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네가 어디 있느냐?

Hernhut 2015. 12. 31. 19:51


하지만 사람은 타락했다. 이 때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3:9)고 물으셨다. 그분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이것을 묻고 계신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그분은 거친 방법, 부드러운 방법, 아니면 필사적인 방법으로 네가 어디 있느냐?”(3:9)고 물으실 수 있으시다. 그분께서 우리를 부를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나는 네가 어디 있느냐?”(3:9)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나도 모른다. 내가 엉망이었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크게 부르시는 것을 듣는다. 내가 그분을 필사적으로 찾을 때 그분은 아주 부드러움으로 부르신다. 가끔 하나님은 충고하심으로 부르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더 높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시려고 부르신다.

 

내가 처음 구원받았을 때 영화 보러 가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인가 나는 영화 보러 다니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것이 아님을 느꼈다. 그리고 나를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나를 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교회생활 가운데 선하고 멋지게 보이길 원했지만 이런 문제에 있어서 정말 형편없고, 엉망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님, 저를 구원하소서. 이런 것을 끊고, 멈추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20절을 외우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하지만 나는 그 후에도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이후 어느 날 나는 버스를 타고서 영화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뜩 내가 어딜 가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주님, 제가 이런 일을 얼마나 오래 지속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얕은 즐거움을 위해 살다니 너무나 슬픕니다. 그런데 내 자신을 멈출 수 없습니다. 제가 그곳에 가고 있어요. 영화를 끊을 수가 없어요. 주님, 저를 구원하소서. 구원하소서.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난 버스에서 내리게 되었다. 그 때 네가 어디 있니? 뭐하고 있어?”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나서 반대 방향의 버스를 다시 타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후 영화를 보려고 하는 나의 불안함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났다. 나는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니?”라는 말씀 때문에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분의 말씀하심을 통해 유기적으로 온다. 우리가 잘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조용하게 너 어디 있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엉망일 때 하나님은 강하게 너 어디 있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세상에서 쭈뼛거리고 돌아다닐 때 하나님은 시시콜콜하게 너 있는 곳이 어디야?”라고 물을 것이다. 하나님은 제가 주님을 섬기고 있어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 있어요. 전 당신 안에 있습니다. 나의 삶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대합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오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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