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서 그분의 목적을 벗기시기 시작하신다. 생명 안에서의 성장에 대한 우리의 일생의 체험이 이 장에서 그려졌다.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시는 것은 우리의 성장의 결과다. 우리의 성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얻으시는 방법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어 우리가 이 뜻을 체험해야 하고, 우리가 이 뜻을 체험함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땅을 정복하시려고 그분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창 1:26~28).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을 얻는 것”이요, 또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땅을 갈망하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은사이기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교회를 인수하고, 확장하는데 집중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울리지도 않고, 하나님께 어울리지도 않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어울리려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도 사람이어야 하고,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도 땅이어야 한다.
이 개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너무 높이, 다른 사람을 너무 낮게 생각한다. 우리가 은사로서 우리 자신을 본다면 우리는 자랑스러워하고, 그렇지 않다면 실망스러워 한다(고전 12:15~16, 21). 이런 잘못된 개념은 우리가 우리 보다 오히려 우리가 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인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쉬지 못하지만 대신 우리의 사역을 통해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고 한다.
단순히 우리가 사람들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얻기 원하신다는 것을 보도록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열자.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얻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여러분, 사람인 여러분이란 것이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날마다 그분의 은혜를 체험하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이유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흘러나오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달란트나 이루어냄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사람들이이기 때문에 우리를 소중히 여기신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잘못된 생각에 빠지곤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 자신보다 우리의 은사 또는 기능을 더 중요하게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를 교만케 할 수 있고 ,비굴케 할 수도 있으며, 우리를 자만케 할 수도 있고 ,실망케 할 수도 있으며,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문제보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더 중점을 두게 한다. 또한 하나님의 생명 안에 온전한 삶을 알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을 빌어 주님의 기쁨을 구하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 어떤 것을 중히 여기고, 어떤 것을 가벼이 여기게 할 것이다(고전4: 6).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기를 앙망하며, 그분께 찬양을 올리자. [오! 주님! 당신께서 소중히 하시는 것은 '나' 라는 [사람]이며, 나의 은사와 재능을 개의치 않으시고, 나의 승리와 실패도 개의치 않으시며, 오로지 ‘나’ 라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를 갈망한다면 우리는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야 하고, 땅을 다스리려 하시는 그분의 갈망을 나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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