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모든 질문 중의 질문

Hernhut 2014. 11. 1. 13:17

 

 

리브가를 불러 그녀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하니 그녀가 이르되, 가겠나이다, 하더라.”(24:58).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는 질문은 리브가의 식구들이 리브가에게 했던 질문입니다. 그녀의 반응은 가겠다.”였습니다. 이 대답은 오늘날 제도에서 어떤 그리스도인이 맞부딪힐 가장 중요한 문제의 중심입니다. 질문과 그에 부합하는 대답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목적을 위해 구원받았고, 창세기 24:58절은 그 목적과 관계가 있습니다.

 

창세기 24장은 21~25장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의 필수적인 구성요소입니다. 이 다섯 장 모두 그리스도, 이스라엘, 그리고 교회와 관계있는 시간적 사건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심으로 시작하여, 다가오는 천년왕국 동안 사람의 축복을 알게 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여기서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하나님의 아내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이삭의 신부를 얻기 위해 먼 나라로 보내진 아브라함의 종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얻기 위해 보내어지신 성령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을 위해 찾은 이삭의 신부 리브가는 성령께서 오늘날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부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재혼은 하나님의 아내로서 그녀의 이전에 있던 곳에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아내로서의 이스라엘은 어떤 이유로 이혼하게 되었고, 재혼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한 장씩 간추려보려고 합니다. 21장은 그리스도의 나심을 말하는 이삭의 태어남과 관계가 있습니다. 22장은 그리스도의 드리심을 말하는 이삭의 제사와 관계있습니다. 23장은 이스라엘을 따로 떼어냄을 말하는 사라의 죽음과 관계있습니다. 24장은 오늘날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기 위해 세상에 보내지심을 의미하는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신부를 찾기 위해 먼 나라로 보내짐과 관계있습니다. 25장은 장차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는 아브라함의 그두라와의 재혼과 관계있습니다.

 

24장에 있는 사건은 사라의 죽음과 아브라함의 재혼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실제에서 이 사건은 과거에 이스라엘을 따로 떼어 놓으심과 장차 이스라엘의 회복 사이의 오늘날 제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부를 찾기 위해 세상에 계십니다. 이 그림은 창세기 24장에 있습니다. 24장 그 자체가 구원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구원의 목적에 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의 신부를 획득하기 위해 먼 나라로 그의 종을 보냈습니다. 종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기 전에 아브라함은 종에게 맹세하게 했습니다. 아들의 신부를 찾는 것은 반드시 아브라함의 친족에게서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24:3~4, 9).

 

종은 열 마리 낙타 위에 주인의 물건들을 싣고서 이삭의 아내를 찾고, 획득하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이 신부는 아브라함의 친족 중에 한 소녀이어야 했습니다.

 

 

신붓감으로 리브가를 찾고서 아브라함의 종은 은금으로 된 각종 장신구들과 의복을 리브가에게 주기 시작했습니다(24:53). 종의 소유한 것들은 아브라함에게서 온 선물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준 것들이었습니다(24:36, 25:5). 이 모든 선물들은 종이 먼 나라로 가서 찾고, 획득한 아들의 신부에게 속한 것과 동등한 것이었습니다.

 

실제에서도 과거 2,000년 동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의 신부를 찾고 획득하도록 2,000년 전에 세상으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2:1~47). 예표에 따르면 성령님은 그 때부터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서 신부를 찾으시고 계셨습니다.

 

예표에 의하면 제도에서 성령의 주된 임무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모든 선물을 신붓감 앞에 내놓고, 주는 것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선물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다가오는 아들의 통치기간 동안 신붓감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입니다(16:13~15, 8:17~23). 찾는 것이 거의 끝났습니다. 제도는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성령께서 그분의 사역을 완료하실 때 신부가 옮겨지는 것이 다가오고 있습니다(24:6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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