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지교회에서 적극적 참여양육의 중요성
이번 성경연구는 아주 긴 시간을 요구하는 주제입니다. 저녁시간을 일주일에 2번 이상을 모일 것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그만큼 교회생활에서 중요한지를 알게 됨으로서 여러분의 신앙과 믿음이 견고히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다른 교파의 성경교사들이 참여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교회에서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하지만 한 가지씩 내려놓기를 실행할 때 우리 하나님의 만족하심은 놀랍게 증가하실 것입니다.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은 자신의 것들을 가지고 적용을 시키려 하기 때문에 적용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파종하기 전에 씨앗만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경하고 거름을 주고, 또 돌들도 골라내고 땅에 힘을 줍니다. 그런 후 씨앗을 뿌리죠. 교회 또한 마찬가집니다. 어떤 기존교회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뿌리려고 한다면 과거의 전통, 인습, 인간의 교리, 등을 기경한 후에 적용하려고 한다면 조금씩 뿌리를 내릴 것을 믿습니다. 제가 교회에 적용시키려고 했을 때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성경만을 전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만이 아는 고난입니다. 사실 교파에서 목사, 인도자로 있다면 쉽게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교회로 성장한다 해도 성경적인 교회가 아니라면 그 교회는 큰 누룩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누룩 있는 교회를 요구하시지도 만족하시지도 않는 교회입니다. 격하게 말하면 그 교회는 배교자들의 무리일 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교파를 떠나 신약교회로, 형제들로 다시 시작한 이유입니다. 한명의 신실한 성도가 제게는 더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한명의 신실한 성도와 함께 주의 만찬에 참여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을 누린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 건축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특별한 각지교회와 동화되라고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칩니까? 그리스도들이 새로운 장소로 움직일 때 교회의 일부로서 인정되려고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그 교회의 제자훈련에 참여하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그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며, 회중들의 모임에 출석해야 합니까? 각지교회는 지체들로서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전에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체크해야 합니까? 성경은 여기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서론
많은 원칙들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의 중요성을 몰라봅니다. 교회생활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왜냐면 교회생활은 곧 왕국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은 천을 짜는 베틀과 옷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생활을 하지 않으면 그냥 실에 불과합니다. 천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대체함을 말합니다. 천으로 우리의 몸을 가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천은 베틀에서 실들이 얽히고설키는 것 같지만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나옵니다. 그것과 같이 교회생활 역시 이와 같습니다. 여러 특성과 본성들을 가진 이들이 다 모이고 각 환경과 상황을 가진 이들이 모이지만 교회생활 안에서 영광스런 교회로 건축되어 가는 것이 교회생활입니다. 교회생활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진리, 복음 외에 어떤 것도 포함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영원으로부터 하나님에 의한 목적이었습니다(엡 3:10~11).
∎교회는 예수님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마 16:18).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행 20:28, 엡 5:23, 25).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가족이요, 가정(집)입니다(엡 2:16, 19, 딤전 3:15).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머리로 둔 몸입니다(엡 1:22~23, 골 1:18, 24)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입니다(마 16:18~19, 골 1:13).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교회로 예수님에 의해 더해집니다(행 2:47, 골 1:13~14).
교회의 지체들은 구원이 필수적인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중요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이었고, 예수님에 의해 세워졌으며, 예수님의 피로 사신바 되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왕국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사람들을 더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나 지체들이 되는 이유로 교회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중요하게 만드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요, 교회가 가진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중요합니다.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거절이요, 그분의 의지에 대한 거절입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한 각지교회와 결속을 다지는 것과 교회의 사역 안에서 적극적으로 열심을 낼 필요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따금 각지교회에서 활동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놓칩니다.
많은 구절들이 특정한 지방에 있는 각지교회와 회중에 대해 말합니다(행 8:1, 13:1, 롬 16:1, 고전 1:2, 고후 1:1, 살전 1:1, 고후 1:1, 골 4:16). 각지교회에 지체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우리가 특정한 각지교회에 대한 어떤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반적인 교회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경영자가 되려면 일반적인 “경제계”의 일부분가 되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아니면 특정한 회사에 활동적이고 유대감을 맺어야 합니까? K리그 선수가 되려면 일반적인 “사회축구선수”가 되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선수가 특정한 팀에 활동적으로 참여한다는 계약상의 유대관계가 필요하지 않나요? 대학생이 되려면 “교육계”의 일부가 되는 것을 말한다고 충분할까요, 아니면 특정한 대학이나 대학교에 허가를 밟고 등록을 해야 하나요? 군인이 되려면 “군사조직”의 일부가 되는 것을 선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아니면 특정 나라의 특정 병무청에 등록해야 합니까? 많은 활동에서 우리는 특정한 일부가 되는 것을 거절하며 떠도는 “유동적인 지체들”로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활동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받으려면 우리가 특정한 무리에 헌신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 사람이 회사, 축구팀, 대학 등에서부터 또 다른 것까지도 변할 수 있지만 정말 대학생이 되고, 연기자가 되고, 스포츠 선수가 되려고 소속에 가입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
마찬가지로 성경은 각 개인의 활동만큼이나 “팀”활동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섬기하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책임을 가지고 하지만 그리스도인 각자는 믿음 있는 각지교회의 일부로서 스스로 동화되어야 하고, 그 교회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끔 “소속감”으로 불리지만 우리는 여기서 어떤 특정한 용어를 강조할 의향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행하려고 어떤 특별한 공식적인 방법을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의도는 단순히 그 무리에서 활동적으로 사역을 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특정한 각지교회의 일부가 되어서 열심을 내도록 의도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각지교회에 끊임없이 방문하여 “떠돌아다니는 지체들”은 성공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떤 특정한 각지교회에 자신을 동질화하기를 거절하는 그리스도인 또한 성공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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