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른훗 일기

그분이 나를 찾으셨다.(눅 19:1-10)

Hernhut 2015. 7. 31. 14:37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19:10

 

어매이징 그레이스 영화는 1,700년대 후반의 배경으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윌리암 윌버포스에 관한 것이다. 그는 영국의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왕에게 저항하며, 싸우기로 하고, 그의 돈을 들여 그리스도의 신앙을 지켜나갔던 정치가였다. 한 장면에서 윌버포스의 집사(執事)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집사(執事)주인님, 당신은 하나님을 찾으셨나요?”라고 묻는다. 위버포스는 나는 그분께서 나를 찾으셨어.”라고 대답한다.

성경은 헤매고 돌아다니며, 다루기 힘든 양으로 인간성을 그려낸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사실상 이 다루기 힘든 조건은 우리 안에 뿌리를 깊게 뻗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 사도바울을 말했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3:10-12) 그것이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다. 우리는 절대 그분을 찾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우리를 찾으러 오셨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그분의 사역을 설명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19:10)

위버포스는 적중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을 절대 찾지 않고, 찾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를 찾으러 오셨다. 이것은 그분의 잃어버린 창조에 대한 창조주의 사랑의 분명한 표현이다. 그분은 우리를 추구하신다. 그분은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채우시기를 갈망하신다. “나 같은 가엾은 죄인을 구원하시다니!” 얼마나 달콤한 말인지! 나는 한번 잃었던 자이지만 이제 찾으셨네. 눈이 멀었지만 이제 볼 수 있네. 존 뉴튼은 이렇게 노래했다. 며칠 전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 중 어매이징 그레이스를 불렀을 때 가슴이 뭉클해졌다.

 

언젠가 잃었던 내가 그분의 은혜로 이제 찾은바 되었네!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그분의 표현(19:10)은 누가복음 15장에서 3부작의 비유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3-7절에서 그분은 잃은 양을 찾으시는 목자시다. 8-10절에서 잃은 드라크마를 부지런히 찾으시는 여인이시다. 11-32절에서 탕자의 비유로 부단히 기다리시는 아버지로 3부작의 정점을 찍으셨다. 두 공통된 맥락이 이 세 비유에 흐르고 있다. 하나는 찾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투지(결단력)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크신 사랑을 그려진다. 다른 하나는 잃어버렸던 자를 찾을 때마다 넘치는 기쁨과 즐거움이 그려진다. 이 얼마나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에 대한 기묘한 표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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