이셨습니다(2:13~17).

 

예수님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 의해 가르쳐진 모든 것을 지키도록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23:2~3).

 

오늘날 우리는 그분께서 그것들을 행하셨기 때문에 이것 모두를 지키도록 요구받습니까? 이 모든 것이 그분께서 죽으시기까지 시행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신 후까지 시행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과 10계명만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확산시키셨고, 영광으로 생각하셨고, 지키셨습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지키셨다는 사실이 우리가 모세나 다윗이 율법을 지켰다는 사실보다 더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합니다. 물론 그들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율법은 예수께서 죽으실 때까지 유효했습니다.

 

바울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안식일에 시나고그에 출석했다고 말합니다(13:14, 42, 44, 15:20~21, 16:13, 17:~3, 18:4~5).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그의 예를 본받아야 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이나 다른 영감을 받은 성도들이 예수께서 죽으신 후 거룩하신 명령에 순종함으로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행했던 것을 입증하는데 사용했던 이 구절들은 모두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들의 모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들 중 하나도 규칙적으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구절도 이방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안식일을 포함해 율법이 폐지되었음을 가르친 몇몇 중요한 구절들을 인용했습니다. 그런 후 그가 가르친 것을 지킴으로 자아를 부인했던 것이 구속력이 있었습니까?

 

바울은 회심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가르칠 목적으로 유대인 시나고그에 참여했습니다. 사도행전 13:5, 14~16, 42, 44, 14:1, 17:1~3, 18:4~5절을 봅시다. 유대인들은 수 세대를 걸쳐 안식일을 지켰습니다(15:20~21). 그들이 구약성경의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임은 청중들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잘 받아드리고,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곳이 그들의 모임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안식일을 지킬 목적으로 출석했다고 말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가르칠 기회를 사용하는 것은 종교적인 날을 지키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가르쳤습니다(5:42, 17:17, 22, 19:9~10, 20:7, 31). 우리가 종교적인 것을 지켜야하는 각각의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야 합니까?

 

거의 변함없이 몇몇 가르치는 모임에 따라 유대인들은 시나고그에서 바울을 쫓아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더 이상 시나고그에서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구절이 안식일에 종교적인 모임을 주선한다고 설명합니까? 어떤 구절도 바울이 안식일에 종교적인 모임을 시나고그에서 가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만 그런 모임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한번 만나기 위해 안식일을 선택한 것이고, 유대인들이 제공한 기회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안식주의자들이 우리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그들의 안식일에 기쁘게 출석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행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안식주의자들이 그들의 관점을 우리에게 가르치러 주일날에 우리 모임에 참석했다면 그들이 주일을 지키는 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나도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캠퍼스, 청소년 사역을 할 때 어떤 구원파 교회에서 복음의 진리를 전달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토요일 날에 가서 전하고서는 가까이에 있는 지인의 교회에 가서 그 교회 목사와 교통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구원파 교회에서 복음의 진리를 전한 것을 말했더니 그 이후 그 목사는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들의 모임에 규칙적으로 참석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들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주여, 융통성이 없음을 용서하소서.

 

사실은 예수의 죽으심 이후 안식일에 종교적인 모임활동을 하는 예수님을 진실로 따르는 성도들의 본이 하나만이 아닙니다. 예수의 죽으심 이후 안식일 활동의 모든 예는 회심하지 않은 죄인들을 만나기 위한 모임입니다. 그들은 아직 복음을 이해하거나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려면 그들의 시간과 환경에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5. 다른 다양한 논쟁들

아브라함과 노아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셨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브라함, 노아 등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다(6:22, 26:5)고 말하는 구절들을 인용합니다. 또 예수님과 그분의 사도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도록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친 구절들(14:15, 요일 3:4, 5:3)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명령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포함함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그 구절들 어디에도 안식일에 관한 어떤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논쟁들은 그들이 입증해야 할 모든 쟁점을 무시하고, 가장(假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식일 명령이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논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세의 가르침으로부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만 유효했었다고 논쟁했습니다. 이 논쟁은 안식주의자가 안식일 명령이 세상 역사 가운데서 모든 사람들에게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 우리의 증거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논쟁은 그들이 입증해야 할 모든 쟁점들을 무시하고, 바로 그것을 가장(假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일 명령이 포함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가장(假裝)합니다. 안식주의자들은 사실 안식일 명령이 이 사람들에게 적용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을 무시합니다. 이들은 안식일 명령이 사실이었다는 증거가 완전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자들을 무시합니다.

 

우리는 안식주의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순종하도록 그들에게 주신 명령을 지켰다는 것을 동의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법이 무엇이든 지켰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법이 무엇이든 지켰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신약성경에 주신 법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많은 명령들이 어떤 사람들에게와 제한된 시간에만 적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안식일 명령이 노아, 아브라함 등에 의해 지켜졌던 명령에 포함되었고,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에 포함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몇 가지 예를 생각해 봅시다. 안식일주의자들의 논리는 아브라함, 노아 등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고, 예수님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도록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아브라함과 노아 등이 안식일을 지켰고, 우리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이 논리가 맞는다면 유효하다는 것을 다른 몇 가지 하나님의 명령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 하나님은 방주를 건축하도록 명령하셨다(6:14, 22). 노아는 방주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건축했다. 노아처럼 아브라함도 방주를 건축했고, 오늘날 우리도 역시 방주를 건축해야 한다.

 

* 하나님은 아들을 희생제물로 드리도록 명령하셨다(22:2).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이었기에 아들을 희생제물로 드렸고,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로 드려야 한다.

 

* 하나님은 아들들에게 할례를 할 것을 명령하셨다(17:2~14, 21:4).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고, 오늘 우리도 우리 아들들에게 할례를 해야 한다.

 

* 하나님은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12:14~18, 24, 28). 노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것처럼 그들도 유월절을 지켰고, 오늘 우리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

 

이 예들은 논리의 오류를 증명합니다.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이 명령들이 전 시대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의 적용은 제한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적용하는 것은 단순히 거짓교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안식일 명령이 어떤 사람들에게 제한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노아나 아브라함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교육하셨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명령을 지키도록 말하는 구절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안식일이 남아있다는 것은 안식일 명령이 시행되었을 때 수많은 구절들이 분명히 안식일을 지키도록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구절에도 안식일을 지키도록 이스라엘사람들 외 이방인들과 배교자들에게 지시한 곳이 없습니다. 어떤 구절에도 모세 이전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지시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지시한 구절이 없습니다.

 

안식일주의자들은 이와 같이 엉성하고, 부질없는 논쟁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안식일주의자들이 모세 이전이나 예수님의 죽으심 이후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는 지시하는 구절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그 구절들을 내놓을 것입니다. 안식일주의자들이 안식일을 지키도록 이스라엘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구절들이 분명하게 있다면 그들은 그 구절을 내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증거가 얼마나 약한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논쟁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안식일의 주()와 주님의 안식일

관련성경을 읽읍시다. 마태복음 12:8, 누가복음 6:5, 마가복음 2:28, 출애굽기 20:10, 레위기 23:38, 이사야 58:13절입니다. 어떤 구절들은 주()의 안식일로 안식일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표현이 안식일이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논리를 폅니다.

 

다른 많은 구약성경 실행들은 주님께 속해 있거나 관련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주의 유월절이었습니다(12:11, 28:16).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다른 절기들도 주의 절기들이었습니다(23:4~5, 37, 39, 44).

레위 계통을 따른 제사장들은 주의 제사장들이었습니다(삼상 1:3).

회막도 주의 회막이었습니다(왕상 2:28).

 

이 모든 것들은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시기 전 하나님께 특별하고, 거룩한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구절들은 율법이 복음 아래에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사야 58:1~2, 13, 출애굽기 20:10, 레위기 23:38절에 기록된 것은 율법이 여전히 유효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지시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으심 후 주의 안식일로서 안식일을 말하는 구절이 없고,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예수님을 말하지도 않았고, 이와 같은 표현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12:8절에서 예수님은 율법 아래에서 사는 유대인들에게 안식일 율법을 설명하시고 계셨습니다. 율법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기까지 유효했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에서 사셨고, 그것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분의 사역은 유대인들에게 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말씀하신 사람들은 구약성경 율법의 대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범하는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이것은 흔히 거짓 비난(무고)이였습니다. 문맥적 비난이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구약성경의 율법을 범하든 범하지 않던 그것은 유효했었습니다. 안식일이 복음 아래에 있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유효했었을 것이라는 말이나 입증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비난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예수님은 안식일 율법을 권위적으로 설명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는 주인이나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육신 안에 계신 하나님내지 신()이라고 그것을 주장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안식일 율법을 포함해 어떤 거룩한 율법을 권위적으로 설명하실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2:6절에서 유사한 점을 지적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존재하기 전보다 훨씬 더 큰 자를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구약성경 율법에 관한 권한을 가지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전에 관한 권한을 가지셨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은 안식일 날에 큰 치료를 수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관한 오류만을 전파하셨거나 안식일을 범한 사람들을 옳다고 하셨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기적을 행하실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안식일에 관한 그분의 가르침의 권한을 입증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주의 신분과 권한을 인정했다면 그들은 안식일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을 반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예수님의 주장의 쟁점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예수님은 안식일을 폐지할 권한 또한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셨다면 그분은 그것이 지켜지는 것이 중지 되었을 때 결정하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안식일을 끝내셨습니다(2:14,16).

 

여기서 예수께서 죽으신 후 복음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관해 말하거나 입증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세워졌다는 의미(2:27)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의미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우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모든 시대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구절도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안식일을 주시거나 안식일 지킬 것을 요구하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 구절은 간단히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세워졌다.”고 말합니다(2:27).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주제처럼 예수님은 안식일 율법이 필요하다는 주장하는 유대인들과 토론하는 중에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토론은 안식일을 지킬 의무가 있었던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세워진 말입니다.

 

사람을 뜻하는 헬라어는 안트로포스anthropos입니다. 이 안트로포스anthropos는 반드시 모든 시대(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사람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몇 가지 예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모든 시대의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을 주셨다(9:8)?

 

사람으로 죽음이 왔다. 모든 사람들로 죽임이 왔다?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으로 죽음이 왔습니다. 사람으로 부활이 온다. 모든 사람으로 부활이 온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 부활이 옵니다(고전 15:8).

 

모든 대제사장이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임명되었다(5:1)?

 

모든 시대에 모든 곳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이 구약성경의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법령을 주셨다(20:1)?

 

이 구절들은 안식일의 목적을 토론하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토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맥 속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관해 사람의 전통을 강요하는 사람들과 토론하고 계셨습니다. 안식일주의자들은 안식일 율법이 있었던 것이 일하는 어려움과 문제가 있었음으로 절대 일할 의도가 없다고 말합니다. 한 예를 들어 보면 안식일에 병든 사람들을 돕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세워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축복하시고 돕기 위해 쉬도록 안식일을 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일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기에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주인”(2:28)으로서 예수님은 안식일 율법을 합당하게 적용하심을 아셨습니다. 문맥에 있는 그 토론은 안식일 율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는가에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모든 목적은 사람들이 안식일을 누구에게 적용하는지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구절들은 안식일 율법이 누구에게 적용되었는지를 말을 하고, 얼마나 길게 유효했는지를 말합니다.

 

바울이 헛되게 만들지 않고, 율법을 굳게 건축했다는 주장(3:31)

어떤 사람들은 구약율법이 오늘날 율법으로서 여전히 지켜지고 있으며,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서 7:1~7절과 다른 구절에서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로마서 7:1~7절은 우리가 율법에 대해 죽었고, 첫 남편이 죽은 여인과 같이 율법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율법은 10계명을 포함합니다(7:7).

 

오늘날 10계명과 안식일이 율법으로서의 효력이 폐지되었음을 바울에게서 많은 증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바울은 반박하고 부인하지 않습니다.

 

로마서에 있는 율법은 10계명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합니다. 로마서 3:31절은 단순히 율법을 말합니다. 또 다른 증거가 없는 한 이것은 안식일과 10계명만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포함합니다. 로마서 2:17~20절에 있는 율법은 유대인들이 휴식한 율법이었습니다. 그 율법은 10계명 이상의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로마서 3:21절의 율법은 율법과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은 모세와 다른 선지자들이 썼던 표준 기술이었습니다.

 

로마서 3:31절에 있는 율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동물희생, 할례, 레위계통을 따른 제사장직분 등 모든 것이 유효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율법이 지키는 것이라면 그것이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5:3). 하지만 안식일주의자들은 모든 율법이 유효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일부분만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3:31절은 그들의 주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안식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바울은 율법을 가치 없는 것이나 거짓의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율법의 참된 목적을 평가했다. 로마서 3:31절은 율법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유효한지 유효하지 않은지를 설명하고 있지 않는다. 바울은 우리가 율법을 세운다고 말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리(바울과 우리)는 우리가 원했다고 율법을 지키게 하거나 헛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3:31절이 오늘날 율법이 묶든지 묶지 않든지 우리는 율법이 이룬 것만을 평가합니다.

 

헛되게 하다효력 없게 하다.” “전혀 효과가 없게 하다” “뒤엎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또 그들은 "바울은 율법에 대해 부족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 바울이 율법의 가르침에 반대하여 율법을 뒤엎거나 무효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 구약 율법이 율법으로서 묶고 있음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는 허위적인 것이었고, 쓸모없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세우다는 것은 옹호하고 어떤 것의 유효함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이 율법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되었고, 거룩한 권위를 표현하셨음을 인정했다. 율법은 근거 있는 요구를 섬겼다. 바울의 가르침은 율법의 가르침을 어기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 가르침을 따르고, 확신했다. 율법은 하나님의 권위로 주어졌다. 율법은 의도된 목적을 가졌고, 그 목적을 이뤘다. 그 목적은 복음을 위해 준비되는 사람들을 포함했다(3:24~25). 바울은 이 모든 것을 인정했고, 그것을 반대하여 거역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율법 중지가 바울이 가르침으로서 율법 자체가 이것이 일어날 것을 계속 예견되었기 때문에 어떤 율법이든지 지켰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가 가르친 것이 율법과 선지자로 증거된 것이라고 말해야 했습니다(3:21). 구약율법은 예수님과 그분의 새 언약이 다가옴을 예견했습니다. 한번 성경구절을 찾아보십시오. 시편 110:4, 스가랴 6:12~13절과 히브리서 7:11~1절을 예레미야 31:31~34절과 히브리 8:6~12절을 이사야 2:2~4, 11:1, 6~10절과 누가복음 24:47, 마가복음 16:15~16절을 연결해 읽어보십시오.

 

그러므로 로마서 3:31절은 단순히 바울의 가르침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에 대한 율법의 유효함을 인정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가르침은 율법의 공급에 동의하지만 율법이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었고, 복음이 율법을 대체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했습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남아있다(4:9).

히브리서 4:4, 10절에 일곱 번째 날과 하나님의 안식이 언급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남아 있는 그 안식이 일곱 번째 날 안식일이라고 논쟁을 벌입니다.

 

히브리서 4장 어디에도 특별한 날에 휴식하라고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언제 휴식을 할 것인지, 얼마나 오래 휴식할 것인지, 얼마나 자주 휴식할 것인지에 관해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일곱 번째 날에 휴식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말하지 않은 구절을 추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과 사람들의 휴식 사이의 유사성은 노동의 중지에 대한 개념만을 말합니다. 언제, 얼마나 자주, 얼마나 긴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이라는 일반적인 단어는 단순히 휴식이나 중지를 의미합니다. 안식일 자체가 휴식할 대상, , 빈도, 길이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반드시 일곱 번째 날을 휴식의 날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이라는 용어는 휴식의 다른 빈도와 다른 기간에 사용되었습니다. 오직 이 문맥만 휴식이 그 주간에 일곱 번째 날을 말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안식일이라는 단어는 휴식의 기간과 여러 시간을 말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속죄일은 안식일을 포함했습니다(16:19~31, 23:31~32). 땅은 일곱 번째 해에 1년을 휴년(休年)으로 지켰습니다(25:2~8). 사람들이 유배되었거나 포로 되었을 때 그 땅은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 갔을 때 그 땅은 70년 동안 안식이 지속되었습니다(26:34~35, 43, 대하 36:21). 나팔절과 초막절도 안식일에 포함되었습니다. 차이가 있지만 안식일과 관계가 있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23:24~25, 39).

 

그러므로 안식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휴식이아 중지를 말합니다. 안식은 하루, 한 해, 아니면 여러 해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안식은 한 주에 한번, 7년에 한번, 어떤 미확인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문맥에서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4장은 휴식이 얼마나 오랜 지속하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4:9절의 안식은 언제 휴식해야 하는지, 얼마나 지속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일곱 번째 날 안식일이라고 논쟁하는 것은 입증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에 대한 기준 말씀은 히브리서 4:9절 어디에도 없습니다. 히브리서 3~4장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한 휴식을 몇 번 말하고 있지만 사용된 단어는 안식일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4:9절은 안식과 유사한 어원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다른 단어입니다. 안식일(사바톤)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서 4장 어디에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4:9절에 있는 휴식(사바티스모스)이라는 단어는 여기서만 사용되었고, 문맥은 휴식에 대한 특별한 날이 아니라 휴식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번역가들은 이 차이를 인정했고, 그에 따라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서 4:9절의 표준 번역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안식) 휴식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표준 번역이 아닌 번역은 안식일이라고 말합니다. 그 모든 번역들은 에 대한 생각이 아니고 휴식에 대한 생각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테이어는 히브리서 4:9절에 있는 단어가 안식이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고통과 덫에서 풀려나는 휴식을 다가오는 시대에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테이어는 틀릴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가 말한 요점은 히브리서 4:9절에 일곱 번째 안식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안식 기간사이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단어는 같은 어근을 갖습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은 다른 생각을 말하기 때문에 다릅니다. 둘 다 쉼이나 휴식을 의미하지만 안식 기간은 어떤 기간이나 빈도를 의미합니다. 문맥에서만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4:9절에 있는 단어는 일어나는 때와 빈도와 기간과 상관없이 어떤 휴식 기간을 말할 수 있습니다. 문맥에서만 이러한 것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갈 남아있는 휴식은 하늘에 있는 우리의 영원한 보상입니다. 문맥은 세 가지 다른 휴식들을 말합니다.

 

1) 히브리서 4:4, 10절은 창조를 완결하셨을 때 일곱 번째 날에 하나님의 안식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4:9~10절은 하나님의 안식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휴식 사이에 유사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날을 휴식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2) 히브리서 3~4장 문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에 있게 하시겠다는 약속하셨지만 이 휴식에 들어가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휴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반복해서 말합니다(3:11, 18~19, 4:3, 5).

 

이 휴식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실패함은 시편 95:7~11절에 하신 말씀을 히브리서 3:7~11절에 인용을 했고, 히브리서 3:16~19절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휴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3:14, 3:20, 12:9~10, 25:19). 하지만 모세의 인도 하에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그 휴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고, 40년간이나 광야에서 유랑하게 하셨습니다(14:23, 28~30, 1:34~35).

 

이것은 일곱 번째 안식일과 어떤 관계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 날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3~4장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석하신 휴식을 논하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들의 모반 때문에 그들은 그 땅에서의 휴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3) 마찬가지로 문맥은 이스라엘의 실패에서 배우는 오늘날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문맥은 들어가기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논합니다. 지키고,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을 하지 않습니다.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휴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4:1, 3, 6, 9, 10~11).

 

히브리서 3:12~15, 4:1~11절은 그것을 설명합니다. 심지어 결국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여전히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휴식을 말했습니다(시편 95). 우리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이나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지고 계시는 휴식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따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굳게 붙잡는다면 그 휴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처럼 그분은 우리가 하늘에 들어갈 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휴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멍에를 짊어지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자들에게 휴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1:28~29).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히브리서 4:10절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수고에서부터 휴식한다고 말합니다(14:13). 하지만 신실하지 않은 사람은 그런 휴식은 없습니다(4:11).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계시되실 때 신실한 자들은 휴식을 주실 것이지만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살후 1:7, 4:6, 8~9).

 

히브리서 4장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구절들은 불순종의 사람들이 받는 휴식이란 없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휴식을 약속합니다. 이 어떤 구절도 한 주간 중 특정한 날을 지키도록 명령한 것과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혼의 휴식을 받고, 그런 후 하늘에 있는 영원한 휴식을 받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실하게 된 후 들어갈 수 있는 약속이요, 축복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우리에게 지키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단순히 그분의 사역을 쉬셨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날에 우리 역시 우리의 사역에서 휴식할 것입니다.

 

 

유언자의 뜻은 그가 죽기 전에 말해져야 한다(9:16~17).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뜻에 대한 유지(遺志)들은 유언자가 죽기 전에 알려져야 한다고 논쟁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 그 주() 첫날 특별히 중요한 것에 애착을 느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첫날이 신약성경에서 어떤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16~17절은 뜻에 대한 유지(遺志)들이 계시될 때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유언자가 그의 뜻이 시행중이거나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뜻에 대한 유지(遺志)들과 조건들은 그의 죽음 이전에 알려지거나 합의를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조건들이 수혜자들에게 밝혀지거나 알려질 때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유지(遺志)들이 사전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라도 유언자가 죽은 후 뜻의 유지(遺志)들을 알리는 대리자에 의해 뜻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유지(遺志)들은 영원에서부터 알려졌지만 예수께서 죽으신 후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완전히 밝혀졌습니다. 복음 아래에서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에서부터 알려졌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유지(遺志)들은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 알려진 것입니다(벧전 1:20, 3:10~11).

 

예수님은 그분께서 살아계셨을 때 그분의 증거에 대한 어떤 측면을 계시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많은 것과 심지어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까지도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그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16:21~23, 9:31~3, 18:31~34, 12:16).

예수님은 그분께서 죽으신 후까지 그분의 가르침의 많은 측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성령께서 모든 진리를 그들에게 인도하시기 위해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오셨을 때 그분은 예수님의 증거의 내용을 계시하여 사도들을 이끄시기 시작하셨습니다(14:26, 16:12~14).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후까지도 예수님 자신은 그분의 죽으심 이전에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사도들에게 많은 것들을 설명하셨습니다(24:25~26, 44~49). 성령께서 오셨을 때 그분은 더욱 더 계시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약성경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영감으로 가르쳤을 때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 계시되지 않았던 예수님의 뜻이나 증거를 계시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약성경의 많은 측면들이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성령에 의해 인도됨으로서 사도들로 계시되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10:16, 고전 14:37, 3:3~5, 벧전 1:9~12).

자유의 법(2:12)

어떤 사람들은 자유의 법이 우리를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면 야고보서 2:11절에서 십계명 중 두 계명을 인용하기 때문에 율법이 계속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야고보서 2:8절은 레위기 19:18절을 인용합니다. 이 율법 또한 자유의 법의 일부입니까? 그렇다면 모든 구약율법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안식일주의자들 주장은 그들 자신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이상을 증명합니다. 모든 율법이 유효하거나 유효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모든 명령들은 신약성경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이 명령이 구약성경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모두 유효하다는 것입니다(7:1~7).

 

야고보는 오늘날 십계명과 안식일이 유효하다고 말하나요? 사실상 야고보는 모든 율법의 참되다는 원칙을 설명하려고 단순히 이 명령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2:10~11). 야고보는 신약성경 명령으로 그 원칙을 적용합니다.

 

고린도전서 9:9절과 비교해 보십시오. 여기서 바울은 복음전파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모세의 율법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이 오늘날 유효하다고 증명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야고보서 2:11~12절과 마찬가지로 단지 신약성경에 적용을 설명하기 위해 옛 율법을 사용했습니다.

 

10계명은 자유를 줄 수 없습니다. 10계명은 단순히 법이지 용서가 아닙니다. 율법은 묶고, 행동을 속박합니다. 율법은 궁극적으로 죄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구약율법은 용서의 소망이 없어 죄책감으로 사람들을 묶을 수밖에 없습니다(10:1~39).

 

율법은 죄로부터 어떤 누구도 의롭게 할 수 없습니다(3:20). 왜냐면 율법은 용서를 계속 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율법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죄에 대한 지식을 주는 것이었고, 사람들이 죄책감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3:10~18, 23, 3:19, 22~23).

 

돌 판에 새겨서 써졌던 10계명은 자유의 사역이 아니라 죽음의 사역입니다(고후 3:6~11,17). 그것이 율법이 사라진 이유입니다(고후 3:11). 자유는 주님의 영을 통해 알려집니다(고후 3:17).

 

십계명을 포함한 구약율법의 명령들은 사람들이 불순종했을 때 죄를 알리고, 죄책감으로 사람들을 묶을 수 있을 뿐입니다. 십계명이 용서를 줄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십계명은 자유가 아니고 죽음과 속박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사라졌고 복음에 그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자유는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복음 아래에서만 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죄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실 수 있는 진리입니다(8:31~32, 34). 우리는 아들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실 때 자유하게 됩니다(8:36). 하지만 아들께선 신약성경의 희생인 그분의 죽으심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10:9~10).

 

남편이 죽은 여자는 남편의 법에서 자유하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 율법으로부터 건져졌음을 묘사합니다(7:2~7). 무슨 율법입니까? 그 율법은 탐내지 말라고 말한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자유의 법이 아닙니다. 자유의 법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케 하신 것에서 온 법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죄와 죽음의 법에서 자유하기 때문에 거기엔 비난이 없습니다. 율법은 이런 것을 할 수 없고 비난만 있을 뿐입니다(8:1~3).

 

율법 아래에 있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자유를 정탐하고 있고, 우리를 속박 안으로 끌어들일 것입니다(2:4, 4:21).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에 한 시간도 굴복하지 말아야(2:5)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하셨고, 속박의 멍에에서 다시 얽히기를 거절함으로 자유 안에서 굳게 서야 합니다(5:1).

 

이 모든 구절은 자유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 안에 있기 때문에 자유만이 용서를 증명한다고 말합니다. 십계명은 용서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완벽한 법은 십계명이 아닌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4:18, 1:16, 6:7, 17~18, 22, 벧전 1:22~25).

 

자유의 법은 완벽합니다(1:25). 하지만 복음만이 완벽합니다. 구약율법은 불완전합니다. 십계명 율법이 완벽했었다면 왜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을 주셨을까요? 주셨던 것이 이미 완벽했었다면 왜 어떤 다른 시스템이 필요했었을까요? 그리스도의 복음은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것을 우리에게 했습니다.

 

이전의 명령은 완벽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무효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나은 언약으로 더 나은 소망으로 이끄셨습니다(7:18~19, 22).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첫 번째 언약을 폐지하셨고, 그분의 희생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되도록 우리에게 두 번째 언약을 주셨습니다(10:9~10). 이 제사는 거룩케 된 자들을 완벽하게 합니다(10:14).

 

복음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셨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보다 더 나은 언약입니다(7:22, 8:6, 8~9). 그 첫 번째 언약은 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다른 언약을 주셨습니다(8:7). 십계명을 포함한 첫 번째 언약은 폐지되었습니다(8:6, 9:23).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는 완벽함이 없습니다. 십계명과 모든 율법은 예수께서 죽으시기 오래전에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완벽은 십계명을 통해 이뤄지지 않지만 예수와 그분의 복음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완벽한 법은 십계명이 아닌 신약성경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으로 판단 받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2:12절은 자유의 법이 우리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로마서 2:16절과 요한복음 12:48절은 예수의 가르침, 복음으로 판단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골로새서 2:16절은 우리를 안식일에 관해 판단 받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완벽한 법은 십계명과 안식일이 아니요, 예수의 복음이요, 그분의 가르침입니다.

 

#6. 영감을 받지 않은 역사에서 나오는 증거

어떤 사람들은 영감을 받지 않은 역사가 예수의 죽으심 후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에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역사 속에서 카톨릭교회가 일곱 번째 날에서 한 주간의 첫째 날로 변질시켰다고 말합니다.

 

 

A. 영감을 받지 않은 역사는 우리의 실행을 세우지지 말아야 한다.

영감을 받지 않은 역사는 성경역사의 정확도를 더 분명케 하고, 성경예언에 대한 수행을 입증하고, 그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을 확산시키려는 사람들을 도움으로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역사는 또한 어떤 특정한 종교적인 무리가 오류를 가르치고 또 실행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죄를 범하는 것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감을 받지 않은 역사는 사람들이 우리의 실행이 하나님을 섬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것을 사용하려고 할 때 심각하게 남용하고 있습니다.

 

영감을 받지 않은 역사는 틀릴 수도 있고, 불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잘못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감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단순한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따르게 합니다. 사람들은 무지, 경솔, 편견을 통해 오류를 만듭니다. 우리가 실행을 해야 하거나 실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관한 우리의 결론을 기반으로 해서 역사를 사용한다면 우리가 오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감을 받지 않은 역사는 하나님께서 행위를 받아들이시는지 아니면 받아들이시지 않는지를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실행에 참여한 것을 입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우리에게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받아들이시거나 받아들이시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만이 실행이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를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딤후 3:16~17, 1:2~3, 21:5).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사역하심을 알기 위해 사람의 지혜를 따르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우리는 성경에만 계시된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해야 합니다. 분명하게 영감으로 되지 않은 역사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교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감으로 되지 않은 역사는 우리의 교리의 원천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고전 1:18~25, 3:5~6, 1:8~12, 요이 1:9~11). 요한계시록 22:18~19, 골로새서 3:17, 그리고 베드로전서 4:11절을 읽어봅시다.

 

특별히 하나님은 우리의 실행을 세우려고 사람의 전통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여 경고합니다. 과거 실행의 기록을 물려준 전통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드러내 놓고 전통을 따르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역사를 끊임없이 연구해 오고 있고, 역사를 인용해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역사는 거룩한 진리를 부인하고 반박합니다.

 

 

성경은 믿음의 표준으로서 보통 사람의 권위를 따르는 것과 특히 전통을 따르는 것을 책망합니다(15:9, 13). 특별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사람의 전통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꾸짖으셨습니다(7:3~9, 13, 2:8).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요구하는 사람들이 1세기 후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을 역사로 입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신약성경이 예언하는 것처럼 역사 가운데 소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하게 진리로부터 배교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류가 아니고 거짓 가르침과 거짓교사들을 따르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그것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최종 결과는 이 사람들의 실행이 우리가 실행해야 하는 것에 관해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감으로 된 역사도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고린도교회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의 성도들)도 오류의 실행에 깊이 포함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특별하게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알게 되는 것은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도록 요구 받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구약율법(할례와 모든 옛 율법)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안식일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많은 이방인들은 이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영감으로 되지 않은 역사는 그것이 정확했었다면 이 사람들이 옛 율법(할례, 안식일 등을 포함하는 구약율법)을 지켰다고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행한 것만 입증할 수 있지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것을 그들이 입증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신약성경의 책들과 모든 장들은 이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영감으로 되지 않은 역사는 초기 교회들이 실행한 것을 절대 알아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실행을 받아들이셨는지 받아들이시지 않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카톨릭교회의 주장은 현대의 실행을 입증하거나 입증하지 못합니다. 카톨릭교회가 일곱 번째 날에서 첫 번째 날로 예배하는 날을 바꿨다는 논쟁은 약한 논쟁입니다. 카톨릭교회의 역사는 틀린 것이고, 잘못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것이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든 입증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카톨릭교회는 그들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성경을 따른다고 말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준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사실인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 주간 중 첫날에 예배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하는 그들의 주장하는 경우도 같은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카톨릭주의자들의 기본적인 오류는 그들이 초기교회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약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서 유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거짓입니다. 카톨릭교회는 초기교회가 아닙니다. 카톨릭교회는 초기교회에서 배교하는 것입니다. 카톨릭교회는 1세기 후 오랫동안 교회로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카톨릭 교리는 성경과 반대됩니다. 왜 카톨릭교회는 우리에게 그들의 실행을 반복적으로 성경과 반대되는 것을 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성경은 카톨릭주의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1세기에 하나님께 영감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한 가지 진리는 옛 율법과 안식일이 폐지되었다는 것이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의 날은 한 주의 첫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카톨릭 가르침과 전통에 호소하지 않고, 성경에 따라 이것이 세워졌다는 것을 믿습니다.

 

다음은 카톨릭교회가 시작되기 오래전에 한 주의 첫날을 예배의 날로 지켰음을 보려고 합니다.

B. 한 주의 첫날과 역사

비록 우리가 영감으로 되지 않은 역사가 오늘날 우리의 실행을 알리는데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단호히 부인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한 주의 첫날에 예배의 실행이 역사의 손에 의해 고통에 시달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한 주간의 첫날에 예배를 했던 것을 잘 알려진 초기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증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증거는 우리의 실행의 기준으로 사용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카톨릭교회가 일요일 예배를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을 역사가 확인해 준다고 주장을 할 때 잘못이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이그나티우스Ignatius(107 AD)

고대 명령으로 자라온 사람들은 새 소망의 소유권을 갖는다.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우리의 생명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다시 일어나신 것을 지키는 주의 날을 소유한다.”-마그네시아사람들에게 전하는 편지 9

 

바나바Barnabas(120 AD)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으로 여덟 번째 날을 지킨다. 그 날은 예수께서 죽으심으로부터 다시 일어나신 날이다.”-바나바서신 15

 

저스틴 마르터Justin Martyr(140 AD)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나 시골에 사는 사람들 모두 일요일이라 불리는 날에 한 장소에 함께 모인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요일에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셨기 때문에 일요일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공동의 집회를 갖는 날이다. 예수님은 토요일 전 날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에 토요일 후 그 날은 일요일이다. 그 날에 그분의 제자들, 사도들에게 나타나셔서 이러한 일들을 가르치셨다.”-저스틴의 첫 번째 변증론 67

이것은 일요일 집회가 성경으로부터 온 가르침 즉, 기도, 주의 만찬, 헌금을 포함함을 설명합니다.

 

 

바르데사네스Bardesanes(180 AD)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한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이라 불려졌다. 한 주의 첫 번째 날에 우리는 함께 스스로 모인다.”-각국의 법서(法書)

 

 

터툴리안Tertullian(200 AD)

육적인 할례와 옛 율법이 특정한 때에 완성됨으로서 폐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일시적인 것임을 증명되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계율이 모세를 통해 주어진 이래로 줄곧 확신을 가지고 계율을 드러내라고 말해오는 것이다. 준수(遵守)가 묶고 있는 것이다. ..... 계율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것이다. 어느 날 중단되었다. .....”-유대인들에게 하는 대답 4안식일 준수(遵守)

 

이 책 2장에서 그는 아담, 아벨, 에녹, 노아 등도 아무도 안식일을 지킨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한 마르키온을 반대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Peter of Alexandria(306 AD)

우리는 주님의 말을 기쁨의 날로 경축한다. 왜냐면 예수께서 다시 일어나셨기 때문이다.”-교회법에 따른 서신 계율 15

 

 

유세비우스Eusebius(324 AD)

그는 대홍수 이전의 족장들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하지 않았고, 안식일을 지키지도 않았다. 우리도 그와 같다. 모세가 나중에 상징과 예표로 지키도록 전한 어떤 음식도 피하지 않고, 다른 명령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속해있지 않은 것이다.”-교회사 14

 

에비온주의의 이단에 관해

그들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안식일과 다른 규율들을 지킨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해 우리와 같이 주님의 날에 모인다.”-교회사 327

 

그들은 일곱 번째 날과 한 주의 첫날을 함께 지켰습니다. 하지만 유세비우스는 그들을 이단자들로 여겼습니다. 이단자들이 아닌 사람들은 안식일이 아닌 예수의 부활을 기념해 주의 날을 지켰습니다.

 

필립 샤프Philip Schaff

주의 날은 한 주간의 공적인 예배로서 유대 안식일을 대신한다. 그 날은 일곱 번째 날에서 첫 번째 날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첫날은 이미 사도들의 시대에서 주의 날로서 계획되었다. 그 날에 바울은 트로아에서 제자들을 만나 한밤중까지 말씀을 전파했다. 그날에 그는 거룩하게 섬기도록 갈라디아와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을 했다. .....신약성경에 일요일이 예배의 날로 지켰다고 나타나 있다. 2세기에 우주적이고 부인되지 않는 일요일 준수(遵守)는 사도시대의 실행에서 유래되었다.”-필립 샤프 그리스도인 교회사 19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의 날 집회는 사도시대로부터 의심 없이 만났다. 사도시대의 선례와 다름없이 2세기 교회에 있는 우주적인 종교의식을 설명할 수 있다. 이의가 없다. 이 습관은 사도들과 믿음의 형제들의 증거로 다져졌다. 그것은 또한 젊은 플리니에 의해 확인되었다. 디다케는 첫 번째 날을 주의 주님의 날로 부른다.”

 

신부(神父)들은 일요일을 유대 안식일의 연속, 안식일 대체일로 여기지 않았다. 이것은 네 번째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의 안식을 반대하는 것으로 여겼다......”-필립 샤프, 그리스도인 교회사 24

 

카톨릭교회가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첫날에 성도들이 모이는 것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의 실행이 영감을 받지 않은 역사가 아닌 성경으로 세워졌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사람들의 교리에 동의할 필요가 없지만 그들은 역사적으로 일곱 번째 날이 아닌 한 주의 첫날을 주의 날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지켰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III: 우리는 복음에 순종하고, 한 주의 첫날을 지켜야 한다는 증거

 

어떤 사람들은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면 훔치고 거짓말하고 살인을 해도 괜찮다는 건가요?”라고 묻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날 따라야 하는 법에 관해 성경이 뭐라 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1. 오늘날 우리는 신약성경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예수께서 구약언약을 폐지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새 언약으로 옛 언약을 대체하셨다.

이제 옛 언약이 필요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법이 그것을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두 번째 것을 세우시기 위해서 첫 번째 뜻을 없애셨습니다(10:9~10). 두 번째 것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만드신 것과 같지 않은 새 언약입니다(8:6~9, 7:22, 고후 3:6.).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연합될 수 있습니다(7:4).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훈육 자였습니다. 이제 믿음의 복음 시스템이 왔고, 우리는 더 이상 훈육자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3:24~27, 1:11~12).

 

한 예를 들어봅시다. 한국이라는 이 땅은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고, 왕국 법으로부터 결국 일제의 압제 하에 있었습니다. 그런 후 이제 우리는 한국 헌법 아래에 있습니다. 유사하게도 하나님은 첫 번째 족장 통치를 사람들에게 주셨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고, 이제 복음인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일제의 법은 우리의 구약언약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 한국헌법에 일제의 법이 잔존해 있는 것처럼 신약성경에 율법이 잔존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론에서 토론했던 것처럼 사람이 만든 언약의 예를 읽어보십시오. 한 언약이 다음 언약으로 대체되었을 때 지나간 언약의 용어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대체는 예수의 죽으심의 결과로 일어났다.

예수님은 그분의 십자가에 그것들을 못 박으시고 첫 번째 법령을 폐하셨습니다(2:14).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분의 피 흘리심으로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2:13~16, 2:13, 16).

 

예수님의 어떤 뜻이나 증거가 효력이 있기 위해서 그분께서 죽으셔야 했습니다(9:16~17)

 

옛 법은 예수께서 죽으시기까지 효력이 있었고, 그런 후에는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습니다(3:13, 7:4).

 

신약성경 또한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명령과 율법을 수반한다.

예수님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모든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28:18~20).

 

신약성경에 의해 써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주의 명령입니다(고전 14:37).

 

바울이 유대인들의 율법 아래에 있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율법이 다소(多少)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법 아래에 있었습니다(고전 9:20~21).

 

복음은 자유의 완벽한 법입니다(1:18, 25).

 

하나님은 옛 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율법이 없지 않아 다소(多少)있지만 우리는 신약성경의 조건 아래에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순종하도록 명령하지만 구약성경의 명령이 아니고, 신약성경의 명령입니다(12:48, 벧전 1:22~25, 6:17~18, 3:20~23).

 

신약성경은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 그 언약의 당사자는 하나님이셨고, 한 민족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새 언약은 훨씬 더 우주적입니다. 예수님의 새 언약은 세상 모든 곳에 사는 모든 민족의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모든 민족에게 가라(28:19).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16:15).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그의 이름으로 ...... 모든 민족들 가운데 선포되어야 하리라(24:47).

하나님은 모든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17:30).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값을 지불하시려고 자신을 주셨습니다. 머지않아 증명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딤전 2:4~6).

 

1세기에 복음은 모든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1:6, 23). 모세를 통해 주어진 언약과 같지 않은 복음은 새 언약이요, 구체적인 용어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으로 구원받게 해야 하는 새 언약입니다(4:12, 22:10, 24:14, 17:30, 1:5;, 16:26, 20:31).

 

신약성경은 땅의 어떤 법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배웠고, 구약성경이 유효했었다는 것까지도 배웠으며, 하나님은 결국 그것을 대체하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어떤 다른 시스템으로 대체될까요?

 

첫 언약은 남아있는 것으로 대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폐지되었습니다(고후 3:6~11).

 

구약성경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이 또 다른 법(신약성경)으로 대체되어서 폐지된다는 것을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관점으로 이 폐지는 한 번 더일어났을 것입니다. 그 것은 흔들릴 수 없는 것들을 남아있도록 하기 위해 왕국으로 대체되는 것일 것입니다(12:18~29).

 

전파된 믿음은 단번에 성도들을 던져내었습니다(1:3). “한번이라는 단어는 동물 희생에 대조되는 예수의 죽으심에 사용된 단어와 같습니다(10:10~14, 7:27, 9:12, 25~28).

 

구약성경이 대체되어야 했던 한 가지 이유는 동물희생을 반복적으로 제사해야 했던 것이 죄와 죄책감을 영원히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완벽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반복적으로 희생을 드리거나 대체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은 한번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속되는 말씀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완벽합니다. 복음은 어떤 것으로도 절대 바꾸거나 대체되지 못할 것입니다(1:25, 고전 13:8~13).

 

신약성경은 예수의 희생이 있습니다. 예수의 희생은 모든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 죄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예수의 희생은 사람들의 죄를 없이하려고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시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제사하셨습니다(10:1~18, 7:11~28, 8:6~9, 9:11~28, 1:16, 16: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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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신약성경 명령들은 구약성경의 명령과 유사하다. 하지만 다른 것이다.

10계명 중 아홉 계명은 신약성경에서 반복되었습니다. 명령들 대부분은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한 분 뿐이다.- 고전 8:4, 14:15

 

2. 우상을 조각하지 말라.- 5:19~21, 1:22~23, 요일 5:21

 

3.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5:12

 

4. 안식일을 기억하라.- 이 명령은 10계명 중 유일한 것입니다. 이 명령은 신약성경 어디에도 반복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 약속된 안식일 휴식은 영원한 생명뿐입니다(4:9~11).

 

5.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6:2~3

 

6. 살인하지 마라.- 13:8~10

 

7. 간음하지 마라.- 13:8~10, 고전 6:9~10

 

8. 훔치지 마라.- 13:8~10, 4:28

 

9. 거짓말을 하지마라.- 21:8, 22:15, 3:9

 

10. 탐내지 마라.- 13:8~10, 5:3.

 

우리는 그 명령들이 구약성경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약성경에서 반복되었기에 그 명령에 순종합니다.

 

대부분의 신약성경 실행들은 구약성경의 실행과 다릅니다. 그 실행들을 나열해보겠습니다.

 

 

구약성경

신약성경

동물희생

예수의 희생(10:9~39)

사람의 대제사장

예수께서 대제사장이심 (9:11~12)

육체적인 성전

영적인 성전 (교회) (고전 3:16)

육체적인 할례

마음의 할례 (2:28~29)

악기음악(150)

노래 (5:19, 3:16)

십일조 (7:5)

준비된 대로 드림 (고전 16:1~2)

안식일과 성일

한 주의 첫날(20:7, 고전 16:1~2)

 

 

한 여인이 한 번에 두 남편의 권위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여인의 첫 남편이 죽으면 두 번째 남편의 기대가 첫 번째 남편과 유사한 방식일 수 있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남편의 기대가 그 여인을 더 이상 묶지 못합니다. 그녀가 행하곤 했던 것과 유사한 것을 행한다면 그것은 첫 번째 남편이 그런 것들을 원한 것 때문이 아니고 두 번째 남편이 그것들을 원했기 때문입니다(7:2~6).

 

마찬가지로 우리는 옛 언약 아래에 있지 않고, 새 언약 아래에 있습니다. 율법은 유사한 것이 있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8:9). 첫 번째 언약의 요구는 이제 전혀 어떤 힘도 갖지 못합니다. 율법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첫 번째 언약이 아닌 두 번째 언약을 따릅니다. 율법이 유사하더라도 첫 번째 율법이 말한 것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이 말하는 것에 순종합니다.

 

우리의 예배의 날은 일곱 번째 날이 아닌 한 주간의 첫날입니다. 신약성경의 많은 주된 일은 한 주간의 첫날에 일어났습니다.

 

* 안식 후 첫날에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습니다(16:9, 28:1, 6).

 

* 예수님은 처음으로 그분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입증하시려고 사람들에게 첫날에 나타나셨습니다(20:19, 16:2, 9, 28:1, 6~10). 성경에 의하면 두 번째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것도 한 주간의 첫날이었습니다(20:26~31).

 

* 첫날에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하셨고,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사람들은 복음에 순종했고, 그리고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오순절에 일어났고, 한 주간의 첫날이었습니다(2:1~47, 23:15~16).

 

이 모든 중요한 사건들은 한 주간의 첫날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이후 신약성경의 중요한 사건이 한 주간의 일곱 번째 날에 일어났나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번도! 한 주간의 첫날이 신약교회 예배에서 특별한 중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한 주간의 첫날에 모여서 주의 만찬으로 만났습니다. 교회는 한 주간의 첫날에 모이도록 명령받았습니다(고전 16:1~2). 어떤 구절이 안식일이나 한 주간의 첫날에 모이라고 말하나요?

 

교회는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모였습니다(2:42, 20:7, 10:25, 고전 11:17~18, 20). 그들은 언제 그렇게 모였습니까? 성경구절은 한 주간의 첫날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구절이나 다른 어디에 안식일이나 한 주간의 첫날에 주의 만찬에 참여하라고 신약성경교회에게 말하나요? 한 주간의 첫날은 한 주간의 일곱 번째 날과 같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 20:7절에 있는 빵을 떼다는 보통 식사를 말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빵을 떼다는 주의 만찬에 사용하던 용어입니다(26:26, 16:22, 22:19, 고전 10:16, 11:23~24, 2:42). 우리는 사도행전 20:7절이 문맥에서 예배모임이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님의 만찬을 말함을 압니다. 이 기회에 전파했던 바울은 예배모임에서 먹어야 한다고 이미 주의 만찬만을 가르쳤고 보통의 식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고전 11:17~34).

 

그 날의 중요성은 또한 사도행전 7절에서 바울이 제자들과 한 주간의 첫날 모일 때까지 기다린 것으로 증명합니다(20:6~7). 그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떡을 떼기 위해 서둘러 떠났습니다(20:16).

 

교회가 떡을 떼기 위해 한 주간의 일곱 번째 날에 만났다면 바울은 모든 문젯거리를 해결하고 더 일찍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일곱 번째 날이 그리스도인 예배의 특별한 날이고 첫 번째 날이 중요하지 않다면 왜 첫 번째 날이 언급되고 일곱 번째 날이 언급되지 않았을까요? 왜 바울은 일곱 번째 날 대신에 첫 번째 날에 교회에서 모이려고 그렇게 수고했을까요?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첫 번째 날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해야 한다는 것을 하찮게 여깁니다. 사람이 신약성경 증거가 일곱 번째 날을 지키도록 권했다고 말할 때 그는 그에 비해 첫 번째 날에 대한 증거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게 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사도행전 20:7, 고린도전서 16:1~2절과 같이 일곱 번째 날에 관해 말하는 구절이 있고, 다른 구절들이 첫 번째 날에 관해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들이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첫 번째 날이 그리스도인 안식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휴식의 날입니다. 신약성경 구절은 첫 번째 날을 휴식하라거나 특정한 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안식일이 아닙니다. 첫 번째 날은 예배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주의 만찬과 모이기 위해 신약성경 교회를 위해 정해진 유일한 날은 한 주간의 첫날입니다. 성경 어떤 구절에도 예수의 교회가 한 주간의 일곱 번째 날이나 다른 어떤 날로 예배하도록 정했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예배하고, 주의 만찬을 떼고, 모이기 위해 예수의 교회가 정한 날은 한 주간의 첫날입니다.

 

 

결론

안식일과 10계명을 포함해 율법이 더 이상 묶여있지 않다는 문제의 결론에 왔습니다. 성경은 구약성경의 모든 율법이 하나님 자신께서 폐지하셨다고 가르칩니다. 오늘날 율법이나 어떤 종교적인 실행으로 묶여있지 않습니다. 여기엔 10계명과 안식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신약성경 아래에서 삽니다. 교회의 모든 실행은 복음에 권한이 주어져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실행에 대한 권위를 찾을 수 없다면 구약성경에서 실행되었거나 실행되지 않았어도 상관하지 말고 버려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냐면 각 실행이 구약성경에 권한이 있었지만 신약성경에는 권한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이 실행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한을 갖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 보다 더 나은 언약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죽으셨습니다. 구약성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그분의 죽으심의 주된 목적을 패배시키는 것입니다.

 

영감으로 성경을 쓴 사람들은 신약성경이 구약성경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더 나은 소망(7:19)

 

더 나은 언약(7:22, 8:6)

 

더 탁월한 사역이 더 나은 약속으로 세워졌다(8:6).

 

더 나은 희생(9:23)

 

그런데 왜 구약율법의 속박으로 다시 휘말려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