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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데마니즘

Hernhut 2018. 9. 26. 14:00

196712월에 마틴 로이드존스가 청교도 대회로 알려진 집회에서 강연을 했다. ‘산데마니안주의로 알려진 18세기의 자그마한 운동의 가르침이라는 주제의 강연이었다. 교회사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하므로, 이 운동의 오류는 그 가르침을 듣는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로이드존스는 주장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당시의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산데마니안주의의 핵심적인 오류를 반복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깊은 감정적 느낌 없이 참된 믿음을 지닐 수 있다고 하는 오류였다.

 

이 운동은 스코틀랜드 신학자 로버트 산데만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산데만은 구원의 믿음이란 단순한 진리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라고 주장했다. 산데만은 주장하기를, 만일 믿음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진리에 단순히 동의하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포함한다면 그것은 인간 공적의 산물이 된다고 했다. 하나님의 구원이 전적으로 거저임을 강조하려는 마음에서, 산데만은 구원 얻는 믿음의 문제에 있어 인간의 사유나 의지나 갈망의 흔적을 일절 제거하려 했다. 그는 의지의 행위나 감정을 구원 얻는 믿음에 포함시키는 건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의 구호를 타협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확신을 지녔다. 따라서 산데마니안주의의 체계에서 구원 얻는 믿음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 선언에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믿음에 대한 산데만의 지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발육부전 상태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로이드존스가 산데만의 입장에 반대하는 핵심 인물로 여기는 침례교 신학자 앤드류 풀러는 산데마니안주의자들에게서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도 있음을 인정했다. 예컨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 권위 아래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영성이 특정 신체 부위만 성장하는 구루병 걸린 어린아이를 닮았음을 지적했다. 영향력 있는 웨일스 침례교 지도자이자 풀러의 동시대인인 크리스마스 에반스는 1790년대 말엽의 여러 해 동안 산데마니안주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그런 지 얼마 후에 그는 그리스도와 그의 희생과 그의 영의 사역에 대해 냉담한”, “영적 서리에 덮인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많은 노력과 기도를 통해 비로소 그는 다행히도 이 차가운 지성주의적 체계에서 벗어났다.

 

물론 산데마니안주의는 반대에 직면했다. 18세기의 여러 핵심적인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이 체계를 반박하는 글을 썼다. 열렬한 웨일스 칼빈주의적 감리교 찬송작가인 팬티실른의 윌리엄 윌리엄스와 알미니안 감리교 지도자인 존 웨슬리를 예로 들 수 있다. 풀러는 산데마니안주의에 대한 비난’(Strictures on Sandemanianism)(1810)에서 산데만의 체계를 결정적으로 반박했다.

 

본질적으로, 풀러는 믿음과 신학적 고찰이 지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면 진정한 기독교와 명목적인 기독교를 구분할 방법이 없을 거라고 주장했다. 명목적인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진리들에 지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진리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않는다. 풀러는 설명하기를,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 얻는 믿음의 반대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산데마니안주의의 믿음 개념이 옳다면 그 반대는 단순한 무지일 것이다). 구원 얻는 믿음의 반대는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깊은 적대감에 뿌리 내린 무지다. 불신자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3:19). 또한 에베소서 4:18은 불신자들의 이해력이 어두워진 것이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때문이라고 말한다. 풀러는 여기서 말하는 무지는 단순한 지식 결여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거룩한 것들에 대한 반감을 포함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만일 불신이 무지 그 이상을 뜻한다면, 믿음과 올바른 신학도 지식 그 이상을 포함해야 한다. 만일 불신이 진리에 대한 반감과 복음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를 수반한다면, 진리에 대한 믿음과 숙고는 진리에 대한 사랑과 기쁨을 포함해야 한다.

 

산데마니안주의에 대한 비난을 출간하기 20년 전인, 1790-1791년 겨울 동안에, 풀러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재능 있는 복음주의적 설교자인 존 베리지를 방문했다. 그는 베드퍼드셔, 에버턴에 있는 성공회 교회의 교구목사였다. 잠시 대화를 나눈 후에 두 사람은 함께 기도했다. 후에 이 방문을 돌아보면서, 풀러는 베리지의 기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점을 감미로운 엄숙함, 하나님과의 거룩한 친밀감,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한 열렬한 사랑이라 묘사했다. 베리지의 기도에 대한 이 묘사에서 두드러진 감정적이며 송영적인 요소는, 구원 얻는 믿음과 성경신학의 필수적인 몇몇 요소들에 대한 풀러의 이해를 요약해준다. 이 기준에 비추어볼 때, 산데마니아니즘의 믿음관은 실재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과 올바른 신학은 열정적이며 송영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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