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면cotton과 아마flax 둘 다 필요함

Hernhut 2017. 10. 6. 11:57

교회 생활은 이와 같다. 우리는 아마flax인 사람이 필요하다. 또 우리는 면cotton인 사람도 필요하다. 우리는 많은 것을 통과하고, 주님의 관심에 꿋꿋하게 설 수 있는 형제자매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누림이 있고, 교회에 생명 공급을 할 수 있는 많은 이들이 필요하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가 되는 것에 관하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주님께 얼마나 많이 이쪽이 되려고 애원하느냐, 저쪽이 되려고 애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면cotton이든, 아마flax든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둘 다 성막의 비서스byssus를 만드는 데 필요했다. 둘 다 오늘날 교회 생활에서 필요하다. 우리 대부분 각자가 체험한 것이 있다. 가끔 그분은 친밀하게 붙잡으시고, 우리를 양육하신다. 다른 때에 우리는 그분의 훈련을 체험한다. 결국, 그분은 능숙한 실 잣는 분으로서 그분의 증거를 위한 좋은 덮개를 산출한다.

가끔 교회는 면cotton도 아마flax도 아닌 사람들을 모임에 데려오려고 다른 행동을 하려 한다. 그들이 계속 유대감을 유지하는 한 나는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시도하는 것이 세상에 속한 것이면 면cotton도 아마flax도 아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cotton도 아마flax도 아닌 것은 성막 덮개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좋은 모임, 좋은 찬양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나님 편으로 가는 것은 성막 덮개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데려오지 않고, 자신의 감정으로 사람들을 데려오면 면cotton, 아마flax도 되지 않을 것이고, 성막 덮개가 산출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아름다운 음악이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름다운 음악을 듣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것일 뿐 주님을 만나러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것은 주님께 자신의 생명을 드리고, 그분께 봉사로 자신들을 헌신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좋은 음악으로 자신들의 혼만을 먹이기 때문에 면cotton, 아마flax도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좋은 음악이 있어야 하지만 그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오는 이들은 주님께 오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일하시도록 주의 손에 있게 해야 한다. 그들이 면cotton이라면 그분은 그들을 사로잡으실 것이다. 그들이 아마flax라면 그들을 두들기고, 부서지게 함으로 그들을 압박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항상 그분의 신성한 미덕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고운 인성 즉 그분께서 갈망하시는 것을 산출하시려고 성령의 기름을 더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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