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주의 제단을 복원하기

Hernhut 2014. 11. 28. 12:21

 

엘리야의 돌아왔을 때 그는 기도하지 않았고, 춤추지 않았으며, 극단적인 어떤 것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단순히 파손되었던 주의 제단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왕상 18:30). 처음에 내가 성경을 읽을 때 나는 하나님의 증거를 쉽게 사람들 가운데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제단의 상태는 하나님의 증거의 상태를 대표했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사람들이 그분께 그들의 제사를 표현할 수 있었던 제단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하나님께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대체했던 것에서 돌이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생활은 주님의 제단에 대한 증거를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제사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가 다른 것들에게 우리 자신을 제사하기 시작할 때 주님의 증거는 타협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쓰심을 위해 그들을 받아주시기를 많은 하나님께 그들 자신들을 헌신하고, 강한 기도를 드립니다. 나중에 이 헌신은 잊어버리고 그들은 그 대신에 또 다른 어떤 것에게 자신들을 헌신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드려 하나님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내일 직업, , 음악, 영화, 세상에 있는 다른 많은 항목들이 우리를 훔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께 세우는 제단은 빠르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믿을 수 없게 되고, 항상 타협의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회복되어야 하고 다시 제단을 세워야 합니다. 왜냐면 오랫동안 수리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고무적인 컨퍼런스가 있어도 우리는 결국 집으로 갑니다. 아무리 영적인 책을 읽을지라도 우리는 그 책을 덮을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 직장, 가족에게로 돌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외의 것들로 제단을 세우는 우리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께 세운 제단이 손상을 입혔습니다.

 

우리는 발전된 정도, 승진, 재정적인 성공으로 제단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바알이 됩니다. 아무리 좋고, 이러한 것들처럼 보여도 끝에서 바알은 우리가 의지로 우리의 숭배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우리가 세운 제단 위에 올려놓은 것을 불 사를 수 없습니다.

 

갈멜산 위에 있는 오직 단 사람만이 하나님을 대표했습니다. 엘리야는 고립되어 여러 해를 보냈습니다. 그를 이해하는 아무도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오바댜는 그를 완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 있는 거짓 신들에게 제단을 세우는데 바빴고, 주의 제단을 허무는데 바빴습니다. 하지만 이제 바알에 대한 거짓 숭배는 폭로되었습니다. 이 외로운 선지자만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제단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참된 영적인 것들은 주의 제단이 수리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제단과 장막의 생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것에 실패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흥미와 야망을 갖기 위해 이집트로 내려간 적이 있는가? 당신이 회복되는 길을 추구하고 있다면 제단과 장막에서 그것을 찾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생활은 제단에서 시작합니다. 세상은 학력, 위치, 재정적인 성공에 따라 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제단 위에서 불태워지는 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주님의 제단 위에서 주님께 제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 자신을 이미 헌신했기 때문에 우리의 헌신이 황폐화되었을 때 우리는 제단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 제단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렸지만 우리의 헌신이 오늘날 황폐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다시 걷기 시작할 수 있고 주의 증거를 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