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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그릇 2

Hernhut 2008. 12. 11. 21:53

소중한 그릇 만들기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을 요청했다” 또는 하나님의 마음“을 뜻합니다. 그는 고통하는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그는 그의 일생동안 하나님께 드려질 나사렛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게 되는 것은 한가지이지만 사무엘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소중한 그릇으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까?(삼상1장~3장)

 

첫째, 사무엘은 예배를 드렸음

사무엘이 태어난 후에 한나는 그녀의 남편 엘가나에게 그녀가 사무엘을 젖 뗄 때까지 실로에 예배하러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삼상1:22). 그런데 그녀는 주님께 그를 드리기로 했었습니다. 사무엘이 젖을 뗐을 때 그는 이미 소년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이 젖 데는 것은 몇 년 걸렸습니다. 그것은 한나가 하나님의 생각과 그분의 목적을 이 소년의 머리에 넣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모세에게도 같은 것이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젖 떼고 파라오의 궁전에 보내지기 전에 그의 어머니에게서 자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씨앗을 그의 마음에 심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같은 기회가 사무엘에게 일어났습니다. 한나는 그가 어떻게 태어났고, 하나님께 드릴 것이며, 또 일생동안 나사렛으로서 바쳐야 한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훈련을 받은 아이가 나이가 들었을 때 그것으로부터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잠22:6) 아이들을 훈련하는데 어머니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기도했을 때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머지않아 갖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출생한 후에 그녀가 하나님과 함께 조용한 시간을 가졌을 때 그녀가 그를 가졌습니다. 비록 그 아이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그녀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소중한 그릇을 만드는 방법이었고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하나님의 목적을 아이의 마음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젖을 뗐고 한나가 주께 그를 드린 실로에 갔습니다. 그녀는 사무엘의 일생동안 나사렛인이 되게 하겠다고 주께 약속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서원에 헌신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실로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주를 예배하였다”고 했습니다(삼상1:28, 다비역). 한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으로 떠난 후 하나님을 경배한 작은 소년이었습니다. 예배는 최고이지만 또한 타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사람 안에 예배의 능력을 넣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자신보다 더 높은 어떤 이를 예배할 필요를 알게 됩니다. 그의 양심이 깨닫게 된 후 첫 번째 일은 예배인데,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요4:16~24). 인간의 역사에서 보듯이 문명인들과 미개인들 둘 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타고난 것인데 사람은 어떤 것을 숭배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사무엘은 그의 어머니 한나에게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worth-ship"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배의 가치가 있다”의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는 의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그분의 공의의 장소에 넣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우리의 공의의 장소로 넣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가 하나님에 의해 처음 불렸을 때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던 때였지만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는 아직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어머니에게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직관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중한 그릇을 만드는 첫 번째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가 가치가 있은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도할 장소가 있음을 깨닫고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무엘은 봉사를 하였음

여기서 소년 사무엘이 주님께 봉사를 했는데(삼상2:11,18,3:1), 그러나 소년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봉사는 하나님의 집의 문들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소년들은 늦잠 자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문들이 일찍 열리지 낳는다면 사람들은 희생을 드리고 예배하러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먼저 우리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장소를 열고, 의자를 정돈하고, 그리고 찬송가를 전달하는 것중 하나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약간의 작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같은 일을 할 때 기억해야 하는데 우리가 주님께 봉사하고 있지만 작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봉사의 목표입니다.

 

에스겔 44장에서 하나는 집에서 하는 봉사와, 또 다른 하나는 주님께 드리는 봉사, 이 두 종류의 봉사가 있습니다. 레위지파는 그들의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격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집에서나 사람들에게 봉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사람들과 일들에게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다운 사독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 신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 봉사하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우리의 예배의 목표는 무엇이며, 누구이어야 합니까? 사람들과 일들입니까? 또는 하나님입니까?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함으로서 사람들에게 봉사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주님께 봉사를 해야 합니까? 그러나 어린 사무엘은 문들을 열거나 엘리 제사장처럼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처럼 작은 일로 봉사를 하는 동안 그는 주님께 봉사를 했습니다.

말씀 안에서 성령은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는 것을 그의 마음의 중심에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사무엘 앞에는 주님 자신이었습니다.

 

또한 말씀은 사무엘이 엘리 면전에서 봉사를 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봉사하기를 원하는데, 우리는 "apprenticeship" 즉 “수습 훈련”에서 배움의 기간을 통해서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우리 주님은 배울 시간을 위해 12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학위를 주고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와 다릅니다.}

몇 년전 "AGAINST THE TIDE"의 작가 Angus Kinnear는 젊은 사역자로서 인도에 가서활동했고 Amy Carmichae과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출국 전에 Watchman Nee는 영국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권면을 위해 Watchman Nee를 요청했습니다. Watchman Nee는 그에게 대문자 "L"를 주의할 것을 권면 했습니다. Watchman Nee는 모든 새로운 운전기사들이 수습생들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경고로 그들의 자동차 번호판에 크고 빨간색 "L"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어떤 사역자들은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것입니다”라고 나타내는 그들 직위에 대문자 "T"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Watchman Nee에게 어떻게 많은 제자들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기를 “아무것도 없다”라고 였습니다. 그는 모든 제자들이 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 속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제자 삼는 그분의 일꾼 몇을 허락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들의 제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배웁니다. 주권적으로 주님은 우리를 도와서 더 전진된 그분의 종들 몇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엘리의 면전에서 주님께 사역하고 있었던 사무엘과 같았습니다. 사무엘은 순종을 배워야 했습니다. 눈이 흐려져 갔고, 귀가 들리지 않았으며, 그의 영적 상태는 쇠퇴해 가는 노인의 면전에서 있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두 아들을 관리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들에게 귀 기울였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와 같은 사람아래서 수습훈련을 봉사하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이 생길까요? 우리는 사람이 완벽하다면 그를 존중하고, 그에게서 배우고 그를 복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이같이 나이든 사람에게 복종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방법은 비밀스럽습니다. 얼마나 종종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우리를 위해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 아래에 있기를 준비하시고 계십니까? 이러한 상황아래에서 우리는 정말로 약간의 수업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를 존경했습니다. 엘리는 대개 자주 밤에 어린 사무엘을 불렀고 사무엘은 엘리에게 가서 복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순종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그릇으로 만드실 때 그분은 자주 까다로운 사람들 아래에 우리를 넣으셔서 특별한 다루심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여기에 참된 원리가 있는데 사람에게 우리의 순종은 절대적이어야 하지만 우리의 복종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순종과 복종 줄 다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순종은 내적인 태도인 반면에 복종은 외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항상 순종하는 태도를 지지해야만하지만 우리의 양심의 범위까지만 사람에게 복종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엘리 아래에서 값비싼 교육을 받았습니다.

 

 

셋째, 사무엘이 자람

태어나는 것은 하나의 일이지만 자라는 것은 또 다른 것입니다. 쓰임받기 위해서는 사무엘이 소년에서부터 장년으로 성장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삼상2:21,26; 3:19). 사무엘이 어떻게 자랐는지를 생각해 보면, 소년 때 그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엘리와 엘리의 두 아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이 두 아들은 “큰”소년들이었습니다. 어린 소년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무엘이 주님 앞에서 자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환경은 그의 성장을 위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가장 나쁜 환경 아래서 주님 앞에서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매우 컸습니다. 때때로 좋은 가정에서 사람들은 부적절하게 자라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나쁜 가정일지라도 단정하게 자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안으로 무엇이가를 넣으셔서 그는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선지자가 될 때까지 자랐습니다.

 

 

넷째, 사무엘은 경청함

우리는 이제 사무엘의 부름에 왔습니다. 그 당시 사무엘은 가르침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았지만 개인적인 체험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하나님 자신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의 사사 기간 동안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는 시력이 나빠지고 귀가 둔해지고 나이를 먹은 엘리 자신에게 대표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들을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말씀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외면되었습니다(삼상3:1). 그러나 하나님께서 소중한 그릇을 부르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세 번이나 불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은 엘 리가 불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엘 리가 부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엘리에게 세 번 갔습니다. 그것은 그가 깨닫기 전에 엘리에게 세 번 간 것입니다. 그의 영적 감각은 너무 무뎠습니다. 마침내 엘리는 하나님께서 다시 부르실 때 대답하는 방법을 말해 주기를 “말씀하옵소서, 주여, 당신의 종이 듣나이다.”라고 그분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첫 번째 메시지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에게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그를 압박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엘리에게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대개 하나님께서 침묵의 기간 후에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은 심판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 후에 하나님은 자비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400년의 하나님의 침묵을 깨신 후 사람들이 들은 첫 번째 말씀은 “회개하라, 하늘들의 왕국이 가까이 다가온다.”였습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밖으로 선포되기 시작됐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나타나기 시작됐습니다.

 

사무엘과 마찬가지로 봉사자로 불렸으며, 또한 우리 모두는 다른 능력과 다른 지역에서 봉사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봉사자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종의 첫 번째 필요는 듣는 귀를 갖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사로잡힌 노예는 그의 주인의 집을 사랑했으며, 일생동안 봉사하길 원했을 때, 그는 그의 귀고리를 하기 위해 귀에 구멍을 뚫었고 문으로 인도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듣는 것-말 또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종의 첫 번째 필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름을 받았을 때 단호하게 선포했는데 “말씀하옵소서, 주님. 당신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우리의 귀들을 뚫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여인들은 그들의 귀들을 뚫기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항상 “말씀하옵소서, 주님. 당신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고 말하는 일생동안 사로잡힌 노예입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 입장에서 주님은 주님이 원하시는 무엇이든지 할 당신을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다.

 

한번은 Watchman Nee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집에서 하녀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녀는 주인에게 속하여 있고 열심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쇼핑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가정하면 여러분은 이와 같은 하녀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또 여러분이 먹을 음식을 사러 하녀를 보냈으나 다른 것을 생각한 그녀가 여러분을 위해 더 좋은 것을 사온다고 가정하면 여러분은 그런 하녀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것은 듣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또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필요함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는 사무엘의 삶에서 볼 수 있듯이 소중한 그릇으로서, 우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영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서 자람과 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가야할 필요하며 주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