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선택 사항인가?

Hernhut 2024. 8. 25. 17:14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유대인 청중들과의 예수님의 토론을 여러 번 언급했는데, 그중 한 번은 이렇게 썼다. 「그[예수]가 이런 말씀을 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를 믿게 되었다」(요한복음 8:30).

확실히 좋은 소식처럼 들리지 않는가?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소식을 듣는 것을 항상 기쁘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를 바란다.

하지만 바로 다음 구절은 매우 중요한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의 시험은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그분의 뜻을 알고자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참된 겅도는 즉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내 주장에 대한 증거는 요한복음의 바로 다음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

우리는 예수께서 새로운 성도들에게 그들이 진정한 제자라면 무엇을 할 것인지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의 고백한 신앙에 즉시 도전하신 것을 본다. 분명히, 예수님께는 성도가 되는 것과 제자가 되는 것이 동의어였다. 그분의 생각에는 일부 현대 기독교 교파 집단에서 종종 가르치는 것처럼 성도와 제자라는 두 가지 범주의 그리스도인이 없다.

영어 번역본(KJV 포함)에서 요한복음 8:32를 다시 읽어보라. 내 주장을 반박할 수 없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에 계속 거할 것」이라고 믿으셨고, 따라서 그들이 진정한 제자임을 증명하셨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모든 사람은 그분의 진정한 제자가 된다. 그분의 제자가 되지 않는 사람은 성도가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계속 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그것은 그분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계속 거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다. 더욱이 그 진리는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날 예수님이 청중들과 나누신 토론을 계속 읽어보면, 그분이 죄에서 해방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는 것이 매우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계속 따르는데, 이는 그들이 그분의 제자임을 증명하며, 그분의 뜻을 배우면서 그 뜻에 순종하여 죄에서 점점 해방되고 그분의 계명에 더욱 순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101이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선포하는 즉시 「그들에게 구원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흥미롭고 비극적이다. 종종 우리의 방법은 그들에게 요한일서 5:13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가 영생을 얻었음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새로운 성도들에게 그 구절을 읽어준 후, 우리는 그들에게 「보셨죠? 믿으니까 영생을 얻었어요! 이제 마귀가 당신을 설득하지 못하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요한이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쓴 이런 것들이 무엇인지 고려하지 못했다. 사실, 요한은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알고 거듭났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세 가지 시험을 반복해서 나열했다. 그 시험 중 하나는 순종의 시험이다.

 

「 이것으로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면 그분을 알게 된 줄 안다. 나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한일서 2:3).

또 다른 것은 형제를 위한 희생적인 사랑의 시험이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에 거한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다 살인자요 살인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함을 너희가 아노라.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므로 사랑을 알았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야 마땅하노라. 그러나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어린 자녀들아,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우리는 이것으로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며, 그분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요한일서 3:14-19).

예수님은 이 동일한 시험을 확증하시면서, 「만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요한복음 13:35)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라는 표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사람들, 즉 거듭난 사람들을 표시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예수님은 또한 모든 사람의 영원한 삶이 형제를 사랑했느냐에 따라 결정될 미래의 심판에 대해 예언하셨다. 그는 자신이 표시한 것으로 특징지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그분의 참 제자들이 아님으로서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태복음 25:31-46). 다시 말하지만, 모든 참 성도들은 제자들이다.

하지만 요한복음 8장에서 새로 믿는 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보라. 예수님은 새 성도들에게 구원을 확신시켜 주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이 진정으로 그분의 제자인지 의문을 품도록 도전하셨다. 예수님의 방법은 현대의 방법과 얼마나 달랐는지! 그 이유는 예수님의 복음이 현대의 복음, 즉 하나님의 주장된 무조건적인 은혜의 복음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거짓 은혜 설교자들은 필연적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을 두 가지 범주, 즉 믿는 자와 제자로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모든 것이 그들의 이상한 은혜 정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은혜는 죄를 지을 수 있는 허가증에 불과하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분께 매우 헌신하고 기꺼이 고난을 겪고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는 제자가 될 수 없다고 가르치셨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누가복음 14:25-35). 그러므로 제자가 되는 것은 믿는 자가 되는 것과 같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혼란스러운 생각 속에서 믿는 자가 되는 것은 아무 비용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비용이 들지 않는 믿음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거짓 은혜 설교자들이 예수님께서 사실 우리가 그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실이 성경적으로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그분의 제자가 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라고 말하거나 암시한다. 게다가 우리의 결정은 우리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죄를 지을 수 있는 허가증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러한 교리가 얼마나 끔찍한지 설명할 적절한 단어가 없다.

한국의 예수는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한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지만 성경의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 성경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계명을 주셨고, 그들이 그 계명을 지키고 가르치기를 기대하셨다(마태복음 28:19, 20). 성경의 예수은 제자가 아닌 사람은 누구에게나 완전히 쓸모가 없으며 결국 버려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누가복음 14:34, 35). 그리고 그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분명히 같은 감정을 반복했다.

「나는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네가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요한계시록  3:15, 16).

만약 당신의 목사가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범주, 즉 성도와 제자라고 가르치고, 제자가 되는 것은 선택 사항이지만 궁극적인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면, 구원은 은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달려가라. 목숨을 걸고 달려가라! 당신의 목사는 이단자이며 양의 탈을 쓴 늑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