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

(교회에 대한 메시지 I) 교회가 구원에 대한 본질에 참여하고 교제하고 있는가?

Hernhut 2012. 6. 1. 15:31

교회가 구원에 대한 본질에 참여하고 교제하고 있는가?

Written by Br. 성임현(Hernhut)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예수의 교회 안에서 본질적으로 활력적인 참여와 교제가 있습니까? 우리는 “조직된 종교”가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교회, 죄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죽음)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예언, 예배 그리고 복음의 수단인 전도 안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교제하거나 교회에 참여하는 것을 아주 중요한 것으로 보질 않습니다.

 

• 어떤 사람은 “교회는 당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당신을 구원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집착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기독교인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뜻이 대개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이 없이 구원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질문을 할까요?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실까요?

 

• 다른 사람들은 “나는 선한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믿고, 내 가족과 이웃을 옳은 것으로 대우합니다. 이런 내가 왜 교회와의 교제가 필요합니까?”

 

• 많은 젊은이들은 “조직된 종교”를 특히 거절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주장할지 모르지만 교회와 함께하는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 심지어 어떤 교회지체들도 “우리는 교회를 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전해야합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용서와 구원에 관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구원받은 후까지 교회에 대해 가르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내쫓을지도 모릅니다.

 

• 다른 지체들은 그들이 본질적인 것에 참여하는 교회를 생각하지 않다는 것을 참여하는 것, 열심 부족으로 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분파(교파)주의에 의한 주된 원인입니다.

 

• 사람들은 교파적인 나눔, 교회 안에 있는 위선, 교회들이 성경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이 그 일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에 대한 모든 생각을 거절합니다.

 

• 교파(분파)들은 의도적으로 그들의 나누어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교회 교제를 무효화시킵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이 예수 안에서 믿는 한 여러분들이 출석하는 교회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분이 예수 안에서 믿는 한 여러분이 어떤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이 필요치 않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의 개념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사람들이 그분을 거절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분의 계획을 수정하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말로 세우시고자 하셨던 것이 아니요, 계획이 없었던 간격을 메우는 것으로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연구에 대한 목적은 성경을 따라서 참여하고, 교제를 하는 교회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교파가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교파는 신약성경에서 찾지 못하며, 하나님의 계획에는 결코 없었던 부분이었습니다. 교파들은 예수님의 교회 시작하신 100년 후 사람들에 의해 더해졌습니다. 우리는 현대적인 교파에 가입하는 것 없이 구원 받을 수 있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과의 그 교제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그 역할 때문에 본질적인 것을 볼 것입니다.

 

복음은 확실하게 교회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구약성경 예언의 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교회를 계획하셨으며, 건축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 있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 교회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신약성경 교회는 하나님과 복음주의자들에게 예배의 활력적인 부분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어떠한가요? 우리의 구원에 교회는 어떤 본질인가요? 이 문제 대해 이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 용어들이 교회에 대해 사용되고 있음

 

A. 하나님의 집(가정)

교회는 하나님의 집(집안)으로 불립니다.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죽이사 친히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엡 2:19)

예수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한 몸 안에서 하나님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화목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집 안의 지체들이요, 성도들과 더불어 같은 시민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바울은 그래서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요, 진리의 기둥이요, 진리의 터라는 것을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우리 자신들이 행해야하는 것을 알게 하려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자] [주]가 말하노라, 하셨느니라.”(고후 6:18)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지금 계시는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1~3)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집안사람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여기서는 한 가정의 아버지와 자녀로 표현했으며 교회를 넓게 보면 교회는 한 가정과 같습니다. 한 가정은 사랑으로 이어지는 데 그 사랑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지으심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선을 행해야 하는 데 모든 사람들에게 해야 하지만 특히 믿음의 집안사람들에게 해야 합니다. 믿음의 집안사람들은 어떤 높낮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듭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 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 1:22~2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우리의 혼이 순수해지고 거듭납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의 가정의 지체들이요, 교회입니다.

 

교회의 지체들이 아닌 자들에 관해 무슨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까?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이들이 되었나니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6~27)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침례는 교회 안으로 우리를 넣는 것이지만 침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고전 12:13)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서 우리가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한 성령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거듭나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들은 교회원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이러한 무리(사람들)는 거듭나게 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가정의 지체체가 되는 것이요, 교회가 하나님의 가정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하나님의 영원한 상속을 받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면 이것은 우리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롬 8:16~17)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다시 낳으사 산 소망에 이르게 하셨으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사라지지 아니하고 너희를 위해 하늘에 마련된 상속 유업을 받게 하셨나니”(벧전 1:3~4)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들입니다.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예비하신 유업을 받도록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이것은 교회 그 자체가 우리에게 상속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업을 주십니다. 누구에게 그분께서 그것을 주십니까? 그분의 자녀요, 그분 가정의 지체들에게 주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가정은 교회입니다. 만일 거듭나는 것,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 하나님의 자녀들이 상속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면, 교회의 일원은 교회가 하나님의 가정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중요합니다.

 

 

여러 용어들이 교회에 대해 사용되고 있음

 

B.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시며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사 교회를 위해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2~23)

그리스도는 그분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는 충만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가 없다면 충만이 아니요, 건강, 맘몬, 지식, 학벌, 종교가 가득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가 없다면 다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골 1:18)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들 뒤에 있는 것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해 내 육체 안에 채우노라.”(골 1:24)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시기에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입으십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몸인 교회의 고난입니다. 교회의 기쁨이 곧 몸인 교회의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의 슬픔이 교회의 슬픔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핍박함이 곧 교회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될 필요가 있나요? 그리스도께서 몸의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조직이 없으신 머리이십니다. 꼭 하나님 아버지만 계신 것처럼 한 몸입니다.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엡 4:4~6)

그리스도께서 본질적이지 아닌 조직, 하찮은 머리이십니까? 몸을 하찮게 하는 것은 그 머리를 하찮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몸의 구속주이십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과 같기 때문이라.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시니라.”(엡 5:23)

몸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엡 5:25)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시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구속주이십니다. 몸 즉, 교회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 관해 무슨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교회가 우리를 구원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분께서 누구를 구원하십니까?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신 모든 사람들의 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으니 [주]께서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시니라.”(행 2:47)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죽이사 친히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

“[하나님]의 화평이 너희 마음속에서 다스리게 하라. 너희도 그 화평에 이르도록 한 몸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니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하나님께서 교회 초기에 교회를 통해 구원받은 자들은 더하셨고, 교회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서 교회는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이 건물이 아니라 구원받고 거듭난 자들이 모이는 유기적이고 단체적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교회는 곧 Folks입니다.

 

 

C. 그리스도의 왕국

 

교회의 지체들은 그리스도 왕국의 시민들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그것이 하늘에서 묶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8~19)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 왕국 곧 교회요, 하늘의 왕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용어는 번갈아가며 씁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골 1:13)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주] 곧 [전능자]께서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 하시더라.”(계 1:8)

“총회와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교회와 모든 것의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히 12;23)

“그러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공경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속한 두려움을 가지고 받으실 만하게 [하나님]을 섬길지니”(히 12:28)

하나님은 어둠의 권능에서 건지시고,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기셨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왕국, 그분의 총회,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교회를 받게 됩니다. 왜 왕국이 중요합니까? 왕국은 복음의 근본적인 부분입니다.

 

“이르되,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2)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들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온갖 질환과 온갖 질병을 고치시니”(마 4:23)

요한과 예수께서는 왕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강조 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는 항상 하늘의 왕국, 그분의 왕국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복음입니다. 이 왕국의 복음이 없이는 복음전파라 할 수 없습니다. 왕국복음이 빠진 설교는 설교가 아닙니다. 도덕적인 권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빌립이 [하나님]의 왕국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것들을 선포하는 것을 그들이 믿고 남녀들이 다 침례를 받으매”(행 8:12)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말하며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강론하고 설득하되”(행 19:8)

빌립과 바울의 경우도 그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에 왕국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우리가 교회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설교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구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 가운데서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며 다녔으나 이제는 너희 모두가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할 줄 아노라.”(행 20:25)

“그들이 그를 위해 한 날을 정하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 나아와 그의 숙소로 들어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을 가지고 예수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풀어 설명하고 증언하니라.”(행 28:23)

“전적으로 확신 있게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그것들을 가르치되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하더라.”(행 28:31)

 

다시 강조해서 말하거니와 우리는 왕국, 즉 교회에 관한 설교나 선포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선포하는 것 없이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물론 자신이 참여하는 교회만이 유일한 하늘의 왕국으로 접근하는 것은 복음이 잘못 흘러갈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국으로서 다른 복음, 오류, 오염, 이단의 무리들을 분별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난 자들은 한 왕국의 시민입니다. 왕국은 어둠의 권능으로부터 나온 자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를 빛 가운데서 성도들의 상속 유업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원하였노라.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골 1:12~14)

 

어둠은 악을 상징합니다. 왕국 안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고 용서하셨기 때문에 성도들의 유업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왕국은 지금 존재합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어둠의 권능에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교회 안에 거하는 시민입니다.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또 하늘의 왕국은 마치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으니라.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숨겨 두고 그 기쁨으로 인해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하늘의 왕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으니라. 그가 매우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또 하늘의 왕국은 마치 바다에 던져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으니라. 그물이 가득 차매 그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버렸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가운데서 사악한 자들을 갈라내어 불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매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하늘의 왕국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은 서기관마다 마치 자기 보고에서 새 것과 옛 것을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하시니라.”(마 13:44~52)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교회를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합니다. 때로는 설교하는 이들 조차도 교회를 말하지 않거나 자기가 참석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숨겨둔 보물입니다. 전 재산을 팔아 이 보물인 교회를 사야합니다. 교회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입니다. 진주가 얼마나 귀한지 가져보면 압니다. 상인은 많은 돈을 드려서라도 좋은 진주를 삽니다. 교회는 그물입니다. 크든 작든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은 우선 육지로 나와 선별합니다. 교회에 좋은 사람들이든 나쁜 사람이든 데려와 선별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교회는 새 것과 옛 것을 선별하는 집주인입니다. 교회는 신약과 구약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다스리는 집주인입니다. 용어가 교회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교회는 구원에 있어서는 절대 필수적인 것입니다.

 

 

II. 교회를 위해 마련된 계획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일부분입니다.

 

A. 교회는 영원에서부터 하나님에 의해 목적 삼으신바 되었습니다.

“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엡 3;10~11)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는 최후의 시간을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그림은 예술가의 기술을 나타냅니다. 능력 있는 로켓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지혜를 나타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일부분으로써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냅니다. 교회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불필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B. 교회는 구약성경에서 예언되었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주}의 집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세워지며 작은 산들 위로 높여지리니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흘러들리라. 많은 백성들이 가며 이르기를, 너희는 오라. 우리가 {주}의 산에 오르고 야곱의 [하나님]의 집에 이르자. 그분께서 자신의 길들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터인즉 우리가 그분의 길들로 걸으리라, 하리니 이는 법이 시온에서부터 나가며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갈 것이기 때문이라.”(사 2;2~3)

주님의 집은 법과 주님의 말씀이 각각 시온과 예루살렘에서부터 나갔을 때인 마지막 날에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요, 가정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 왕이여, 왕이 보셨사온대, 보소서, 큰 형상이니이다. 이 큰 형상이 왕 앞에 섰는데 그것의 광채가 뛰어나며 그것의 형태가 두려웠고 이 형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그의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그의 배와 두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의 두 다리는 쇠요, 그의 두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왕이 보셨는데 마침내 손을 대지 아니하고 깎아 낸 돌이 그 형상을 치되 쇠와 진흙으로 된 그의 두 발을 쳐서 그것들을 산산조각 내매 그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산산조각 나서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쓸려갔으며 그것들의 자리가 없어졌고 그 형상을 친 돌은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채웠나이다. 그 꿈은 이러한즉 우리가 왕 앞에서 그것의 해석을 고하리이다. 오 왕이여, 왕은 왕들의 왕이시오니 하늘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왕국과 권능과 세력과 영광을 주셨나이다. 사람들의 자녀들과 들의 짐승들과 하늘의 날짐승들이 어느 곳에 거하든지 그분께서 그것들을 왕의 손에 주시고 왕을 그 모든 것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으셨나니 왕은 이 금 머리이니이다. 왕 이후에 왕의 왕국보다 못한 다른 왕국이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다른 놋 왕국이 온 땅을 다스릴 것이며 넷째 왕국은 쇠같이 강하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산산조각 내며 정복하나이다. 이 모든 것을 부수는 쇠같이 그 왕국이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고 상하게 하리이다. 왕께서 그 두 발과 발가락들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이 나누일 것이로되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에 쇠의 강함이 있으리이다. 그 두 발의 발가락들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 것 같이 그 왕국도 얼마는 강하되 얼마는 부서질 것이며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터이나 쇠와 진흙이 섞이지 아니함같이 그들이 서로에게 달라붙지 못하리이다.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왕국을 세우실 터인데 그것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하며 이 모든 왕국들을 산산조각 내어 소멸시키고 영원히 서리이다. 손을 대지 아니하고 산에서 깎아 낸 돌이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산산조각 낸 것을 왕께서 보셨사온즉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이후에 있을 일을 왕에게 알리셨나이다. 그 꿈은 확실하며 그것의 해석은 분명하나이다, 하니라.”

(단 2:31~45)

느브갓네살은 형상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은 왕국(교회)이 로마제국의 통치기간이 시작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시작되기 수세기 전에 교회를 계획하셨습니다. 창조주시오, 우주의 통치자가 하찮은 제도를 위해 이와 같은 갈등을 주신 걸까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름이 가지인 사람을 보라. 그가 자기 처소에서 나와 자라나서 {주}의 성전을 건축하리라. 곧 그가 {주}의 성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으며 자기 왕좌에 앉아 다스릴 것이요, 또 그가 자기 왕좌에 앉아 제사장이 되리니 그 둘 사이에 화평의 논의가 있으리라, 하고”

(슥 6:12~13)

“가지”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주의 성전 곧 교회를 건축하시는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가지”는 교회를 건축하시고 영광도 얻으십니다. 교회의 왕좌에 앉아서 교회를 다스리시고, 또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우리는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가지”가 건축하는 것인데 그 가 건축하는 성전은 유기체이지 건물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하와가 아담에게 나와서 창조되었다 말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나와서 건축된 유기체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당을 부를 때 성전이라고 쉽게 부르는 데 그것은 기독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

교회를 백성이라는 유기체적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건물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거하는 것은 어떠하든지 함께 거닐 수 있겠습니까? 나는 걸어 다니는 건물은 못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유기체적인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C. 예수님은 교회를 건축하신다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만일 교회가 중요한 것이라면 단지 어떤 계획에 열렬한 수고를 더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자신들의 혼인식을 소중하기를 생각한다면 신부와 신랑은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모바일 폰이나 pc제조를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모델을 계획하려고 수고를 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교회를 계획하시고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확실하게 그분께 교회건축이 중요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죄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눅 19:10)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눅 5:32)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마 20:28)

 

그렇지만 여기서 예수님은 교회/왕국을 위해 사람들을 주의 깊게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죄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계획을 수행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교회는 그 계획의 본질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의 구원에 대한 본질입니다.

 

 

III. 교회를 위해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A. 교회는 예수의 피로 대가를 지불하시고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행 20:28)

그분은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사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각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른 어떤 것으로 살 수 있는 유기체가 아닙니다. 돈으로도, 학문으로도, 도덕적 선행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피 흘림으로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피가 아니면 효력은 없습니다. 예수의 피만으로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사실 피의 교회입니다. 피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피가 없는 경배, 봉사, 교회생활, 제사는 어떤 것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과 같기 때문이라.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시니라.”(엡 5:23)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엡 5:25)

그분은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그 몸 즉 교회의 구원자이십니다. 교회를 사랑하셨기에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랑으로 인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그분의 애인이요, 연인이요, 장차 아내가 될 자요, 영원한 사랑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7)

이런 이유 때문에 그분께 속해있는 그분의 교회입니다. 값을 치루시고 교회를 사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는 주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이보다 사랑의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롬 16:16)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골 1:13)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동서양 어느 곳이든 입맞춤을 하는 것은 사랑해야만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게다가 그리스도인이 하는 입맞춤은 거룩한 입맞춤입니다. 이런 입맞춤은 서로의 친함과 관련이 있거나 우정을 다지는 행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랑하시는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근접해서 입을 맞추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매력이 있고 매혹적인지요!

 

 

B. 예수의 죽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어떤 사람은 어떤 것이 자신에게 그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서 값을 기꺼이 지불합니다.

 

• 양식이 부족한 곳의 사람들은 그 양식을 공급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시간 대부분을 일합니다.

 

•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구하려고 수술하기 위해서 어떠한 값을 치루더라도 거의 지불할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에게 적은 가치의 어떤 것이라면 적게 지불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예술”을 위해 적은 돈을 지불하지 않고 거금을 지불할 것입니다.

 

어떤 이가 어떤 것을 위해 지불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가치는 바로 자신의 생명입니다. 군인이나 경찰이 순직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최고의 대가”를 지불했다고 말합니다. 만일 아버지가 자신의 가족을 구하려고 죽는다면 그는 그가 지불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불할 수 있었던 가장 높은 대가를 지불하심으로 교회를 사셨습니다. 죽음의 중요성은 그 사람의 중요성으로 결정됩니다. 모든 혼들은 하나님께 동등한 가치가 있지만 어떤 죽음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더 중요합니다.

 

• 군대에서의 일반적인 죽음은 개인의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 나라에서의 왕의 죽음은 범죄자나 초라한 사람의 죽음보다 더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후 예수님의 죽으심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람이 되셨고, 사람으로 사셨으며, 가장 크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육신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교회를 사시기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께서 교회를 생각해야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방법들 중에서 정해진 예수님의 죽으심의 목적은 교회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왜 예수님의 죽으심이 중요하다고 기록했습니까?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엡 1:7)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구속받았습니다. 심지어 죄의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죽으심과 피 없이는 우리는 구원받는 것과 죄를 용서함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에게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입지 않고는 결코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갈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예수님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시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는 새 상속 언약의 피입니다. 피 흘리심의 목적은 우리가 죄들을 사함 받고, 그리스도의 왕국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는 데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벧전 2:24)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담의 범죄로 상실했던 영광과 의를 예수의 보혈로 죄가 사라지고 다시 덧입혀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지만 그분은 교회를 사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확실히 이것은 구원에 필수적인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5장이 그분께서 몸의 구원자이시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으니 [주]께서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시니라.”(행 2:47)

주님은 교회에 구원받은 자들을 더하십니다. 사람이 예수의 피로 죄들을 용서함 받았을 때 예수님은 교회 안에 그를 넣어 주십니다. 그런 이유로 교회는 예수의 죽으심으로 구원받고, 사신바 된 사람들의 몸입니다. 교회가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죽으심이 필수적이지 않다고 무심코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의 죽으심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지만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시기 위해서 죽으셨을 때 교회가 중요하다고 말을 할 용기가 얼마나 있는지!

 

 

IV. 사역은 교회에 의해서 하십니다.

 

교회의 주요 사역은 영적인 것이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도록 돕는 것입니다.

 

A. 경배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집회로 모여 경배하는 무리입니다. 우리는 교회로 모여 주의 만찬에 계속해서 참여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많아도 한 빵이요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그 한 빵에 참여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고전 10:16~17)

빵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하더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한 몸이요, 한 지체들입니다. 각 지체들은 몸의 각 부분에 위치를 정하고 있지만 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한 왕국을 맡기어 너희가 내 왕국에서 내 상에서 먹고 마시게 하며 또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재판하게 하리라, 하시니라.”(눅 22:39~40)

왕국 즉 교회는 주님의 상에서 빵을 먹고 피를 마시는 곳입니다. 만일 교회가 모일 때 주님의 상이 없다면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교회는 모일 때마다 주의 상이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집회에서 찬양(노래)과 기도를 합니다. 이것은 집회 밖에서 행할 수 있지만 교회가 만날 때 행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찌하리요? 내가 영과 함께 기도하고 또 이해하면서 기도하며 내가 영과 함께 노래하고 또 이해하면서 노래하리라.”(고전 14:15)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교회집회를 말한 것은 바울이 우리를 노래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다름 아닌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으로 노래하거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만 마디 말을 하느니 차라리 이해하면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내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리라.”(고전 14:19)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밝히 보이고 교회의 한가운데서 노래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하시며”(히 2:12)

영으로 하는 노래와 기도는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면 그 노래와 기도는 올바른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있는 기도와 노래는 주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 안에서 하는 노래와 기도는 주님을 높여드릴 것입니다.

 

이런 예배는 얼마나 중요할까요?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요 4:23~24)

그분의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자신을 경배할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영과 진리로 기도하고 노래하지 않는 것은 실상은 불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연합되고 합병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물이 담겨있는 그릇에 기름을 넣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노래와 기도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내가 너희에게도 전해 준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신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저녁 식사 뒤에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잔을 집으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니 너희가 그것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셨느니라. 이는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기 때문이니라.”(고전 11:23~26)

사회가 복잡하고 분주하지만 교회는 서로 모이기를 자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보다 여러 지체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 영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함께 하는 집회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주의 상을 전람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죽으심을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모이는 것을 기뻐하고 서로 모이기를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상속(유업)을 받는 것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그분을 섬겨야 합니다. 이것은 그룹 책임을 포함합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선한 삶을 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우리의 하나님께 받은 사역을 수행하는 것 없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참여하는 교회가 마음에 맞지 않는다하더라도 교회에 참석해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주의 만찬에 참여하도록 매주 주의 상을 전람할 필요가 있습니다.

 

 

B. 복음을 선포하기

교회는 주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하나님에 의해서 건축되었습니다. 교회당은 사회의 모든 소용으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하지만 본질적이고 유기적인 교회는 복음전파에만 소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딤전 3:15)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요, 터입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서 우리가 어떠한 처신을 해야 할까요? 다른 것이 아닌 바로 복음전파입니다. 복음전파는 진리를 전함이요, 진리는 곧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예수님의 기둥과 터입니다.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교회들로부터 삯을 받아 그들을 강탈하였노라.”(고후 11:8)

“빌립보 사람들아, 이제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초기에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와 나눈 교회가 너희 외에는 없었느니라. 심지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그리고 또 다시 내 필요를 위해 보내었느니라.”(빌 4:15~16)

교회들은 복음전파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헌금을 보냈습니다. 교회는 복음전파자들을 위한 기금을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수고하는 형제들의 사역에 지원이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복음전파자들은 사도바울처럼 투명해야 합니다. 교회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하고 부담을 주게 될 때에는 투명해져야 하고 분명해져야 합니다. 물론 예전과 현대적인 사역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합니다. 교회에 부담을 주게 될 때 바울처럼 자유로운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담을 주게 될 때 그 교회를 돌보는 사역에서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에 부담을 주는 것은 교회의 무거운 짐을 주게 되어 그 교회의 사역에 걸림돌이 됩니다. 현대에는 많은 목사들이 교회 건물이나 행정을 세습하고, 사고파는 경우가 있지만 이런 행위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은 대개 거룩해 보이고 영적인 행위라고 할지 모르나 그 배경에는 맘몬과 사탄의 전략이 깔린 것입니다.

 

“그를 만나매 안디옥으로 그를 데려오니라. 그들이 만 일 년 동안 그 교회와 함께 모이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니라.(행 11:26)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되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참고(고전 14장)

바울형제는 예루살렘교회에 머물지 못하고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갑니다. 안디옥에서 1년 정도 교회와 함께 모입니다. 바울형제가 교회와 함께 모여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며 그곳에서 제자들을 낳았습니다. 이 제자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으로 불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모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고 그분의 삶을 닮아가는 자들입니다. 교회는 모여서 무엇을 했을까요? 서로 가르쳤고, 제자들을 건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를 돌아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고 응원을 했습니다. 교회생활 가운데 중요하게 실행해야 하는 것이 모여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경배, 찬양이 중요하다고 하겠지만 이것은 당연한 것이고 형제자매들 가운데 실행해야 하는 것이 바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복음전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느니라.”(롬 10:17)

믿음은 복음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옵니다. 믿는다면서 실행만을 앞세우는 무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교회봉사나 교회의 잘잘못을 지적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초기교회들은 교회봉사나 실행에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봉사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현대교회에서 교회청소나 주차관리 등은 교회에서 가난한 형제자매들에게 맡기고 그들에게 사역비를 공급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믿는 것을 들어야 하고 또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5)

복음전파가 사도들이나 장로들에게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 명령은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입장과 위치를 따져서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든 명령을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마 28:19~20)

물론 이 말씀은 주님의 제자(사도)들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대교회에서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커다란 오류입니다. 거의가 다 천주교회에서 물려받은 잘못된 유산들 일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롬 1:16)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내게 오는 그를 마지막 날에 내가 일으키리라. 대언자들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으리라, 하고 기록되었으니 그러므로 [아버지]께 듣고 배운 자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4~45)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시니”(요 8:32)

복음은 듣는 이에게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복음을 들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사탄의 전략을 들어야 합니까? 또 복음은 자유입니다. 복음이 아니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얽매이는 자들이 되어 있겠죠. 복음, 성경이 아니면 우리가 세상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노예는 사탄의 의도에 의해 움직이는 것뿐 자신의 어떤 의지도 발휘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는 이들은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세상의 법으로 가르침을 받는 이들은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돕는 것보다 다른 어떤 사역을 할 사역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를 가르치는 것 외에 그의 혼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사역입니다. 어떠한 교회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 이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또 어떤 교파 안에 있는 지체직분이 구원에 대한 본질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교파들은 하나님의 계획의 부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예수님께서 건축하셨던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의 몸이라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왕국,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오히려 교회는 하나님께서 중요한 교회를 세우도록 선택하시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죄로부터 구원받은 것이 중요하다면 교회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중요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목적이 중요하다면 교회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기초적인 부분이기에 교회가 중요합니다.

∎만일 예수님의 죽으심이 중요하다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교회가 중요합니다.

∎만일 경배와 복음전파가 중요하다면 주님께서 완성하시려고 교회를 세우신 것이기에 교회는 중요합니다.

 

이 점 모두 교회가 하나님과 예수와의 관계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요, 그리스도의 왕국이요, 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을 채우시는 그릇입니다.

∎교회는 예수의 피로 사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또 교회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중요하고 또 교회가 그분들과의 본질적인 교제를 지속되도록 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교회를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얕보는 게 아니요,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뜻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메모

만일 여러분이 교회에 찾기 원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의 형제들”에 연락하시거나 믿음 있는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교회에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성경연구를 시작하십시오. 또 “그리스도의 형제들”에 댓글을 다시면 저희가 가장 좋은 교회로 연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진심의 마음으로 돕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