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가 거듭날 때 성령께서 우리 안으로 오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 자신께서는 우리 밖에 여전히 남아 계셨습니다. 이것 또한 잘못된 발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그 영 하나님으로 그분을 나눕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삼위일체 하나님의 단일성을 간과합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 안에서 살려고 우리 영 안으로 들어 온 것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성령”이라고 대답할지 모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으로부터 그 영(the Spirit)을 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이 우리 안으로 오신 이가 그리스도 자신이 아니고 오직 그 영 한 분이라고 말하면 거듭나게 된 것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하시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곳에 그 영이 계시냐?”고 물으면 우리는 “그 영이 그리스도를 대표하시므로 서 내 안에 계시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 다음에 “그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냐?” 물으면 우리는 “그분께서는 하늘에 있는 보좌에 앉아 계신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이 삼위일체라는 단어도 기독교 안에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그 영(the Spirit)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또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거듭 났을 때 그리스도 자신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신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골 1:27)
이 구절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분명 하늘들에 있는 보좌 위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영광의 소망으로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
옳습니다.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안 계시다면 우리는 버림받았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성령은 의로 인하여 생명이 되시느니라.”(롬 8:10)
마침내 갈라디아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갈 2:20)
이 구절 모두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 안으로 오신 이가 그 영 혼자가 아니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입증합니다. 그 영께서 그리스도를 대표함으로 우리 안에 계시고 그분은 하늘들에 있는 보좌에 앉아 계신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가 거듭나면 지금 그리스도 자신께서 우리 안에 사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주관적으로 그분을 체험하는 우리를 원하신다.
그리스도 자신이 지금 우리 안에 사시고 계신 것을 깨닫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관적인 분이되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으로 그분에 관해서 아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체험 안에서 우리에게 참되시길 원하시고 또 그것이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입니다. 일례로 가령 내가 사탕 한 조각을 가지고 맛 볼 여러분을 원한다고 합시다. 그 사탕의 맛과 즐거움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객관적인 사실들에 관해서 단지 관심을 갖는 것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나는 사탕 조각에 대해서 자세한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처럼 무엇이 맛있는 것인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색깔과 모양을 설명할 수도, 성분에 관해서도, 그것을 파는 곳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두 들은 후에 여러분은 마침내 말할 것입니다. “그 사탕을 내게 주시오, 그것이 무엇처럼 보이든 어디에서 왔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은 사탕 한 개를 받고서 입 안으로 넣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여러분에게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주 주관적이게 됩니다.
우리가 주관적인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에 관한 아주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참되신가? 우리는 그분에 관해 말을 할 수 있고 그분께 감사할 수 있지만 우리 매일 생활 속에서 그분을 체험하는가? 우리가 다시 태어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관적인 체험을 정말로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되어야 할 뿐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리고 매년마다 거듭나는 체험을 입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흠이 없는 생명 곳곳에서 우리 구원으로부터 받은 풍성을 누려야합니다. 주님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관적이 되실 수 있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처음 우리 마음을 열고 주 예수 안에서 믿었던 순간 우리가 받아들인 것은 우리의 끊임없는 누림이 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갈망하심이요, 우리가 거듭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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