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강해/여호수아

헌신적인 봉사 - 주님을 섬기려는 갈망은 주님의 것이다.

Hernhut 2009. 7. 7. 19:37

주님을 섬기려는 갈망은 주님의 것이다.

우리가 꼭 구원받기 위한 우리의 갈망과 마찬가지로 주님을 섬겨야만 하는 갈망은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그분께서 시작하셨기 때문에 그분께 우리 자신들을 헌신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조금이나마 그분을 따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분께서 그것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땅에서 그분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 옆(하나님과 함께)에서 싸울 수 있다면 이것 또한 그분께서 그것을 시작하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하시는 분이시고 또 그분께서 시작하신 어떤 것을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분의 마음의 갈망에 의해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갈망은 땅이 인간의 본질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이 땅에서 인간의 본질을 위함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때어난다면 그 사람의 진정한 잠재력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단지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를 사랑한다면 삶의 질이 가장 높은 경험이 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일 것입니다. 진실로 사랑하고 심지어 예수께 그들 자신을 드리는 그들 가운데의 가장 높은 위업은 하나님께서 그분 마음에 의해 행하시고 계신 것의 보증이 되시기로 결정하시는데 그들에게 동의하실 것입니다. 전에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에 관해 말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이 기본적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수리 날개에 실어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옮기셨다.

왜 여호수아처럼 이러한 사람이 일어나고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도하며 또 좋은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 싸울 필요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녀들을 옮기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9:4에서 주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또 그에게 그분은 독수리 날개에 실어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집트를 떠나기 위해 분투했던 이스라엘 자녀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그분의 뒤로 피하게 하시어 그들을 가려 주셨습니다! 그들은 장애물들과 불리한 입장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들에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올리셨기 때문입니다(엡 2:6). 우리는 이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독수리의 날개로 우리를 옮기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어떤 성공을 하기 위해서 우리를 옮기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성공적으로 그분께 우리의 섬기도록하기 위해 이점에서 우리를 정신을 차리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재능을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께 우리가 이르게 되도록 우리를 옮기셨습니다. 하늘 영역으로 우리를 데려오신 그분의 목적은 그분 자신께 우리를 데려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섬기려는 어떤 어려운 것에 관해 연관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여러분이 큰 집회를 형성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은 한계가 있는 가치에 불과합니다. 니토생형제가 소천(召天)했을 때, 아마 중국에는 6만개의 교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적어도 6, 7백만 정도의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니토생형제가 양육하려고 했던 이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어떤 특이한 문제를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의 영역이요, 불가사의하고 또 신성함 안으로 그분의 날개로 옮기기를 원하심입니다. 그분의 일에 관해서는 그분께 올려 져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에 있는 그 모임들은 어떤 특별한 훈련이나 방법에 집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말씀으로부터 사역되어진 것으로 진리에 의해서 세워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