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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교회

Hernhut 2016. 12. 3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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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침례요한, 사도 및 제자들


2세기.
몬타니스트(Montanists),
터툴리안니스트(Tertullianists)
몬타니스트(Montanists)
프리기아인 몬타누스(Montanus, A.D. 156)의 이름에서 유래된 성도들로서, 당시 유대주의, 이교도신앙, 그리고 세상 철학과 연합한 알렉산드리아 학파(Alexandrian school)에 대항하여 교회의 순수성, 성도들의 거룩성 및 세상과의 엄격한 분리, 그리고 타 종파, 교파교회 출신에 대한 (재)침례를 실행하였습니다.
몬타니스트를 신비주의적인 경향으로 보는 시각으로 인하여 이단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러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혹 그러한 부정적인 경향이 있었더라도 교회의 순수성 유지와 성도들의 순결을 강조한 모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몬타니스트의 정확한 실체는 지상교회에서는 알 수 없고 천상교회사에만 정확히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터툴리안니스트(Tertullianists or Tertullians)
북 아프리카 카르타고 출생의 터툴리안(Tertullian, A.D 195)에 의해 시작된 모임으로 아프리카, 유럽, 소아시아 지방에 퍼져있었습니다. 유아침례 및 침례중생을 부정하고, 목회자와 장로가 동일 직분임을 주장하였습니다. 당시 빠르게 부패해 가는 교회들에 대한 정화를 외쳤으며 부패한 교회는 참 교회로 인정하지 않았고,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3세기.
노바티안스 (Novatians)
노바티안스 (Novatians)
로마 교회의 장로였다가 타락해 가는 교회에서 분리되어 새 교회의 감독으로 선출된 노바티안(Novatian, A.D. 250, 로마의 장로)의 이름으로 불리어진 성도들입니다.
교회의 독립성 및 순결성, 교회 회원의 엄격한 영입자격 및 치리실시, 영적 경건성 유지, 분명한 신앙 고백이 있는 사람에게만 침례 집행 및 타 종파 출신들에 대한 (재)침례 등과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스도의 대속과 중보 사역, 영적인 거듭남, 부활과 영원한 상급과 심판 등의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를 신봉하였습니다.
5세기.
누미디안스 (Numidians)
누미디안스 (Numidians)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 현 알제리) 지역의 카르타고 교회목사(감독)인 마조리우스(Majorius)가 중심이 된 그룹으로,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교회지체의 엄격한 자격을 준수하였습니다.
6세기.
도나티스트 (Donatists)
도나티스트 (Donatists)
전 누미디안스(Numidians)로서, 북아프리카 히포의 감독이었던 어거스틴의 비성경적인 교회관과 교리에 대항한 사람들입니다.
7세기.
몬텐시스 (Montenses or Mountaineers),
폴리시안스 (Paulicians)
몬텐시스 (Montenses)
노바티안스, 도나티스트의 영적 후손들로서 일명 그리스 멜키데시안스(the Greeks Melchedecians), 아르메니아의 산악지방에서는 유카리트(the Eucharites), 또는 기도하는 사람들(Prayers), 메사리안스(Messalians) 등으로 불렸습니다.

폴리시안스 (Paulicians)
아르메니아지방과 알프스 산맥과 특히 피드몽 골짜기, 이탈리아 산간지방 등에 산재하였던 침례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들로서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중요시하였다고 하여 그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엄청난 핍박(예: 아르메니아 지방에서만 데오도라 여왕시절에 약 10만명이 처형되었음)을 받았으나 그들의 뜨거운 선교열정은 남프랑스의 알비젠시스, 북프랑스의 카타리(Cathari, 순결, 순수), 북이태리의 왈덴시스의 발흥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태리에서는 페이터린스(Paterins or Paterines), 바바리아(Bavaria)에서는 가자리(Gazari)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회교 역사학자들은 이들을 “뱁티스트”와 “사비언스”(Sabians, 아랍어로 ‘재침례자들’)로 불렀고, 세속역사학자들(Adeney, & Gibbon)은 “고대 동양의 뱁티스트들”(Ancient Oriental Baptists)이라고 불렀습니다. 폴리시안스 운동은 이후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12세기.
알비젠시스,
보고밀스,
헨리시안스,
페트로브르시안스,
아놀디스트
알비젠시스 (Albigenses)
남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알비(Albi)에 모여 살던 독립교회 성도들로서, 이들 대부분은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이동해 온 폴리시안스였습니다.

보고밀스 (Bogomils)
보스니아, 불가리아, 아르메니아 지방에 있었던 폴리시안스 성도들로서, 특히 불가리아 지방에 보고밀 모임이 많았기 때문에 불가리안스(Bulgarians)라고도 합니다.

헨리시안스 (Henricians)
로잔의 헨리(Henry of Lausanne ? 감옥에서 순교)가 리더였던 성도들의 그룹입니다.

페트로브르시안스 (Petrobrussians)
프랑스 출신 부르스의 피터(Peter de Bruis or Bruys, 1130년)를 따랐던 성도들로서, 부르스의 피터는 후에 당시 성직자들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에 의해 잡혀 화형 당하였습니다.

아놀디스트 (Arnoldists)
이태리 출신 브레시카의 아놀드(Arnold of Brescia)를 추종했던 성도들로서, 신앙의 자유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놀드는 후에 로마 카톨릭에 의해 화형 당하였습니다
13세기.
왈덴시스 (Waldenses or Waldensians)
왈덴시스 (Waldenses or Waldensians)
피터 왈도(Peter Waldo. ‘발데시우스’라고도 하며 프랑스 리용출신의 부호)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성도들입니다. 실제로는 피터 왈도 이전 오래 전부터 시작된 모임으로서 (자신들의 뿌리를 1세기 사도시대로 믿는 왈덴시스 모임도 있었음), 피터 왈도가 그 당시 알프스 산중에 있던 이 모임의 한 성도로부터 전해 받은 신약성경을 읽고 거듭난 사건 이후 피터 왈도의 이름을 따라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로마 카톨릭의 부패한 교리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수만 명이 죽임을 당하는 등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 도피처에 있던 400명의 왈덴시스들 ? 주로 아녀자들 ? 이 불에 타죽음). 핍박을 피해 알프스 산맥 등의 산간지방으로 피신하여 경건한 생활을 유지하며 신약성경사본 배포와 복음전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프랑스, 스위스, 이태리, 오스트리아, 폴란드,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 보헤미아 등 유럽전역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현재 침례성도들의 교리와 거의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왈도와 그의 추종자들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전도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프랑스와 스위스, 북 이태리 지방에서는 “리용의 가난한 사람들”(the Poor Men of Lyons)이라고도 불리었고, 나막신(sabots)을 신었다고 해서 “사보타티”(Sabotati)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왈덴시안들은 16세기까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15세기.
아나뱁티스트(Ana-Baptists)
아나뱁티스트(Ana-Baptists)
루터와 칼빈이 일어나기 전에 웨일즈에는 ‘웨일즈 침례성도들’(Welsh Baptists), 보헤미아지방에는 ‘모라비안 형제들’(Moravian Brothers), 독일, 화란, 스위스, 프랑스, 불가리아 등에는 아나뱁티스트 등 유럽 각처에는 성경적인 침례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던 성도들이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아나뱁티스트(재침례자들)이라는 이름은 독립교회 모임의 성도들이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이들을 공격하고 비난하기 위하여 핍박자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일반적인 교회사에서는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15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신앙의 내용면으로 보면 ‘아나뱁티스트’는 1세기 이후 교회가 변질되고 부패되어 갈 때부터 계속 존재하여 왔습니다.
16세기.
뱁티스트(Baptists)
종교개혁으로 아나뱁티스트들의 신앙교리 중 상당부분이 기성교회에 수용되었으나 여전히 재침례성도들은 교회의 독립성, 성직계급제도, 유아세례, 세례중생 등의 문제로 종교개혁자들(루터, 칼빈, 쯔빙글리 등)로부터도 다시 심한 박해를 받게 되어 종교개혁 이후로는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 양쪽으로부터 박해, 공격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16세기초부터 재침례성도(Ana-Baptists)에서 “재-“(Ana-)가 탈락되고 뱁티스트라는 명칭만으로 불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는 성경을 믿고 실행하는 독립침례교회들에서 그 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배도와 부패, 변질, 타협이 보편화 된 현대 기독교계에서는 이러한 순수한 (재)침례 신앙을 가지고 있는 모임이 많지 않지만 아직도 미국을 비롯한 영어사용국가에는 상당수의 성경적인 독립침례교회가 그 신앙의 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한국에도 이러한 형태의 교회가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역사 속의 (재)침례성도들’은 일반 역사나 심지어 대부분의 교회사에서도 정통이 아닌 이른바 ‘과격파 또는 급진파’(Radicals), ‘분리주의자,’ ‘이단’ 등으로 매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과 종교개혁자들(16세기 이후)이 역사의 정통(?)과 주류였던 사실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바울을 비롯한 그분의 참 제자들도 그 당시 사회의 기득권세력과 종교세력에 의해 그러한 비난을 받았습니다(눅 22:37, 요 7:20, 9:16, 19:12, 행 24:5, 14, 28:22).

또 강력한 종교적, 사회적 기득권을 갖고 있던 로마 카톨릭 등의 종교제도권은 성경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재)침례성도들이라고 볼 수 없는 그룹을 단순히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기존의 종교권에 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재세례파’라는 이름을 붙여 역사에 기록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16세기 독일의 농민자유혁명 사건을 주도하였던 토마스 뮨저(Thomas Munzer)나, 독일 정부에 대항하여 독립국가를 세우려고 했던 ‘뮨스터 왕국’사건의 중심 인물인 잰 마티스(Jan Matthys)와 존 레이든(John Leyden)을 일반역사나 교회사에서는 ‘재세례파’로 기록하고(‘재세례파’라는 명칭 자체도 모순임) 또 그 사건들을 재세례파에 의해 일어난 과격한 사건으로 단정하고 있으나, 사건의 지도자들이 국가와 교회의 분리, 물침례 등 일부 침례교리를 가지고 있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전반적인 신앙을 살펴보면 진정한 (재)침례성도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에도 전혀 성경적으로 뱁티스트라고 할 수 없는 그룹이 단순히 세례 대신 침례를 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뱁티스트라고 주장하거나 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부르고 있으나, 뱁티스트 교회는, 여러 기독교파 중에서 뱁티스트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한 교파조직이 아니라, 명칭은 어떠하든 “성경이 가르치는 뱁티즘[침례]신앙(롬 6:1?11)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의 모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재세례파’ 또는 ‘재침례교도’라는 이름은 바른 호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죽음과 부활의 믿음’인 침례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의 ‘(교)파’도 아니고 ‘교도(교인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바른 믿음인 침례신앙을 가지고 있는 ‘침례성도’들 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선언하신 “나의 교회”(마 16:18, 엡 4:4-5)는 여러 곳에 지역교회로 존재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여러 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A.D. 30년경 유대 땅(예루살렘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생명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