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하나님의 유기체로서 사람을 가지심

Hernhut 2016. 4. 24. 20:11


 

이 표현은 극도로 명확한 것입니다. 대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표현, 형상, 그리고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유기체로서 사람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 말로 맨 처음부터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갈망은 유기적인 확대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광대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보기에는 그분 또한 외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겉으로 나타나는 방법이 아니라 유기적인 방식으로 증가하는 것을 통해서 확장이 필요로 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해하고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는 것과 이상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을 따라 생각하십시요. 여러분이 20대에 처음 집을 사는 것은 아주 작습니다. 나이가 들어 여러분이 산 집은 좀 더 큰 집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큰 집이라고 그것은 여러분의 부분이 아닙니다. 결국 여러분이 거기서 떠나기까지 그 집 안에서 살 수 있을 뿐입니다. 비록 여러분의 집이 이동식이거나 자주 이사를 다닐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 집은 유기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유기적인 것입니다. 그분은 단지 증식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갈망은 유기적인 것이며, 이 유기적인 것은 그분의 확장과 증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形像)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1:26-27)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그분의 모양으로, 그분의 형상으로, 그분을 확대하고, 또 그분을 대표하게 하는 존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우리의 외모적인 모양에 관심을 집중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의 본성에도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형상은 하나님의 본성의 어떤 것이요, 모양은 하나님의 모습의 어떠하심이지만 이 모습은 틀림없이 육체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 모습은 또한 신성한 속성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됨으로서 우리가 그 신성한 속성을 체험할 때 어떠한 모양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사악했었습니다. 심지어 선하게 되려는 우리의 시도도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유기적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신성한 속성들이 있으며,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인간적인 미덕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거지를 볼 때 우리가 그들이 이것을 해야 하는 이유도 이해를 하지 않고서 조금의 음식을 사서 그들에게 그 음식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것은 신성한 속성에 대한 우리의 누림 때문에 자주 생기는 것입니다. 이 속성들은 우리의 인간적인 미덕이 되도록 우리가 산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 선한 사람들, 사악한 사람들로 우리를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확대하고 대표하는 것으로 그분의 형상, 모양으로 신성한 유기적인 부분이 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