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주님의 배적부분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관심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빌 1:8). 이 관심은 그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케 되는 것이었다(빌 1:9). 그들이 이미 사랑으로 가득했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풍성케 되는 것이 필요했다고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말한 것이 아주 흥미롭다. 고린도 성도들에게는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전체에 사랑의 의미를 썼다.
하지만 빌립보 성도들은 고린도 성도들과 같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주님의 종으로 바울을 사랑했고, 또 성도들 서로가 사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점점 더 풍성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전진해야 했고, 훨씬 더 높아져야 했다.
“풍성해 지다”를 의미하는 “페릿슈오perisseuō”는 “남아돌다, 탁월하다, 더 풍성하게 갖다”를 의미에 담고 있다. 예상한 것보다 더 많아지는 것을 나타낸다. 내가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면 여러분은 푸짐한 식사를 먹었기를 기대 했었겠지만 내가 집에서처럼 적은 식사를 가져다가 먹었더라도 그 식사는 넘치는 식사였을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훈련하기를 갈망했다. 빌립보 성도들은 이미 풍성했고,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이 사랑의 더 높은 단계에까지 계속하고, 발전시키고, 획득하도록 권고하는데 이 “페릿슈오perisseuō”를 사용했다. 사랑이 풍성하다는 것은 높은 관점과 체험을 가지고 있고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모든 부모는 자신들의 자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풍성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부모는 기대를 가지고 아주 높은 수준으로 자녀들을 사랑을 한다. 이것은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갈망의 사랑이다. 이것은 그들의 사랑이 풍성하다는 의미다. 또 다른 부모도 자신들의 자녀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이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높은 수준의 사랑이 아니다. 풍성한 사랑의 부모는 자녀들에 대한 높은 기대가 있다.
주님은 높은 수준의 사랑을 가진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의 높은 수준의 사랑은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는 그런 사랑이다. 주님은 우리의 삶이 더 높은 곳, 하늘에 속한 곳에 있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점점 더 풍성해 지는 사랑, 높은 기대, 증가된 사랑을 갖는 우리를 원하신다. 우리는 보통의 성도들이 되기 원하지 않고, 더 높이 가기 원하고, 심지어 우리의 사랑이 하늘에 속하기를 원한다. 바울은 이와 같았다. 그는 천연적인 애정을 갖고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주의 사랑을 가지 자였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을 높은 수준으로 이끌기를 추구했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이 주님을 갖고, 주님의 갈망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했다. 이것이 바울이 “너희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 지기를 .......”이라고 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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