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믿음의 그림자에서 걸어나오다

Hernhut 2026. 3. 28. 00:00

 

 

혹시 스스로를 조용한 그리스도인, 혹은 비밀 제자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혼자 있을 때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고 싶지만,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처럼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성경에도 바로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다.

 

요한복음은 요셉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는 분명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을 두려워함으로 드러내지 못한 제자였다(요한복음 19:38). 예수님을 믿었으나, 사회적 위치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그 믿음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요셉은 부유한 사람이었고, 공회 의원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에게 예수님을 따른다는 고백은 곧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 요셉의 믿음에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마태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주라 명령하거늘(마태복음 27:57, 58).

 

이 행동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로마로부터 반역자, 범죄자로 처형된 사람의 시신을 요구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요셉은 더 이상 자신의 평판이나 안위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을 향한 헌신과 사랑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길을 선택했다.

 

성경 원문을 보면,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구했다는 표현에 매우 강한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 사용된 헬라어 아이테오(ατέω)는 단순히 부탁했다는 말이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요구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조심스러운 속삭임이 아니라, 그 지역의 최고 권력자인 총독 빌라도 앞에서 행한 담대한 요청이었다.

 

이 요셉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이사야 53:9).

 

요셉이 자신의 새 무덤을 내어준 덕분에, 예수님은 무명으로 버려지지 않고 존귀한 장례를 치르셨다. 숨겨진 제자의 한 걸음의 순종이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는 도구가 된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아리마대 요셉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어디에서 믿음을 숨기고 있는가? 피해야 할 대화는 없는가? 혹은 섬기고 싶지만, 시선과 부담 때문에 미루고 있는 순종은 없는가?

 

요셉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두려움도 있었고, 긴 시간 침묵 속에 머물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빛 가운데로 걸어나왔다. 하나님은 그런 한 걸음을 통해 역사하신다.

 

오늘 하루, 작지만 분명한 한 가지를 실천해 보자. 말 한마디, 선택 하나, 혹은 섬김 하나로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라고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믿음은 종종 용기를 요구하지만, 그 용기를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

 

기도

 

주님,

아리마대 요셉에게 주셨던 그 용기를 제게도 부어 주옵소서.

사람의 시선보다 주님을 더 귀히 여기게 하시고, 불편하고 두려운 순간에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게 하소서. 숨지 않고, 빛 가운데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