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앞으로 나아가다

Hernhut 2025. 5. 9. 22:29

 

 

다윗은 온 백성을 모아 랍바로 가서 쳐부수고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들의 왕의 왕관을 그의 머리에서 벗겨 냈습니다. 그 왕관은 금 한 달란트에 ​​보석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다윗의 머리에 씌웠습니다. 그는 또한 성에서 노략물을 많이 가져왔습니다(사무엘하 12:29, 30).

 

다윗은 이제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죄악을 넘어, 숨은 것을 넘어, 자기기만과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넘어섰습니다. 그는 자책과 겸손한 회개의 아픔을 넘어, 심지어 징벌의 첫 번째 타격도 넘어섰습니다. 연기가 걷히고 먼지가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메시지는 앞으로 나아가라였습니다.

 

이 구절은 사무엘하 12:29, 30 앞의 구절에서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의 간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죽은 직후, 다윗은 밧세바를 위로했고, 그들은 곧 또 다른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구절(사무엘하 12:24)에서 성경은 처음으로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로 묘사합니다. 회개, 자백, 그리고 징계의 과정이 반복된 후에야 하나님께서는 이 결혼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은혜의 표현으로 하나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의 이름은 솔로몬이었고, 그는 다윗의 후계자이자 이스라엘 왕위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얼룩진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가 그토록 뛰어난 자리에 오르도록 허락하실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비가 죄의 얼룩을 깨끗이 씻어주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윗은 가정생활 그 이상의 삶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예루살렘에 남아 부끄러운 죄악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마비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회개, 자백, 그리고 징계의 순환을 통해 죄악이 해결된 후에야 하나님은 다윗이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모든 추악한 혼란은 다윗이 랍바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전투에서 물러나 한가로운 오후에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처방은 다윗에게 더 이상 한가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그는 전장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이번 주 본문은 다윗이 모든 백성을 모아 랍바로 갔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회복의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머무르는 대신, 늘 해야 했던 일, 즉 이스라엘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는 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이끄는 대로 백성이 따를지 걱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예전처럼 다윗 위에 있었고, 그들은 따랐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주님의 원수들과 주님의 백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다윗은 새롭게 된 목적 의식과 방향 감각,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소중히 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다윗 위에 있었습니다. 그가 랍바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을 대적하여 싸워 점령했습니다.다윗은 다시 한번 승리했습니다. 전투가 격렬해지면서 다윗은 암몬 사람들과 싸웠던 것만큼이나 의심과도 싸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투에서 저를 축복해 주실까요?』 『아마도 과거의 죄 때문에 다시는 이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그것은 하나의 전투였기에, 우리는 모든 것이 다윗에게 쉽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압니다. 그는 노력과 집중된 생각을 쏟아야 했지만,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의 죄는 그를 실패와 패배의 삶으로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죄에 대한 징벌이 있었지만, 그것이 그의 삶을 망쳤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12:30 끝부분의 승리 장면에 우리는 머물러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먼저 다윗이 왕의 면류관을 빼앗았다는 내용과 그것이 다윗의 머리에 씌워졌다는 내용을 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다윗에게 면류관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의 죄가 그의 면류관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말을 거절했다면, 면류관이 빼앗겼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이 고백과 회개로 응답했기에, 다윗의 머리 에 면류관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죄가 가져온 비극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밧세바 스캔들의 여파 그 이상이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나타나기 여러 해 전부터 하나님의 가족 계획에 불순종했고, 그 불순종의 쓰라린 결과는 그의 아들들에게 고통스럽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의 모든 결과를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삶의 나무판에 박힌 못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못을 제거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구멍은 남습니다. 하지만 이 원리가 다윗 왕이 이제 허무와 패배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잠시라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하 12장의 끝 부분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회복시키신 것이 앞으로의 승리를 의미했음을 보여줍니다. 고대 그리스도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윗의 타락은 아직 넘어지지 않은 자들을 경계하게 하고, 넘어진 자들을 절망에서 구원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이번 주에는 절망에 빠진 성도를 격려해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그것이 주님과 그분의 진리 안에서 당신 자신을 격려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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