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몸 생명의 상호성

Hernhut 2013. 6. 15. 11:46

主護村成壬鉉兄弟

서로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알레론allelon이다. 이것은 서로를 향해 성도들의 상호적이고, 공동적으로 하는 사역을 말한다. “서로라는 단어는 복음서를 빼고 신약성경에서 58번 나온다. 교회 몸은 이 지시들이 한 몸 된 성도들에 대한 의미 있는 동력학적 깊은 관심을 체험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훈련한다. 우리는 상호성과 관계있는 유대감, 일치, 협력, 헌신, 책임, 다른 사람 중심, 열정들을 훈련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들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가 관련되게 하시고, 모든 성도들이 자신들의 영적은사들을 활용하여 자신의 역할하게 함으로 그분의 청사진을 건축하기 위해 교회를 주셨다. 우리가 그분의 계획을 따름으로서 동력학적인 교회를 볼 것이다. 동력학적인 교회는 유대감, 책임감, 성장, 일치, 동기 부여, 사역, 그리고 동료애 등이 나타난다. 이런 몸 생명의 결과들은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하나 되는 것을 고대(苦待)하게 한다. 그것은 성도들의 생활 속에서 우선시 된다. 이런 결과들은 복음전파를 하도록 한다. 사람들이 세상의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평안하게 함으로 성도들이 이와 같은 사랑하는 관계를 전람할 때를 주의한다. 그것은 그들을 같은 마음, 뜻을 품은 자들이 되게 한다. 우리는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표현되도록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는다.

 

서로에게 사역하라.(1)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받아들이신 것 같이 너희도 서로를 받아들이라.”(15:7). 우리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본래 범접할 수 없는 죄인들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받아들이셨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부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은혜로 []께 노래하고”(3:16).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지혜로 풍성하게 채워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영적인 훈련뿐만 아니라 주님과의 시간을 갖고 성도들과 함께 모이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모일 때마다 자신에게 채워진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으로 함께 사역할 필요가 있다.

 

너희는 서로 남의 짐들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2).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세의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의 법이 있다. 그 법에 도달하는 것은 바로 서로라는 단어에 있다. 나 아닌 다른 성도들의 짐을 지는 것이다. 이것이 초기교회의 실행이다. 자신의 능력대로 나누어 주는 것, 이것이 서로에게 사역하는 것이다. 재정의 어려움을 위해 여유 있는 성도가 댓가 없이 주라.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기도 하고 또 격려하라. 위로를 받기도 하고 위로하라. 넓은 아량을 요구하기도 하고 또 가지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에 도달하는 것이다.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며”(4:2). 교회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헌신을 해야 한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생각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심지어 학벌과 받아들이는 범위와 방법도 다르다. 그러나 성도들의 갖추어야 할 미덕은 서로에 대한 사역이요, 참고, 너그러움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을 이루는 일들과 서로 세워 주는 일들을 따를지니”(14:19). “서로 세워주다는 말은 서로 건축하다라는 말이다. 건축하는 것은 각 기능에 맞게 일을 함으로 이루어진다. 교회 안에서의 몸 생명 건축은 서로 연결된 기능발휘로 세워질 수 있다.

 

이것은 몸 안에 분쟁이 없게 하고 오직 지체들이 서로 같은 보살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25). 몸 생명 안에는 분쟁이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 몸 안에 심한 압박이 있다면 그 압박은 곧 질병이나 암을 유발한다. 그처럼 몸 생명 안에도 분쟁이 있으면 분열이라는 질병을 가져오는 것이다. 교파가 갈라짐은 여기에 있다. 결국 몸 생명 안에서 서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