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르단강에서 7번 씻으면 그의 나병이 나음을 입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말했던 것처럼 했고, 나음을 입었다. 나아만이 나음을 입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호의였다. 선물을 얻기 위해 씻은 것이 아니다. 어떤 강에서 7번 씻는다고 나병의 나음을 입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공 없이 주어진 호의였고, 따라서 은혜였다. 하지만 선물을 받기 위해 나아만이 채워야할 조건이 있었다. 그가 그 조건을 채우지 못했다면 그 선물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조건적인 은혜다.
은혜는 조건적일 수 있다. 사람이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은혜의 개념과 모순된 것이 아니다. 특히 물에 씻는 것이 나병이 낫는 조건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다. 그러므로 물에 씻는 것이 죄를 씻는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침례 받음으로서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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