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을 때 그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감옥에 갇혀있었고, 카이사르 앞에 나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로마에 붙잡혀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그가 세운 교회들 가운데서 비정상적인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와 얼마나 흡사한지!
이 교회들 중 한 지도자는 “바울형제, 형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라고 말했소. 우리는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소. 사랑하는 형제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편지를 썼다.
바울은 이 편지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는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주의 손에 달려있다.”라고 간단하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대했던 것 때문에 그는 기뻐하고 있었다(빌 1:18). 바울이 알고 있었던 것은 패배나 죽임도 아니었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었다.
19절에 있는 “구원”은 헬라어 소테리아sōtēria에서 나왔다. 이 단어는 감옥에서 구출되는 것 이상의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구출 외에 “구원”을 의미한다. 바울은 그가 빌립보성도들의 기도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공급으로 구출에 이르는 것을 가리켰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섬기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주님을 섬기는 이들이 아무리 영적이더라도 그들은 많은 성도들의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의 기도 없이 최전선에 나아가 수고하는 것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공급이라는 헬라어는 코레게오chorēgeō의 어근에서 온 에피코레기아epichorēgia로 그 의미는 “합창단을 이끌다”, “합창단에 물질을 대다”를 뜻했고, 그 이후에 은유적으로 “공급하다”로 사용되었다. 고대에 극단은 도시에서 도시로 여행하며 드라마나 연극을 했다. 이와 같은 무리는 합창단이라고 불렸고, 코라구스choragus라고 불리는 이들의 넘치는 공급으로 후원을 받았다.
바울의 단어 선택은 로마에 그리스도를 드러내려는 것이었음을 가리킨다. 이 전람을 위해 그를 풍성하게 공급하는 코라구스choragus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님이셨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도록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님의 모든 풍성이 그의 모든 생활에 공급되고 있었다. 바울은 어떤 상황이나 어떤 시간에도 그가 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과 그의 또 다른 차원의 구원 체험을 증가시키기 위해 이런 공급과 교회의 기도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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