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하늘에 속한 신성한 부르심과 함께 하는 사람: 베드로 I

Hernhut 2014. 2. 4. 10:29

 

신약사역의 구성과정은 그리스도의 사람에 대한 신성한 생명성장 과정이 있어야 하고 적합성이 있어야 함

 

신약사역의 중요한 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성한 생명성장 과정이요,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의 적합성입니다.

 

이 메시지는 먼저 베드로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에 대한 적합성을 생각할 것이요, 그 다음은 요한의 성장을 생각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관점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온 생명을 생각할 것이고, 어떻게 주님께서 베드로를 완벽케 하셨는지를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베드로의 고난에 관해 말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샌드위치와 같습니다. 야고보가 위에 있었고, 바울은 아래에 있었으며, 그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믿을 수 없는 삶을 산 이유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적합했었던 이유입니다.

 

사도행전 앞부분에서 베드로는 주님께 크게 쓰임 받았던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는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증거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그것이 하늘에서 묶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 풀리리라, 하시고”(16:19) 사도행전에서 처음에 그는 복음을 전파했고, 그로 인해 3,000명이 구원받았으며, 다시 복음을 전파했을 때 5,000명이 구원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병든 사람들을 거리로 데리고 나가서 침상과 자리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최소한 그의 그림자라도 그들 중의 몇 사람에게 덮이기를 바라더라.”(5:15)

 

그가 절름발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3:6)고 말했을 때 그는 정말 담대했습니다.

 

베드로는 더 영적인 자가 될 수 없을 만큼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베드로 안에서 더 깊이 일하셔야 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생명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이유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 완전히 적합한 사람이 되는 이유입니다.

 

 

계시, 생명, 그리고 사람

신약성경에서 바울서신은 계시를 말하고 있고, 요한서신은 생명을 말하고, 베드로서신은 신성한 속성으로 산출된 사람의 미덕을 말합니다. 베드로서신에서 여러분은 베드로가 정말 달콤한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베드로의 생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 주님을 향한 그의 열정적인 사랑, 주님에 의한 계속되는 드러남, 그리고 성령에 의한 수많은 일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그를 쓰셨고, 그에게 많은 환경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베드로의 모든 기능은 가치 없어 보였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후반부에서는 그를 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사 관점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주님에 의해 많이 쓰임 받지 못했습니다. 또 그는 그 자신의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무척 다릅니다. 바울에게 넘겨 준 후 요한은 에베소의 장로가 되었고, 베드로 또한 이방인의 교회를 돌보았습니다. 베드로의 삶 후반부에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베드로전후서를 읽을 때 여러분은 주님, 저는 베드로같이 이처럼 달콤한 될 수 있는 곳에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 사람은 베드로처럼 풍성하고도 신성한 속성으로 구성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안에 구성되어 있는 신성한 속성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구조를 산출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구조와 베드로의 은사는 그의 사역을 산출했고, 궁극적으로 그는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종이 되었습니다.

 

 

바울: 계시로 가득한 사람

바울은 칭찬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구원받는 방법조차도 초월적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을 때 그는 하늘에서 빛이 비추어지는 것을 보았고,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3일간 기도를 했고, 술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을 찾으러 주님에 의해 보내어졌을 때 주님은 보라, 그가 기도하고 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정말 초월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체험해야 합니다. 교회사에서 바울과 함께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 있는 중심적인 모든 계시가 바울서신으로부터 오는 이유입니다.

 

 

요한: 생명으로 가득한 사람

주님은 조바심, 신경질적인 기질 때문에 우뢰의 아들이라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요한에게 주셨습니다. 요한은 젊어서부터 주님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의 전 생애동안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주님에 의해 세워졌고, 온전케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순수함을 주셨습니다. 세상은 그를 타락시킬 수 없었습니다. 사악함이 그 위에 권세를 부리지도 못했습니다.

 

요한은 주님을 향해 형언할 수 없는 순수성과 필적할 수 없는 사랑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특별하게 그가 90살이 되었을 때까지도 그의 몸을 보호하셨습니다. 요한의 생각은 정말 맑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때에도 그의 몸은 건강했었고, 그가 뒤에서 나는 시끄러운 음성을 듣고서 그 음성을 보려고 돌렸을 때주님의 날에 대해 생명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또한 영적인 생명 안에서 성숙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구조(적합성)로 가득한 사람

우리 대부분은 높은 계시를 받은 바울과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고, 생명이 가득한 요한과 같은 이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되려고 합니다. 거의 우리들은 베드로가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베드로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단순할 뿐만 아니라 열정적이고, 진실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많은 성격을 사용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만유의 찌꺼기요,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의 긍휼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도록 우리를 이끄셨고, 교회를 사랑하고, 만나도록 우리를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위에서 일하실 수 있으신가요? 그리스도의 사람이 우리 안에서 건축될 수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매순간 마다 이런 질문을 주님께 합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단순함, 강렬함, 진실함을 배워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분란을 일으키고,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베드로의 급한 기질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좋아한 베드로의 천연적인 기질입니다. 여러분은 베드로전서에서 이와 같은 천연적인 베드로가 편안하고, 성숙하고, 고상하고, 생명으로 가득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고, 사람과 어울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상상할 없을 것입니다.

 

구조와 성숙에 관련하여 여러분은 베드로서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베드로서신에서 베드로가 4복음서에 등장했던 것보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성한 부르심을 가진 사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주의 종이 되기 원하고, 주님께 쓰임받기 원하고,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으로 구성되기 원하고, 은사가 운용되기 원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기본적인 체험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부르셨고, 또 나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부르셨고, 내게 약속하셨습니다. 나의 존재는 가른 사람들과 다르며, 나의 생명의 미덕, 나의 생명에 대한 의미도 또한 그렇습니다. 나의 추구, 수고, 만남, 섬김 모두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나는 신성하고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의 부르심은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킨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여러분 안에 신성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피의 교제를 갖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기를 원합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여러분을 부르시려고 오셨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을 구별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르심 안에 약속이 있고, 위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경력을 쌓기 시작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대학에 가는 것은 약속이요, 졸업 후에 책임을 맡게 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확실한 직업을 갖기 위해서 특정한 것을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삶과 다른 삶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조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다릅니다. 이 부르심 안에 있는 우리는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르심 안에 있는 우리는 위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위치도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의미도 바뀌었습니다. 이 부르심은 하나님과 어울리고 연합을 갖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났을 때부터 주님을 따를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적합성(구조)가 필요하다.

이 신성하고, 하늘에 속한 부르심은 한 번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셨을 때부터 그분은 여러분을 얻기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이 부르심은 긴 과정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만났을 때부터 대략 1년이나 그 이상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어떠한 약속을 주셨을 때(1:40~42)가 있었고, 주님께서 그를 얻으셨고, 주님은 그가 전적으로 그분을 따를 이유를 갖도록 하셨습니다(5:1~11).

 

이 기간에 베드로는 주님과 친밀하게 대화할 때도 계속 주님의 임재 안에 있었지만 그는 주님께 그 자신을 맡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그 자신의 선택을 기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마 난 주님을 만났다. 주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난 주님을 누리지만 나는 여전히 자유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하기를 좋아한다.” 말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부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을 얻기 원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신의 자유를 잃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 제가 이 길을 간다면 그것은 당신의 부르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저 길을 간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부르심입니다. 나의 삶은 당신의 부르심 안에 있습니다. 나의 결정 또한 당신의 부르심 안에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부르심의 키포인트를 통과하는데 한 일 년 넘게 걸렸습니다. 주님은 이러는 동안 베드로를 쓰실 수 없으셨고, 쓰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이유인즉슨 그가 주님을 만났고, 주의 말씀을 듣고, 주님과 교제를 가졌을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확고한 부르심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부르심이 확고할 때까지 주님, 이제 저는 자유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 소망, 요구, 갈망, 계획이 자유입니다. 여러분이 아주 많은 메시지를 듣고, 많은 진리를 알고, 주님께 아주 많은 기도를 하고, 주님 앞에서 구별되었다 할지라도 아직 여러분은 주님의 개인적이고, 특별한 부르심이 부족합니다.

 

이 개인적이고 특별한 부르심이 올 때 여러분의 삶이 결정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부르심을 듣고, 보고, 만졌을 뿐만 아니라 얻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하기 원하는 것, 할 것, 결정할 것이 무엇이든 여러분은 이제 자유가 없습니다. 이 때 여러분은 주님, 저의 존재()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주님께서 제 안에 이끄신 것과 완전히 연합되었습니다. 또한 당신이 제게서 사역하시는 것으로 완전히 연합되었습니다.”라고 말하기를 원합니다.

 

 

유다: 주님의 부르심을 답하지 않는 사람

이 부르심에 대한 확고함의 과정이 베드로에게 1년이 넘게 걸렸다면 아마도 우리에게는 더 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지만 주님, 저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자신감을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의 선택으로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당신은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원합니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그렇다.”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 우리는 따라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님을 어떻게 따르는가?”라고 물을 때 우리는 나를 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고려함은 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졸업 후 직업을 찾기 원한다고 합시다. 대화를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I: “어디서 직업을 찾고 있니?”

HE: “특정한 도시에서 찾는다.”

I: “거기로 가야하니?”

HE: “거기에는 거기 교회가 있다.”

나는 이런 대화에서 이 사람이 어떻게 돌진해 간 유다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라고 내 마음 속에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떤 낮은 유다는 비록 거기에 교회가 없을지라도 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지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또 더 낮은 유다는 비록 거기에 교회가 없을지라도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교회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동안 교회를 일으킨 사람을 볼 수 없었습니다. 거의가 다 사회적인 친목단체로 모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가 세상에 있고, 돈을 벌기 위해 뛰어 다니고, 어떤 이들은 교회에 들어갑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존재)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주님을 판 유다가 됩니다.

 

 

베드로: 하늘에 속한 신성한 부르심을 가진 사람

 

A. 베드로는 사람이신 예수를 본 사람이었다.

 

1. 베드로는 예수께로 다가옴

2. 베드로는 주관적인 주님의 약속을 얻음

3. 베드로는 자기 자신의 약함을 체험함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기 원한다면 여러분은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의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침례자요한이 보라, 어린양이시로다.”라고 말했을 때 베드로형제 안드레는 겉으로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가 듣고서 그가 갔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도 데리고 갔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갔었을 때 그는 개인적으로 주님의 약속을 얻었고, 자신의 연약함을 체험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3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무도 이 3단계를 건너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에게로 나아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과 여러분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겉으로는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많은 말씀을 하시지만 이 말씀의 실제를 얻기는 어려웠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요한의 말을 듣고 그분을 따른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더라. *그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내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니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1:40~41)라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것은 이 두 형제의 마음이 순수했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찾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께로 왔을 때 그는 어부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보았을 때 그는 아마도 기절했을 것입니다. 그는 나는 고결한 분을 만났다. 나를 위한 구원이시다.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이시다. 우리는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메시야에 관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도록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지만 베드로를 보시고서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너는 게바라 불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바는 베드로요, 돌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에서 그는 참으로 사람들에게는 거부당하였으나 [하나님]께는 선정 받은 돌 곧 보배로운 산 돌이신 그분께 나아와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벧전 2:4~5a)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를 만났을 때 주님은 그분 자신을 언급하시지 않으셨고, 그분께서 하신 것이나 그분의 갈망을 언급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로 왔을 때 주님은 그를 간파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생각하시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너는 네가 메시야를 찾았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렇지 않아. 너는 어부일 뿐이야. 과거에 너의 생각은 메시아를 찾는 누구든지 그의 미래는 빠르게 높아질 것이라.’고 했었다. 너는 제사장이 되길 원하지만 너는 그럴 수 없다. 왜냐면 너는 레위족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는 세금을 걷는 자가 되길 원하지만 그렇데 될 수 없다. 왜냐면 너는 그럴만한 환경과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너의 양심이 평강이 없구나. 유일하게 성공하는 방법은 신앙을 갖는 것이요, 이것만이 지름길이다.”라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혁명적인 백부장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휘하에 100명을 가질 것이고 주님은 그를 승진시키셨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계획은 왕이 되는 것과 자신의 왕국을 얻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다. 너의 이름은 바뀔 것이다. 너는 베드로라 불릴 것이다. 너는 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를 들은 후 그는 옳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야. 나는 속히 진급하기를 소망하기에 주를 따를 의도가 있어. 빨리 장로가 되기를 기대해. 어느 날 유용하게 되기를 고대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록 베드로가 예수를 보았고, 만졌고, 그분의 말씀하심을 들었고, 누렸을지라도 베드로에 의하면 주님의 가치는 베드로가 소망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가치는 그분께 베드로 자신의 생명을 의미를 두고, 온 생명을 드릴만한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그분을 따르기 시작했을 때 여러분은 베드로와 같지 않았었습니까?

I: 여러분은 주님을 만났습니까?

You: .

I: 주님을 만졌나요?

You: .

I: 주님을 누리셨나요?

You: .

I: 주님과 교제를 가졌나요?

You: .

I: 기도하는 동안 주님의 임재 안에 있었나요?

You: .

 

비록 여러분이 주님을 만났고, 주님의 약속을 들었고, 시몬이라고 불리지 않고, 베드로라고 불리고, 돌이라고 불릴지라도 여전히 여러분은 주님의 가치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분께 여러분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적어도 베드로처럼 여러분은 그분의 좋은 친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B. 베드로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1. 베드로는 성령의 초기 사역을 체험함 : 그의 장모가 나음을 입음

베드로의 장모가 열이 있다고 우리가 말을 할 때 일반적인 설명은 이 장면이 주님께 대한 지나친 열정(광신)이 있는 종교적인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종교적인 열심을 꾸짖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질병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런 후 베드로의 장모는 즉시 일어나 그들을 섬겼습니다. 나는 베드로가 그날 많은 느낌을 가졌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장모가 고열로 거의 죽게 되었다. 장모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주님은 고열을 꾸짖으러 오셨고 열이 곧 떨어졌다.”

 

베드로는 성령의 초기 사역을 체험했습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사역하시지 않으신다면 사람들은 부르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큰일을 이루어내고, 일류대학에 들어가고, 어려운 취업난을 뚫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신나는 휴식을 취하고, 귀한 메시지를 전하고, 형제자매들을 도운 후 공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 그런 공허함, 허무함을 느낄까요?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을 했을 때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그런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공허는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사역을 시작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2. 베드로는 주님께서 계실 곳을 기꺼이 허락했음

누가복음 5장은 많은 군중들이 주님을 압박한 것을 기록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베드로도 주님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내 과거나 현재의 삶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지금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하고 있구나. 사람들이 주를 압박하고, 나 또한 주님을 압박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호숫가에 세워져 있는 배 두 척을 보셨고,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5:2). 어부들이 그물을 씻는다는 것은 태어나서 나이 들고, 병들고, 죽는 통상적인 인생의 순환을 말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밥벌이를 해야 하고 그 때가 지난 후 병들고 마침내 죽습니다. 사람들은 매일 일을 합니다. 매일 자신들의 그물을 고칩니다. 매일 자신들의 그물을 씻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같은 일을 합니다. 이 장면은 사람들이 대안 없이 통상적인 일상생활을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 후 주님은 베드로의 배로 가셔서 육지에서 배를 조금 뗄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앉으셔서 배에서 군중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베드로와 같은 체험을 한다면 우리는 주님, 과거에 지금보다 별로 낫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모임에 참여했었고, 많은 예언을 했었습니다. 저는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압박한 것처럼 저도 압박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전하시는 것을 들은 것처럼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님, 당신과 저 사이의 교제는 건강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배로 가셨을 때 그는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아마 그는 주님, 저는 저의 배에 주님께서 계시도록 기꺼이 드립니다. 저는 기꺼이 헌신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에서 베드로는 성령의 초기 사역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 안에 거하시도록 허락했습니다.

 

 

3. 베드로는 가르침을 들었음

주님께서 배 위에서 주신 메시지는 아마도 베드로를 위한 특별한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얻기 위해서 모든 방면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안팎에서 사역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주님을 위해 큰 수고를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4.베드로는 자신의 순종으로 기적을 체험함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네 그물을 던져라.”(5:4)고 명하셨습니다. 그에 시몬은 선생이여,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5)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했을지라도 그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그물을 내렸을 때 그들은 수많은 물고기를 걷어 올렸고, 그들의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물을 당기었을 때 물고기들이 두 배에 가득했고,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때문에 베드로가 기적을 개인적으로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5. 베드로는 자신을 깨달음: “주여, 내게서 떠나소서!”

베드로가 이 기적을 보고서 주님, 저는 당신을 따르기 원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제게서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기적을 행하신 후 베드로는 갑자기 내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나? 나는 주를 만났다. 그분을 보았고, 주님은 내게 말씀하셨지. 심지어 주님은 나의 이름을 바꿔주셨어. 나의 이름은 베드로야. 돌이라구. 과거엔 어떻게 살았지? 내 안에 있었던 것은 어떤 존재였지? 난 소망이 없었어. 난 주를 따를 수 없었어. 난 주를 따르길 원하지 않았어. 주를 따를 가치도 없었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게서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상황에 따라 우리는 전체적으로 주의 부르심을 받을 자격이 없고, 부적격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깨달음이 있을 때에만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수 있으십니다.

 

 

6. 베드로는 위임을 받음

“........이제부터는 네가 사람들을 낚으리라,”(5:10)

베드로가 말을 마친 후 주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이제부터는 네가 사람들을 낚으리라,”(5: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고 네가 자격이 없고, 부족하다만 이제 너는 나를 보고 내가 행하는 것을 본다. 너는 내가 너의 장모에게 행한 것을 보았다. 성령은 이미 네 안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너는 나에게 있을 장소를 주었고, 나를 너의 배에 오르게 했으며, 나의 가르침을 들었고, 나에게 순종했고 풍성함을 얻었다. 이 시간 나는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하기 원한다.”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일생동안 위임을 받은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때에야 그는 일어나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가진 사람이다. 주님을 만났고, 주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나는 주님의 약속이 있다. 비록 내가 약함을 체험했을지라도 성령께서 여전히 내게 사역하셨다. 비록 내가 나의 약함에 있을지라도 나는 주님께서 계실 장소를 드리고, 주의 가르침을 듣고, 기적을 볼 것이다. 나는 내가 죄인임을 안다. 나는 가치가 없음을 느낀다. 나는 부족하여 내가 주를 따를 수 없지만 주님은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셨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부르심이 아의 일생동안의 위임이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by 주호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