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의 실제
많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극히 소수만 그 용어가 무슨 말인지를 정확하게 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큰 문제에 대해 합당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몸”이라는 용어를 남용한다. 또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대표하지 않았고, 심지어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면에서 “사람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몸, 그리스도의 증가로서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증가와 확장이기 때문에 우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다. 또 그리스도의 몸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엡 1:23)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몸은 쉽게 움켜잡거나 붙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 메시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우리 가운데 실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지를 만지게 된다. 먼저 우리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몸”이란 단어가 그 본질을 나타내는 반면 “교회”라는 단어는 이 실제의 표면적 표현을 말한다. “교회”, “부르심을 받아 나온 회중”은 우리가 보는 표면적 방면을 더 의미하는 헬라어 “엑클레시아ecclesia”다. 하지만 이 가시적 측면에는 생명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여러분을 볼 때 여러분 안에 여러분의 내적 실제로서 여러분을 입증하는 생명이 있다. 이것은 “교회”와 “몸”이라는 용어 사이를 구분하는 한 방법이다. 실제로서 몸 없이 소위 “교회모임”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도 인간의 모임, 사회적 모임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의 내적 본질이다. 그러므로 교회생활 안에 있는 성도들로서 우리는 비밀한 그리스도의 몸을 표현하는 어떤 것 안에 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하나님 자신의 생명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역 안에서 존재함
그리스도의 몸은 왜 그렇게 심오하고, 신비스런가?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생명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트라이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생명이시고, 본질이시다. 언제든지 우리는 몸의 문제를 만지고, 우리가 하나님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어떤 것을 만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 본질로서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영역은 그리스도 자신의 부활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는가? 나는 영역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을 말한 적이 있고, 신성하고 신비스런 영역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두 영역을 분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존재하는 신성하고 비밀스런 영역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이와 같은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안에서 살 수 있고, 그로부터 풍성한 공급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영역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따르는 정상적이고, 건강하고, 하늘에 속한 생명을 살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의 영역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성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어떤 상태가 되었는가? 즉시 몸 안으로 들어가 구원 받았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참여하도록 그리스도의 몸의 영역 안으로 우리를 이끈 힘이다. 우리의 모든 실패와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교회생활을 계속적으로 누리고, 참여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저는 제가 주님을 어떻게 따라다니거나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성도들과 함께 있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주님께 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우리가 돌아오는 것을 지켜주시고, 우리와 함께 있도록 하시는 움직이시는 요소가 있다. 우리는 “프로스페셜한 실패자”들이 될 수도 있고, 패배자가 돼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몸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있는 어떤 것이다. 우리가 이 부활과 몸 안으로 곧바로 이끌려져서 우리는 순간 회복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주님을 찬양하라. 우리가 부활의 영역 안에서 살 수 있음을 감사하자. 그리스도의 몸 그 자체는 이와 같은 영역이요,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들로서 우리는 이 몸을 함께 드러내고 표현한다.
온 세대의 모든 믿는 성도들을 포함함
그리스도의 몸은 인간의 천연적인 개념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주의 부활의 날로 교회의 시작부터 앞으로 나아가 믿는 모든 성도들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바로 오늘과 미래 교회시대가 끝나기까지 더해지는 모든 성도들을 포함해 역사 속에서 주님을 영접한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다. 어느 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구성되는 모든 성도들을 볼 것이다. 그날 우리는 바울, 베드로, 요한, 진젠도르프, 마담귀용, 매튜헨리, 무디, 다비, 뉴튼, 무디 등을 보게 되고, 서로 “할렐루야!”하며 인사할 것이다. 우리가 한 몸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이런 점에서 성도들의 부분집합만이 몸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포괄적이다. 이 우주 안에는 한 몸만이 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 몸은 자라고 있다. 생명 안에서와 성도들의 인수에서 증가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세상 곳곳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몸에 추가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가 기대함으로 여기에 왔고, 어떤 자매는 억지로 끌려 왔고, 어떤 노(老)형제는 주의 사역을 누리려고 왔고, 심지어 불순한 동기로 온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상관없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기만 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우리가 주님을 만지고,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여는 한 그분은 우리 안에서 증가하시고 몸은 점점 자라신다. 하나미의 걸작으로서 몸이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있는 아주 많이 다른 것을 감사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많은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하지만 그것들이 하나님의 가장 큰 걸작인 교회와 비교될 수 없다. 다른 성도들이 가르치는 것과 특별한 영적인 글을 쓰는 것에도 감사할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나의 걸작,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뿐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높은 의미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 되는 단계에까지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는 삶의 의미를 잃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존재는 하나님의 충만으로 그 몸의 부분이 함께 자랄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몸의 성장과 과정에 참여하고, 지체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 존재의 진정한 목적이다. 이와 같은 삶만이 정말 경이롭다고 불릴 수 있다. 우리가 이미 말한 것처럼 몸으로서의 교회는 트라이윤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신성한 생명의 것이 아닌 것은 몸의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속해 있는 성도들의 몸”이라거나 “나는 이 특별한 교회-몸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이 몸은 그 실체로서 트라이윤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으로 이루어졌다. 교회생활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체험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실제가 부족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무와 실행, 분위기를 추구하는 것을 붙잡았을 수도 있지만 몸의 실제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모임에 함께 한다고 말할 있지만 생명 안에 있지 않거나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부터 분리된 생명의 것이 아닌 방식으로 함께 모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만이 교회의 내용이다.
세상 곳곳에 셰이커교도들이 있다. 셰이커교도들은 마치 방언으로 함께 말하는 자들이 하는 것처럼 그들의 모임에서 해방을 가져오기 위해서 그들의 의자를 흔들어 댄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지만 우리가 이런 방식을 함께 한다는 것은 몸의 실제와 관계있다고 말할 수 없다. 젊은이들은 분위기를 고취시키려는 노래의 종류를 좋아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이들과 다른 분위기의 노래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모일 때 기적을 보기 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듣기 원한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이 하는 것 무엇이든 그들이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롬 14:6). 주님께서 그들을 영접하시는 한 우리가 누구를 판단하겠는가? 우리의 존재에 관한 큰 문제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노래하는지, 또 우리가 실행하는 것 무엇이든 하나님이 우리의 내용으로 실행하고 있는가이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은 그들의 모임에서 노래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내용인가 아니면 그 음악이 여러분의 내용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될 때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얼마나 포함되셨는지 우리 자신을 체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내용은 실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의 내용은 트라이윤 하나님의 생명이다. 실행과 관계없이 우리가 염려해야 하는 최우선적인 것은 생명이 있는가 아니면 성분이 있는가이다.
부활: 몸 생명을 살게 하는 우리의 능력
우리는 또한 우리 영역에 있는 부활의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 30년 동안 몸 생명 안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시간 동안 몸 생명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에 관해 놀라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누군가가 나와 같이 많은 실수, 실패, 넘어짐을 체험한 후 교회생활 속에서 여전히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가 궁금하다. 온종일 바닥에 누어 뒹굴고, 여러분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이유로 여러분이 이기는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그리스도인 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 주님을 추구할 때 그는 많이 하락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 때문인지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추구할 수 있음을 안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요, 우리가 부활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몸을 아는 것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 영역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궁극적인 우려가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의 의미로 오기 때문에 즉시 오는 것이 아니다(엡 1:17).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몸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여러분은 더 몸을 알게 된다.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낳는다. 그리스도의 몸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떼어 놓을 방법이 없다.
여러분이 한 형제를 만난다고 생각해 보라. 여러분은 그 형제의 외모에서 그에 대한 어떤 인상을 얻겠지만 그가 누구인지를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것은 그의 풍모(風貌)를 누리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다. 그들이 그에게서 나오는 것을 보는 것과 여러분이 그에게서 나오는 것을 보는 것은 다른 양면이다. 그들이 그를 아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그의 손을 흔들면서 “아주 큰 손을 가졌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그의 몸에 대한 여러분의 지식의 전부다. 몸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있는 자로서 그를 정말 안다는 것은 여러분이 그의 인격 안에서 그를 알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그의 몸에 속한 존재는 큰 의미가 되지 못할 것이다. 대개 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를 알지 못했던 것을 아는 것은 결혼 후에야 알게 된다. 그 때 이전 그들의 배우자는 데이트를 오랫동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누구였는지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후 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에 관해 아주 많은 것을 발견한다. 그들이 전에 알고 있던 사람, 그들이 유일하게 생각했던 사람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이 진정으로 “한 육체”가 된다.
아내가 자신의 남편이 돼지고기 등과 같은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고 생각해보자. 아내는 “영양공급을 해야 해.”라며 매일 남편에게 베이컨 등 육식을 강요한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같은 일을 한다. 사람이 고기를 거절할 때 그의 몸도 그러하다. 그의 몸은 “나는 그것을 원치 않아.”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진정 몸이 아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육식을 거절한다. 아내가 남편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살기 원한다면 아내는 이 조화가 그 남편의 몸에게 사로잡혀 육체적인 몸으로 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내적존재와 일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누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알고,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 되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알아야 한다. 여러분이 그분을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절대 완전하게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 될 수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분은 그리스도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고, 알고, 그리스도 안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면 될수록 우리는 그분의 몸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혜의 영,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의 계시가 필요하다.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파악할 수 있을까? 지혜와 계시의 영을 계속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엡 1:17). 우리가 이미 어느 정도까지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전제로 우리는 지혜와 계시라는 것에 관해 말할 수 있다. 지혜는 이해하는 것이요, 계시는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의 친구라면 나는 이미 나의 친구에 관한 어떤 계시가 있지만 내가 그를 알면 볼수록 나는 그를 더 이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내 이해가 더 증가되는 것을 바탕으로 나는 더욱 나의 친구를 알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지만 우리는 더 그분을 알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그리스도를 알 때까지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분열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그 몸에 관해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그 몸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많이 그분에 대한 완전한 지식으로 계시의 영을 가져야 하는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볼 정도로 우리는 그분의 몸을 알고 본다.
주님의 상속권
에베소서 1:18절은 그리스도의 몸이 성도들 안에 있는 주의 상속권의 영광의 풍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상속하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분만이 그분의 것을 상속하실 수 있고, 우리 안에서 그분의 것만이 영원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그분께 다른 것들을 드릴 수 있지만 그분께서 추구하시는 것은 그분 자신에 대해 우리 안으로 사역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권은 영광스러운 것이요, 하늘에 속한 것이다. 돌아오시는 날에 그분의 상속권은 우리 안에서 자라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고,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분은 우리를 보시고서 “네 안에 나를 위해 있는 것이 무엇이니? 나는 네게서 무엇을 받을 수 있니?”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으시다.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는 “제 삶은 허투루 살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저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제 삶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게는 영광의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면 저는 제 안에 풍성한 상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주님을 사랑했을 때 주님은 조금 상속하실 수 있으셨지만 이제 주님은 제 안에서 주님의 상속권을 아주 많이 얻으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능력의 탁월성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우리가 그분의 강력하신 힘에 참여하도록 하는 그분의 탁월하신 권능으로 이루어져 있다(엡 1:19).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생각할 때마다 거룩한 생명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또 우리가 이 거룩한 생명을 생각할 때마다 그 힘의 탁월성을 알아야 한다.
나는 가끔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형제자매들이 있다고 비관적인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행복하고 기쁘다고 증거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평화롭고 기뻐할 수가 있을까? 그것은 이 부활능력 때문이다. 내가 이 능력에서 벗어났다고 한다면 나는 전체적으로 풀이 죽었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말씀 전하러 오기 보다는 나는 형제들에게 오늘 모임을 취소할 것을 요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것은 내가 여기에 왔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랐다. 이 능력은 내 안에서 증가되었다. 처음에 이 능력으로 나는 어떤 것도 이길 수 있었지만 오늘날 나의 온 인격은 이 능력의 하늘에 속한 움직임으로 상승하고 증가되었다. 교회생활에는 우리 가운데서 움직이는 탁월한 능력, 부활능력이 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우리는 우리의 움직임을 위한 부활능력의 강력한 힘으로 장비되어 있다. 교회생활 안에는 우리를 상승시키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은 그리스도의 부활능력이다.
몸의 머리로서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통해 실체화되었다(엡 1:22-23).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그분은 우리의 머리가 되신다. 우리는 놀라운 머리가 있는가? 머리라는 단어는 외모적인 얼굴을 의미하지 않고, 축척된 내적 체험을 의미한다. 20년 후 나는 아주 못생겨질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내 어깨 위에 아주 준수한 머리가 있다. 우리의 머리가 우리 얼굴에 있는 것을 기초로 한다면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모든 것을 잃고, 아름다움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머리는 인격을 나타낸다. 30살 때 나는 오늘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렇지는 않았다. 그때에는 아주 핸섬했다. 하지만 오늘날 내 머리는 훨씬 더 미덕과 체험으로 풍성하다. 몸의 머리로서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시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몸을 돌보실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몸의 머리로서 그분은 신성하신 모든 성품과 인성의 모든 미덕을 가지고 계신다.
장로들이 어떻게 평화로울 수 있을까? 그들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의 머리시하는 것을 알므로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문제가 있고, 골칫거리가 있지만 그리스도는 지혜가 풍성하시고 머리로서의 그분은 그분의 지역적 몸의 표현으로서 지역교회를 돌보시고 계신다.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 된다(엡 3:19).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가치를 주는 모든 긍정적인 것들, 모든 것, 그리고 어떤 것의 지식이다. 그리스도는 또 모든 긍정적인 것들을 채우시는 분이시다. 교회로서의 우리는 우주 가운데서 존재의 모든 가치를 산출하시는 그리스도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요, 표현이다(엡 1:23).
나는 50살쯤 된 형제를 안다. 그는 경제적으로, 지식적으로 성숙되어 있다. 또 나는 10살쯤 된 형제를 안다. 그는 아직 완전히 자라야 하는 어린아이다. 그는 몸무게도, 키도, 지식과 심지어 경제적으로는 아주 미숙하다. 그가 몸이 있지만 그의 몸 안에서의 나타냄은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의 몸은 그 충만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긍정적인 모든 것들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무엇인지에 관해 보았다. 우리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몸을 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누가 몸 안에 있는지, 누가 몸 안에 없는지를 알게 되고, 누군가 그런 것을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떤 특성이 있는지, 어떤 것이 어울리지 않는지를 알게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은 아주 웅장하고 폭넓은 어떤 것이다.
몸의 방면들
새 사람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 성분, 그리고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시는 인격으로서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그분 안에서 창조된 새 사람이다. 에베소서 2:14-15절에 의하면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명령하신 율법의 계명들을 그분의 육신 안에서 폐지하셨다. 그분은 그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평케 하시려고 한 새 사람 안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새 사람 즉 교회는 창조된 인격체이다. 성경에 의하면 강하게 말해 남자는 본래 존재하고 있던 동산의 흙, 먼지로 만들어졌고, 여자 역시 이미 존재한 즉 아담의 갈빗대로 건축되었다. 하나님이 자신이 만드신 인간 안으로 호흡하셨을 때 사람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창 2:7).
하지만 새 사람은 전체적으로 새롭고,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우주 가운데 하나님께서 산출하신 중요한 존재는 남녀의 사람과 새 사람이다. 남자가 만들어졌고, 여자가 건축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인 새 사람이 창조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은 “나는 아무 것에서 나오지 않았다. 흙에서 나왔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하늘에 속한 사람조차도 땅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리스도만으로 창조된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생활 안으로 우리의 천연적인 존재를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기를 주의해야 한다. 왜냐면 새 사람으로서의 교회가 그리스도에서 나오지 않은 어떤 것도 거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천연적인 능력이나 매력은 새 사람 안에서 쓸모가 없다. 어떤 사람이 회사에서는 300명을 이끌고 경영할 수 있지만 교회에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본질과 성분으로 창조된 이는 여러분이 아니고 새 사람이다. 새 사람은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요, 그분의 보물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적인 몸의 의미로 산출됨
비밀스럽고,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몸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육신적인 몸의 죽으심을 통해 산출되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영적인 몸이 산출되었다. 십자가에서 그분의 죽으심을 통해 모든 믿는 성도들은 한 몸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고, 그분께 만족되었다(엡 2:16). 적들과 분리된 대신 모든 믿는 성도들은 이제 한 교회다. 많은 우리의 배경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업신여기고, 멸시하고, 서로를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신 그분의 육신 안에서 그리스도는 대적들을 멸하셨다. 이것이 큰 일이 아닌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교회 안에서 함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인격이 우리 자신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생활 안에 있는 우리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정상적인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을 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평강케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서로 사랑할 수 있는가? 이것이 큰 비밀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육신적인 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적들을 죽이셨다.
우리 가운데 적을 재투입해 문젯거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예를 들어 한 형제가 KJV 성경을 읽고, 다른 형제가 RV성경을 읽는다면 그들은 이것으로 대적이 틈을 타게 하는 일이 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형제가 교회 안에서 목사의 직분을 주장하고, 또 다른 형제가 장로의 직분을 주장한다면 이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문젯거리를 일으킬 때마다 우리는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님은 대화합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산출한 하나 됨 안으로 대적이 침투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하지만 구원받고, 화해한 것조차도 우리는 특별하고 독특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평강 안에서 거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비록 형제가 여러분을 이기기 원할지라도 여러분은 “형제님, 형제가 나를 이기기 원한다면 내가 준비하고 있으니 내게 와서 이기세요.”라고 말해야 한다. 형제가 여러분과 교제하기를 갈망한다면 여러분은 “형제, 나와 교제하기 원한다면 나는 준비하고 있으니 내게 와서 함께 교제하자.”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한 몸이기 때문에 어떤 성도를 향할 악감정을 갖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왕국
몸, 교회는 또 하나님의 왕국이다. 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성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몸 지체 가운데 아무도 일시 체류자나 이방인으로 느끼지 말아야 한다. 몸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동료-시민들로서 대해야 한다.
누구나 이주를 하거나, 여행을 할 때 외국인이거나 일시적인 여행객이 된다. 아무 말도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민족의 사람들,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기쁘다. 아마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함께 할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왜냐면 동질성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우리의 교제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동료-시민을 아웃사이더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우리가 하는 것을 실행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해서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도들의 화합을 손상시키는 곳에는 아무도 가지 말아야 한다. 왜냐면 그런 것이 외국인이 되게 하고 일시적인 여행객이 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집안
교회는 또 하나님의 집안이다. 하나님의 집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있다(엡 2:19). 여러분이 결혼을 해서 자녀들이 있다면 여러분의 거주지는 여러분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아내, 아이들을 포함한다. 부모나 조부모가 있다면 그들도 여러분의 거주지에 포함될 것이다. 아버지에게 가장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집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이다. 최근에 나는 저녁식사 시간에 나의 가족이 다 모이는 것을 체험했다. 나는 식탁에서 즐기는 것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를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집안이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가 그분의 가족으로서 함께 모이는 것을 보실 때 그분은 정말 만족스러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집안에서 식구들끼리 소중히 여겨야 한다.
교회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로 건축됨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엡 2:21)으로서의 교회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로 건축된다(엡 2:20a). 성전은 주의 증거의 문제요, 이 주의 증거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수고로 가능하게 되었다. 여러분의 사도는 누구인가? 여러분을 일으킨 사람은 여러분의 사도다. 사도였던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말할 수 있었다. 고린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바울의 사도직분의 증거였다(고전 9:2). 몸을 건축하는 것 때문에 우리는 기초를 다지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이 필요하다. 왜냐면 그들의 사역이 이 기초의 주춧돌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다스려졌기 때문이다(엡 2:20b). 이와 같은 사도와 대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같은 목표, 방향 그리고 본질이나 그밖에 건축이 잘 안 되는 이유까지도 나누어야 한다. 주춧돌이 화강암이라면 사암(砂巖)은 기초 사역을 하는데 사용할 수 없다. 어떤 기초 사역은 같은 돌이어야만 하고, 주춧돌의 연장으로서 같은 성분으로 완벽하게 일직선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최고의 주춧돌이시다. 기초를 놓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사역은 그리스도만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연결되고,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 안으로 자라는 이 기초 위에 있다(엡 2:20-21). 여러분 가운데서 나의 수고는 여러분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성장하면 할수록 더 더욱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가 되는 것이다(골 2:19).
영 안에서 함께 건축됨
성도들은 어떻게 교회를 함께 건축하는가? 성도들은 영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로 건축되어 간다(엡 2:22). 성도들이 영 안에서 함께 건축할 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으로 건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만족감, 자족을 위한 그리스도의 신부다(엡 5:23).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의 관심과 애정은 주님을 위한 것이다. 주님은 교회의 관심과 애정 안에서 그분의 만족을 찾으신다. 신부로서 교회에게 주님은 몸의 머리시요, 교회의 구원자시요, 말씀 안에서 물의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구별하신다. 그분은 흠과 점과 주름 없이 그분 자신께 영광스런 교회로 나타내게 하신다(엡 5:23-27). 주님께서 왜 교회의 구원자시고, 몸의 머리신가? 그것은 우리가 그분 앞에서 이와 같은 순전한 “젊은 여인”이 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주님과 혼인할 여인들로서 우리는 어떤 흠이나 주름이 없어야 한다. 젊은 신부가 70살의 얼굴을 가지고 혼인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당신이 신부인가? 어떤 신부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주님은 주름 잡히고, 흠 있는 신부 곁에 없으시다. 그분은 항상 신선하시고, 새로우신 분으로서 그분으로 완전히 구성된 신부를 갈망하신다. 우리가 주님을 더 오래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는 덜 주름 잡히고, 흠이 없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더 늙어 보이지만 안으로 말씀 안에서 물로 씻음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갈망하시는 빛나는 신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라. 성경을 읽는 것은 이 “젊음의 물”을 함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주님은 그분의 신부가 되려고 새로운 생명으로 준비한 사람들과 혼인하실 것이다. 여러분이 날마다 구세주로서 그분을 택하고, 말씀 안에서 물로 씻는 것을 반복적으로 누림으로 그 날에 주님은 여러분의 아름다움이 되신다. 내가 거울에 나의 겉모양을 비춰보면 주름진 얼굴을 반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영 안에서 보면 점도 없고, 주름이 없다. 나의 영은 거룩하고 잡티가 없다. 오, 우리 모두가 몸의 실제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성장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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