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을 부르심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입었을 때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홍수가 그친 다음 422년이 지나 그의 나이 70세에 부르심을 입었다(창 12:1~4, 15:13~14, 23:4, 37:1, 47:9, 출 6:4, 12:40~41, 행 7:2~6, 갈 3:17~18). “하나님의 영광”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행 7:2). 이것은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섬겼던 ‘다른 신들’에게 예리한 대조를 이루었다(수 24:2, 14). “영광의 하나님”이라는 신성한 칭호는 성경에서 오직 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시 29:3). 시편 29장은 메시야적인 시이므로, “영광의 하나님”이라는 신성한 칭호는 메시야적인 칭호임이 명백하다(시 29:10). 또한 시편 24:7~10에는 “영광의 왕”의 칭호가 기록되었다. 시편 22~24장에서 22장은 양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신 선한 목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23장은 오늘날 양을 위해 공급하시는 큰 목자이시고, 24장은 땅을 지배하시고 자신의 양을 모으기 위해 다시 돌아오실 수(首)목자이심을 표현하는 3부작 시다. 아브라함에게 “영광의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부터 2,000년이 지난 이 때까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은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하나님은 두 시기 사이에서 사람에게 분명한 것들을 계시하셨으나 그분께서 이런 개인적인 어떤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기록이 없다. 아브라함은 목적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고, 이 목적은 구속과 관련이 깊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궁극적인 목적은 애초에 “영광의 하나님”이라는 칭호에서 시작되었다. 에덴에서 사람이 잃어버린 영광이 구속을 통한 한 사람과 관련하여 성경적인 역사의 시점에서 다시 준비된 것은 궁극적으로 성취되었을 것이며, 장차 구속의 때를 암시하는 신성하고도 메시야적인 칭호가 주어진 이 영광은 완결될 것이고, 그 영광은 회복되게 될 것이다. 모든 것들의 회복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영광의 하나님”으로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심과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통한 구속을 그 때가 되면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날과 같지 않은 “영광의 왕”의 날이 될 그 때를 모든 민족들 가운데 아려지게 될 것이고, 사람을 창조하심 안에서 하나님의 근본 목적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그분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찾았던 같은 장소에서 사람을 구원하지 않을 줄 안다. “우르”라는 단어는 “불길, 격정적으로 타오르다. 붉게 만들다.”는 의미요, 심판을 나타내고(창 3:24, 사 5:24, 29:6, 겔 20:47, 눅 16:24, 계19:12), “갈대아”라는 단어는 “멸망, 파멸”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멸망을 기다리는 심판의 장소 가운데 있다. 이것은 오늘날 세상 체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현재의 신분이요, 장래에 대한 조망이다(계 11:15~18, 14:14~20, 19:11~21). 그 명령은 오늘날 개인적으로 아브라함이 목적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을 받고, 구원함을 받으며, 위로부터 태어난” 뒤에 받은 것인데 이는 4,000년 전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땅 우르의 것들로부터 떠나서 내가 너를 보게 될 또 다른 땅으로 가라.”고 하신 명령과 같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의 목적이 모든 것들의 회복과 연관되어 있는 구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의 부르심 역시 모든 것들의 회복과 관련되어 구속에 포함된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곧 멸망 받게 될 우르로 상징된 땅에 남으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또 다른 땅을 목표를 세우고 지금 있는 땅에서 그들 자신을 떠나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의 부르심은 영의 구원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포함하며(현재), 또한 몸과 혼의 구원도 포함한다(미래).
오랫만에 올렸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늦어졌어요.
저를 위해 기도 많이 해 주십시요.
그리고 항상 주님 안에서 승리하십시요.
*샬롬!!!!!