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양자택일

Hernhut 2014. 11. 21. 10:51

 

이 놀라운 장소에서 엘리야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꾸짖고, 그들에게 도전하도록 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의견 사이에서 머뭇거리려느냐? 만일 {}께서 [하나님]이면 그분을 따르려니와 만일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왕상 18:21). 이것은 중요한 원칙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면 완전히 세상을 사랑해야 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분께 우리 자신을 완전히 드려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보고 미지근하지 말고 덥든지 춥든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3:15~16).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엘리야에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그들이 선택하는 것을 부담지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냉정한 표정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려운 3년이었습니다. 분명하게 아합은 엘리야가 책임을 지고 있던 것을 그들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우리에게서 나온 결정을 요구하라고 한 이가 누구인가? 우리가 3년 동안 가뭄으로 산 것이 당신 때문이다. 우리는 주께서 참 하나님이든, 바알이 참 하나님이든 관심 없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비가 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가 먹을 것을 얻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마디도 없이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돌로 엘리야를 죽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서조차도 적은 무리만이 진실로 하나님의 증거에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증거를 계속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우리로 괴롭게 될 것이라는 것에 놀랄 것입니다. 몇몇은 주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을 듣기 원합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시고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위하거나 우리 자신을 위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완전히 따르는 사람들을 얻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의 대언자로는 나 곧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대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왕상 18:22)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왜 주의 선지자들 중 엘리야만이 유일하게 홀로 남게 되었을까요? 오바댜가 관심을 가졌던 주의 선지자 100명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들은 동굴에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의미를 잃는 자신들의 삶에 더 많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라건대, 우리 중 아무도 이런 선지자들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해 동안 그들을 보호하셨고 지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분의 선지자들로 삼기 위해 그들 중 한 사람을 더 투입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가치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셨을 때 그들 중 한 사람도 주님의 증거를 위해 싸우고 계속 주의 증거를 세우는 방법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